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gnity of the Chaebol RAW novel - chapter (49)
커피 한 모금을 입에 머금고 한참 동안 창밖을 내다보다가, 입안에 든 내용물을 꿀꺽하고 삼킨 뒤 고 부장이 말했다.
“노조 쪽은 최대한 예민하게 접근을 하셔야 합니다.”
의외였다.
고 부장이 내게 뭔가를 알려 주기 위해 이런 자리를 마련했다는 게.
“지난 하반기 공채 준비 때와는 개념 자체가 다르다고 이해를 하셔야 할 겁니다.”
하는 짓이 재밌어서 가만히 듣고만 있어 줬다.
“회장님의 아들이라는, 그 과장님의 존재가 노조 입장에선 적폐나 반감, 혐오의 대상이 될 수도 있는 겁니다.”
“꼭… 이 회사의 다른 대부분의 사람도 절 그렇게 보고 있을 수 있다는 말을 그렇게 돌려서 하시는 거 같습니다?”
“어떻게 받아들이시든, 그건 과장님의 선택이겠죠.”
“제가 조심을 해야 될 만큼, 현재 재경모직의 노조가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겁니까?”
짧게 고개를 흔들며 고 부장이 말했다.
“아직 그 정도 수준은 아닙니다. 다만 재경모직은 생산 라인에 큰 약점을 가지고 있죠.”
“파업을 하면 대체 인력을 끌어오기 힘들다는 부분 말씀이세요?”
고개를 흔드는 고 부장의 모습에서 그간 보지 못했던 단호함마저 느껴졌다.
“아뇨, 그것도 인력 운영 면에선 하나의 큰 약점이 될 수도 있겠지만, 그것보다 교복사업부는 더 큰 태생적인 약점이 있습니다.”
“태생적인 약점이요?”
“네, 바로 공장을 해외로 이전시키는 게 애초에 불가능하다는 겁니다.”
내가 고 부장하고 이런 사업적인 이야기를 진지하게 나눠 볼 줄 누가 알았겠나.
크게 새겨들을 내용은 없겠지만, 이 분위기 자체가 의외로 재밌었다.
“교복이지 않습니까? 다른 기성품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맞춤에서 생산, 주문자 손에 교복이 들어가기까지 걸리는 유통에 일주일이 넘어가선 안 됩니다. 그런 특수한 제조이기 때문에 해외 공장 이전이 불가능한 사업인 거죠.”
“그렇죠. 대량 생산에 의한 수출 품목이 아닌데, 그걸 굳이 큰돈 들여가며 노조 때문에 공장을 해외로 이전시킬 이유는 없는 거죠.”
“적당한 선에서의 교섭은 불가피합니다. 이건 제가….”
종이컵 안으로 시선을 떨구며 고 부장이 말했다.
“20년 세월 재경모직 인사부 밥을 먹은 사람의 입장에서, 우리 인사부 직원들을 위해서 과장님께 드리는 말입니다.”
“제가 또 제 마음대로 할까 봐요?”
난 웃으며 고 부장에게 말했고, 그 모습을 고 부장은 걱정스럽게 쳐다봤다.
“과장님께서 절 불편하게 생각하신다는 거 알고 있습니다.”
편하지는 않지.
“제 처세가 부족했죠. 절 생뚜앙 지사로 보내시는 과장님의 입장도 충분히 이해됩니다. 제가 과장님이라도 스파이처럼 저의 회사 생활 일거수일투족을 누군가가 감시를 했다는 걸 알게 되면 무척 불쾌할 거 같습니다.”
“저는 그거보다 기회를 드렸는데, 그 기회를 부장님께서 무시하시는 게 더 의외였어요.”
“…….”
“제가 분명히 전무님께 저에 관한 보고를 올리면서 동시에 전무님의 정보도 제게 주십사… 하고 부탁을 드렸는데, 전혀 안 해 주시더라고요?”
“오해가 있으신 거 같은데요, 저는 전무님께서 과장님을 잘 관찰하라고 하신 내용을 업무 외 특별 지시로 생각하며 해 왔던 겁니다.”
“그러셨군요.”
“그래도 제가 부장인데, 과장님이 어려운 건 사실이지만 부장이 과장의 지시를 따를 수는 없는 거 아닙니까. 그 지시가 우리 인사부 업무에 꼭 필요한 내용인 것도 아니고.”
“그래서 부장님을 생뚜앙 지사로 보내는 겁니다.”
고 부장의 미간 사이에 주름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네?”
“그게 전무님에 대한 충성심인지, 아님 의리인지… 그런 거까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부장님께서 이 회사에 대한 소속감과 부장 자리에 대한 책임감은 가지고 계신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
“생각해 보면 당연한 것도 같아요. 인사부. 어느 기업이든 인사부는 요직 중에서도 요직입니다. 부장님께서는 그 요직의 장을 맡고 계시고요. 사실 인사부나 재무부의 장은 어지간한 임원보다 무게가 있는 자리이죠. 그 자리를 오로지 줄을 잘 서서, 사내 정치를 잘해서 잡았다… 라고 생각을 해 버리면 제가 저 스스로 재경모직을 너무 얕잡아 보는 꼴 아닐까요? 아직 제 눈으로 직접 본 건 없지만, 어쨌거나 부장님의 20년 재경모직 인사부 경력을 저는 믿습니다.”
믿기 때문에 생뚜앙 지사로 보내는 거라고 다시 말했다.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지 저는 이해가 잘 안되네요.”
“해외 수입 브랜드 수출과 국내 유통. 그게 현재 재경모직의 총매출 70퍼센트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중 브랜드 교섭과 상품 MD에 관한 업무를 생뚜앙 지사에서 전담하고 있고요.”
“…네.”
“어쨌든 그게 재경모직의 현재 주력 사업이라고 하면 더 집중을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더 키워야죠.”
고 부장의 미간 사이 주름은 한결 더 깊게 패고 있었다.
“조직을 더 키우기 위해서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필요한 사람을 더 모으기 위해서는 공간이 필요하고 좋은 근무 환경, 혜택이 뒷받침되어야 합니다.”
“…….”
“제가 이번에 추석 연휴를 이용해 다녀와 봤는데, 그곳 직원들에게 미안하더라고요. 이 60명, 70명밖에 안 되는 고급 인력들이 재경모직의 70퍼센트를 지탱해 주고 있는데, 그 직원들이 근무하는 사무실의 위치나 주거지 인근의 환경… 제 기준에서는 너무 형편이 없었습니다.”
커피 한 모금으로 입안을 적셨다.
그리고 다시 말을 이었다.
“그렇다고 근무 환경 개선 및 직원들 생활 환경 개선을 비즈니스에 올인을 하고 있는 그곳 직원들에게 자체적으로 해내라고 할 순 없는 거 아닙니까. 이미 그들은 그들의 에너지를 지사장님을 중심으로 똘똘 뭉쳐서 110퍼센트, 120퍼센트까지 쥐어 짜내고 있는 사람들인데.”
“그럼….”
“네, 그런 부분은 어디까지나 인사의 영역인 거죠. 인사가 해 줘야 하는 겁니다. 그 중요한 자리에 제가 누구를 보내겠습니까? 부장님 말고는 없습니다.”
“……!”
“가셔서 현재 그곳 직원들의 최소 두 배, 아니, 세 배, 네 배는 더 되는 직원들이 앞으로 함께 근무를 해도 넉넉할 수 있는 사무 공간을 알아봐 주세요. 그곳으로 파견 나가 있는 주재원들 자녀들이 보다 나은 교육 시설에서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최고 학군 근처로 사무 공간을 새로 알아봐 주세요. 당연히 파견 근무자들의 주거 부분에도 최대한 신경을 써 주시고요. 그렇게 해서 지금보다 더 많은 본사 직원이 그곳으로 넘어갈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 주세요.”
“과장님….”
“비용은 얼마가 들어도 상관없습니다. 그 부분은 제가 여기에서 어떻게든 다 커버를 칠 테니까 그런 부분은 고민하지 마시고, 어떻게든 그곳 지사장님이 해외 지사 규모를 더 키울 수 있도록 옆에서 도와드리세요.”
고 부장의 얼굴에 생각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제가 만나 본 그곳 지사장님은 충분히 지사 규모를 더 키울 수 있는 능력을 가지신 분이었습니다.”
“…….”
“그리고 부장님은 2년 뒤에 우리 재경모직의 해외 지사를 대기업 해외 지사답게 세팅을 끝내 놓으시고, 복귀하십시오. 그땐 제가 정말 귀하게 다시 모시겠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런데 그 아까 이야기하다가 만 내용인데, 노조 부분은….”
“그건 제가, 아니 남아 있는 우리 인사부에서 알아서 하겠습니다. 제가 부장님을 믿고 해외 지사로 보내 드리는 것처럼, 부장님도 우리 인사부 직원들을 믿어 주세요.”
* * *
고 부장이 생뚜앙 해외 지사로 파견 근무를 떠났다.
그동안 박종근 과장의 HRD팀은 신입 사원 연수에 매진했고, 우리 HRM팀은 본사 계약직 직원들의 정규직 전환 비율 확대와 노조 문제 해결을 위해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나날들을 보냈다.
부장 자리가 비어 있는 상황에서 김원호 차장은 기존 자신이 해 왔던 역할에 부장 대리 역할까지 함께하며 버거운 시간들을 보냈지만, 금세 적응을 하며 안정된 리더십을 만들어 내기 시작했다.
“과장님, 2차 요청한 지 다시 24시간 지났습니다.”
정 대리는 며칠 전부터 내가 만들어 내는 전운을 감지하고 노조 측 대표들을 상대로 전투태세에 돌입해 있는 상황이었다.
“메일 확인 안 했던가요?”
“네, 역시 노조 측 대표 7명 모두 우리 쪽에서 보낸 활동비 지출 내역 요청서를 열어 보지도 않았습니다.”
“개인 메일도 아니고, 회사 메일을 쓰는 사람들이 인사부에서 보낸 메일을 열어 보지도 않았다? 3차까지는 요청을 해야 한다고 했죠?”
“네.”
“그럼 지금 바로 3차 요청서 보내세요.”
“네, 알겠습니다.”
정 대리에게 활동비 지출 내역 3차 요청서를 보내도록 지시를 한 다음 김 차장의 자리로 향했다.
“차장님, 저는 준비 끝났습니다.”
“저도 준비 끝났습니다. 그럼 올라가 볼까요?”
“네.”
본사 계약직 직원의 정규직 전환 비율 확대.
그 안건을 건의하기 위해 나와 김 차장은 함께 사장실로 향했다.
처음 그 안건은 김 차장을 통해 운영 이사에게 올라갔고, 운영 이사를 통해 조 전무가 검토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검토에 대한 결과로 남 사장과 함께 해당 안건을 맞춰 보자는 대답이 나왔다.
사장실 앞.
데스크를 지키고 있던 사장실 비서팀 직원 한 명이 나와 김 차장 앞으로 다가왔다.
“안에 계십니다.”
“전무님도 오셨습니까?”
“네, 같이 계십니다.”
상냥한 미소를 보여 준 그곳 비서는 나와 김 차장을 사장실 입구까지 안내한 다음, 직접 문을 노크해 주었다.
* * *
이번 기회에 모가지 날려 버리시죠
신상품 개발팀에 현재 있는 계약직 직원 전원을 정규직으로 전환시키자는 건의는 분명 회사 차원에서 부담스러운 내용이었을 것이다.
직원 몇 명에게 포상을 하듯 정규직 전환을 시켜 주는 것과는 전혀 다른 내용일 테니.
어느 한 특정 부서에게만 이뤄지는 전체 정규직 전환은 틀림없이 다른 부서 쪽에서 불만의 목소리를 만들어 내기에 충분한 사안이고, 그 불만은 또 다른 불만으로 번질 것이다.
“이 부분은 내가 사장님께 전달하기 전에 고민을 많이 해 봤는데, 인사부에서 올리기엔 조금 과한 내용인 듯해.”
조동희 전무가 밑밥을 깔기 시작했다.
자신과 남 사장을 상대로 빈틈없이 설득을 해내라는 식으로 던져 주는 기회이기도 했다.
남 사장 역시 흥미를 가지며 나와 김 차장을 쳐다보고 있었고, 이에 나는 김 차장을 향해 준비해 온 내용을 펼쳐 보라며 눈빛을 보냈다.
김 차장이 말했다.
“해당 내용을 신상품 개발팀에만 한정시키지 마시고, 전사적인 차원에서의 인력 운영을 위한 기초 단계라고 인정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김 차장.
일전에 나와 진지한 대화를 나눈 후, 진지함이 상당히 많이 생겨 있는 상태이다.
“인력 운영?”
“네, 그렇습니다, 전무님. 매년 11월이면 내년에 우리가 총 얼마만큼의 인력을 운영하게 될지에 관한 계획을 잡고 그에 맞는 리크루팅 준비, 재계약을 기획해야 합니다.”
남 사장과 조 전무는 고개를 끄덕이며 김 차장의 말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 준비 기간만 최소 한 달이 걸립니다. 하지만 올해는 벌써 다 끝이 났습니다.”
“벌써 끝이 났다? 아직 10월인데?”
“지난 하반기 공채를 준비하면서, 여기 손 과장이 각 부서의 부서장 및 과장급 관리자와 일일이 직접 만나 내년에 필요할 인력의 예상치를 다 잡아 냈습니다.”
남 사장은 의미를 알 수 없는 미소를 입가에 걸어 놓고 소파에 기대어 앉았다.
그리고 조 전무는 쓰고 있는 안경테를 의미 없이 만지작거리며 날 쳐다봤다.
“그걸 다… 끝냈다?”
“네. 기존에는 11월에 맞춰 저희 인사 쪽에서 각 부서로 인력 운영 총괄 플랜을 요청합니다. 하지만 아시겠지만 진지하게 플랜을 만들어 보내 주는 부서가 많지 않습니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조 전무가 김 차장을 돕기 시작했다.
“어쩔 수 없는 부분이지. 업무 부서야 부서 직원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것이고, 요즘은 조기 퇴사율이 높게 나오니 인력을 정확히 얼마나 확보하고 있어야 할지에 대한 예상을 하기가 힘들 테니.”
“네, 그렇습니다. 하지만 내년의 예상 인력 운영은 각 부서장이 저희 인사 쪽과 이번 하반기 공채를 함께 준비하는 과정에서 인력 운영의 중요성, 그리고 현재의 심각성을 피부로 느끼면서 진지하게 임해 줬습니다.”
“흠….”
“인원에 결손이 생길 때마다 상시 채용에 관한 리크루팅을 계속해 줘야 하는데, 그럴 때마다 드는 비용이 이제는 무시할 수 없는 수준까지 올라가 버린 상황입니다.”
아무도 그 회의 자료를 확인하지 않았지만, 김 차장은 자신이 준비해 온 회의 자료를 보고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에 들어가는 비용이라면 오히려 현 경력직 계약 사원을 정규직으로 전환시켜서 인원의 결손율을 줄이고, 동시에 신입 사원에게 들어가는 교육비까지 함께 세이브해 버리는 게 훨씬 더 효과적이라는 결론이 나옵니다.”
바로 그때였다.
이젠 내가 슬슬 김 차장을 도와 마무리를 지어 볼까… 하는 시점이었는데, 남 사장의 폰으로 한 통의 전화가 걸려 왔다.
남 사장이 전화를 받았다.
“나 지금 미팅 중이니까, 중요한 내용 아니면… 뭐?!”
통화하며 비명처럼 꽥! 하고 고함을 치는 남 사장의 모습을 모두가 의아하게 쳐다보고 있을 때였는데, 이번엔 조 전무의 폰으로 한 통의 전화가 걸려 왔다.
조동희 전무는 전화를 받기 전 인상을 쓰며 폰 액정에 뜬 발신 번호를 확인하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래, 나 지금 사장님 모시고 회의 중이니까 나중에 내가 전화할게. 뭐라고? 방금 뭐라고 했어?”
이번엔 조 전무가 조금 전 남 사장이 보인 반응과 비슷한 반응을 보이며 남 사장을 쳐다봤다.
동시에 통화를 하며 서로를 쳐다본 남 사장과 조 전무.
그런데 그게 끝이 아니었다.
이번엔 내 폰으로 정 대리의 전화가 걸려 왔고, 내가 전화를 받기도 전에 김 차장의 폰으로 전화가 걸려 왔다.
일이 터진 게 분명했다.
“네, 정 대리.”
우선 난 남 사장, 조 전무, 그리고 김 차장이 전화를 받는 모습을 살피며 정 대리와 통화를 시작했다.
―큰일 났습니다, 과장님. 결국 터졌어요!
“귀 아프다, 좀. 살살 말해요, 살살. 교복 생산 라인?”
―네, 파업 들어갈 준비 중이라고 합니다. 거기 강 소장님 전화가 왔는데, 노조 측 대표들이 노조원들 집결시키면서 생산 라인 일곱 기가 현재 멈춘 상태라고 합니다.
“일단 알겠어요.”
―네?
“알겠다고요.”
―…그게 끝이에요?
“그게 끝이지, 뭐가 더 있겠어요?”
―과장님….
“파업에 준비가 어딨어요? 생산 라인 멈췄음 이미 그게 파업이지. 이미 시작된 걸 어떻게 하겠냐고. 알았으니까, 신경 쓰지 말고 정 대리는 다른 업무 보고 있어요.”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