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gnity of the Chaebol RAW novel - chapter (70)
“형은 항상 그래. 꼭 오해를 하게끔 말을 해 놓고 오해를 하지 말래. 도대체 왜 그래?”
정태의 얼굴엔 여유가 넘쳐흐르고 있었다.
“에이, 왜 그러냐? 왜 갑자기 정색까지 하고 그래?”
“형은 못 느낄지 모르겠지만, 한 번씩 가족 모임에서 형이 말에 뼈를 박을 때마다, 그거 괜히 자격지심처럼 느껴지고 그래. 그러지 마. 그거 보기 안 좋아.”
어허….
이놈은 또 왜 갑자기 급발진을 하는 거지?
하지만 정태는 여전히 웃고 있었다.
그 웃는 모습이 장민수를 더 자극하고 있는 모양이었고.
그나마 같은 항렬 안에선 맏이인 장민석이가 엄한 표정을 지으며 둘의 신경전을 말렸다.
“지금 뭐 하냐, 둘이?”
“…….”
“지금 이 자리에 우리만 있어? 다른 사람들 다 왔다 갔다 하고 있는데, 구경거리 만들어 줄 일 있어?”
“아니, 형. 형도 금방 다 들었잖아, 정태 형 하는 말.”
장민석이가 장민수 몰래 정태에게 눈치를 줬다.
좋게 좋게 넘어가자는 식으로.
그 눈치에 정태가 어깨만 살짝 들었다 내리며, 저놈이 왜 저렇게 오버를 하는지 모르겠단 표정을 보여 준 뒤 시가를 만지작거리며 다시 장민석이를 자극했다.
“너는 참 앞뒤 문맥 다 놓치고 꼭 네가 듣고 싶은 말만 골라서 듣는 이상한 능력이 있더라?”
“뭐?!”
언성이 높아진 장민수를 진정시켜 놓고 결국 장민석이 나섰다.
“민수, 그만해. 정태 너도 그만해라. 이래서야 어디 가족이라고 편하게 너 부르겠냐?”
정태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지금 내가 실수한 거야? 실수를 했는데, 나만 지금 그 실수를 못 느끼고 있어? 야, 민수야. 도대체 내가 뭐라고 했다고 그래?”
여기에서 장민수 이놈이 아무리 사촌 간이라도 해선 안 될 실수를 만들어 냈다.
소파에 거만하게 기대어 앉아 다리를 꼬더니, 정태에게 불을 달라고 했다.
커터로 시가 끝단을 잘라 내면서.
“형, 나 그 불 좀 빌리자.”
정태가 피식하고 웃으며, 테이블 중간 정도로 금장의 얇은 사각 라이터를 밀어 넣었다.
여전히 소파에 등을 파묻고 앉은 상태로 장민수가 날 쳐다보며 말했다.
“정훈아. 그 라이터 좀 줄래?”
장민수가 날 찾으며 다시 라이터를 찾자, 정태 녀석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장민석이의 얼굴에도 재미난 상황 앞에 미소가 올라오고 있었다.
“정훈아? 형 라이터 좀 달라니까?”
억지로 표정 관리를 하며 자신이 테이블 정중앙에 올려놓은 라이터를 집기 위해 정태가 몸을 앞으로 숙이려고 할 때였다.
내가 얼른 정태의 무릎 위로 손을 올려놓고, 못 움직이게 말린 후 소파에서 엉덩이를 떼어냈다.
그리고 직접 라이터를 집어 장민수 앞으로 내밀었다.
근데도 이놈이 안 받네?
“불 좀 붙여 봐라.”
뭐라?
나한테 지금 불을 붙여 보라고 하는 건가?
허허허… 재밌네, 요즘 놈들.
그런데 바로 그때.
“민수야, 적당히 해라.”
정태가 결국 감정을 들키고 말았다.
그런 정태의 모습이 통쾌했던지, 장민수는 왜 그렇게 무서운 표정으로 자신을 보느냐는 식으로 이죽거렸다.
“에이, 동생이 형한테 불도 못 붙여줘?”
“정훈이 앉아.”
정태가 내 팔을 낚아채서 날 다시 자리에 앉히려고 할 때였다.
난 고개만 살짝 돌려 미소를 지어 보이며 내 팔을 잡고 있는 정태의 손을 떼어 냈다.
“담배도 아니고, 시가에 불이 어디 쉽게 붙나. 그 시가 줘 봐. 내가 붙여 줄게.”
난 장민수에게 커팅된 시가를 넘겨받아, 선 상태에서 라이터 뚜껑을 열었다.
그리고 불을 켜 놓고 그 불 위로 한참 동안 시가를 돌려 가며 고루 불을 붙였다.
적당히 불이 붙은 시가를 약하게 흔들어 연기가 잘 올라오는 걸 확인한 뒤, 그걸 장민수에게 전달했다.
그 모습을 바로 옆 테이블, 그리고 북 카페 안을 돌아다니는 많은 사람이 지켜보고 있었다.
그러니 이걸 그냥 줄 순 없는 거지.
난 불을 붙인 시가를 넘겨주며, 실수인 척 장민수 앞에 높여 있던 와인 잔을 툭 하고 건드렸다.
“야, 야!”
그 와인 잔은 곧바로 테이블 아래로 떨어져 바닥에서 깨어졌고, 그 안에 담겨 있던 와인이 장민수 앞에서 사방으로 튀겨 회색 정장 바지와 구두에까지 모두 다 튀어 버렸다.
“아이고, 이거 어떡해! 형, 괜찮아? 바지에 와인 다 튄 거 아니야? 어디 좀 보자. 바지 버린 거야? 아이고, 다 버렸네. 이거 어떡해?”
“너, 이 씨! 야 이 새끼야. 너 지금 이거 일부러 이랬지?”
장민수의 입에서 날 향한 새끼라는 표현이 나오고 1초도 안 지나서….
“장민수. 너 지금 정훈이한테 새끼라고 했냐?”
자세를 앞으로 당겨 앉아, 아주 무서운 눈으로 장민수를 노려보며 정태가 말했다.
“이 새끼가 지금 누구한테 불을 붙이라고 하고, 새끼라고 하는 거야? 감이 없지, 네가 지금?”
* * *
사과하라고 전해 주게
피로연장 안의 모든 시선이 우리 테이블 쪽으로 집중되었다.
그리고 모두가 알고 있었다.
이 피로연 자리는 직계 혼주도 아닌 장민석이 마련한 자리이고, 또 이 모임 자체가 장민석과 부경 그룹을 중심으로 형성된 모임이라는 걸.
나는 이미 그 자체만으로도 기분이 별로 안 좋은 상태였다.
그런데 고작 부경쇼핑 쪽 자식 놈이 다른 사람들 다 보는 앞에서 재경 그룹 후계자를 마주 보고 앉아, 그 동생에게 시가에 불을 붙여 보라고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애써 난처한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이 상황 자체를 오로지 흥미로만 바라보고 있는 장민석의 속내가 훤히 보여 더는 놀아나 줄 기분이 아니었다.
요즘 놈들 트렌드가 유치함이라면, 그 트렌드에 내가 맞춰야지.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가슴 앞으로 팔짱을 낀 채 와인 잔을 들고서 이 테이블의 어색해진 분위기를 살피는 하늘이가 내 눈에 들어왔다.
“됐어, 그만해.”
정태를 진정시키겠다는 듯, 장민석이가 묵직한 눈빛으로 분위기를 가라앉혔다.
하지만 이것도 연기였다.
내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말로는 그만하라고 하지만, 정태가 여기에서 감정 조절을 못 하고 가십거리가 될 만한 장면을 하나 정도 만들어 주길 은근히 기대하는 눈치.
그러니 내가 나서야지.
어쨌거나 정태는 우리 재경 그룹의 후계자다.
최소한 이 자리에서만큼은 우리 재경의 얼굴인데, 그런 정태가 고작 장민수 같은 애송이 놈 하나 때문에 장민석이한테 놀아나는 꼴을 보이게 만들 순 없지 않겠나.
와인이 튄 바지 끝단을 물수건으로 털어 내고 있는 장민수에게 내가 말했다.
“잔 떨어뜨려서 옷 버리게 만든 건 미안한데, 암만 그래도 불붙여 달래서 친절하게 불까지 붙여 준 사람한테 새끼는 좀 심한 거 아냐?”
“뭐?”
아마 정훈이의 이런 모습은 다들 처음 보는 모양이다.
내가 눈에 힘을 좀 실었거든.
장민수가 오만상을 찡그리며 날 노려보기 시작했는데, 난 그런 장민수와 장민석이를 번갈아쳐다본 뒤 가볍게 웃음을 흘렸다.
“이럴 거였음 불붙여 보란 말을 하지를 말든가.”
“손정훈.”
장민석이가 아주 강압적인 어투로 날 불렀다.
하지만 강압적인 어투와는 달리 날 쳐다보는 눈빛엔 마치 내가 실수를 더 만들어 내길 은근히 바라는 듯한 감정이 담겨 있었다.
그래?
그렇단 말이지?
네놈이 어떻게 놀고 싶어 하는지 완벽하게 접수했다.
놀아 줄게.
장민석과 장민수, 그 외 자리에 함께 앉아 있는 부경가 사람들을 천천히 쳐다보며 내가 말했다.
“그러게 왜 날 불렀어?”
“너 지금 이거 일부러 쏟은 거지?”
“뭘 또 물어서 확인까지 해? 내가 아니라고 딱 잡아떼도 일부러 했다고 믿어야 할 판에.”
“뭐? 너 이 새끼, 이거… 너 지금 제정신이야?”
그제야 장민석이의 얼굴에도 당황이라는 게 올라오기 시작했다.
내가 이 정도로 대책 없이 상황을 악화시킬 줄은 몰랐던 모양이지?
결국 자신이 기대했던 것보다는 내가 만들어 가고 있는 상황이 자리의 분위기를 잡아먹을 정도로 심각해져 버리자, 장민석이자 자리에서 일어났다.
곧 정태도 함께 자리에서 일어났다
정태가 다시 한번 내게 새끼라는 표현을 쓴 장민석을 쏘아보고 있을 때였다.
“그만. 정태, 정훈이 앉아라. 민수 너도 적당히 해. 아무리 사촌지간이라도 지켜야 할 선이 있는 거야. 보는 눈도 많은데, 우리끼리만 있는 자리도 아니고 불을 붙여 보라고 한 건 네가 심했다.”
“…….”
장민석이가 다른 사람들 보는 앞에서 자신의 권위를 보여 주기 위해 어색해진 테이블의 상황을 정리하려고 할 때, 정태가 앉아 있는 장민수를 아래로 내려다보며 말했다.
“다행인 줄 알아. 아까 거기에서 라이터 달란 소리 나한테 다시 했었음 오늘 와인으로 너 머리 감았어.”
그런 다음 정태는 입고 있는 재킷의 주름을 바로잡으며 장민석을 쳐다봤다.
“고마워, 형.”
장민석은 실눈을 뜬 채 정태를 쳐다보고 있었다.
“앞으로 내가 더는 이 모임에 안 나와도 되게끔, 그 명분을 오늘 형이 만들어 줬어.”
“…….”
“정훈이 가자.”
날 소파 밖으로 밀어내고 있는 정태를 향해 장민석이 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너 이렇게 가면 앞으로 서로 불편해진다?”
“어쩔 수 없는 거지.”
이번엔 장민수가 시가를 입에 문 채 이죽거리며 물었다.
“형 진짜 괜찮겠어?”
결국 본색을 드러내는 장민수였다.
그 본색을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정태가 비웃어 버렸다.
“나는 괜찮을 거 같은데, 넌 괜찮겠냐?”
“…….”
정태는 우리 테이블을 구경하고 있는 사람들을 건성으로 쳐다본 뒤, 가소롭다는 식으로 말했다.
“그리고 민수야. 이럴 땐 형 진짜 괜찮겠어? 라고 하는 게 아니라, 형 미안해. 내가 좀 심했어… 라고 하는 거야.”
* * *
폐백실 앞에서 정태가 홍준이에게 조금 전 있었던 상황을 설명했다.
장민수가 내게 시가에 불을 붙여 보라고 했다는 내용을 듣는 순간 홍준이 놈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하지만 내가 고의로 와인 잔을 장민수 쪽으로 쓰러지게 만들었단 내용을 듣고는 이내 평정심을 되찾았다.
“위에 올라가서 수경이하고 승준이 데리고 내려와.”
“네, 아버지.”
곧바로 우린 본가로 향했다.
본가 서재에서 나와 정태는 홍준이 놈에게 피로연장 안에서 있었던 상황을 빠짐없이 모두 설명해야 했다.
그러는 동안 사무 책상 위로 올려진 홍준이의 폰이 수차례 울렸다.
부경쇼핑 쪽 장 회장의 전화였다.
하지만 홍준이는 발신자 번호만 확인을 할 뿐, 전화를 받지는 않았다.
“보는 눈도 많았을 건데, 꼭 그렇게 유치하게 상대를 해야만 했던 거야?”
모든 질타가 정태에게만 쏟아졌다.
사고는 내가 쳤는데, 정태에게만 핀잔을 놓고 있는 홍준이의 입장에서 생각을 해 봤다.
그 마음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거 같아, 하고 싶은 말은 많았지만 참아야만 했다.
홍준이 폰으로 다시 전화가 걸려 오고 있었다.
발신자를 확인한 후, 벨 소리를 줄이고 있는 홍준이에게 정태가 말했다.
“보는 눈이 많았으니까요.”
“뭐?”
“그간 어머니 얼굴 봐서 제가 많이 참았다는 거 아버지도 잘 아시잖아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