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gnity of the Chaebol RAW novel - chapter (52)
“소장님. 지금 바로 와 주시면 되겠습니다.”
―네, 지금 바로 출발하겠습니다.
* * *
인사부 김원호 차장의 안내로 교섭 장소에 도착한 노조 측 대표 7인.
그들의 얼굴엔 아직 시작도 하지 않은 교섭에서 벌써부터 승리를 거머쥔 듯, 자신감이 가득 차 있었다.
하지만 그런 자신감도 잠시.
사측 교섭 대표 5인의 얼굴을 확인한 그들의 얼굴엔 조금 전까지 가득했던 자신감은 온데간데없고 의아함만이 남아 있을 뿐이었다.
조동희 전무를 제외한 나머지 교섭단 대표들의 얼굴이 생소했기 때문이다.
조 전무를 제외한 나머지 4명은 노조 측 대표들이 처음 보는 인물들이었다.
전무식은 속으로 생각했다.
‘뭐지? 재무리크스팀장은 어딨어? 섬유팀장도 안 보이네? 섬유팀장은 모르겠지만, 최소한 자원팀장은 나와야 하는 거 아냐?’
전무식이 그런 의아함을 속으로 키우고 있을 때, 조동희 전무가 입을 열었다.
“전무식 위원장님?”
“…네.”
“라인 마스터키를 가지고 가셨다고요?”
전무식은 그 첫 대화에서부터 뭔가 상황이 잘못 돌아가고 있음을 직감했다.
조동희 전무의 얼굴에서는 그 어떤 감정도 찾아볼 수 없었다.
섬뜩할 정도로 차갑고, 표정 없는 그 얼굴에 전무식뿐 아니라 다른 노조 측 대표들도 동시에 주눅이 들어 버렸다.
“내놓으세요.”
“지금은 없습니다.”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척 연기를 해 보았지만, 그럼에도 전무식의 목소리에 묻어 있는 떨림을 그 자리에 모인 모두가 느낄 수 있었다.
“어디에 있어요?”
“그건….”
“어디에 있냐고.”
“다, 다른 사람한테 맡겨 놨습니다.”
“다른 사람 누구?”
“…….”
“내가 지금 좋아 보여요?”
그 한마디로 상황은 끝이 난 것이나 다름없었다.
아직 시작도 되지 못한 교섭.
하지만 전무식을 시작으로 자리에 모든 다른 노조 측 대표는 그간 자신들 앞에서 보여 주지 않았던 조동희 전무의 얼음보다 차가운 모습에 상황이 자신들의 예상과는 달리 무척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음을 바로 알 수 있었다.
“내가 지금 화가 상당히 많이 났어요.”
“…….”
“이건 협박인 거거든. 그렇죠?”
“혀, 협박이라니요, 전무님.”
“다른 건 몰라도, 라인 마스터키는 건드리면 안 됐어.”
곧바로 조 전무는 자신의 바로 옆자리에 앉아 있는 그룹 본사 법무팀장을 쳐다봤다.
조 전무의 눈빛을 받은 법무팀장이 말했다.
“문종일, 그룹 본사 법무팀장입니다. 안산 공장 라인 마스터키를 처음 키 보관함에서 소장 확인 없이, 절차 무시한 채 가져가신 분이 누굽니까?”
사측 교섭단으로 앉아 있는 5인의 표정이 하나같이 똑같았다.
무표정.
“다시 묻겠습니다. 안산 공장 라인 마스터키를 처음 키 보관함에서 소장 확인 없이, 절차 무시한 채 가져가신 분이 누굽니까?”
노조 측 대표들은 일제히 전무식 위원장만 쳐다볼 뿐 아무도 입을 열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고 있던 와중, 법무팀장 바로 옆으로 앉은 남자가 입을 열었다.
이목구비가 날카롭기로는 이 자리에 참석한 사람들 가운데 단연 최고였다.
“그 부분은 조금 이따가 확인을 하시고요, 제가 먼저 해도 되겠습니까?”
조 전무의 허락을 받은 뒤, 노조 측 대표 7인을 향해 남자가 말했다.
“구종학, 그룹 본사 감사팀장입니다.”
“……!”
“재경모직 본사 인사부에서 3차례나 노조 측 대표분들의 현장 활동 지원비 지출 내역을 요청했으나, 아직 받지 못하고 있다고 그룹 본사 감사팀 쪽으로 협조를 요청했습니다. 지출 내역을 보내지 않은 데에 이유가 있으신 겁니까?”
여전히 꿀 먹은 벙어리처럼 입만 꼭 닫고 있는 노조 측 대표들을 향해, 무척 날카롭고도 건조해 보이는 눈빛으로 감사팀장이 말했다.
“법적 절차를 밟기 전, 확인차 물어보는 겁니다.”
“…….”
“대답해 주셔야 됩니다.”
“우리는 지금 이런 감사를 받기 위해 이 자리에 모인 게 아닙니다.”
전무식이 흐름을 깨뜨리기 위해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이어지는 감사팀장의 짧은 대답에 다시 또 입을 꼭 다물어야만 했다.
“그건 전무식 팀장님 입장인 거고요.”
“…네?”
“저는 앞에 계신 일곱 분을 상대로 현장 활동 지원비 지출 내역에 관한 감사를 하기 위해 이 자리에 온 겁니다.”
“…….”
“저는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묻고 법적 절차를 밟도록 하겠습니다. 지출 내역을 보내지 않은 데에 이유가 있으신 겁니까?”
노조 측 대표들의 불안한 시선을 확인한 후, 감사팀장은 곧바로 조 전무에게 허락을 구했다.
“저는 지금 바로 법적 절차 밟도록 하겠습니다, 전무님. 그렇게 해도 되겠습니까?”
“그렇게 해. 그럼 구 팀장은 나가고. 문 팀장.”
“네, 전무님.”
“라인 마스터키 관련해서 정리해.”
“네, 알겠습니다.”
조 전무의 지시를 받은 법무팀장 역시 꽤나 건조한 표정으로 전무식에게 말했다.
“이 부분 역시 법적 절차를 밟기 전, 확인차 물어보는 겁니다.”
“지, 지금 사람 불러 놓고 협박하는 겁니까?!”
테이블을 내리치며 전무식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그런 전무식을 향해 조 전무가 두 눈에 살기를 담아 놓고 말했다.
“앉아. 진짜 콩밥 먹이기 전에.”
이번엔 조 전무가 먼저 법무팀장에게 해당 라인 마스터키에 관한 내용으로 도난 신고를 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법무팀장까지 자리를 나서자, 대회의장 안의 사측 교섭단은 조동희 전무를 포함해 셋만이 남은 상태였다.
조 전무가 말했다.
“말해 봐. 교섭 조건. 들어나 보자.”
* * *
부끄러운 줄 알아야지
강인환 소장이 인솔한 통근 버스 네 대가 본사 앞으로 도착한 건 10시 반이 조금 넘어서였다.
스마일 스쿨의 안산 공단 외국인 노동자들과 계약직 직원들이 네 대의 통근 버스에서 일제히 내려, 파업 시위 중인 노조원 무리와 100미터 거리를 두고 대치했다.
강인환 소장이 이끌고 온 외국인 노동자들과 계약직 직원들은 노조의 일방적인 파업을 꼬집기라도 하듯 귀족 노조는 해산하라, 생산 라인 가동을 막지 마라,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을 멈춰라… 등과 같은 문구의 피켓을 들고 대치를 하기 시작했다.
내가 그 대치 상황을 사무실 창문을 통해 지켜보고 있을 때 전략기획팀장이 인사부를 찾았다.
그렇지 않아도 기다리고 있던 참이었다.
“기자들 도착했습니다.”
전략기획팀장의 말에 난 고개를 끄덕이며 정장 재킷을 챙겨입고 김 차장에게 말했다.
“저 내려갔다 오겠습니다.”
그러자 김 차장은 엉거주춤 자리에서 일어섰다.
“저도 같이 내려가죠.”
“아닙니다, 차장님.”
“그래도….”
“차장님은 공단 식당에 전화 한 통 넣으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공단 식당이요?”
“오늘 저녁 직원들 메뉴에 신경 좀 써 달라고요. 금방 내려가서 사람들 복귀시키고 올라오겠습니다. 걱정하지 말고 기다려 주세요.”
전략기획팀장과 함께 밑으로 내려갔다.
몇몇 언론사 기자들이 생소한 파업 시위 현장에 어느 쪽 촬영을 먼저 해야 하는지 갈피를 못 잡고 있을 때였다.
노조 측은 강인환 소장이 이끌고 온 대치 세력의 등장에 잠시 주춤하는 기색을 보였는데, 그런 기색도 잠시, 기자들의 등장에 새로이 의기양양해 있었다.
하지만 곧 기자들을 부른 전략기획팀장의 등장에 상황의 심각성을 감지하는 눈치였다.
“상습적인 파업, 파업을 협박 수단으로 사용하는 노조, 그리고 계약 직원들의 정규직 전환을 파업 명분으로 들면서도 정작 교섭 과정에서는 단 한 번도 계약 직원의 정규직 전환에 관한 부분을 구체화시키지 않고 있는 노조 측 대표.”
기자들을 앞에 두고 조곤조곤 말을 이어 가는 전략기획팀장의 모습에 600여 명이나 모여 있는 노조 측은 쥐 죽은 듯 조용했다.
“그런 재경모직의 노조와 노조 측 대표를 향해 목소리를 내기 위해, 같이 일하고 있는 동료들로부터 차별을 받고 있는 생산 라인의 계약직 직원들과 외국인 노동자들이 용기를 냈습니다. 양측의 입장을 객관적으로 들어 보시고, 공정한 기사를 만들어 주시길 진심으로 부탁드립니다.”
난 교섭을 위해 안으로 들어가 있는 노조 측 대표 7인을 대신해 파업 시위를 통솔하고 있던 무리 쪽으로 걸어갔다.
“마이크 좀 씁시다.”
“방해하지 마십시오.”
마이크를 빌려 달라고 손을 내밀었는데, 돌아오는 건 거친 거절이었다.
내 손을 밀쳐 내며 한 남자가 말했다.
“시위에 이렇게 참견을 하시는 건 회사가 노동자들이 내는 목소리의 권리를 강압적으로 탄압하는 겁니다.”
겁을 먹고 있으면서도 애써 태연한 척하고 있다는 게 다 보였다.
“탄압하겠다는 게 아니라 소통을 하자는 겁니다.”
“뭐요?”
“소통을 거부하면 그건 지금 하고 있는 파업 시위를 그쪽이 앞장서서 정당한 목소리가 아닌 떼를 쓰는 걸로 만드는 겁니다.”
“…….”
“시위를 하는 근본적인 이유가 뭡니까? 사측과 소통을 하자는 거 아닙니까?”
난 일부러 다른 노조원들이 다 들을 수 있을 만큼 큰 목소리로 말했다.
“그 소통은 노조 측 대표들만 하는 겁니까? 그 7명을 위해서 이렇게 많은 사람이 다 모인 거예요? 생산 라인까지 강제로 멈춰 세워 놓고? 저 안에 들어가 있는 7명이 그렇게 중요한 사람들입니까?”
“…….”
“마이크 좀 씁시다.”
파업에 가담한 무리 이곳저곳에서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마이크 줘 보세요!”
“그래, 줘 보세요. 뭐라고 하는지 한번 들어나 보게.”
“들어 보고 자시고 할 게 뭐 있어? 이거 언제 끝나는데?”
“그러니까. 공장도 아니고 본사 앞으로 아침 9시까지 모이라고 하는 게 어딨어? 시간 맞춰 온다고 난 오늘 6시에 일어났어.”
“빨리 끝내고 해산합시다!”
난처해하는 남자 앞으로 다시 한 발 다가가 손을 뻗었다.
“이쪽이 먼저 시작한 거 아닙니까? 이쪽 이야기 먼저 들어 보고, 강 소장님 쪽 이야기도 들어 봐야죠. 카메라 돌아가고 있습니다, 저기. 노조. 직원들을 대표해서 회사와 소통을 하자는 겁니까, 아님 회사와 직원들 간의 소통을 막겠다는 겁니까. 확실히 하세요. 어쩌겠다는 겁니까?”
결국 마이크를 건네받는 데 성공을 했다.
이동용 스피커 네 대가 양 사방 바닥에 놓여 있었다.
“인사부 손정훈 과장입니다.”
내 소개를 하자, 여기저기에서 웅성거림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손정훈이라는 이름을 알고 있는 사람이 여럿 되는 거 같아 보였다.
“여러분의 요구 조건을 검토하기에 앞서 몇 가지만 먼저 확인차 여쭤보겠습니다.”
기자들의 카메라가 렌즈가 일제히 날 향하고 있었다.
“혹시 작년 9월과 올해 3월에 있었던 파업 당시 노조 측 대표 쪽에서 회사와 정리한 교섭 내용을 공지하던가요?”
노조원들이 반응을 하기 시작했다.
“작년 9월에 있었던 교섭 내용입니다. 건전한 노조 활동을 위해 노조 측 대표들에게 회사는 현장 활동 지원비를 지원하고, 두 자녀에게 지원되고 있는 학자금을 전 자녀로 확장해 준다.”
난 얼이 빠지기 시작하는 노조원들을 쳐다보며 말을 이었다.
“이 교섭 내용 어디에 지금 여러분이 들고 계시는 피켓 내용이 있습니까? 참고로 해당 교섭 내용은 회사의 제안이 아니라 노조 측 대표들이 제시한 요구 내용입니다. 그걸 회사 측에서 수락한 거뿐입니다. 이 내용 어디에 계약직의 정규직 전환, 일한 만큼 보상하라, 혁신안 폐지하라, 법정 근로 시간 준수하라… 와 같은 내용이 있습니까?”
“…….”
“올해 3월 파업 당시 있었던 교섭 내용입니다. 더 기가 막힙니다. 노조 측 대표들이 요구한 조건. 저 이거 보면서 제 눈을 의심했습니다. 전 생산 라인 직원들에게 월 20만 원씩 지원되는 복지 카드, 그리고 통근 버스의 운행을 줄여 달라는 요구를 했습니다.”
그러자 여기저기에서 말 같지도 않은 소리라는 식의 의심 섞인 목소리들이 튀어나왔다.
“그게 뭐야? 통근 버스 운행이 줄었어?”
“그걸 우리가 어떻게 알아. 우린 자차로 출퇴근하잖아. 그것보다 복지 카드 지원이 중단된 게 회사 결정이 아니라 노조 측 쪽 요구였다고?”
“넌 무슨 그런 말 같지도 않은 소릴 다 믿고 앉아 있어?”
“지금 방송국에서 촬영까지 하고 있는데, 회장 아들이 그런 거로 사기를 치겠냐?”
“그, 그건 그렇지만… 그래도 말이 안 되잖아.”
동요가 커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