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gnity of the Chaebol RAW novel - chapter (72)
―내가 이렇게 할 줄 알고 민수한테 와인을 쏟은 거냐?
“그건 아닙니다.”
―아니다?
“네. 아니에요. 그건 아닌데, 아쉬울 게 없는 상대라는 확신은 있었어요.”
―좀 쉽게 이야기를 해 봐.
생각이 많아진 모양이다.
무리도 아니지.
내가 그 자리에 얼마나 오래 앉아 있어 봤나.
난 시작부터 결정을 하고, 모든 책임을 내가 다 짊어져야 하는 자리에서 재경을 일궈 낸 사람이었다.
이렇게 자식 놈에게 전화를 걸어 자신의 선택이 옳았다는 걸 확인받고 싶어질 정도라면, 홍준이 이놈이 지금 많이 불안하고 외로운 모양이다.
“회장님도 그렇게 생각을 하고 계시잖아요. 제 생각 역시 회장님이 하고 계신 계산과 같습니다. 지금 회장님께서 하고 계시는 걱정. 어쩔 수 없이 일부는 현실로 일어나겠죠. 그리고 회장님께서 하고 계시는 기대대로 결국은 부경쇼핑 쪽에서 숙이고 들어올 거고요. 우린 잃는 게 없을 겁니다. 오히려 이 일을 계기로 스너프가 크게 성장을 할 겁니다.”
그 말이 듣고 싶은 거겠지.
“부경쇼핑 신경 쓸 필요 있습니까? 그쪽은 우리 재경의 상품을 언제든 교체가 가능한 상품이라고 착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반대죠. 오히려 부경쇼핑이 우리 입장에선 얼마든지 교체가 가능한 유통판인 겁니다. 딱 그런 확신만 가지고 간다면, 우린 아쉬울 게 없는 거죠.”
―언제부터였어?”
“뭐가요?”
―언제부터 이런 시야를 가지고 있다는 걸 숨기고 있었냐고.
“…….”
―갑자기 생긴 시야일 순 없는 거잖아. 혹시 너도 네 형처럼 너희는 형제들끼리 다투지 않겠다고 일부러 나사 하나 빠진 놈처럼 사람들 앞에서 연기를 해 왔던 거였어? 엄마, 아빠, 네 형까지 속여 가면서?
뭐라고 대답을 해야 하지?
―그런데 욕심이 생긴 거냐?
“…….”
―좋아. 대답하기 힘든 내용이라면 더는 안 물어볼게. 애비 앞에서까지 그런 감쪽같은 연기를 해 왔을 정도라면, 그럴 만한 사정이 있었겠지. 실은 이 말을 해 주고 싶어서 이 시간에 전화를 건 거다. 뭐가 널 욕심 나게 만든 건지는 모르겠다만, 네가 욕심을 가지기 시작해서 내가 든든해지고 있다는 걸 알려 주고 싶어서.
“…….”
―내가 따로 네 형한테도 전화를 걸어서 말을 했는데, 오늘 일은 참 잘했다. 아주 오랜만에 너희 형제들이 기특하고 자랑스러웠다.
나는 단 한 번이라도 홍명이와 홍준이에게 이런 칭찬을 직접적으로 해 준 적이 있었던가?
없었던 거 같다.
아니, 없었다.
특히 기특했다, 자랑스러웠다… 와 같은 낯간지러운 표현을 직접 전화를 걸어 해 준다는 건 나 손중길이의 성격상 말이 안 되는 거였다.
애비로서 한 번도 해 주지 않았던 칭찬.
그 칭찬을 이제야 힘겹게 시도해 봤다.
“저도 오늘… 아까 저랑 형 앞에서 작은 외삼촌과 통화하실 때 감동했습니다. 멋져 보이셨어요.”
얼굴을 안 보고 하는 통화임에도 온몸이 간지러운 기분이었다.
―뭐 그만한 일 가지고.
“저도 궁금한 게 있어요.”
―말해 봐.
“회장님께 부경 그룹은 어떤 의미입니까?”
바로 대답을 못 하길래, 내가 먼저 난 어떻게 부경 그룹을 생각하고 있는지 말해 주었다.
“저는 부경 그룹을 단 한 번도 제 외가라고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어요.”
그리고 이건 오늘 정태 놈이 피로연장에서 보였던 모습으로 짐작을 해서 말해 주었다.
“그건 저뿐만 아니라 정태 형도 마찬가지일 거예요. 그래서 여쭤보고 싶습니다. 회장님께 부경 그룹은 어떤 의미인지, 과거사를 다 차치하더라도 처가이기 때문에 앞으로도 계속 협력을 이어 나갈 사업적 파트너라고 생각을 하시는 건지, 아니면 오늘 저와 정태 형에게 보여 주신 모습대로 언제든 거리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상대라고 생각을 하고 계신 건지.”
―너는 내가 부경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 거 같아?
“회장님의 생각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저는 배가 아픕니다.”
―배가 아프다?
“네. 특히 아까 그 피로연장에선 피가 거꾸로 솟는 기분이었어요.”
―나도 그렇다. 좋을 수가 없지.
“그럼 회장님. 지금 현재 우리 재경에겐 우리 편이 있습니까?”
―…….
“부경이야 겉으로만 파트너지, 실상은 우리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결론이 금방 나온 거 아닌가요? 부경까지 우리 파트너가 아닌 지금, 우리 재경의 편이 있는 건가요?”
―비즈니스에 편이 어디에 있나. 다 조건에 따라 관계가 바뀌는 거지.
“완전한 재경의 편을 만들어 볼 시도를 해 보신 적은 있으세요?”
바로 옆에 장태산이의 미래금융을 놔두고 이러고 있다는 게 답답해서 물어본 거였다.
“그럼 제가 다른 거 하나만 더 여쭤볼게요. 혹시 정태 형은 트래픽 플랫폼 비즈니스에 관해서 스너프를 인수하자는 기획이 제 기획이었단 걸 알고 있나요?”
―그건… 내가 말을 안 했다.
“그러신 거 같아서 여쭤본 거예요. 정태 형이 그간 저한테 아무런 말도 없길래, 제가 먼저 물어보기가 애매하더라고요.”
―섭섭하냐?
“아뇨, 오히려 정태 형이 모르는 거 같아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중이었어요. 잘하셨습니다.”
―잘했다?
“네. 아이디어는 누구라도 낼 수 있는 거 아닙니까. 그걸 실행에 옮겨서 사업으로 완성을 하는 게 어려운 거지, 아이디어를 누가 낸 게 뭐가 그리 중요하겠어요? 앞으로 이 부분에 대해선 저도 모르는 것처럼 행동하겠습니다. 그런데요, 회장님. 뱅크 시스템 도입이 스너프 성장에 큰 역할을 해 줄 거라는 제 의견이 그때 올린 기획안에 들어 있을 텐데, 그 부분에는 큰 관심이 안 생기셨습니까?”
―아니다. 나도 그 부분에 대해 관심이 많고, 네 형한테 그 부분에 대한 사업 확장을 만들어 내라고 지시까지 내려놓은 상태야. 그런데 인수할 당시 스너프에는 뱅크 시스템이 없었잖아. 이게 생각보다 뱅크 시스템 접목을 시키는 게 어려워. 일단 자본도 스너프 인수금만큼이나 더 필요하고, 운영에 대한 노하우도 어디에서 가지고 와야 하는데, 그걸 얻어 올 곳이 마땅치 않은 모양이야.
“스너프는 왜 인수 당시 투자를 일으키지 않고 백 퍼센트 그룹 자본으로 인수를 하셨던 겁니까? 정태 형 생각이었던 겁니까, 아니면 회장님 생각이셨던 겁니까?”
―네 형 생각이었다. 나 역시 그룹 내 유보금이 쌓여 있는 상태에서 굳이 투자를 일으켜야 할 필요를 못 느꼈고.
이러니 회사가 유지는 되고 있었지만, 아무런 확장을 해낼 수 없었던 거겠지.
“해당 기획을 올린 입장에서 감히 제 생각을 말씀드려도 되겠습니까?”
―편하게 이야기해. 그리고 나는 아직 네가 나와 이야기를 할 때 이렇게 거리를 만드는 게 영 어색하다.
“스너프는 투자를 일으키셔야 합니다. 스너프는 단순히 유통판의 역할만 기대할 게 아니라, 재경 그룹의 아군을 모으는 역할도 함께 할 수 있도록 만드셔야 됩니다.”
―그게… 무슨 말이야?
“플랫폼 뱅크 시스템을 가지고 있는 기업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런 기업들 쪽으로 투자 기회만 주면 얼마든지 그들의 뱅크 시스템 운영 노하우를 바로 업어 올 수 있는데, 그걸 왜 자체적으로 만들겠다고 쉬운 길을 놔두고 어렵게 돌아가도록 내버려두세요?”
―…….
“트래픽 플랫폼 비즈니스는 그 사업 자체만으로는 큰돈을 벌 수가 없습니다. 거기에 광고도 들어와야 하고, 그런 광고들이 붙어서 더 많은 트래픽이 만들어졌을 때, 비로소 흑자를 낼 수 있는 구조죠. 그걸 기존의 스너프 운영진들이 잘못했기 때문에 괜찮은 시스템을 만들어 놓고도 매각을 해야 했던 거 아니겠습니다.”
―거기에 대한 좋은 생각이 있어?
“미래금융이요. 장태산 회장님께 직접 손을 내밀어 보시죠.”
―누구? 장 회장님?
장태산이의 이름 앞에 홍준이가 기겁하고 있다는 게 눈에 다 보일 지경이었다.
“장 회장님만큼, 우리 손씨 집안 사람도 아니면서 우리 재경 그룹에 진심인 분이 어디에 있습니까?”
* * *
불 있음 나 불 좀 빌려줘
월요일 아침.
손홍준 회장은 사장단 회의가 열리기 한 시간 전에 스너프 사장 정태를 그룹 본사 회장실로 불렀다.
“민수한테 전화 왔더나?”
정태는 여전히 앞으로 펼쳐질 상황이 불안하기만 했다.
입맛을 다시며 고개를 떨군 정태가 힘겹게 대답했다.
“아뇨, 안 왔습니다.”
“사과할 마음이 없나 보네. 그래, 하지 말라고 해. 내가 사과를 받아야겠단 뜻을 정확하게 전달을 했는데도, 제 놈들이 항상 입버릇처럼 말하는 가족끼리 그 정도도 못 해 주겠다는 건 애초에 그만큼 우릴 무시하고 있었다는 거겠지.”
“아버지….”
“그룹 안에서 네 포지션이 뭐냐?”
“스너프 사장입니다.”
“그래. 넌 스너프 사장이야. 더는 그룹 본사 상무가 아니야. 앞으로는 스너프 성장시키는 거에만 집중을 해라.”
“…….”
“그러라고 거기 앉혀 놓은 거니까. 우리가 부경과 붙는다고 해서 스너프에 손해가 날 일이 있어?”
“스너프만 놓고 보면 없습니다.”
“그런데 왜 모직, 식품 관련된 일까지 네가 신경을 써? 넌 네 자리에서 스너프 사장으로서의 네 역량을 증명해 내는 데에만 최선을 다해. 그럼 되는 거다. 그룹 전체를 살피는 건 내 역할이다. 네가 벌써 내 역할까지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냐?”
“아뇨, 그런 게 아니라….”
“아니라면 아닌 거처럼 행동해.”
“…네, 죄송합니다.”
손 회장은 곧바로 스너프의 뱅크 시스템 적용 진행 상황을 물었다.
“언제쯤이면 뱅크 시스템 관련해서 내가 기본 가닥이라도 구경할 수 있겠어?”
“저번에 한번 보고를 드린 것처럼 금융을 추가시키는 게 되다 보니 따져 봐야 할 내용이 많습니다.”
“나 죽을 때까지 계속 그렇게 따져 보기만 할 생각이야?”
“…….”
“우리가 직접 못 할 거 같으면, 할 수 있는 파트너를 찾아. 왜 그렇게 쓸데없는 고집을 부려? 고집을 부릴 거면 가능성이라도 보여 주든지, 그게 힘들 거 같음 고집을 좀 내려놔야 하지 않겠어? 미래금융이 플랫폼 뱅크 시스템을 가지고 있지?”
“네, 그렇긴 한데….”
정태는 헷갈리기 시작했다.
언제부턴가 손 회장이 자신의 앞에서 이랬다저랬다 하는 모습을 너무 자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분명 일전에 뱅크 시스템 도입에 관한 내용을 설명할 땐 충분히 이해를 하는 식으로 천천히 가더라도 꼼꼼하게 따져 볼 건 다 따져 봐 가며 일을 진행하라고 했었다.
그런데 지금은 언제 그런 말을 했냐는 식으로 많은 시간이 필요한 사업임에도 재촉을 하고 있지 않나.
“뱅크 시스템을 포함시키면 어쩔 수 없이 대출 서비스도 함께해야 해. 아직 한 번도 우리가 가 보지 못한 길이다. 실력 있는 파트너를 옆에 끼고 같이하는 게 더 나을 수도 있어. 내가 조만간에 장 회장님을 한번 따로 만나 볼 생각이니까, 그 부분은 안 되는 거 억지로 해 보겠다고 미련하게 잡고 있지 말고, 다른 쪽이랑 함께하는 거로 알고 있어.”
“설마 미래금융 장태산 회장님 말씀이세요?”
정태는 더 크게 헷갈리고 있었다.
도대체 아버지가 왜 이러시지?
다른 사람도 아닌, 미래금융의 장 회장을 언급하면서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을 짓고 계신다.
“아버지, 안 불편하시겠어요?”
“나는 지금 이 상황이 더 불편해. 뱅크 시스템만 해결이 되면 날개를 달 수 있는데, 그걸 못 하고 있잖아. 유통 구조는 하루가 멀다 하고 바뀐다. 특히 요즘 시대는 더 그렇지. 트래픽 플랫폼이 언제 구식 유통판이 될지도 모르는 판에 언제까지 기다리기만 할 거야?”
“…….”
“그럴 거였음 너한테 스너프 인수해 보라고 하지도 않았다. 우리 앞으로는 좀 스마트하게 비즈니스하자.”
“…네.”
손 회장은 마음이 안 좋았다.
어느 누구보다 정태를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이 바로 손 회장이었다.
정훈이가 두각을 나타내기 전까지 손 회장은 정태의 자질이 부족하단 생각을 크게 하지 못했었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필요한 것.
오히려 그 짧은 기간 동안 회사 일을 배우며 빠른 성장을 해낸 정태의 역량을 손 회장은 항상 자랑스럽게 생각해 왔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큰 기대를 하지 않았던 둘째 정훈이가 남필우 사장과 조동희 전무를 감탄시키며 빠르게 치고 올라오는 게 눈에 보였기에, 혹시라도 나중에 형제들끼리 민망한 상황이 벌어지지 않아도 되게끔, 그 상황을 자신이 만들지 않아도 되도록 정태가 조금만 더 분발을 해 주면 좋겠다는 조급함에 더 정태를 몰아붙이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 * *
사장단 회의가 시작되기에 앞서 손 회장이 자리에 모인 모든 계열 사장단, 그룹 본사 임원들을 향해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부경쇼핑의 장민수 백화점 사업 본부장이 내 아들놈들한테 다른 사람들 다 보는 앞에서 시가에 불을 붙이게 만들었다고 하네.”
좀처럼 집안일을 회사로 가지고 나오는 사람이 아니었기에, 자리에 모인 모든 사람은 해당 일로 손 회장이 얼마나 화가 나 있는 상태인지 바로 눈치를 챌 수 있었다.
“그쪽에선 아니라고 발뺌을 해도 그 의도는 명백한 거지. 그런데 거기에서 정훈이가 불을 붙였어.”
마치 짜기라도 한 듯 자리에 모인 모두가 오만상을 찡그리기 시작했다.
“손 사장님은 그 자리에 같이 안 계셨던 겁니까?”
“아무도 말리는 사람이 없었단 말이에요?”
“그걸 왜 또 붙여 줬답니까?”
정태는 혼란스러웠다.
그리고 자신의 생각이 틀렸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임원진의 반응이 이럴진대, 어째서 자신은 그 일이 있었던 당일, 본가 서재에서 자신의 아버지에게 참아야 한다는 입장을 보였던 걸까.
그날 손 회장이 보였던 불쾌함보다 더한 불쾌함을 표현하고 있는 임원진의 반응을 보는 순간 정태는 묘하게 든든한 기분이 들었다.
“자, 자. 다들 진정해. 그냥 불만 붙여 주고 끝난 일이었다면, 내가 창피하게 자네들 다 불러 놓고 이런 이야기를 왜 하겠나. 정훈이 이놈이 불을 붙여 줘 놓고 일부러 장민수 옷에 와인을 쏟은 모양이야.”
이번엔 그나마 다행이라는 듯, 더러는 통쾌하단 표정까지 지으며 언제 불편함을 표출했냐는 듯 킥킥거리기까지 했다.
그 모습을 보며 손정태 사장은 지금껏 느껴 보지 못했던 임원진의 든든함에 취해 가고 있었다.
“그날 부경쇼핑 장 회장한테서 전화를 받았어. 그 친구가 나한테 뭐라고 한 줄 아나?”
“뭐라고 하던가요, 회장님.”
“정태, 정훈이한테 이야기를 잘 해 줘야 하지 않겠냐고 하더군.”
“무슨 이야기를요?”
“자식들 교육을 좀 더 잘 시켜 보라는 뜻 아니었겠어?”
회의장 안은 금세 부경쇼핑에 대한 반감으로 가득 차 버렸다.
“어디 감히!”
“그걸 가만히 듣고만 계셨습니까, 회장님.”
“이쯤 되면 한번 해 보자는 거 아니야?”
“이건 그냥 넘어가 주면 안 될 거 같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