The Dignity of the Chaebol RAW novel - chapter (41)
그런 남 사장의 모습을 엘리베이터 문을 통해 확인한 조 전무.
“아까 저 안에서 우리 직원들 심각하게 컴퓨터로 서류를 확인하고 있는 거 보니까, 물론 입장은 반대이지만 꼭 그 시절 회사에서 나눠 준 지원서를 확인하며 체크해 나가던 제 모습이 보이는 거 같더군요.”
“…….”
“자기가 취업을 하는 것도 아닌데, 다들 이 정도로 집중을 하고 긴장을 하면서 신입 사원 지원서를 보는 모습에… 손정훈 과장이 이번에 참 큰일을 기획하고 잘 진행을 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고 있는 중입니다.”
그 말에 남 사장은 그 어떤 자기 생각도 말하지 않고, 곧이어 열린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갔다.
먼저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갔던 수행원이 층수를 눌렀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남 사장이 조 전무에게 말했다.
“지난 몇 주간 손 과장이 회사에서 하고 있는 모습을 멀리서 가만히 보고 있으면….”
“…….”
“꼭 손홍명 전 회장님이 직원들한테 보여 주셨던 모습이 겹쳐 보입니다.”
“오히려 손중길 회장님과 더 닮아 계신 거 같습니다.”
“제 장인어른이요?”
고개를 짧게 끄덕이며 조 전무가 말했다.
“사장님은 실제로 뵌 적이 없으시겠지만, 전 먼발치에서라도 그분을 몇 차례 수행했던 적이 있습니다.”
“…….”
“손홍명 회장님이 손중길 회장님을 많이 닮고, 또 많은 부분 아버님의 발자취를 따라가셨지만, 딱 하나 기질적으로 흉내를 못 냈던 게 있습니다.”
“정치요?”
“네, 그게 정말 많이 약하셨죠.”
“전무님이 보시기에 손 과장이 그런 기질도 가지고 있다는 말씀이세요?”
“저보다 사장님이 먼저 눈치채셨겠지만, 이번 하반기 공채는 손 과장이 공채의 방식을 바꾼 게 아니라 회사 직원 전체를 상대로 자신의 입지를 확인시켜 주고 있는 겁니다.”
남 사장은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그리고 그 숨을 뽑아내기도 전에 조 전무가 말했다.
“깔끔하네요. 이 정도로 깔끔하게 혼자 힘으로 그걸 해낼 줄은 몰랐습니다.”
“본사 상무도 자기 능력만으로는 못 해내서, 전무님께서 옆에서 많은 지원을 해 주셨던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건 본사 상무뿐 아니라, 누구라도 하기 힘든 거죠. 오히려 그걸 혼자 힘으로, 그것도 이렇게 단기간에 해내 버린 손 과장이 대단한 거라고 봐야죠.”
“마치… 그룹 본사가 아니라 여기에서 은퇴하시겠단 말씀처럼 들립니다?”
“손 과장. 보고 있으면 왠지 모르게 설레지 않습니까? 아까도 다른 직원들 다 있는 앞에서 사장님께 농사 어쩌고저쩌고할 때 꼭 지금 이건 시작이다, 앞으로 사고 한번 제대로 쳐 줄게… 하는 눈빛이었습니다. 사장님과 제가 방문한 의도를 아예 처음부터 다 읽고 있었던 거라고 봐야죠.”
“본사 상무가 지금 전무님이 하신 이야기 들으면 섭섭하다 하겠는데요?”
그 말에 피식하고 웃으며 조 전무가 말했다.
“저는 회장님이 기쁠 수 있고, 근심하지 않으셔도 되게 만드는 게 재경에서의 제 역할이라고 생각을 하는 사람입니다.”
“…….”
“그런 각오로 그룹 본사 시절부터 시작해 현재 재경모직까지, 삼사 임원 생활을 해 왔습니다.”
* * *
그걸 못 하게 하네
아래 항렬은 ‘승’ 자 돌림으로 결정한 것 같았다.
첫 손주의 이름을 작명소에서 받아 온 홍준이 놈이 내게 물었다.
“승현이. 어떤 거 같냐?”
그 이름 말고도 다른 이름이 두 개 더 있었는데, 나 역시 승현이라는 이름이 제일 마음에 들었다.
“좋네요. 이을 승에 어질 현. 저도 이게 제일 나은 거 같아요.”
“자, 가지고 있다가 나중에 네가 형이랑 형수한테 줘.”
이 녀석 홍준이가 날 따라 하고 있었다.
내가 그랬다.
홍명이가 정엽이를 낳았을 때, 홍준이를 옆에 앉혀 놓고 정엽이의 이름을 함께 골랐고, 반대로 홍준이가 정태를 낳았을 땐 홍명이를 옆에 앉혀 놓고 정태의 이름을 함께 고민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 이름을 내가 직접 전달한 게 아니라 녀석들을 통해 형과 동생에게 대신 전달하게 만들었다.
내가 그런 아버지였다.
사업에는 항상 내가 최고라는 자신이 있었지만, 자식들에게 부모의 사랑을 보여 주는 거엔 항상 소심했던 아버지였다.
그리고 홍준이 이놈이 나의 그런 면을 닮아 있는 거 같았다.
좀 좋은 걸 닮지, 이게 뭐 좋은 거라고 이런 걸 닮았을까.
정태와 원수경 사이에서 내 증손주가 태어났다.
기쁜 날이었다.
내가 기쁜 것보다, 첫 손주를 안게 된 홍준이 놈이 산모와 아이 모두 건강하다는 사실에 기뻐하는 모습이 날 더 기쁘게 만들고 있었다.
이제 조금은 이 아비의 마음을 알 것도 같으냐….
난 홍준이에게 닿지 못할 질문만 속으로 계속하며, 이제 막 세상에 태어난 아기를 유리 벽 너머로 넋을 잃고 쳐다보는 홍준이 놈을 바라봤다.
일반 산부인과가 아니라 전 객실이 VIP 병실인 호텔 병원이었다.
그중에서도 7층, 산부인과 병동.
특히나 방역에 꽤 신경을 쓰고 있어서, 산모인 원수경은 직접 만나지도 못했다.
그래서 홍준이가 받아 온 이름을 정태에게 전달하며 대신 원수경에게 축하한단 말을 전달하는 게 할 수 있는 전부였다.
“기분이 어때?”
“잘 모르겠어. 분명 좋은 건 맞는데, 아직은 실감이 안 난다고 해야 되나?”
그래, 그럴 거다.
아직은 그럴 거다.
부모라는 건 한순간에 되는 게 아니다.
아이가 크면서 그 아이와 함께 그 아이의 부모가 되어 가는 거다.
지금 이 순간만큼은 정말 기뻤다.
내 손주 놈이 부모가 되고, 그렇게 진짜 어른이 되어 가는 모습을 바로 옆에서 지켜볼 수 있어서.
그리고 그 순간을 함께해 줄 수 있어서….
“이거, 아버지가 주래.”
“이게 뭐야?”
“이름. 손승현.”
“아….”
“나랑 같이 골랐어. 물론 아버지 뜻이 더 많이 들어간 이름이고.”
“손승현….”
“왜? 별로야?”
“아니, 좀 신기해서.”
작명첩을 한참 동안 빤히 쳐다보며 결국 싱거운 웃음을 터뜨리는 정태였다.
“뭐가?”
“예전부터 아버지한테 들은 이야기가 있어. 내 이름도 그렇고, 정엽이 형 이름도 그렇고… 할아버지가 나랑 정엽이 형 이름 지을 때 각각, 아버지랑 큰아버지를 옆에 앉혀 놓고 같이 선택을 하셨다고.”
그런 이야기를 자식 놈에게도 했구나.
“넌 기분이 어땠어?”
“뭐가?”
“아버지가 너랑 같이 아기 이름을 골라 보자고 하셨을 때.”
“나? 그냥… 어떤 이름이 잘 어울릴까… 그런 생각?”
“아버지는 그러셨대. 할아버지가 처음으로 아버지의 생각을 물어보신 거라, 드디어 인정을 받는구나… 그런 생각을 하셨대.”
내가?
내가 그때 처음으로 홍준이 놈에게 생각을 물어봤다고?
설마.
난 내가 홍준이 놈을 키우며 아버지로서 해 왔던 지난 일들을 힘들게 되짚어 봤다.
“…….”
내가 정말 그랬나?
“하긴 넌 당연히 다르지. 아버지는 할아버지한테 인정을 못 받으신 게 평생의 한이라, 우리한테는 선택을 할 수 있는 기회를 항상 주시는 분이잖아.”
정태 이 녀석, 내가 지 할아비인 걸 알고 일부러 날 먹이는 건가?
“고맙다. 이름 좋네. 형이 네 형수랑 같이 네가 이름 지어 준 조카 잘 한번 키워 볼게.”
“축하해, 형.”
“요즘 회사 일 열심히 한다면서? 보기 좋다. 근데 너 요즘 많이 바쁘지 않냐?”
“나?”
“거기 모직 한창 공채 중이잖아.”
“내가 바쁜 건 다 끝났어.”
싱긋이 웃으며 정태 놈이 내 어깨에 손을 올렸다.
“득남주 한턱 쏴야 하는데, 네 형수 새벽 두 시에 진통 시작해서 양수 터지고 여기 와서 다시 두 시간 넘게 기다렸다가, 분만 시간만 다시 일곱 시간… 형이 오늘은 도저히 체력이 안 따라 준다.”
“천천히 하면 되지. 나도 조금 있다가 가 봐야지.”
“그러니까 말이야. 네 형수 기운 좀 차려지고 하면 형이 따로 자리 만들 테니까, 그때 마시자.”
“형수한테 축하한다고, 몸조리 잘하라고 꼭 좀 말해 줘.”
“그래, 알았어.”
* * *
처가 쪽 사람들까지 일일이 다 챙기고 병실 안으로 들어온 정태는 원수경의 손을 꼭 잡아 준 뒤, 그 침대에 걸터앉았다.
“다 갔어?”
“어. 회사에서 꽃하고 선물들이 너무 많이 들어와서 장모님 편으로 다 보냈어.”
“잘했어. 그런데 그건 뭐야?”
원수경은 남편이 들고 있는 작명첩을 눈짓하며 물었다.
“아, 이거. 우리 아기 이름. 내가 이건 결혼하기 전에 분명히 말했다? 기억나지.”
“알아. 그래서 우리 아기 이름이 뭐야?”
“승현이. 손승현.”
정태는 작명첩을 펼쳐 아내, 원수경에게 보여 주면서도 어쩔 수 없이 눈치를 보게 됐다.
“괜찮네.”
괜찮다는 그 말에 안심을 하며 그제야 미소를 지을 수 있었다.
“그지? 우리가 걱정했던 것보다는 안 촌스럽고 괜찮지?”
“그러니까. 승현이? 손승현… 오… 진짜 괜찮은데? 입에 딱 붙어.”
“다행이네. 오늘 정말 수고 많았어. 중간에 사람들 챙기느라, 정작 수고했단 말을 이제야 하네. 수고했고, 또 엄마 된 거 축하해.”
“당신도 지난 10개월 동안 내가 히스테리 부리는 거 다 받아 준다고 수고 많았고, 또 고마워. 아빠 된 거 축하해.”
잠시 뒤 호텔 측 도우미가 힘차게 울어 대는 아기를 안고 객실 안으로 들어와 젖 물리는 법을 다시 가르쳐 주고 있을 때였다.
아기에게 젖을 물려 놓고 신기한 듯 솜털을 쓰다듬으며 원수경이 물었다.
“승현이 때문에 나 지금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야.”
“나도 그래.”
“승현이도 우리처럼 세상을 다 가질 수 있을까?”
“……?”
보호자를 위한 일반 침대 위에 앉아서 스마트폰을 보고 있던 정태는 그 말에 고개를 갸웃거리며 원수경을 쳐다봤다.
“무슨 뜻이야?”
“당신. 정말 정훈이를 품을 수 있는 게 확실해?”
“뭐?”
“조 전무가 당신이 있는 앞에서 아버님께 그랬다며. 더 이상 정훈이의 회사 생활에 대해 보고할 게 없다고.”
“…….”
“더 이상 객관적인 보고를 올릴 수 있는 입장이 아닐 거 같다는 그 말 자체가 결국은 정훈이를 돕겠다는 말 아니냐고.”
정태는 보고 있던 스마트폰을 잠시 내려놓고, 침대에서 내려와 원수경의 곁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새근거리며 자는 것처럼 보이면서도 젖을 빠는 입만큼은 바쁘게 움직이고 있는 아들을 대견스럽게 내려다보며 말했다.
“오늘은 정말 좋은 날이잖아. 나는 다른 사람들에게 축하만 받고 싶고, 또 당신한테는 축하만 해 주고 싶어.”
“언제부터 당신이 이렇게 감성적이었어?”
“그냥 딱 오늘 하루 정도는 그러고 싶다고.”
“…….”
“근데도 그걸 못 하게 하네. 나 한 번씩 당신을 보면 헷갈려.”
“뭐가?”
“도대체 이 사람은 결혼 상대로 날 선택한 건가, 아님 재경을 선택한 건가… 하고 말이야.”
“……!”
“내가 그런 의문을 품을 때마다 얼마나 자존심이 상하고 또 기분이 나쁜지 당신 모르지?”
새근거리는 아이의 볼을 가볍게 툭 하고 건드려 보며 정태가 말했다.
“왜? 지금 내가 한 말이 당신한테는 상처야? 난 당신이 나와 정훈이 관계를 그렇게 보는 게 상처야. 더는 정훈이 관련해서 나 스트레스 받게 만들지 마. 당신 한 번씩 그럴 때마다 내가 과민 반응을 보이는 건, 정훈이 때문이 아니라 당신 때문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