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gnity of the Chaebol RAW novel - chapter (90)
“나의!”
“잘!”
“잘나가는!”
“해!”
“한 해를 위하여!”
“위하여!”
* * *
겨울이 물러가고 있었다.
SS컬렉션을 성공적으로 시장에 내어놓은 시니어즈.
그렇게 쉽게 섞이기 힘들 것처럼 서로의 눈치를 보며 신경전 아닌 신경전을 벌이던 두 집단이 어느새 하나로 흡수가 되며 어느 정도 자리가 잡혀 가고 있었다.
전략기획팀의 강인성 과장과 함께 점심 식사를 하며 채서린에 관한 내용을 조심히 꺼냈다.
“연예인 채서린 알아요?”
“알죠.”
“그럼 혹시 작년에 터졌던 스캔들 상대가 저라는 것도 알아요?”
“…네.”
“다 아네.”
“다는 아니고, 저는… 어쩌다 보니 알게 됐습니다.”
“강 과장이 안다는 말은 남 사장, 회장님도 알고 있단 뜻이겠죠?”
“아마 그럴 겁니다.”
“차라리 잘됐네.”
“네?”
본론을 꺼냈다.
“스캔들이 터진 지 꽤 됐는데, 아직 티비에서 채서린의 모습이 나오지를 않네요.”
“…….”
“저한테는 중요한 내용입니다. 제가 그 친구한테 빚이 좀 있거든요.”
“빚이요?”
“그 스캔들도 따지고 보면 저 때문에 터진 스캔들이고. 좀 알아봐 주실 수 있겠어요?”
“어떻게 알아봐 드리면 되겠습니까?”
“앞으로 활동 계획은 있는지, 만약 없다면 스캔들 때문에 불러 주는 곳이 없어서 활동을 못 하고 있는 건지… 그런 내용을요.”
“…….”
“제가 빚지고는 못 사는 스타일이라서 그래요. 그래서 그러는 거니까 좀 알아봐 주세요.”
“네.”
“신경이 쓰여서 그래요.”
* * *
숨 좀 쉬어라
강인성 과장이 조심스레 내 눈치를 살폈다.
강 과장을 가깝게 곁에 둔 이후, 이렇게까지 노골적으로 내 눈치를 살피는 건 처음 보는 일이었다.
“알아보는 건 어렵지 않을 거 같습니다.”
“부탁 좀 드릴게요.”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과장님이 직접 물어보기 곤란한 상황이니까 절 통해 확인을 하시려는 것도 알겠고요.”
“그런데요?”
“하지만 이런 내용은 조금 불편하시더라도 본인한테 직접 물어보는 게 좋지 않을까요?”
앞에 깔아 놓은 전제가 너무 튼튼했다.
내가 직접 물어보기 곤란한 상황이라는 걸 눈치로 긁고 있다는 소리.
그럼에도 직접 물어보길 권한다?
“연락 안 한 지 꽤 됐습니다. 그리고 이런 내용으로 다시 연락을 주고받는 사이가 되어서 그 친구한테 좋을 게 없을 거 같기도 하고요.”
“…그렇군요.”
“그 친구는 그 친구 나름대로 우리 사이의 계산이 다 끝났다고 생각을 하는 거 같아요. 그런데 난 그런 게 아니거든요. 나란 사람 때문에 한 사람이 십수 년에 걸쳐 힘들게 쌓아 올린 공든 탑이 한순간에 무너지는 거 같아서….”
이런 감정을 뭐라고 표현을 해야 하는 걸까?
“그걸 보는 게 괜히 좀 불편하네요. 꼭 누군가가 그게 전부인 아이 손에서 사탕을 빼앗아 가는 걸 바로 옆에서 지켜보는 기분이랄까? 그 아이는 제가 길을 잃었을 때, 저한테 길을 알려 준 아이였어요.”
“길이요?”
“길을 알려 주기 위해 잠시 멈춰 섰고, 그사이에 누군가가 그 아이의 손에서 사탕을 빼앗아 간… 그런 상황이에요. 남이 만든 공든 탑을 무너뜨리고, 빼앗고… 그런 걸 안 해 본 건 아닌데, 누구보다 잘하는 사람인데, 내가… 나에게 끝까지 자기 의리를 보여 준 사람을 상대로 그랬던 적은 아직 한 번도 없거든요.”
“…….”
“딱 그 정도가 우리 사이에 있었던 관계예요. 괜한 오해는 하지 마시라고. 그리고 난 지금 강 과장님께 강 과장님에 대한 나의 믿음을 보여 주고 있는 중이고. 내가 어디 가서 이런 이야기를 하겠어요?”
“알겠습니다. 최대한 빨리 알아보겠습니다.”
강 과장은 업무 처리 능력이 꽤 쓸 만하다고 느낀 건 바로 다음 날이었다.
하루 만에 채서린과 그녀의 소속사 상황을 간단하게 정리해서 날 찾아왔다.
“해당 스캔들이 터지고 곧바로 CF 광고 모델로 있던 업체 측 여덟 군데에 발이 묶였다고 합니다.”
“발이 묶였다는 게 정확하게 어떤 개념이에요?”
“총 40억 상당의 손해 배상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 이슈가 두 달 정도에 걸쳐 있었고, 이야기 중이었거나, 확정됐던 영화, 드라마들도 하나같이 엎어지거나 캐스팅이 바뀌었습니다.”
“재기가 힘들 정도로 많이 심각한 거예요?”
잠시 뜸을 들이다 강 과장이 대답했다.
“이건 제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말해 보세요.”
“처음 해당 스캔들이 터졌을 때, 채서린 측의 대응이 미흡했던 걸로 보입니다.”
“어떻게요?”
“스캔들 자체에 팬들이 배신감을 크게 느끼지는 않았던 거 같습니다. 채서린도 이젠 나이가 있잖아요. 아이돌 걸 그룹 활동을 하던 시기도 아니고. 거기에 몇 년 전 있었던 부모 빚투 이슈의 진실이 밝혀지면서 한때 등을 돌렸던 팬들은 채서린에게 연예인이라는 환상보다는 인간적인 부분에 더 큰 매력을 느끼기 시작했던 거 같습니다.”
“그런데 이번엔 아니란 말이에요?”
“빚투 이슈가 터졌을 때처럼 빠르게 해당 스캔들을 인정하거나, 아님 변명을 해 주길 팬들은 기대했던 거 같습니다. 그런데 돌연 잠적을 했죠. 그런 태도를 팬들은 무책임하다고 느꼈던 거 같습니다. 뒷수습은 소속사 대표에게 일임을 하고. 그렇게 아무런 해명도 없이 시간을 끌다 보니 스캔들 상대가 재벌 3세라는 내용과 합쳐져 이미지를 상당히 갉아먹은 거 같습니다.”
한숨이 나왔다.
“소속사 측 상황은요?”
“좋지 않습니다. 다행히 채서린과의 계약 관계는 계속 유지를 할 거란 입장을 보이고 있는데, 해당 스캔들로 엎어진 드라마, 영화 쪽에서 채서린 캐스팅에 끼워 넣기로 함께 출연을 확정 지은 서브 배우들 역시 자동 하차를 하게 됐다고 합니다. 그 부분이 아무래도 채서린의 상황을 더 악화시키고 있는 거 같기도 하고요.”
“채서린의 상황이 악화되고 있다고요?”
“현재 우울증이 심해지면서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는 중이라고 합니다. 해당 영상들에 함께 출연이 확정됐던 소속사 동료 배우들에 대한 미안함, 책임감이라고 할 수도 있겠고요. 암튼 그런 모양입니다.”
해당 스캔들에서 자신의 모습은 모두 노출을 시키면서 기자와 합의하에 나의 얼굴과 차량 번호는 모자이크를 시킨 채서린의 성격을 고려해 볼 때, 충분히 소속사 동료 배우들에 대한 미안함을 필요 이상으로 크게 느끼고 있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생각보다 여리고, 곰 같은 구석이 많은 친구였구나….
“CF로 손해 배상이 일어난 부분에 대해선 큰 대미지가 없었다고 봐도 될까요?”
“물론 있었겠죠. 하지만 그 부분은 스캔들이 터지는 순간 각오를 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스캔들 때문에 편성까지 다 잡힌 상태에서 엎어진 드라마가 하나 있는데, 거기에 대한 책임감을 못 견뎌 하고 있다고 하네요.”
“어떤 드라마인데요?”
“아이돌 활동만 하다가 배우로 첫 이미지 변신을 할 수 있게 도와줬던 작품이 하나 있었는데, 그 작품의 작가와 연출이 애초에 채서린을 주연으로 확정을 해 놓고 작품을 함께 준비했었다고 합니다.”
“그 작품도 엎어졌다는 거네요?”
“투자사 측에선 배우 캐스팅만 다시 해서 편성에 맞게 제작에 들어가자고 했는데, 그게 작가와 연출 입장에선 쉽지 않았던 거 같습니다. 그 스캔들 하나로 백 명에 가까운 배우, 스태프들의 스케줄이 모두 꼬여 버린 게 되다 보니, 거기에서 감당해야 할 스트레스가 엄청났겠죠.”
“혹시 그 투자사가… 어딥니까?”
“미래기획입니다.”
이상하게 느낌이 그럴 거 같았다.
“제작사 쪽에선 다른 투자사를 알아보거나 할 수 없는 상황이었던 거겠죠?”
“작가와 연출이 주연으로 채서린을 고집하는 이상 힘들었을 거라고 보입니다.”
“일단 알겠습니다. 고마워요, 알아봐 줘서.”
* * *
모처럼 회장 시절이 그립네.
이만한 일로 고민이라는 걸 해야 하니 말이다.
강 과장을 시켜 시니어즈의 광고 모델로 채서린을 추천해 보란 지시를 할까 잠시 생각을 해 보다 이내 고개를 내저었다.
재경모직 안에 얼마나 많은 직원들이 현재 시니어즈에 진심인가.
그 진심을 잠시 나의 마음을 가볍게 만들겠다고 함부로 이용을 해서야 될 일인가….
거기다 찌라시가 이미 다 돌아서 강 과장까지 채서린의 스캔들 상대가 나라는 걸 알고 있지 않은가.
누군가를 설득하고, 강하게 밀어붙인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다.
오히려 역효과만 날 뿐이고, 채서린을 시니어즈의 모델로 발탁을 하면 이젠 한물간 그 이슈가 다시 수면 위로 올라올지도 모를 일.
결국은 하늘이에게 부탁을 해 보는 수밖에 없나?
해당 드라마의 작가와 연출도 채서린을 쉽게 포기하지 못하고 있다지 않나.
요즘은 드라마 한 편 만드는 데, 돈이 얼마나 들려나?
그냥 내가 적당한 투자사에 접촉을 해 간접 투자를 해 줘 버려?
현재 살고 있는 집 팔고, 차 팔고 하면….
귀찮구나.
그렇게까지 에너지를 쏟아부어야 할 만한 일은 솔직히 아니지.
그런데도 마음에 걸린다.
나 역시 채서린과의 관계는 이쯤에서 정리를 하는 게 맞는다고 생각한다.
엄밀히 말하면 정리를 하고 자시고 할 관계도 아니지.
그런데도 이렇게까지 신경이 쓰이고 마음에 걸린다는 말은 어떻게든 털고 가야 한다는 뜻.
결국 난 혹시나 하는 마음에, 하늘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 역시 하늘이에겐 일이기에, 안 된다고 하면 어쩔 수 없는 것이고….
―어쩐 일이야?
“혹시 그때 갔던 그 루프톱 같은 스타일 말고 추천해 줄 다른 힙한 곳은 없어?”
―심심해? 왜 전화까지 걸어서 안 하던 짓이야?
“마땅히 없으면 거기도 괜찮을 거 같고. 부탁할 게 있어.”
―부탁?
“어?”
―비즈니스 아님, 개인적?
“내가 너한테 비즈니스적으로 부탁할 게 뭐가 있겠어?”
―그럼 다행이고. 됐어. 나 바빠.
“너 뭐 아직도 내가 그날 와인 비싼 거 시켰다고 화나 있냐?”
―그닥? 손정훈이가 손정훈이 한 건데, 내가 그걸 아직까지 마음에 담아 두고 있을 이유가 있을까? 잠시 방심한 내가 멍청한 거지.
“네 할아버지는 아시냐? 너 이렇게 인정머리 없는 녀석이란 거.
―그래서 믿어 주시는 거지. 그러니 난 더 쓸데없는 곳엔 인정머리가 없어야 하는 거고.
상대가 똥인지 된장인지 구분조차 못 하는 녀석을 퍽이나 태산이가 믿고 있겠다.
야, 이놈아.
재경모직에 있는 네 할아버지 지분을 넘겨받은 이상 넌 앞으로 나한테 잘 보여야 해.
내가 그 지분을 앞으로 얼마까지 만들어 줄 줄 알고….
“그럼 비즈니스적인 부탁이라고 하자.”
―오빠 말대로 오빠가 나한테 비즈니스적으로 부탁할 일이 뭐가 있어?
“왜 없냐? 넘치고 흐르지.”
―글쎄? 난 아무리 생각을 해 봐도 없을 거 같은데? 오빠야 내가 들고 있는 지분 가지고 부탁할 게 있을 수도 있겠다 싶은데, 난 딱히 오빠가 무슨 부탁을 하든 그 부탁을 들어줘야 할 이유를 못 찾겠는데?
“너 친구 없지?”
―뭐?
“딱 보니까 그래. 뭐가 그렇게 계산적이야? 계산기 하나 사 줘? 암산으로 돌리면 머리 안 아파? 야, 인마. 하늘아. 안 그래도 주말 중 하루는 네 할아버지가 장기 두러 오라고 나 부르실 거 아니냐.”
―그게 뭐 어쨌다고?
“네 할아버지는 어떻게든 날 찾아오게끔 이유를 만드시는데, 넌 계산기만 돌릴 줄 알지, 왜 계산이 필요한지에 대해선 전혀 생각을 못 하는 거 같다?”
―방금 그거 잘난 척이야?
“안 하고 싶은데, 그걸 네가 하게 만드네. 같이 저녁 먹자. 그때 내 옷에 와인 쏟은 친구 일 잘하고 있는지 확인도 할 겸.”
잠시 후 하늘이가 고민을 끝낸 듯 다른 제안을 했다.
―거긴 됐고. 오늘은 오빠가 쏘는 거지?
“누가 쏘든.”
―확실하게 해.
“당연히 내가 사야지. 내가 보자고 하는 건데.”
―그럼 오빠가 아는 힙한 곳에서 보자. 주소 찍어서 보내.
통화를 끊고 주소를 찍어서 보냈더니, 곧바로 하늘이에게서 카톡이 날아왔다.
―장난해???
육개장에 소주 한잔하면서 이야기를 나눠 볼까 했는데, 태화장은 영 하늘이 스타일이 아닌 모양이네.
―육개장 별로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