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gnity of the Chaebol RAW novel - chapter (60)
“뭐긴요. 당연히 매출이죠.”
“…매출?”
“그런 의미로 물어보셨던 거 아닙니까?”
순간 손 회장은 정태 앞에서 실망스러운 표정을 들켜선 안 된다고 생각했다.
가볍게 고개를 끄덕여 주는 것으로, 정태의 생각에 동의하는 척해 주며 다시 물었다.
“식품 쪽 사업을 키워 볼 구체적인 계획은 있고?”
“여러 방면으로 방법을 모색 중에 있습니다.”
평소였다면 정태가 내놓은 이 정도 대답에도 충분히 만족했을 것이다.
하지만 손 회장은 전날 정훈이와 주고받았던 대화와 간밤에 자신의 잠을 설치게 만들었던 기획안을 확인한 이후였기에, 정태의 이번 대답이 실망스럽기만 했다.
그런 실망스러운 감정을 다시 한번 애써 숨겨 놓고 정태에게 물었다.
“그럼 네 말은 앞으로 재경은 식품 쪽에 더 많은 투자를 해야 하고, 항공은 큰 성장은 없겠지만 유지는 될 것 같다, 그리고 모직은 사업 모델링을 새로 해야 한다… 그런 말이 되는 거야?”
“네.”
한참 동안 손 회장은 입을 꼭 다문 채 침묵을 유지했다.
그런 손 회장을 바라보는 정태의 얼굴엔 혹여나 자신의 대답에 뭔가 실수나 아버지의 심기를 건드릴 만한 내용이 있었는지를 되새김질하느라 근심이 들어차기 시작했다.
잠시 후 손 회장이 생각을 정리해 놓고 무겁게 입을 열었다.
“그래, 일리가 있는 생각이다.”
그제야 정태의 얼굴에 안도의 미소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런데, 손 상무.”
“네, 회장님.”
“내 생각엔 아직 우린 항공 쪽에서 더 많은 것들을 만들어 낼 수 있을 거 같다는 생각이 들어.”
“항공 쪽에서요?”
“그래.”
“이미 재경항공은 국내 항공업계 1위입니다. 자국 항공 기업들로만 놓고 보면 80퍼센트 가까이 되는 점유율을 가지고 있고요. 여기에서 뭘 더 할 수 있다는 말씀이신지….”
“그러니까. 자국 항공 기업들 사이에서나 시장 점유율 80퍼센트가 되는 거지, 국내 항공 전체 시장으로 놓고 보면 40퍼센트가 겨우 넘는 수준인 거잖아.”
정태는 손 회장이 보이고 있는 욕심을 쉽게 이해할 수가 없었다.
항공은 다른 업계와는 달리 국내 항공 전체를 놓고 시장 점유율을 따질 수가 없는 업계다.
작지만 선진국, 국제 도시 3개나 품고 있는 주요 국가로 성장해 있는 대한민국.
재경항공이 가지고 있는 국제 노선, 즉 해외 도시 직항만 286개다.
확보하고 있는 직항 노선으로는 세계 톱5 안에 들어가는 항공사가 바로 재경항공.
물론 그게 가능할 수 있었던 건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만들어 낸 여권 파워가 한몫을 하고 있는 게 사실이지만, 대한민국이 그런 여권 파워를 만들어 내기까지 재경항공 역시 많은 역할을 해 왔다.
그럼에도 정태는 재경항공이 국내 항공 전체 시장에서 40퍼센트대의 시장 점유율을 확보하고 있는 걸 최선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만큼 현재의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는 해외로 나가는 사람보다 한국을 방문하는 외국인의 숫자가 훨씬 더 높고, 그네들의 국적 항공사까지 다 포함한 상태에서의 40퍼센트는 이미 그것만으로도 대단한 실적이기 때문이다.
손 회장이 말했다.
“만약 이걸 우리가 자국 항공 시장 점유율이 아닌 국내 항공 전체 시장에서 점유율을 50퍼센트, 60퍼센트까지 끌어올릴 수 있게 된다면… 그렇게 되면 어떨까?”
정태는 솔직하게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그건 불가능입니다, 회장님.”
“불가능이다?”
“네. 전 세계를 통틀어 자국 항공 기업들이 해당 국가의 항공 전체 시장 점유율을 50퍼센트 이상 가지고 있는 국가는 단 4개밖에 없습니다. 미국, 인도, 중국, 러시아. 거긴 땅이 넓죠. 우리처럼 도시 간 이동을 대부분의 사람이 차나 기차로 하지 않습니다. 국내선 운항 건수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은 국가에서나 자국 항공 기업들이 국가 전체 항공 시장 점유율을 50퍼센트 이상을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손 회장은 정확한 데이터를 근거로 자신을 설득시키고 있는 정태의 모습에 그나마 흐뭇한 기분을 느끼며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반면에 한국은요? 인구수 대비, 국제선 이용 비율이 세계 6위까지 올라가 있는 나라입니다. 바로 옆 나라 일본, 홍콩, 중국에서 저가 항공으로 공략해 들어오고 있고, 호주나 러시아 쪽 항공은 미주발, 유럽발 항공에 경유를 끼워 가격 경쟁력 면에서 자국 항공사들을 압박하고 있죠. 그런 척박한 사업 환경 속에서 현재 우리가 해내고 있는 전체 시장 점유율 40퍼센트는 사실상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이라고 봐야 하고, 앞으로 우린 이 퍼센트를 유지해내는 데에만 집중하기에도 부족합니다.”
그런 정태에게 손 회장이 물었다.
“외국인 빼고 한국 사람들 중 우리 재경항공을 한 번이라도 이용해 본 사람이 대략 몇 명이나 되지?”
“데이터 기록상 1,800만 명 정도 되는 걸로 나와 있습니다.”
“그럼 한국 사람 중에 재경항공과 제휴된 항공사 항공 마일리지에 등록이 된 회원 수는?”
“그건 조금 더 많습니다. 2,100만 명 정도 됩니다.”
“그 2,100만 명으로 트래픽 폼을 만들어 내면 어떤 결과가 나올 거 같아?”
순간 정태는 자신의 아버지가 던진 질문의 요지를 파악하지 못해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떤 트래픽 폼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항공 마일리지로 쇼핑을 할 수 있게 만드는 거야.”
“……?”
“반대로 쇼핑으로 쌓은 포인트를 항공 마일리지로 돌릴 수도 있게 만드는 거지. 잘 생각해 봐. 재경항공 마일리지로 재경식품의 식자재를 쇼핑할 수 있어. 재경모직의 수입 브랜드들을 구입할 때 마일리지로 가격 차감을 할 수 있어.”
“……!”
“우린 이미 항공으로 2,100만 명이라는 어마어마한 트래픽을 확보하고 있는 기업이야. 그런데 그간 그 많은 트래픽을 담을 수 있다는 생각을 못 해서, 다른 플랫폼 기업에 항공과 식품, 모직의 상품을 올려 팔고 있지. 그것도 수수료를 줘 가면서. 우린 이미 다른 플랫폼보다 더 많은 트래픽을 자체적으로 만들어 낼 토양을 가지고 있는데, 엄한 곳에서 지금 꽃을 피우고 있다는 말이야. 그것도 우리 돈을 떼어 줘 가며.”
“회, 회장님….”
“정말 재경항공이 국가 전체 항공 시장 점유율 50퍼센트를 못 만들어 낼 거 같아?”
“…….”
“난 할 수 있지 싶은데?”
정태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리고 그 순간 아버지에 대한 진심 어린 존경이 생겨나고 있었다.
그간 얼마나 이런 순간을 기대하고 있었던가.
재경 그룹의 회장.
그리고 자신의 아버지.
정태는 손 회장이 언젠가는 이런 한 방을 터뜨려 주길 진심으로 바라고 있었다.
“네 생각은 어때?”
“정리해 볼 시간이 필요할 거 같습니다.”
그 대답에 손 회장은 흡족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정리해 봐. 스너프라는 커머스 플랫폼 들어 봤어?”
“네, 들어 봤죠. 그런데 현재 미국 쪽 투자가 철수되면서 재정난이 덮쳐 위험한 수준이라고 들었습니다.”
“4천억에 시장에 나와 있다고 한다.”
“…….”
“그거까지 같이 엮어서 기획안 한번 만들어 봐라.”
손 회장은 정훈이가 자신에게 올렸던 기획안과, 정태가 만들어 낼 기획안을 서로 비교해 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이미 정태에게 알려 준 모든 소스가 정훈이의 기획안에 든 내용이었지만, 정태라면 정훈이가 미처 짚어 내지 못한 리스크나 추가 발전 가능한 방향을 좀 더 새롭게 구상해 내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하면서.
“그런데 회장님. 스너프는….”
잠시 하던 말을 끊어 놓고, 곧바로 수긍하며 정태가 말을 이었다.
“하… 아니네요. 어쩌면 지금의 우리에겐 스너프가 제일 제격이겠습니다.”
“……?”
“갖춰진 시스템은 좋지만, 확보하고 있는 트래픽이 부족해서 그걸 4천억이나 주고 가져올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을 잠시 했는데… 우리한테는 회장님 말씀하신대로 2,100만이라는 항공 쪽 트래픽이 이미 있네요.”
“전 계열 사장단, 그리고 그룹 본사 임원들 앞에서 보여 줄 수 있게끔 기획안 발표 준비해.”
“네, 알겠습니다.”
* * *
모처럼 시원한 발표였어
사무실로 돌아온 손정태 상무는 곧바로 그룹 본사 재무리스크팀장과 전략 기획 본부장을 호출했다.
재무리스크팀장과 전략 기획 본부장을 양옆에 앉혀 놓고 정태가 말했다.
“회장님 지시 사안이고, 제가 직접 프로젝트를 총괄하게 될지도 모르는 내용이 떴습니다.”
이미 회장님 지시 사안에 본사 상무가 총괄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내용만으로도 자리에 호출된 두 실력자는 사안의 중요성을 바로 직감할 수 있었다.
“속도전을 펼쳐야 할 부분도 있고, 둘러 가더라도 디테일을 반드시 잡아 놓고 가야 되는 내용도 있습니다. 스너프가 시장에 나와 있다고 합니다.”
그 말에 전략 기획 본부장이 눈치를 채고 확인차 물었다.
“스너프라면 커머스 플랫폼 말씀이십니까?”
“네, 현재 4천억에 시장에 나와 있다고 합니다. 속도전은 아무래도 본부장님 주특기니까, 본부장님이 그쪽이랑 접촉을 좀 해 보세요.”
“네, 어떤 식으로 접근을 하면 되겠습니까?”
“4천억은 어디까지나 자기들이 받고 싶어 하는 호가일 겁니다.”
“그렇겠죠.”
“협상 전에 재무 상태부터 확인해 보시고요, 다른 투자사 쪽으로 물려 있는 내용은 없는지, 고용 유지 부분은 어떻게 기대를 하고 있는지 정도만 빠르게 파악을 해 보시고, 뒤로 빠지세요.”
“미끼만 던져 놓고 나오란 말씀이십니까?”
그 말에 정태는 짧게 고개를 끄덕인 뒤 말했다.
“커머스 플랫폼 시장은 이미 다른 쟁쟁한 기업들이 꽉 잡고 있는 시장인데, 겨우 업계 4위, 그나마도 3위하고 격차가 두 배 이상 벌어진 상태로 시장에 나와 있는 스너프 쪽에 공격적으로 대시를 하는 업체는 없을 겁니다. 다들 간만 보는 정도겠죠.”
“딱 그 정도 뉘앙스만 주고 빠지면 되겠습니까?”
“가능성은 열어 줘 놓고 빠지셔야죠.”
“무슨 말씀이신지 알겠습니다. 그런데 상무님.”
“네.”
“상무님이 말씀대로 스너프는 후발 주자에 트래픽도 저조한 플랫폼입니다. 그런 플랫폼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트래픽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항공으로 얼마든지 폭발적 증가를 유도해 낼 수 있습니다.”
그 말뜻을 되새겨 보던 두 실력자는 거의 동시에 두 눈을 크게 뜨며 서로를 쳐다봤다.
정태 역시 그런 반응을 보이는 두 실력자의 모습에 흥분이 배가 되고 있었다.
“제가 왜 속도와 디테일을 동시에 잡아야 한다고 말씀드렸는지 이제 아시겠죠?”
“네.”
“네.”
두 실력자는 동시에 침을 꼴깍 삼키며 대답을 했고, 그런 실력자 둘 중 재무리스크팀장을 쳐다보며 정태가 말했다.
“인수하게 된다면 무조건 통인수가 되어야 합니다. 어설프게 지분 보장해 주고, 깔려 있는 생산 라인 쪽으로 어느 정도 매출 분배를 해 준다는 식의 복잡한 계산은 나중에 귀찮은 계산만 늘어나게 만들 겁니다.”
“네.”
“우리가 통인수를 할 때, 현재 그쪽 유통 라인에서 보수 설비 재정비로 들어갈 추가 예산은 최대한 디테일하게 뽑아 주시고, 그쪽 고용 상황에 대해서도 내일까지 제가 회장님께 간단한 브리핑 정도를 가능할 수 있도록 자료를 모아 주세요.”
“그렇게 하겠습니다.”
“어쩌면….”
정태는 여전히 흥분을 숨기지 못하고 광대가 씰룩거리는 얼굴로 자리에 모인 두 실력자를 향해 말했다.
“이거 한 방으로 항공뿐 아니라, 식품, 모직… 더 나아가 커머스 플랫폼 시장의 판도까지도 뒤집힐 수 있습니다. 집중해서 진행해 주세요.”
“한 가지만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재무리스크팀장이 어렵게 입을 열었다.
“네, 말씀하세요.”
“통인수에 4천억, 금융권 대출을 일으켜야 가능할 거 같은데 사실상 이 정도 사이즈면 금융권에선 대출이 아니라 투자 형식으로 접근해 올 가능성이 큽니다.”
“당연히 그렇겠죠.”
“그럼 통인수라는 개념에선 벗어나게 되는 거고요.”
“팀장님.”
이미 머릿속으로 그림이 그려져 있는 정태였다.
싱긋이 웃으며, 마치 자기보다 10살 이상 나이가 많은 재무리스크팀장을 가지고 놀 듯 정태가 말했다.
“네, 상무님.”
“재경의 자본력은 그렇게 약하지 않습니다. 재무리스크팀장님이 그런 내용을 저보다 더 모르시면 안 되죠.”
“하지만….”
“그룹 본사 차원의 프로젝트가 될 겁니다. 그리고 해당 프로젝트는 항공과 식품, 모직 삼사 모두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한 유통의 판로를 뚫어 주게 되는 거고요. 그룹 본사 자체 유보금으로는 턱없이 부족하겠지만, 금융권이 아닌, 우리 자체 삼사의 투자를 유도한다면 4천억이 돈입니까?”
“……!”
“재경의 삼사 모두 다른 커머스 플랫폼 쪽으로 상품 노출을 위해 적게는 14퍼센트, 많게는 23퍼센트까지 플랫폼 수수료를 떼이지 않습니까? 그 수수료 부분만 재경 상품에 대해선 5퍼센트대로 고정을 시켜 주고 투자를 유도한다면 각자 알아서 달러 빚을 내어서라도 투자를 태우지 않을까요?”
“…네.”
“그리고 회장님 지시 사안이라니까요? 그런 부분은 신경 쓰지 말고 오로지 우리 재경이 100프로 통인수를 할 수 있도록만 판을 깔아 보세요. 안에서 갈라 먹는 거야, 어차피 우리끼리 갈라 먹는 건데 어떻게 갈라 먹든 그게 무슨 상관이겠습니까?”
* * *
그렇게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훌쩍 지나가 버렸다.
재경 그룹 본사 회의실.
항공과 식품, 모직 삼사 사장단이 그룹 본사로 모였다.
손홍준 회장의 참관 아래 본사 상무가 직접 그룹 사장단을 상대로 하는 신사업 프로젝트 기획안 발표가 준비되어 있었다.
그룹 본사에서도 손정태 상무 위로 위치해 있는 주요 임원들이 한 명도 빠지지 않고 모두 참석을 한 무게감 있는 자리였다.
가장 상석으로 자리를 잡고 앉은 손홍준 회장의 손에는 다른 사장단, 임원진들보다 한 질 더 많은 서류가 들어 있었다.
바로 이 기획안 발표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는 손정훈 모직 인사부 과장의 기획안이었다.
손홍준 회장은 정태의 발표와 정훈이의 기획안 내용을 비교해 볼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럼 준비한 기획안 발표를 시작하겠습니다.”
그때까지도 자리에 참석한 사장단, 임원진 모두는 스크린 앞으로 서서 발표를 준비하고 있는 손정태 본사 상무가 향후 2, 3년 뒤 여전히 비어 있는 그룹 부회장 자리로 올라갈 것이란 내용에 일말의 의심도 하지 않고 있었다.
심지어 모직에서 참관한 남필우 사장과 조동희 전무까지도 그 내용에는 아무런 의심도 하지 않고 있는 상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