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gnity of the Chaebol RAW novel - chapter (75)
전날 윤 팀장에게 우선 개발부장의 동의를 이끌어 내라고 일의 순서를 정해 줬는데, 그게 생각보다 빨리 이뤄졌다.
개발부장과 함께 우리 인사부에서 신기한 씨를 어느 정도 조건으로 스카우트해 올지 대략적인 연봉 수준과 근무 조건을 조율한 뒤, 곧바로 신기한 씨에게 문자로 연락을 넣어 봤다.
아마 신기한 씨 역시 윤 팀장을 통해 우리 쪽에서 연락이 갈 거란 소릴 미리 들은 모양이었다.
만남을 가져 보자는 답장은 내가 문자를 보내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바로 들어왔고, 난 그의 시간에 맞추기 위해 서둘러 오전 업무를 끝내 놓고 김 부장에게 외근을 해야 할 일이 생겼다고 보고를 넣었다.
“외근이요?”
“HRO의 첫 정식 업무가 될 거 같아요.”
“……?”
“신상품 개발팀의 윤 팀장이 실력 있는 VMD를 한 명 섭외해 달라고 요청을 했습니다.”
“VMD요? 이번에 시니어즈 쪽 디자인팀 합류하면서 그쪽 VMD 인물들도 함께 들어왔잖아요.”
“KS 인터내셔널은 신상품 개발팀만 여덟 팀이라고 합니다. 우린 이제 고작 시니어즈 포함해서 두 개고요. 필요한 직원도 안 뽑아 줘 놓고, 너희는 왜 KS 인터내셔널처럼 못 하느냐고 하면 안 되는 거잖아요. 필요한 인원 데려다 앉혀 주는 게 우리 인사부 역할이고, 외부 인력 스카우트는 또 앞으로 저희 HRO의 업무가 될 거예요.”
내 말에 김 부장이 기가 막힌다는 식으로 비웃으며 말했다.
“다 좋은데, 과장님. HRO 직원이나 좀 충원하세요. 혼자 계시면서 무슨 또 저희 HRO라고까지 합니까?”
“크흠….”
“이건 제가 부장으로서 지시하는 겁니다.”
어쭈?
많이 컸는데?
“얼른 HRO 직원 충원하세요. 최소한 두 명은 뽑으세요.”
“천천히 할게요. 당장은 크게 필요한 것도 아닌데….”
“그건 과장님 생각이신 거고요. 팀을 새로 안 만드셨음 모를까, 과장님이 요청해서 지금 없던 HRO가 만들어진 거 아닙니까?”
“알았어요, 알겠다고. 충원할게요, 해.”
“말만 하지 말고, 이참에 외부에서 인물을 끌어오든, 타 부서에서 트랜스퍼를 시키든 이번 달 안으로 충원시키세요.”
“에이 참… 왜 그렇게 닦달을 합니까?”
“제가 닦달을 하는 게 아니라, 과장님이 예전에 저한테 그러셨잖아요. 부서를 좀 부서답게 만들어 보자고. 과장님이 언제까지 인사부에 계실 거 같습니까? 아니, 언제까지 계실 계획이세요?”
“…….”
“앞으로 길어 봤자 1년 아닙니까? 최소한 그 1년 안에 HRO가 정확하게 인사부 안에서 어떤 역할을 해 나가야 하는지, 어떤 시스템으로 인사 업무를 봐야 하는지 정도는 그 가이드라인을 과장님이 직접 만드셔야 할 거 아니냐고요.”
많이 큰 거 맞네.
“모든 직원이 다 과장님처럼 일할 수는 없는 겁니다. 조직에는 시스템이라는 게 필요하고, 직원들은 그 시스템에 따라 업무를 처리해 나가야 하는 거죠. 과장님께서 끝까지 HRO를 책임지실 게 아니라면, 대리급 한 명, 주임급 한 명, 이렇게 최소 두 명은 충원해 놓으세요. 그리고 가르치세요. 과장님이 없어도 HRO가 우리 인사부에 꼭 필요한 팀으로 인식이 될 수 있도록, 과장님이 없어도 문제없이 돌아갈 수 있도록.”
“네, 네, 알겠습니다. 일단 지금 오늘은 밖에 나가서 먼저 약속이 잡힌 사람부터 만나고 오겠습니다.”
“분명히 이번 달까지라고 했습니다. 아무리 과장님이라도 제게 그런 주문을 하신 이상, 제가 부서를 부서답게 만들 수 있도록, 부장 지시에 힘을 실어 주는 협조 정도는 해 주셔야 할 겁니다.”
이 친구 이거 차장일 땐 몰랐는데, 부장 달아 줬더니 잔소리가 엄청 많네….
괜히 부장 달아 줬나?
“알겠습니다. 제가 무슨 일이 있어도 이번 달 안으로 충원할게요. 됐죠?”
“외근 나가서 바로 퇴근하시는 겁니까?”
“아뇨, 회사 앞에서 만나기로 했어요.”
“그럼 그냥 회사로 오라고 하시지 그랬습니까?”
“그럼 면접이 되는 거잖아요. 그건 부담스러워서 싫다네요? 우리 입장에서도 확정된 게 아닌데, 확정을 지을 것처럼 회사로 불러서 만나는 건 부담인 거고. 요 앞에 스타벅스에서 편하게 만나기로 했어요.”
* * *
손 과장이 외근을 나간 직후였다.
자신이 생각을 해 봐도 대견하다는 식으로 목 근육을 이리저리 풀어 가며 김원호 부장이 인사부 직원들에게 물었다.
“어때? 나 방금 손 과장 상대로 좀 괜찮았지?”
인사부 직원들은 김 부장의 장난에 가볍게 웃음을 흘리며 잠시간의 여유를 찾기 시작했다.
“나도 하면 하는 사람이라고. 나라고 뭐 강강약약 못 할 거 같아? 나도 마음만 먹으면 강자한테 강하고 약자한테… 도 강한 게 낫겠지? 암튼 할 수 있는 사람이다 이거야.”
정현수 과장은 김원호 부장이 이끌고 있는 현 인사부 분위기에 무척 만족하고 있었다.
고 부장이 있었을 땐, 무척 고압적이었던 인사부 분위기가 김 부장 체제로 들어서면서 상당히 부드러워지고 있었다.
물론 그렇게 변화될 수 있었던 결정적인 이유엔 손 과장이 중심을 잡고 있어서였겠지만, 고 부장이 있었을 당시와 비교를 해 더 이상은 서로가 힘든 팀 회식 앞에 부담을 느낄 필요도 없고, 업무 스트레스도 상당히 줄어들고 있었다.
“뭐지? 방금 내가 본 건? 정 과장 너, 방금 비웃었지?”
김원호 부장이 툭 하고 정현수 과장 어깨에 약한 잽을 날리며 장난을 시도했다.
“보셨어요? 몰래 비웃는다는 게 들켜 버렸네.”
“어쭈? 꽤 솔직한데? 솔직했으니까 한 번 봐준다. 그래, 우리도 지금부터 다 같이 강강약약 하자고. 인생 뭐 있어? 우리가 뭐 세상을 가질 수 있는 사람도 아니고, 다들 먹고살자고 모여 있는 사람들인데, 앞으로는 너희들도 다 강강약약 해.”
“부장님 눈엔 손 과장님이 강강약약으로 보이세요?”
“손 과장은 누가 봐도 강강약약 아냐?”
“글쎄요? 제 생각은 좀 다른데요? 오히려 손 과장님이야말로 전형적인 강약약강 아닌가요?”
정현수 과장의 말에 인사부장뿐 아니라 그 말을 들은 직원들 모두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들을 쳐다보며 정 과장이 싱긋이 미소를 지었다.
“이 회사에 손 과장님보다 강한 사람이 있나요?”
“…….”
“손 과장님보다 직책이 높은 사람들은 많지만, 사람 자체만 놓고 보면 손 과장님보다 강한 사람은 없는 거 아닌가요?”
“그게 또 그렇게 되나?”
“그러니까 너무 손 과장님 앞에서 강강약약 하지 마시라고요. 크크크….”
“오, 씨… 듣고 보니까 섬뜩한데? 나 방금 잔소리 너무 길었지?”
“조금요?”
“안 말리고 뭐 했어?”
그렇게 인사부 안에서 김 부장과 정 과장이 농담을 주고받고 있을 때였다.
개발부장이 급하게 인사부 사무실 안으로 들어왔다.
“어, 부장님? 어쩐 일이세요?”
“손 과장님 어디 계셔?”
다급해하는 개발부장의 모습에 김 부장은 의아한 표정으로 그의 곁으로 다가갔다.
“방금 외부 VMD 전문가 스카우트 건으로 외근 나갔어요?”
“나갔어?”
“네. 그런데 왜 그러세요? 무슨 일 있으세요?”
“금방 나갔다고 했지?”
“네.”
“그럼 김 부장이 지금 전화 좀 드려.”
“왜요? 무슨 일인데요?”
인사부 직원들 모두가 개발부장을 쳐다보기 시작했다.
“내가 KS 인터내셔널이랑 한일 쪽에 아는 사람들한테 그 사람에 대해서 좀 물어봤어.”
“……?”
“그래도 VMD 팀장급으로 스카우트를 하는 거잖아. 윤 팀장 요청 건이라서 큰 하자는 없는 사람이겠거니 하며 믿고 신경을 안 쓰고 있었는데, 방금 KS 인터내셔널 쪽이랑 한일에서 그 사람하고 같이 일해 봤던 사람들 이야기를 들어보니까, 이건 좀 아닌 거 같아.”
“왜요?”
“돌아이야.”
“돌아이요?”
“그래, 그것도 완전 상돌아이. 지금 손 과장님이 연봉 6,500 맞춰서 만나러 나갔어. 안 돼. 연봉이 중요한 게 아니라 받으면 골치 아플 거 같아. 그러니까 김 부장이 전화 걸어서 일단 우리 쪽에서 잡은 약속이니까 만나는 보되, 구체적인 연봉 금액까지는 제시하지 않는 게 좋을 거 같다고 말을 해.”
“뭐 얼마나 돌아이길래 그러세요? 개발 쪽 팀장급 연봉은 6,500이 기본 테이블이잖아요. 많이 잡고 나간 것도 아니고, 업계 사람이라면 우리 재경모직 연봉 테이블 정도는 다 알고 있을 건데, 그걸 제시하고 안 하고에 따라 큰 차이가 있겠어요?”
개발부장은 자신이 너무 성급하게 손 과장에게 스카우트 요청을 넣었다고 스스로를 원망하기 시작했다.
그런 개발부장에게 김 부장이 말했다.
“어차피 부서장 면접은 봐야 하잖아요. 직접 만나 보시고, 다른 사람 통해 들은 것처럼 문제가 있겠다 싶으면 부장님 선에서 자르시면 되죠.”
“그야 그렇지. 누가 그걸 몰라서 그래?”
“그럼 뭐가 문제에요?”
“손 과장님이 나한테 확인을 받아 갔단 말이야.”
“무슨 확인이요?”
“지금 이 건이 HRO에서 손 과장님이 맡은 첫 공식 업무라고.”
“…….”
“무슨 일이 있어도 스카우트 성사시켜 줄 테니까, 개발부 안에서 귀하게 써 달라고 말이야.”
“헐….”
“그래도 금방 출발하셨으면 아직 안 만났을 거 아냐. 만나기 전에 전화 드려서 내가 말한 내용 알려드려.”
“…네, 근데 어쩌면 벌써 만났을 수도 있어요.”
“뭐? 금방 외근 나갔다며?”
“회사 앞 커피 전문점에서 만나는 것도 외근은 외근이죠.”
“뭐?”
“첫 만남에 면접처럼 회사에서 만나는 건 서로 부담이라, 회사 앞에 있는 스타벅스에서 만나기로 했다고 하던데요?”
* * *
솔직히 저도 벗고 싶습니다
나는 신기한이라는 인물을 이렇게 평가하고 싶다.
자기만의 세계관이 너무나 확실해서 그 세상 안에 있는 모든 것을 자기가 직접 통제를 해야만 하는 사람.
그렇기 때문에 자기만의 세상을 다른 누군가로부터 침해받고 싶지 않아 하고, 침해를 받게 되면 그걸 못 견디는 사람.
바꿔 말해 다른 사람이 살아가는 세상을 무례하게 침범할 생각이 전혀 없는 사람.
여기에선 사회성이 있다, 없다는 걸 논할 가치가 없어 보였다.
누군가가 자신의 세상을 침범하지 않는 이상, 신기한은 자기 세상 안에서만큼은 유쾌한 사회성을 가지고 있는 게 분명했다.
세상의 기준이 만들어 놓은 사회성이라는 범주 안에서는 충분히 융통성이 없고, 고집불통처럼 보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
하지만 자신의 용납이 가능한 범주 안에서는 오히려 자신이 가진 사회성을 최대한 증명해 보이고 싶어 하는 모습도 종종 보였다.
약속 시간보다 10분 먼저 약속 장소에 도착을 했다.
이건 내가 가진 나만의 세계관이고, 또 나만의 규칙이다.
그런데 신기한은 나보다 먼저 약속 장소에 나와 있었다.
그것도 그 많은 소파 테이블을 다 놔두고, 커피 전문점 정중앙에 있는 공용 테이블, 불편한 스툴 의자에 앉아서 날 기다리고 있었다.
왜 보통의 스타벅스 매장을 보면, 복층이 아닌 단층으로 꽤 규모를 갖춰 놓고 있는 매장의 경우, 매장 정중앙에 아주 널따란 공용 테이블이 떡하니 자리 잡고 있지 않나.
노트북이나 태블릿 PC 같은 걸 사용하는 고객들을 위해 공용 콘센트 같은 것도 테이블에 부착되어 있는 테이블.
그 테이블에 앉아 있는 거였다.
당연히 나는 첫 만남에서부터 일반적인 사람은 아니겠다… 라는 느낌을 바로 받기 시작했다.
“신기한 팀장님 맞으시죠?”
내가 먼저 아는 척을 하자,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 함께 인사를 건네는 그의 모습에 우선 나이보다 상당히 젊다는 느낌을 크게 받았다.
마흔둘인데 입고 나온 복장이나 헤어스타일, 전반적인 느낌 자체가 삼십 대 초중반 정도로밖에 안 보였다.
“손정훈 과장님 되세요?”
“네, 재경모직 인사부 손정훈 과장입니다.”
검은색 후드 티를 입고 있었다.
초록빛이 감도는 굵은 뿔테 안경을 끼고 있었고.
VMD라는, 어쩌면 현장 업무로 분류를 해 줘야 하는 일을 하고 있는 사람이라 그가 하고 나온 복장에 크게 신경이 쓰였던 건 아니었다.
다만 왜 하필이면 이런 불편한 테이블에 앉아서 날 기다리고 있었던 건지, 스카우트 제안이라는 자리의 목적을 알고 나왔을 텐데, 다른 사람들과의 합석이 가능한 이 테이블을 선택한 이유가 궁금해졌다.
“혹시 이 자리가 편하신가요?”
“아뇨.”
“여기 앉아 계시길래, 혹시라도 개방된 공간을 좋아하시는가 싶어 물어본 겁니다.”
“각판이라고 하는 원목이거든요, 이 원목이.”
“네?”
갑자기 테이블을 매만지며 이상한 소릴 해 대기 시작했다.
“주로 가구보다는 실내 인테리어를 할 때 바닥 자재로 많이 쓰이는 원목이에요. 근데 이걸 가지고 테이블을 만들어 놔서, 좀 신기해서 앉아 있어 봤어요. 괜찮네요. 매장 디스플레이 원판 잡을 때 앞으로는 이걸로 한번 만들어 봐야겠어요. 이게 원목인데도 단가가 괜찮거든요. 구하기도 쉽고. 바닥 자재로 사용될 만큼 습기에도 강해서 잘 뒤틀리지도 않아요.”
“제가 알기로 이 커피 전문점 브랜드 매장에선 다 이런 테이블을 쓰는 걸로 알고 있는데요?”
“아, 그래요?”
신기한은 정말 몰랐다는 표정을 지으며 입술을 동그랗게 말았다.
“오… 그렇구나. 제가 이 브랜드 커피는 누가 사다 주면 맛이나 볼까, 개인적으로는 선호를 안 하는 편이거든요.”
이름이 ‘신기한’이 아니라 ‘이상한’이었어야 된다.
“그럼 다른 데로 옮기실까요?”
“아뇨, 아뇨. 그런 뜻으로 드린 말이 아니라… 제가 대학을 이탈리아에서 나왔습니다. 이탈리아에서 미술을 전공했거든요.”
“네, 해당 내용은 제가 미리 확인을 했습니다.”
“커피를 거기에서 처음 배웠거든요. 그래서 그런 건지, 여기 커피가 저랑은 잘 안 맞더라고요.”
내가 물어본 건 아니지만, 이 정도 자기 취향은 충분히 어필을 할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 부분에 대해선 더 이상 크게 신경을 안 쓰기로 하고, 진지한 대화를 나눌 수 있도록 다른 테이블 자리를 제안해 봤다.
“그럼 스카우트 조건 이야기도 나눠야 되니까, 자리를 안쪽으로 옮기는 건 어떨까요?”
“네, 편하신 대로 하세요. 그 전에 커피부터 주문을 해서 가시죠?”
“네, 뭐 드시겠습니까? 제가 주문해서 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