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gnity of the Chaebol RAW novel - chapter (61)
손정태 본사 상무는 모두가 인정하는 실력자였다.
자리에 모인 사람들 중에는 비록 앞에서 내색은 못 하고 있지만, 지금의 재경에겐 수성에만 집중을 하고 있는 손홍명 회장의 진중함보다 손정태 상무가 가지고 있는 공격적인 기질이 반드시 앞으로 나와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대다수였다.
그만큼 지난 십수 년간 재경이라는 병든 용은 날개가 접힌 채, 구석 자리 어딘가에 쪼그리고 앉아 자리만 지키고 있었을 뿐, 그 화려했던 날갯짓을 시원하게 펼쳐 내지를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랬던 만큼 이 자리에서 손정태 상무가 발표한 공격적인 기획안은 그간 화려했던 재경의 지난 세월을 기억하고 있는 많은 본사 임원진, 그룹 사장단들의 가슴에 불을 지피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딱 한 사람, 상석에 앉아 있는 손홍준 회장만큼은 다른 사장단, 임원들이 느끼고 있는 흥분 대신 차갑게 식어 있는 이성적인 머리와 날카로운 눈매로 해당 발표와 정훈이가 만들어 올린 기획안을 비교·분석해 나가고 있었다.
“우선은 항공입니다.”
정태는 스너프 인수에 관한 큰 골자를 먼저 화두에 던져 놓고 자리에 모인 삼사 사장단과 그룹 본사 임원진들의 혼을 쏙 빼놓은 뒤 그들의 눈에서 흥분의 빛이 감돌기 시작하는 걸 확인한 후 디테일을 잡아들어 가기 시작했다.
“재경이 스너프를 인수하게 된다면 항공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인 트래픽 부분을 반드시 커버해 줘야 합니다. 항공이 확보하고 있는 재경과 재경의 제휴 항공사 마일리지 회원들, 그 회원들이 만들어 낼 잠재 트래픽이 이번 프로젝트의 배경이 되어 줄 것입니다.”
펜을 든 손홍준 회장의 손을 쉬지 않고 정훈이가 올린 기획안 위에서 춤추듯 움직이고 있었다.
바로 그때 항공 쪽에서 신상훈 사장이 아주 긍정적인 표정, 하지만 자신이 사장으로 있는 계열의 이미지 및 매출과 직결되는 부분이라 어쩔 수 없이 짚고 넘어간다는 듯 손가락 사이에 펜이 끼워진 손을 들었다.
“네, 사장님. 말씀하시죠.”
정태의 발표엔 고급스런 여유가 묻어 있었다.
중간에 자신의 발표가 끊어졌음에도 마치 미리 다 예상하고 있었다는 듯, 손을 뻗어 신 사장을 가리키며 존중으로 그의 질문을 받았다.
“그룹 전체의 미래, 장래성을 봤을 때 아주 중요한 변곡점 역할을 해 줄 프로젝트라는 점에는 저도 동의를 합니다.”
그저 묵직하게 고개만 한 번 끄덕일 뿐, 손정태 상무는 상대의 발언을 중간에 끊지 않고 계속 말을 이어 나갈 수 있도록 배려를 해 주었다.
손홍준 회장은 손 상무의 그런 물 흐르듯 진행하는 발표 태도마저 놓치지 않고 체크를 해 나갔다.
“그런데 항공의 살림을 맡아 나가고 있는 입장에서 제가 살짝 우려되는 부분은 현재 재경항공의 티켓 판매처 플랫폼들의 반발입니다. 항공 티켓 판매 플랫폼은 국내에만 스물여덟 곳이 됩니다. 외주로 판매 대행을 맡기고 있는 해외 사이트까지 다 포함을 한다면 600곳이 훨씬 넘습니다.”
여전히 손 상무는 고개만 끄덕일 뿐, 중간에 말을 끊지 않았다.
마치 그 우려에 대한 준비는 모두 다 끝내 놓았다는 자신감처럼 보였다.
“물론 판매 대행을 맡기고 있는 트래빌러 같은 해외 사이트는 다 제외를 해야겠죠. 하지만 국내 플랫폼들은 반발이 클 것으로 예상이 되는데 이 부분에 대한 대비책 같은 건 따로 마련이 되어 있는 건가요?”
질문의 마지막 물음표까지 확인을 끝낸 뒤 손 상무가 마이크를 들었다.
그 모든 모습에는 재경의 후계자이기 때문에 만들어 낼 수 있는 세련되고 우아한 맛이 깃들어 있었다.
“국내 항공 티켓 판매 플랫폼이 스물여덟 곳이다… 네, 맞습니다. 그중에서도 대표 삼사 플랫폼에서 올라오는 재경항공의 매출이 전체 매출의 62퍼센트를 조금 넘고 있습니다. 어마어마한 수치죠. 여기에 여행사 플랫폼까지 더해진다면 항공사 직거래보다 대행 판매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습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우리가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정태는 가장 상석에 앉아 쉬지 않고 자신의 발표를 체크하고 있는 손 회장을 잠시 쳐다본 후 말을 이어 갔다.
“자국 항공 시장 점유율.”
마치 기다렸다는 듯 스크린 위로는 현재 재경항공이 국내에서 차지하고 있는 시장 점유율에 대한 그래프가 올라왔다.
“자국 항공사 시장에 재경은 시장 점유율 80퍼센트를 확보하고 있습니다. 물론 국내 항공 시장 전체를 놓고 본다면 40퍼센트 수준으로 절반 가까이 뚝 떨어지지만 단일 항공사의 시장 점유율이라는 점에서 보면 이 역시 압도적인 수치입니다.”
모두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명확한 근거였다.
“항공권을 취급하는 국내 어느 플랫폼에서 재경항공의 티켓을 빼놓고 플랫폼 운영을 할 수 있을까요? 항공은 유통이 공급을 좌지우지하지 못하는 몇 안 되는 산업입니다. 그럼에도 그동안 재경항공은 제대로 된 유통판이 없었기에, 산업의 특성상 소비자들이 항공사 자체 홈페이지보다는 중간 플랫폼이나 여행사 같은 대체 판매처를 끼고 구입을 하는 게 당연시되어 왔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플랫폼 수수료를 떼어 줘야 했던, 재경 안에서는 가장 억울했던 상품이었다고 봐야겠죠.”
정태는 자신의 설명에 고개를 끄덕이고 있는 손 회장의 모습을 보며 자신감을 더 쌓아 나갔다.
“재경이 스너프를 인수해서 자체 커머스 플랫폼을 운영한다고 해도 타 플랫폼에서는 그 어떤 반발도 제기하지 못할 겁니다. 만약에 한다고 하면… 다 빼면 됩니다.”
손 상무의 확신에 찬 모습에 자리에 모인 모든 그룹 사장단과 임원진들은 그간 잊고 지냈던 통쾌함이라는 감정에 소름이 돋고 있었다.
“당장의 영업 손실은 있겠죠. 하지만 그 영업 손실이 얼마나 오래갈까요? 오히려 우리가 우리의 방법을 자신감으로 밀고 나간다면, 최소한 국내 시장 안에서 항공 티켓 판매에 있어서만큼은 스너프가 독보적인 위치까지 올라갈 수 있을 거라고 자신합니다. 항공이라는 건 소비자들이 쉽게 대체재를 찾을 수 없는 상품입니다. 마일리지라는 게 있지 않습니까, 습관이라는 것도 있고, 항공 노선이라는 것도 있습니다.”
정태는 다시 한번 스크린 화면을 넘겼다.
“상품이 유통을 바꿀 수 있는 몇 안 되는 시장이 바로 항공인데, 그 부분에 대한 우려는 크게 하지 않으셔도 될 겁니다. 그리고 그 부분에 대한 안전장치 역시 성의껏 갖춰 놓겠습니다.”
그 뒤로 이어지는 식품과 모직에 관한 사업 확장성에 대한 손 상무의 발표는 다시금 식품 쪽 사장단과 모직 쪽 사장단의 심장을 크게 뛰게 만들어 놓았다.
그럼에도 끝내 손홍준 회장의 펜끝은 정훈이가 만들어 올린 기획안 안에서 마지막 항목을 건드리지 못하고 있었다.
바로 금융에 관한 항목이었다.
정훈이가 올린 기획안 안에는 재경 그룹 삼사 외 금융을 스너프 플랫폼에 추가시켜야 한다는 내용이 들어 있었다.
손 회장은 스마트 페이 결제 시스템이 해당 프로젝트에서 실질적 가장 큰 이윤을 창출해 낼 효자 종목으로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해외 기업의 인앱 결제 시스템을 그대로 가져와 그곳으로 시스템 비용의 수수료를 떼이지 않고, 스마트 페이 시스템을 확보하고 있는 국내 금융 기업과 손을 잡고 스너프를 키운다면 재경은 커머스 플랫폼 사업에만 뛰어드는 게 아니라 오래전 놓친 금융 사업에도 다시 뛰어들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되는 것이다.
손 회장이 정훈이의 기획안을 처음 받고 가장 크게 놀랐던 내용이 바로 이 내용이었다.
정훈이는 이 스너프 인수 건 하나로 오래전 재경이 놓쳐야만 했던 유통과 금융을 동시에 확보할 방법을 제시했던 건데, 정태는 그런 큰 그림은 보지 못하고 오로지 스너프 인수를 통해 그룹의 계열을 하나 더 확보하고, 현 삼사의 사업 확대를 도모하는 내용에만 모든 걸 집중하고 있었다.
물론 손 회장 입장에선 충분했다.
발표 준비는 완벽했고, 그 자리에서 그룹 사장단, 임원들을 설득하는 손 상무의 태도는 손 회장으로 하여금 뿌듯한 기분까지 들게 만들었다.
하지만 정훈이의 기획안을 먼저 보지 않았다면 모를까, 그것도 아님 그 기획안이 보여 준 큰 틀 안에서 만들어진 발표였기 때문일까, 손 회장은 말로 표현하기 힘든 아쉬움을 끝내 없애지 못하고 있었다.
“그럼 이것으로 스너프 인수 관련 기획 발표는 모두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사장단 회의에서는 좀처럼 나오지 않는 우레와 같은 박수가 터져 나왔다.
모직의 남필우 사장 역시 조동희 전무와 눈빛을 교환하며 말로 형용하기 힘든 설렘에 박수 소리를 보태고 있었고, 손홍준 회장 역시 다른 이들의 박수 치는 모습을 천천히 살피며 함께 고개까지 끄덕여 가며 정태에게 박수를 보내 주었다.
박수 소리가 멈춘 뒤 잠시 이어진 침묵.
그 침묵을 깨뜨리며 손 회장이 스탠드 마이크를 앞으로 구부렸다.
“어….”
모두가 손 회장을 향해 시선을 고정시켰다.
“손 상무가 아주 큰 그림을… 잘 그렸네.”
정태는 민망했다.
당신이 그려서 채색을 해 보라고 건넨 그 그림을 두고 아버지가 다른 사람들 앞에서 자신이 그린 그림이라고 공로를 떠넘기고 있었기 때문에….
하지만 정태는 그런 아버지의 의중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저 고개만 짧게 숙이는 것으로 칭찬에 대한 쑥스러움을 표현하고 있을 때였다.
다시 손 회장의 칭찬이 이어졌다.
“안 할 이유가 전혀 없는 내용이야. 아니, 안 하면 바보 소리 듣겠는데?”
그 말에 자리에 모인 회사의 모든 중역이 큰 소리로 웃음을 터뜨렸다.
“이건 뭐 내 입장에선 내가 좋아하는 반찬들만 가지고 한 상 거하게 차려서 밥까지 떠먹여 주는 꼴 아닌가. 씹고 삼켜서 소화 시키는 거 정도는 해야지. 다들 안 그래?”
“네, 맞습니다. 하하하.”
“그럼요. 그 정도도 안 하려고 해서 되겠습니까?”
“그런데….”
항상 그런데가 문제다.
발표 내내 보였던 정태의 여유가 조금씩 말라 가기 시작했다.
“다 좋은데 말이야. 이 자체로는 핵폭탄급 파괴력을 기대하기엔 어딘가 모르게 무리가 있을 거 같단 생각이 들어.”
자리에 모인 모두가 고개를 갸웃거리기 시작했다.
“물론 좋아. 이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완벽한 밥상이야. 뭐 하나 버릴 게 없는 완벽한 밥상인데… 나는 왠지 이 완벽한 밥상을 우리 가족들끼리만 앉아서 먹기가 너무 아까워.”
“……?”
“왜 요즘 사람들 많이 하는 거 있잖아? 이 정도 밥상이면 사진도 찍고, 찍은 사진을 SNS 같은 데 올려서 자랑질도 좀 하고… 그렇게 하고 싶은데 이건 너무 우리끼리만 잘 먹고 만족해야 하는 밥상인 거 같단 말이지.”
어느 누구도 손 회장이 하고 있는 말을 단번에 이해하지 못했다.
“이 밥상에 요리 몇 개만 더 추가되면 잔칫상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잔칫… 상이요?”
“그래. 좀 굵직한 요리 한두 개만 더 준비되면 이건 잔칫상이지, 일반 밥상은 아니지. 이런 큰 상을 차려 놓고 조용하게 우리 가족들끼리만 먹는다? 그렇게 재미없게 살 거면 뭐 하러 돈을 버나? 뭐 하러 이 많은 음식을 차리냐고. 이럴 땐 집에 손님도 초대해서 시끌벅적하게 온 동네가 떠들썩할 정도로 잔치를 벌여야지.”
“……?”
“요즘 젊은 사람들 많이 쓴다고 하는 스마트 페이. 그걸 좀 여기에 접목을 시켜 보지 그러나?”
“……!”
“커머스 플랫폼과 금융이 함께 붙는 경우도 요즘은 많잖아. 이 정도 규모의 밥상이라면 여기에 금융 하나 더 올리는 건 일도 아닐 거 같은데? 손 상무.”
“네, 회장님.”
“이건 이대로 진행을 하면 될 거 같고, 방금 내가 말한 내용도 잘 한번 고민을 해 봐. 항공에서 만들어 낼 수 있는 트래픽만 2,100만이야. 스너프가 기존에 확보하고 있는 트래픽도 400만은 넘고. 물론 중복되는 트래픽도 틀림없이 있겠지만, 단순 계산으로만 봐도 대한민국 인구 절반에 가까운 트래픽을 오픈과 동시에 움직일 수 있는 사업이야. 여기에 왜 가장 중요한 금융을 빠뜨리나. 이 시대의 사업은 돈을 버는 게 아니라 돈을 받는 구조로 이뤄져야 해.”
“…….”
“결국 이 트래픽 사업도 돈을 버는 구조가 아니라 가상의 공간으로 유통판을 만들어, 자릿세, 수수료를 받는 사업 아닌가. 설정은 입 댈 곳 없이 잘 잡힌 사업이 확실한 거 같으니, 여기에서 그 부분만 추가해서 디테일을 다시 잡아 봐.”
“네, 알겠습니다, 회장님.”
“수고했네. 모처럼 시원한 발표였어.”
그렇게 말한 후 손 회장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와 동시에 자리에 모인 모든 인물이 함께 일어났고, 그중 손 회장은 모직에서 온 남필우 사장과 조동희 전무에게만 따로 자신을 따라오라는 눈빛을 보낸 뒤 몸을 돌렸다.
* * *
잘 걸렸다
“스너프 인수 건 말이야. 자네들 생각은 어때?”
그룹 회장실로 불려 온 남 사장과 조 전무.
너무나 당연한 질문 앞에 두 사람은 기분 좋은 표정으로 서로에게 먼저 대답을 드리라는 눈빛만 보내고 있었다.
결국 남 사장이 먼저 말했다.
“손 상무가 큰일을 해낸 거 같습니다.”
옆에서 조 전무는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남 사장의 생각에 힘을 보태었다.
“단순한 매출적 성장뿐 아니라 그룹 전체의 사기를 올려 줄 수 있는 프로젝트라고 보입니다. 현재 고여 있는 임원진 배치 부분도 한결 자연스럽게 이뤄질 수 있을 거고요.”
조 전무가 말을 받았다.
“제 생각도 그렇습니다. 이번에 손 상무가 만루 홈런을 쳤습니다.”
“만루 홈런?”
“그럼요. 만루 홈런이죠. 밖에 나가 있는 주자르 이 한 방으로 싹 다 홈으로 불러들일 수 있게 된 거 아닙니까. 항공, 식품, 모직… 동시다발적으로 맞물려서 일으켜 낼 시너지 효과가 벌써 기대됩니다. 어디 그뿐입니까? 남 사장님 말처럼 플랫폼 비즈니스가 시작되면 곧바로 그룹 임원 운영이 수월해질 겁니다. 현재 스너프에 근무 중인 직원들의 고용 책임에 대한 부분은 어쩔 수 없이 떠안아야 하는 부분이겠지만, 거기 임원진은 별개로 봐야죠.“
손 회장이 고개를 끄덕이며 두 사람에게 말했다.
“처음 시장에 나왔을 땐 4천억에 나왔던 물건이었어. 그걸 정태가 3천 700억까지 내려놓은 거고.”
그 말에 조 전무가 웃음을 참지 못하고 “손 상무 보너스 좀 두둑하게 챙겨 주셔야겠는데요?”라며 손 회장의 흥을 북돋웠다.
하지만 어쩐 일인지, 이 좋은 내용을 앞에 두고도 손 회장은 아까 회의실에서와는 달리 무거운 표정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 300억 깎자고 일주일이라는 시간을 잡아먹더군.”
“그게 적은 돈입니까, 회장님. 큰돈입니다….”
“진행에 불필요한 군더더기가 많이 보이더란 말을 하는 거야.”
조 전무는 눈알만 살짝 옆으로 돌려 남 사장을 쳐다봤다.
남 사장 역시 손 회장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언뜻 이해가 되지 않아 조 전무와 눈을 마주쳤다.
“그 일주일이 내게는 1년보다 길었거든. 시장에 스너프가 나온 건 재경 전체로 봤을 땐 천운이야. 그 천운이 4천억에 떨어졌는데도, 그걸 앞에 놓고 고작 300억 딜을 하겠다고 일주일씩이나 사람 간을 떨리게 만들더란 말이야.”
남 사장이 뭔가 손 회장 말에 이상한 낌새를 채고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기획 전에 회장님께서는 미리 알고 계셨던 내용이었던 겁니까?”
“그래서 내가 자네들만 잠시 따로 보자고 한 거야. 방금 조 전무 자네가 이걸 만루 홈런이라고 표현을 했지?”
“…네.”
“나도 그렇게 생각을 해. 그런데 여기에서 내가 헷갈리는 게 있어.”
“어떤….”
“홈런을 친 건 정태가 맞는데, 그 홈런을 만든 건 정태가 아니라 정훈이거든.”
동시에 남 사장과 조 전무가 입을 반쯤 벌린 채 어떠한 반응을 보여야 할지 난감해하고 있었다.
그런 두 사람 앞으로 손 회장이 기획한 한 질을 내려놓았다.
정훈이가 놓고 갔던 기획안이었다.
그 기획안을 먼저 확인한 남 사장은 침을 한 번 꿀꺽하고 삼킨 후 말없이 조 전무에게 그 기획안을 넘겨주었다.
조 전무 역시 기획안을 확인하는 내내 숨소리조차 쉬이 내지 못했다.
“이제 내가 왜 자네들만 따로 보자고 한 건지 알겠어?”
남 사장과 조 전무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사업을 기획하는 것과, 그 기획을 실제 사업으로 만들어 내는 건 별개의 문제야. 나는 그렇게 생각을 해.”
기획안이 전해 준 충격은 실로 엄청나서, 남 사장과 조 전무는 여전히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손 회장의 말을 듣고만 있었다.
“나는 정태한테 이번 기획에 관한 기본 소스들만 던져 줬을 뿐이고, 그걸 오늘 발표 때 보여 준 디테일로 만들어 낸 건 정태야. 정태라면 죽이 되든 밥이 되든 결과물을 만들어 올 게 분명했으니까. 반면에 정훈이는?”
“…….”
“나는 이 기획안을 정훈이 놈한테 받고 확인하는 순간 이런 생각이 제일 먼저 들었어. 두 놈한테 기회를 공평하게 한 번씩은 줘 봐야겠다는 생각. 나는 이미 이 기획안의 총괄을 정태한테 맡겼어. 이건 정훈이 입장에선 불공평이겠지. 그래서 자네들한테 부탁하는 거야.”
“편하게 말씀하십시오.”
“네, 회장님. 이게 손 과장이 만든 기획안이라고 하시니… 저 역시 이 비슷한 기회가 손 과장에게도 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중입니다.”
조 전무의 말에 손 회장은 본능처럼 고개를 끄덕이며 남 사장과 조 전무를 차례대로 쳐다봤다.
“이 정도 기획안을 만들어 낼 정도라면… 그리고 지난 하반기 모직 공채 건도 그렇고, 노조 터진 거 마무리 지은 것도 있지 않나. 기획을 사업으로 실행시키는 역량이 어느 정도 되는지 확인을 해 봐야 할 거 같아. 남 사장.”
“네, 회장님.”
“정훈이가 모직 쪽에서 새로운 브랜드 론칭에 집중을 해야 한다는 소릴 했다던데?”
“네.”
“지원해 줘 봐.”
“그럼 어떻게 부서 이동을 개발부 쪽으로 돌려야겠습니까?”
“그 내용 역시도 자네랑 조 전무가 정훈이하고 이야기를 해 보고 결정해. 생뚜앙 지사 쪽으로 자기 사람을 보냈다며?”
조 전무가 대답했다.
“네. 보내면서 그곳 지사장이 해외 지사 규모를 키울 수 있도록 돕고 오라는 주문을 했다고 합니다.”
“뭔가 그려 보고 싶은 큰 그림이 있으니까, 자기 딴에 이리저리 계산기를 돌려 보고 있는 거 아니겠어? 큰 도화지 하나 얼마나 한다고, 이 정도 기획안을 만들어 올리는 놈한테 아비가 제대로 된 도화지 하나 못 사 줘서야 되겠냔 말이야, 내 말은.”
“무슨 말씀이신지 알겠습니다.”
“오늘 기획안 관련된 내용은 다른 사람들 귀에 안 들어가게끔 입단속들 잘하고, 앞으로 두 사람은 정훈이 쪽으로 좀 더 신경을 써 주게.”
지금 이 자리에서 손 회장이 자신들을 상대로 하고 있는 말의 내용이 어떤 것인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두 사람이었기에, 내심 걱정이 될 수밖에 없었다.
남 사장이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