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gnity of the Chaebol RAW novel - chapter (50)
같은 시각, 경기도 안산의 스마일 스쿨 생산 현장.
“테이핑 제대로 쳐! 그쪽 말고 이쪽으로 쳐야지. 밥 안 먹을 거야? 식당 가는 길을 그렇게 막으면 어떻게 해? 생각 좀 하고 일하자, 생각 좀.”
붉은색 노조 조끼를 입고 있는 몇몇 건장한 남성이 공장 본관 앞에 모여 빨간색 테이프로 임시 통로를 설정하고 있었다.
그리고 스무 명 가까운 인원이 테이프로 형성된 그들만의 길 위로 간이 테이블을 설치해 준비해 온 박스를 뜯기 시작했다.
그 박스 안엔 노조원들에게 나눠 줄 붉은색 조끼와 머리에 동여맬 띠, 그리고 돌돌 말려 있는 종이 묶음이 들어 있었다.
말려 있는 종이 묶음을 펼치니 피켓에 붙일 파업 시위 문구가 적혀 있다.
“자, 자! 일사불란하게. 줄 서요, 줄. 한 명씩 차례대로 조끼, 띠, 그리고 피켓 문구 받아 가요.”
확성기를 입 앞으로 갖다 대고, 건조하게 말하는 전무식 노조 위원장.
그의 모습엔 파업을 주도하는 사람이 보여야 할 결연함보다는, 오히려 권태스러움이 더 짙게 묻어 나오고 있었다.
마치 원치 않는 잔업을 해야 하는 모습처럼 보인다.
그런 전무식 노조 위원장 앞으로 생산 라인 총책임자인 강인환 소장이 다가왔다.
“이봐, 전 팀장. 왜 또 그래?”
울음을 터뜨리기 바로 일보 직전의 울상을 하며 강 소장이 노조 위원장을 진정시키려고 애를 썼다.
“비키세요, 소장님. 우리는 우리 할 일을 하고 있는 겁니다.”
“라인 키는 또 언제 다 가져갔던 거야? 이러는 거 아냐, 전 팀장. 시위를 할 사람은 하더라도, 아닌 사람은 일을 할 수 있게 해 줘야지. 얼른 라인 키 줘.”
“안 됩니다.”
“얼르으으은! 이거 지금 자네 범죄 행위야. 라인 키 관리는 소장인 내 책임이라고.”
하지만 노조 위원장은 콧방귀도 끼지 않았다.
“제가 지금 저 혼자 잘 먹고 잘살자고 이러는 겁니까? 소장님도 노조원입니다. 평상시 때는 몰라도, 지금처럼 비상 상황에는 제 지시를 따라 주셔야 된다고요.”
“비상 상황 같은 소리 하고 있네! 지금이 왜 비상 상황이야? 잘 돌아가고 있는 생산 라인 일부러 멈추고, 일 잘하고 있는 직원들 밖으로 불러 모아서 비상 상황을 만든 건 자네야!”
“만들 만하니까 만든 거죠.”
“또 뭐? 이번엔 또 왜 이러는 건데? 제발 그만 좀 해. 자네는 양심도 없어? 다른 사람들한테 미안하지도 않냐고.”
현장 소장과 노조 위원장의 팽팽한 힘겨루기 앞에 밖으로 불려 나온 현장 직원 모두는 갈피를 못 잡고 있었다.
“제가 왜 이 사람들한테 미안해해야 합니까? 저는 지금 우리 생산직 직원의 권익을 대변하고 있는 중이에요. 야! 거기 뭐 하고 있어? 얼른 와서 소장님 안으로 모시든, 아님 조끼를 입히든 해!”
하지만 강인환 소장은 한 발도 못 물러난다는 식으로 두 팔을 넓게 펼쳐 그들의 접근을 막았다.
“다들 정상적으로 생각해, 제발. 지금이 1년 중 가장 바쁠 때야. 생산 라인 계속 돌려야 한다고!”
“뭐 해! 얼른 소장님 안으로 모셔!”
“특근 수당 안 받을 거야?!”
그 말에 강 소장 쪽으로 다가오던 몇몇 노조원이 주춤했다.
“잔업 수당 안 받을 거냐고! 회사가 있어야 노조가 있는 거야, 이 사람들아! 자네들이 지금 라인 키를 왜 나 몰래 훔쳐 갔어?”
“…….”
“지금 자네들이 하고 있는 이게 꼭 필요한 거고, 반드시 해야 하는 거라면 왜 치사하게 라인 키를 훔쳐서 다른 사람들까지 다 일을 못 하게 라인 키를 훔쳐서 라인을 다 멈춘 거냐고!”
“…….”
“할 사람들은 해! 내가 어떻게 그것까지 막겠어? 하지만 라인 키는 줘. 일하고 싶어 하는 자네들 동료, 특근 수당, 잔업 수당이 필요한 저기 저 사람들이 무슨 죄냐고. 이봐, 전 팀장.”
분함에 턱까지 덜덜 떨어 가며 강 소장이 노조 위원장을 향해 한마디를 던졌다.
“왜 저기 저 직원들을 위해선 이런 시위를 준비하지 않지? 자네들 기준에서 저 직원들은 동료가 아니야?”
강 소장이 눈짓한 곳엔 외국인 노동자들과 계약직 생산 직원들이 한숨만 푹 내쉬며 파업이 준비되는 현장을 맥없이 구경하고 있었다.
“도대체 자네들이 원하는 게 뭐야? 정말로 자네들이 말하는 직원들 근무 환경 개선이 목적인 거야, 아님 자네들 마음대로 이 회사를 돌리겠다는 거야? 이러는 거 아냐, 전 팀장. 그만해, 제발 좀!”
하지만 강 소장의 절절한 호소에도 불구하고, 그런 강 소장을 비웃으며 쳐다보는 노조 위원장의 입에선 듣는 사람들 모두가 납득할 수 없는 한마디가 흘러나왔다.
“치워.”
“……?”
“소장님 안으로 치우라고!”
* * *
“우선은 저번 교섭 때처럼 자원팀장, 섬유팀장, 생산부장 그리고 재무리스크팀장으로 1차 교섭팀을 꾸려서 보낸 다음에 본사로 노조 측 대표를 불러들여서 제가 직접 교섭을 끝내겠습니다.”
조동희 전무가 말했다.
머리가 지끈거리는 모양이다.
그는 남 사장이 보고 있는 앞에서 안경까지 벗어 눈을 몇 차례 비빈 다음, 다시 안경을 썼다.
남 사장이 아랫입술을 잠시 깨물고 있다가 어이없는 웃음을 터뜨렸다.
“이거… 아무래도 버릇이 된 거 같죠?”
“…….”
“꼭 이 타이밍에만 저러네요. 작년 9월, 그리고 올 3월, 그리고 지금. 절기 바뀌면서 교복 주문이 들어올 때마다 저러네요.”
“이번 교섭 때는 제가 그 부분도 함께 지적하도록 하겠습니다. 사장님 말씀대로 이 정도면 버릇이라고 봐야죠.”
남 사장은 조 전무가 말한 방법 말고는 현재 뾰족한 수가 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렇게 하세요. 빨리 1차 교섭팀 꾸려서 현장으로 보내세요.”
이런 답답한 친구들을 봤나.
조 전무가 급하게 자리에서 일어서려고 할 때였다.
“아닙니다, 사장님.”
조 전무는 엉거주춤한 자세로 잠시 서 있다가 다시 자리에 앉았고, 난 그런 조 전무에게 양해를 구한 뒤 남 사장에게 말했다.
“더는 그렇게 하시면 안 됩니다.”
“뭘 그렇게 하면 안 된다는 말이야? 이 상황에서 그거 말고 다른 방법이 있나?”
“없으면 만들어야죠. 정확한 방법이 없다고, 방법이 아닌 걸 방법처럼 사용을 해 왔으니 직접적인 문제 해결은 안 되고, 계속 지금처럼 회사가 끌려만 가는 거 아닙니까.”
“그러니까 지금은 그 방법이라는 걸 만들어 낼 시간이 없다는 거야.”
“시간이 문제인 겁니까?”
내 말에 김 차장이 남 사장과 조 전무 몰래 테이블 아래에서 내 허벅지를 꽉 붙잡았다.
지금은 가만히 있으라는 사인이었다.
난 그런 김 차장의 손을 옆으로 치워 놓고 남 사장과 조 전무에게 말했다.
“왜 그들이 원하는 걸 계속해 주십니까?”
“아직 원하는 걸 들어 보지도 않았어.”
“아뇨, 이미 사장님은 그들이 원하는 걸 해 주려고 하십니다.”
“무슨 소리야?”
“왜 파업 현장으로 교섭팀을 보냅니까? 거기에서 지금 무슨 예쁜 짓을 하고 있다고요. 할 말이 있음 와서 하라고 하세요.”
남 사장이 한숨을 내쉬며 답답하다는 듯 날 가르치기 시작했다.
귀엽네.
“이봐, 손 과장. 파업이 길어져서 회사에게 좋을 게 뭐가 있어? 누군 그놈들이 예뻐서 교섭팀을 보내는 줄 알아?”
“어차피 터진 거 아닙니까?”
“뭐?”
“터지기 전에 교섭팀을 꾸려서 파업 터지는 걸 막았다면 모르겠지만, 이미 다 터졌는데 지금 보내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냐는 거죠.”
“……?”
“지금쯤 거기에선 본사가 보낼 교섭팀을 얼마나 기다리고 있겠습니까? 당연히 이번에도 교섭팀이 득달같이 달려갈 줄 알고 있겠죠. 그들이 원하는 대로 다 해 주는 게 무슨 교섭입니까? 일방적으로 끌려가는 거지.”
“그래서 뭘 어쩌자는 겁니까?”
결국 조동희 전무가 인상을 쓰며 내게 물었다.
뭘 당연한 걸 묻고 있어?
난 고민할 가치도 없다는 듯 짧게 대답했다.
“노조 측 대표 7명. 이번 기회에 모가지 날려 버리시죠.”
* * *
겁대가리를 상실했네
남필우 사장과 조동희 전무뿐 아니라, 김원호 차장까지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마치 뾰족한 수가 있길 기대한 자신들이 어리석다는 식의 표정들을 짓고 있었다.
“그럼 저는 지금 바로 교섭팀 꾸리겠습니다.”
결국 조 전무는 자리에서 일어났고, 남 사장 역시 조 전무를 향해 고개를 끄덕이며 빨리 진행을 하라고 덧붙였다.
“잠시만요.”
난 조 전무를 향해 다시 자리에 앉아 주길 부탁했다.
하지만 조 전무는 정색을 하며 내게 이렇게 말했다.
“노조 측 대표들 모가지 날리는 게 쉬운 일 같아요? 노조 측 대표들이 왜 계속 유지가 되는데요? 날려도 언젠가는 복귀하기 때문에 유지가 되는 거예요. 복귀를 시켜 달라고 다음 세대 노조 측 대표들이 시위를 하니까. 그런 시위를 해야 다시 또 그다음 세대 노조 측 대표들이 자신들을 위해 그런 시위를 해 줄 거니까.”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노조 측 대표들 날리는 게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도요. 그런데요, 전무님. 전무 자리에 앉아 계시는 분이 쉬운 일만 하실 생각이셨습니까?”
“손 과장!”
남 사장이 꽥 하고 고함을 치며 날 혼냈다.
“전무님한테 그게 무슨 말버릇이야?!”
옆에서 김 차장은 안절부절못하고 있었고, 조 전무 역시 불쾌한 심정을 겉으로 드러내고 있었다.
“다들 한발만 뒤로 떨어져서 보세요, 상황으을! 이게 지금 본사가 교섭팀을 그것도 생산부, 자원팀, 섬유팀, 재무리스크팀으로 꾸려서 파업 현장으로 보낼 일입니까?”
난 조 전무를 쏘아보며 말했다.
“제가 이번 파업 책임지고 내일 안으로 끝나게 만들겠습니다.”
“뭐요?”
“제가 책임지고 내일 안으로 이번 파업 해산시키겠다고요.”
결국 조 전무는 다시 자리에 앉았다.
“교섭팀을 꾸리긴 꾸려야 할 겁니다. 그런데 생산부, 자원팀, 섬유팀, 재무리스크팀이 아니라 그룹 본사 법무팀과 감사팀으로 꾸려야 합니다.”
“그룹 본사 법무팀과 감사팀?”
난 남 사장이 품고 있는 궁금증을 이해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지난 일주일간 저희 쪽에서 노조 측 대표 7명에게 회사 이메일로 활동비 지출 내역을 보내라고 요청서를 보냈습니다. 어제까지 두 번을 보냈고, 조금 전 3차 요청서를 받았을 겁니다. 제 생각이 맞는다면 아마 그 3차 요청서를 받고 파업을 주도했을 겁니다.”
“도대체 그 내역은 왜 요청을 하셨어요?”
조 전무가 뭔가 눈치를 채기 시작한 거 같았다.
“왜 요청은 그쪽에서만 하는 겁니까? 필요하다면 우리도 충분히 노조 쪽으로 요청을 할 수 있습니다.”
남 사장이 다시 물었다.
“그러니까 전무님 말씀은 왜 하필이면 그 내역을 요청한 거냐고. 보니까 그게 벌집이었네. 손 과장 네가 그걸 쑤신 거야.”
“네, 저도 그게 벌집 같더라고요.”
“뭐?”
“떳떳하면 내역을 보내 주면 되는 거 아닙니까. 그런데도 두 번의 요청에도 내역이 안 왔습니다. 한 명한테서만 안 온 게 아니라 노조 측 대표 7명 모두 무시를 하고 있습니다.”
“…….”
“이쯤 되면 노조가 아니라 깡패라고 봐야 하는 거죠. 현장 활동 지원비는 지불항입니까, 보관항입니까?”
내가 자리에 모인 사람들에게 물어본 지불항과 보관항은 쉽게 말해서 회사가 지출 내역을 확인할 권리가 있는 항목인지, 권리가 없는 항목인지의 차이다.
월급은 당연히 회사가 노동의 대가로 지불을 하는 내역이기 때문에 지출 내역을 확인할 권리가 없는 지불항.
반면에 현장 활동 지원비 같은 보관항은 회사가 지출 내역을 제출하라고 했을 때, 제출하지 못하거나, 거부, 혹은 엄한 곳에서 지출 내역이 확인됐을 경우 심하면 회삿돈 횡령이 될 수도 있는 항목이다.
일종의 판공비 개념인데, 노조 측 대표들에게는 이게 월급인 듯, 월급 아닌 월급 같은 개념이었을 것이다.
월급과 함께 들어가기 때문에.
질문을 던져 놓고 내가 직접 대답을 했다.
“보관항입니다. 오늘 3차 요청서를 보냈습니다. 3차 요청을 한 뒤 24시간이 지나서까지 지출 내역을 올리지 못하거나, 그 자체를 거부할 경우 감사팀이 움직이게 되어 있죠. 감사팀이 움직였는데도, 지출 내역을 확인하지 못했을 경우엔 법무팀이 움직여 줘야 합니다.”
“…….”
“그럼 사장님과 전무님은 이 해당 사안을 형사 고발로 연결시키셔야 됩니다. 파업을 주도했다고 해고를 시키자는 게 아닙니다. 회사 공금을 횡령했기에 법적 처벌을 받게 만들자는 겁니다.”
사장실 안으로는 한동안 침묵이 흘렀다.
“그 사람들이 파업하는 가장 큰 이유가 뭐겠습니까? 봐 달라는 거 아닙니까. 자기들이 현재 화가 이만큼 났으니까, 얼른 본사에서 우리가 얼마나 화가 많이 났는지 직접 와서 봐라, 그거 아니냐고요.”
“봐 줄 사람을 보내지 말자?”
“당연하죠. 왜 보냅니까? 어차피 터진 파업, 그거 구경시키겠다고 바쁜 본사 사람들 일도 못 하게 하면서까지 거기로 보내겠다니요. 말이 안 되죠. 파업. 하라고 하세요.”
남 사장과 조 전무의 표정이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생산 라인 쪽 식당, 매점 빼놓고 노조 가입 안 된 다른 인력들은 모두 다 빼라고 하시고, 식당과 매점도 정상 개장 시간까지만 오픈을 시키고 추가 연장 오픈은 못 하도록 지시를 내리시는 게 좋겠습니다.”
“다른 인력은 다 빼라고?”
“보안팀은 남아 있어야겠죠. 보안, 경비팀 빼놓고는 다 빼시는 게 저는 맞는다고 봅니다. 그럼 자기들이 알아서 내일쯤 본사 건물 앞으로 시위 장소를 바꾸겠죠. 파업은 내일 끝이 날 겁니다. 제가 책임지고 그렇게 만들겠습니다. 저 한 번만 믿어 주세요.”
마지막 한마디로 쐐기를 박았다.
“필요하시다면, HRM 과장 자리 걸겠습니다.”
* * *
파업 시위에 참여한 600여 명의 오산 공장 노조원들은 조금씩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익숙하지 못한 상황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었다.
보통은 생산 라인을 총괄하는 강인환 소장이 파업 현장을 기웃거리며 애달파하는 모습을 쉬지 않고 보여야 정상이었다.
그와 동시에 본사에서 교섭팀이 와야 했고, 그 교섭단들을 상대로 교섭에 응하지 않겠다는 버팀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이번엔 강인환 소장이 계약직 직원들과 외국인 노동자들을 모두 이끌고 뒤도 안 돌아보며 퇴근을 해 버렸고, 와야 하는 교섭팀은 저녁 7시가 넘었는데도 올 기미가 안 보이고 있었다.
어디 그뿐인가.
외주 업체인 식당 직원들도 퇴근을 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