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gnity of the Chaebol RAW novel - chapter (71)
“솔직하게 말씀드려서 정훈이까지 그 시답잖은 모임에서 부경 그룹 들러리나 하게 만들고 싶지가 않았어요.”
“그런 거였음 그냥 안 나가면 되는 거지, 그 정도 배짱도 없어?”
“그런 모임 하나 그만두는 데 무슨 배짱씩이나 필요합니까? 그런데 오늘은 어쩔 수 없었잖아요. 명색이 가족 결혼식 날이었어요. 명분은 피로연이었고.”
“흠….”
“다른 사람들 다 보는 앞에서 정훈이한테 불을 붙여 보라고 하는데, 제가 참아야 했던 거예요?”
어쩐 일인지, 정태의 말을 다 듣고선 고개만 끄덕이는 홍준이었다.
이번엔 나에게 묻네?
“일부러 와인 잔을 깬 거야?”
“네.”
“왜?”
정태처럼 대답을 하면 되려나?
“다른 사람들 다 보는 앞에서 형한테 불을 달라고 하는데, 제가 참아야 했던 거예요?”
너무 똑같이 따라 대답을 해 버렸나?
억지로 웃음을 참기 위해, 정태의 광대가 도드라지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곁눈질로 보고 있자니 나도 웃음이 올라왔다.
홍준이 놈 권위를 생각해서라도 여기에서 내가 웃으면 절대 안 되는 건데, 아까 그 피로연장 안에서 있었던 일말의 유치했던 상황, 그 와중에도 동생을 챙겼던 정태 놈의 기특한 처세, 그 모든 게 한데 어우러져 웃음이 나오고 있었다.
그런데….
“푸흡….”
홍준이 놈이 먼저 웃음을 터뜨려 버리네?
“하하하… 하하, 하하하….”
정태도 웃음을 들키고 있었다.
더는 솟아오르는 광대를 억지로 숨기지 않고 정태가 시원하게 웃기 시작했다.
홍준이가 웃음을 끝내 놓고 물었다.
“민석이 놈이 나잇값을 못 하는 편이지?”
정태는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그래, 그러니 그 모양 그 꼴이지. 민석이는 그렇다 치고, 민수 그놈은 안 그럴 거 같더니, 의외로 이상한 구석이 있는 놈이네.”
“물이 드는 거죠. 저도 잠시 그럴 때가 있었지만, 나이 들고 회사 일 배우기 시작하면서 그런 모임이 중요하단 착각에 여기저기 불려 다니다 보면, 물 드는 거 한순간이잖아요.”
“민수 그놈이 다른 사람들 다 보는 앞에서 괜찮겠냐고 물었다고?”
“네.”
홍준이의 얼굴에도 상대를 가소롭게 여기는 자신감이 만연했다.
“그래서 넌 뭐라고 했는데?”
“나는 괜찮을 거 같은데, 넌 괜찮겠냐고 물어봤죠.”
“그랬더니?”
“별말 안 하던데요?”
“민수 그놈이 버릇이 없구나.”
“그게 어디 민수 그 녀석만의 문제겠습니까?”
다시 심각한 표정으로 홍준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더니 날 쳐다보며 물었다.
“정훈이 너는 네 이종사촌 형들이 오늘 그 모임에서 왜 그랬다고 생각하냐?”
“저나 형을 무시하니까 그러는 거죠. 그리고 그 무시는 연기일 뿐인 거고.”
“연기일 뿐이다?”
“무시를 하고 싶은데, 무시가 안 되는 모양이죠. 그래서 신경이 쓰이니까 그러는 거 아니겠어요? 신경이 쓰이고, 우리 재경이란 존재가 불편하기도 하고….”
“그런 게 네 눈에도 보이더나?”
설마 내 시력을 묻는 건 아닐 거 아냐?
이 와중에 무슨 이딴 바보 같은 질문을 던지고 있어?
“설마 고작 부경 그룹이 우릴 신경 쓰고 우리 존재를 불편해하는 거 자체가 만족스러우신 거예요?”
“……!”
홍준이뿐 아니라 정태까지도 흠칫했다.
“저는 그 형들이 우릴 신경 쓰고 불편해하는 걸 그렇게 대놓고 표현한다는 거 자체가 상당히 불쾌하던데요? 그래서 와인 잔을 깬 거예요.”
“뭐라?”
“앞으로는 불편해하는 게 아니라 두려워하라고. 신경을 쓰는 게 아니라 눈치를 보라고요. 그렇게 만들어 주겠다고.”
“…….”
이쯤에서 정태를 조금 띄워 주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다.
“이미 다들 형한테는 꼼짝을 못 하는 거 같던데요?”
“민석이도 꼼짝을 못 하더나?”
정태가 있는 앞에서 그런 걸 확인받고 싶어 하는 홍준이의 그 마음 역시 충분히 이해가 됐다.
“제가 봤을 때 민석이 형은 그릇이 작아요. 자기 집 안에서나 까불지, 집 대문 밖에선 골목대장도 못 해 먹을 겁니다. 그런 인물을 어디 형한테 비교를 하겠어요.”
“그 정도까지는 아냐, 인마.”
정태는 민망한 듯 인상을 찡그리며 홍준이를 향해 고개를 가로저었다.
하지만 홍준이는 그 정도면 충분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사무 책상 위로 올려놓은 폰 화면을 손가락으로 가볍게 터치를 해서 화면이 올라오게 만들었다.
부재중 전화 두 통.
두 통 모두 부경쇼핑 쪽 장 회장의 번호였다.
통화 연결을 시도해 놓고, 마치 나와 정태에게 해당 통화 내용을 모두 공개하겠다는 듯 스피커폰으로 돌리기까지 했다.
두 번의 신호음 끝에 상대가 전화를 받았다.
―네, 자형. 왜 전화를 안 받으세요?
“정태, 정훈이 불러 놓고 아까 식장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듣고 있었어. 자네는 혹시 민수 통해서 이야기 들은 거 좀 있나?”
―안 그래도 그거 때문에 전화 드린 거예요.
“요즘 사업하기에 경기도 안 좋고 하다 보니까, 이놈들이 스트레스가 많은 모양이야. 기분 좋은 가족 잔칫날에 남들 다 보는 앞에서 별것도 아닌 거로 말다툼이나 하고.”
―자형이 정태, 정훈이한테 이야기를 좀 잘하셔야겠어요.
홍준이 놈의 얼굴엔 여유가 가득했다.
―정훈이야 회사 일 배우기 시작한 지 얼마 안 되니까 그럴 수 있다 쳐도, 정태는 이제 엄연히 재경 안에서는 사장단 아닙니까.
“그게 어쨌다는 거지?”
―행동거지 하나하나에 조심이 들어 있어야 할 놈이 오늘은 많이 경솔했던 거 같아 걱정이 되어서 드리는 말이에요. 정태가 민수한테 저희 쪽 쇼핑을 가라앉고 있는 배라는 식으로 표현을 했다네요?
“그럴 리가 있나.”
―자형이 그렇게 말씀을 해 버리시면, 민수가 저한테 없는 말을 지어낸 게 되는 거 아닙니까?
“설마 없는 말을 지어내기야 했겠어? 하지만 중요한 말은 빠뜨렸을 수도 있지.”
그래, 유치한 일이긴 했어도, 그 유치한 일 때문에 조금은 홍준이가 회장처럼 보이네.
―뭐라고요?
“민수가 아까 그 자리에서 우리 정훈이한테 담배에 불을 붙여 보라고 했다던데? 그 소린 들었나?”
―다, 담배요?
“아니, 시가라고 했던 거 같네. 아무튼. 다른 사람들 다 보는 앞에서 불을 붙여 보라고 했다네?”
―자형도 참. 그게 어땠다는 거예요? 사촌 형제들끼리 같이 한잔하다 보면 동생이 형한테 담뱃불도 붙여 주고 할 수 있는 거지.
“자네도 알다시피 내가 속이 좁잖아. 자네는 열려 있고, 깨어 있는 사람이라 그런 부분을 중요하게 생각 안 하는지 몰라도, 나는 우리 아이들한테 그런 부분에 대해 엄격하게 가르쳐 왔거든. 가족들만 모인 자리가 아니었지 않나.”
―자형이 이런 식으로 말씀을 하시면 제가 서운해집니다.
“나는 이미 자네 때문에 서운해.”
―자형.
“애들끼리 있었던 일이라 모르는 척 넘어가 주려고 했는데, 자네가 이렇게 전화까지 해서 불편한 소릴 해 대니 모르는 척 넘어갈 수가 없게 생겼네. 민수한테 조만간 정태, 그리고 정훈이 직접 찾아가서 정식으로 사과하라고 전해 주게.”
―뭐요? 자형 방금 뭐라고 하셨어요?
* * *
직접 손을 내밀어 보시죠
통화를 끝낸 홍준이가 나와 정태를 쳐다보며 말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꼭 사과를 받아 내라.”
그에 정태는 홍준이가 지나칠 만큼 상황을 극단적으로 몰고 가는 게 불안하다는 듯 눈치를 살폈다.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런데 아버지, 외삼촌하고 통화를 그렇게까지 하실 필요가 있으셨어요?”
정태가 그 질문을 하는 순간 안타깝게도 난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아직 정태가 홍준이의 생각을 읽어 내기엔 역량이 많이 부족하다는 걸.
그리고 내 눈에는 보였다.
정태는 상상도 하지 못할 만큼의 두려움과 걱정을 홍준이 놈이 하고 있는 중이라는 게.
그럼에도 스너프라는 칼이 이젠 손에 들려져 있기에, 그 칼을 뽑았기에, 그리고 자식들 앞이었기에 그 칼로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다시 칼집에 넣을 수 없는 입장이라는 걸.
정태가 다시 물었다.
“이참에 부경쇼핑 쪽 버르장머리를 고쳐 놓겠단 아버지 생각은 알겠는데, 만약 우리가 스너프를 가지고 있지 않은 상태에서 오늘 그런 일이 벌어졌다고 해도 똑같이 그렇게 하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내 앞이라서 그런 건지 홍준이는 정태를 모자란 놈이라 타박을 하지 않았다.
만약 내가 홍준이었다면, 큰소리를 냈을 것이다.
어쩜 그렇게 새가슴일 수 있는 거냐고, 그렇게 몸을 사릴 거였음 어째서 그런 일이 애초에 발생하지 않도록 피로연장에서부터 조심하지 않았던 거냐고.
정태가 하고 있는 조심도 어느 정도 이해는 갔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나라도 홍준이처럼 했을 것이다.
홍준이가 내게 물었다.
“정훈이 네 생각은 어떠냐?”
그 질문에 나는 이렇게 대답을 했다.
“왜 우리가 이만한 일로 생각이라는 걸 해야 하죠?”
정태의 눈이 가늘어지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동시에 홍준이의 얼굴엔 미소가 번지고 있었다.
“부경쇼핑 쪽에선 제대로 알아보지도 않고, 피로연장에서 있었던 일을 따지겠다고 회장님께 직접 전화까지 걸었어요. 여기에 무슨 예의가 있는 거예요? 이건 부경 전체가 아니라, 쇼핑 쪽 하나 한테만 우리가 무시를 당하고 있다는 증거잖아요. 이걸 참는다고요?”
정태는 뭔가 말을 하려다 말고 갑갑한 한숨을 흘리기 시작했다.
“사과를 받아 내는 것 역시 저는 아무런 의미가 없을 거 같은데요? 그 사과 받아서 뭐 할 거예요? 그냥 그런 거 상관없이 우린 우리가 하고 싶은 대로 하면 되는 거 아니에요?”
“정훈아.”
정태가 날 말렸다.
“네가 아직 회사 일 시작한 지 얼마 안 돼서 뭘 모르기 때문에 하는 말이야.”
“형.”
정태에게 물어봤다.
“형은 아까 그 피로연장에서 만약 우리가 스너프를 가지고 있지 않은 상태였다면, 그렇게 할 수 있었어?”
“…….”
“이미 전제 조건 자체가 틀렸잖아. 우리한테는 이미 스너프가 있는데, 왜 없다는 가정을 해? 진짜 우리한테 스너프 같은 유통판이 없었다면 애초에 피로연장에서 장민수 그 자식이 형이나 날 그렇게까지 견제했을까?”
정태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나는 왜 우리가 이만한 일로 우리끼리 작전 회의 비슷하게 이러고 있어야 하는지도 잘 모르겠는데?”
홍준이에게 말했다.
“돈 안 되는 사과 받아서 뭐 할 거예요? 그리고 그 사과가 부경쇼핑 회장한테 직접 하라고 하는 것도 아니고, 그집 멍청한 아들놈한테 하라고 시키는 거라면 그건 협박이 아니라 차라리 구걸이나 마찬가지죠.”
“…….”
“의미 없는 명분 만들지 마시고, 그냥 회장님 하시고 싶은 대로 하세요.”
홍준이의 표정에 미세한 경련이 일어나고 있었다.
“지금 우리가 사회 복지 사업을 하는 것도 아니고, 무슨 명분이 더 필요해요? 부경쇼핑. 그거 원래는 우리 재경 거잖아요.”
“……!”
“우리 사업이 그쪽으로 넘어간 거보다 아직까지 그쪽 눈치를 보는 게 더 굴욕 아닌가요? 그 큰 굴욕을 당해 놓고 고작 그쪽 아들놈을 상태로 무슨 일이 있어도 꼭 사과를 받아 내라… 하고 있는 지금 우리 현실이 더 굴욕인 거 아니냔 말이죠.”
난 이번엔 정태를 쳐다보며 말했다.
“회장님이 제대로 붙어 보라고 기회를 주시잖아. 한번 붙어 보자, 형. 뒷감당은 회장님이 알아서 해 주시겠지.”
그제야 정태의 얼굴에도 부경을 향한 승부욕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정태가 홍준이에게 물었다.
“월요일에 사장단 모임을 만들어 주실 수 있겠습니까?”
“네가 직접 제안을 하면 되잖아.”
“그보다는 회장님 호출이 더 효과적일 거 같습니다.”
“필요하다면 내가 오늘 미리 연락을 돌려 놓을게.”
“알겠습니다. 아버지 생각이 정 그러시다면, 지금부터 제대로 한번 붙어 보겠습니다.”
* * *
그날 밤 늦게 홍준이로부터 전화가 걸려 왔다.
거의 10시가 다 되어 가는 시간이었다.
―내가 니들 돌아가고 곰곰이 생각을 좀 해 봤는데, 너한테 몇 가지 궁금한 게 있어서 전화를 걸었다.
“네, 말씀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