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sappeared Genius Child Actor Is Back RAW novel - Chapter (110)
사라진 아역 배우가 돌아왔다 영화 어떠셨어요?(110/287)
영화 어떠셨어요?
상영관의 조명이 서서히 꺼지고, 웅성거리던 음성이 잦아든다.
제작사와 배급사의 리더 필름이 짤막하게 지나가고 검은 화면에 쿵, 쿵 오인수가 드럼을 예열하는 게 마치 심장 박동처럼 일정하게 울린다.
이윽고 보이는 건 무대 위에서 안절부절못하는 민준영과 오인수다. 화면에는 조연 배우의 자막이 뜬다.
(유태혁 어디래?)
(몰라. 전화 안 받아.)
수군거리는 두 사람의 옆에 멋들어진 타이포그래피가 뜬다. 백도경, 남찬희.
그리고 쾅! 문이 거칠게 열리면서 유태혁이 등장한다. 그리고 뭐라 대화할 새도 없이 노래가 시작된다.
‘이야, 노래 진짜 잘 뽑았어.’
언론 시사회도 다녀왔지만, 윤제이와 이영창이 붙어있는 모습을 본 이상 그냥 포기할 기자 강창훈이 아니었다. 어떻게 티켓을 얻어내 구석진 자리에 앉았다.
‘음향이 전보다 좋네. 상영관이 달라서 그런가?’
시사회 상영관도 국내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드는 규모가 큰 상영관이고, 한 달 전에 음향 관련으로 대대적인 리모델링을 했었다.
사실 이미 리모델링을 한 지 얼마 안 됐던 영화관이다. 근데 음향 관련으로 또 리모델링을 한다길래 의아했던 게 기억났다.
‘설마 이 영화를 위해 리모델링을······?’
그건 너무 갔나. 강창훈 기자는 두 줄 아래 앉아있는 조유경의 뒷모습을 흘끔 쳐다보았다.
사실 그의 추측이 맞았다. 조유경은 더 좋은 환경에서 윤제이의 영화 복귀작을 감상하고 싶었다.
‘진짜 재능 많다니까.’
연주도 직접 했다는 걸 알지만, 그 사정을 모르는 사람도 있을 거다.
하지만 수준급의 보컬 실력만으로도 윤제이의 재능이 범상치 않다는 것을 알 거다. 조유경은 흐뭇한 표정으로 스크린에 집중했다.
(꺄아아아악!)
무대 위 유태혁을 선망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정이현의 옆으로 타이포그래피가 뜬다. 강하준.
그리고 공연을 마치고 신경질적으로 돌아서는 유태혁의 옆에 윤제이의 이름이 뜬다.
오프닝 시퀀스가 끝나고 장소는 공연장 건물 뒷골목으로 옮겨진다. 유태혁이 오인수를 몰아붙이고, 민준영이 그만둔다 통보한다.
(네 부모님은 너 이렇게 살아도 뭐라 안 하시냐? 갑자기 밴드를 하겠다는데 말리지도 않고······.)
(여기서 우리 엄마 아빠 얘기가 왜 나와?)
‘음?’
몇몇 사람들이 유태혁의 저 대사에서 미묘함을 눈치챘다. 왜 저 대사만 튀게 느껴질까? 무슨 이유가 따로 있을까? 의문은 후반부에 밝혀지는 유태혁의 과거로 해소되었다.
(쟤 요새 왜 또 지랄이냐?)
(그냥 유태혁이 정이현 질투하는 거 아냐?)
(쟤가 열폭을?)
각 캐릭터의 관계성도 볼만했다. 막무가내인 유태혁, 천재적인 재능이지만 그래서 뭔가 어려운 정이현.
민준영은 두 사람의 미묘한 갈등을 중간에서 중재하면서 환장하고, 오인수는 태평하게 과자나 까먹으면서도 툭툭 핵심적인 말을 내뱉는다.
(신동인 아들을 위한 기러기 아빠의 눈물 나는 헌신. 하지만 아들은 점점 기량이 떨어지고, 생활고에 시달린 아빠는 자살.)
이윽고 유태혁의 과거 영상이 짤막하게 지나간다. 보는 내내 너무 막 나가서 한 대 쥐어박고 싶던 유태혁의 가슴 아픈 과거였다.
(알 권리고 지랄이고, 여기까지 따라와서 뭐 하자는 거야?)
(맞아. 상처 후벼파는 거야? 안 꺼져?!)
그리고 그걸 뒤늦게 알게 된 민준영과 오인수의 반응, 그리고 마냥 재능 많은 줄 알았던 정이현의 가정사가 밝혀진다.
서로 오해하거나 어긋나 있던 갈등이 풀리고 점점 완벽한 한 팀으로 거듭난다. 이에 관객들도 점점 아지타토에게 애착이 생기게 만든다.
관객 중 몇몇이 신기하게 여긴 건 윤제이의 무게감이었다.
<인터미션>에서 나오는 네 배우는 신인이었다. 여기서 가장 인지도 있는 윤제이도 데뷔한 지 얼마 안 됐다.
감초 조연이나 경력이 많아 관객들의 눈에 익은 배우는 없었다.
하지만 윤제이는 첫 주연임에도 스크린을 휘어잡았다.
욕설을 내뱉는데도 이상하게 천박해 보이지 않고, 정이현을 향해 열등감을 표출하는 자신을 향한 혐오와 고뇌는 쉽게 와닿으면서 현실적이다.
이들이 윤제이의 무게감을 더욱 체감하게 된 건 유태혁이 바이올린을 바라보는 장면이었다.
‘뭐지?’
밴드 음향이 심장을 건드릴 정도로 화려하게 울려지고, 서로 싸우고 질투하고 언론의 질타를 받는 자극적인 전개를 이어가다가 갑자기 찾아온 정적인 장면에 관객의 집중이 풀릴 만도 하다.
하지만 관객들은 이상하게 집중력이 풀리지 않았고 스크린에서 시선을 못 떼고 있었다.
유태혁에게 바이올린이 어떤 의미인지 이미 앞선 장면에서 짐작할 수 있었다.
(······그래.)
대사는 마지막 한마디뿐이다. 눈빛과 숨소리만으로 유태혁이 바이올린을 보낼 준비를 마쳤다고 관객을 설득시켜야 하는 어려운 장면이었다.
하지만 윤제이는 보란 듯이 해냈다. 물론 각 감독의 연출도 한몫했다.
‘이건······.’
이영창이 눈을 크게 떴다. <달동네>에서 이유 없이 사람을 울린 그 연기와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작 중 태혁과 제이의 상황이 묘하게 닮았구나.’
이영창은 윤제이 때문에 이 영화를 보러온 게 맞았다. 하지만 점점 주목하게 된 건 연출적인 부분이다.
윤제이의 과거와 비슷한 유태혁의 서사, 과거를 상징하는 바이올린. 유태혁이 음악적으로 갈등할 때 화면에 걸리는 진녹색의 바이올린 케이스.
‘그리고 눈높이.’
처음 정이현이 유태혁을 마주했을 때는 작은 인디 공연장이었다. 정이현은 무대 위 유태혁을 바라본다.
그가 아지타토에 합류하고, 악기를 익혀갈 때 정이현은 늘 유태혁을 올려다보고, 유태혁은 그를 내려다봤었다.
단순 키 차이 때문이 아니라 의자에 앉거나 서있는 행동과 동선의 변화로 보이게끔 만든다.
(정이현 쟤 음악 처음 하는 거 맞아?)
(대박인데?)
그러나 정이현이 점점 음악에 자신감이 붙고, 유태혁이 분노의 드럼을 치며 정이현에 관한 열등감을 드러낸 이후부터는 눈높이가 역전된다.
정이현이 찬란한 재능을 드러낼 때는 그 눈높이의 차이가 심해진다.
(······나라고 이러고 싶어서 이렇게 사는 줄 알아?)
(그래서.)
(난 형이 부러웠어.)
그리고 정이현의 집에 찾아가 자신의 열등감을 인정하고 정이현의 진심을 듣는 장면에서 앉아있던 유태혁은 서서히 일어난다.
윤제이는 키가 190cm고, 강하준은 178cm다. 그냥 서 있으면 눈높이가 맞지 않는다. 하지만 유태혁이 벽에 몸을 기대고 있어서 눈높이는 똑같아진다.
영화 내내 한쪽이 올려다보고 내려다보지 않는, 동등한 일직선의 눈높이다.
‘드디어 눈높이가 같아졌군.’
이윽고 유태혁은 창문 밖으로 빠져나가고 세 사람은 밖에서 정이현이 나오기를 밑에서 기다리고 있다.
이건 마지막 공연 장면에서 누군가 흔들었던 깃발 ‘추락도 락이다’라는 문구와 이어진다.
정이현과의 눈높이 차이가 바뀌긴 하지만, 유태혁은 늘 위에 있던 사람이다. 악마 같은 재능으로 아지타토와 인디 씬을 지배하던 사람이고, 늘 무대 위에 서 있던 사람이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이현이 창문 닫았는데?)
(야, 이대로 그냥 있어도 돼?)
(기다려 봐.)
영화 초반부 정이현이 아지타토의 무대를 보는 것과 구도가 비슷했다. 차이가 있다면 두 사람의 위치가 바뀐 것뿐.
유태혁은 오인수와 민준영과 함께 기꺼이 아래에서 정이현의 하강을, 자유를 기다린다.
(으악 시발!)
(갑자기 뭐야?!)
그리고 정이현은 창문을 깨부수고 땅바닥으로 몸을 던져 이들과 함께한다.
끝에서 갈등을 풀어낸 유태혁과 정이현은 오인수와 민준영과 함께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걷는다.
그리고 바이올린이라는 과거를 떨쳐내고 드디어 미래에 올라탄다. 누구 하나 빠짐없이 넷이서 함께.
그리고 시원하게 뻗은 길을 유태혁이 마련한 미래, 자동차가 달려간다.
‘출사표를 이렇게 던지다니.’
이영창은 신지원 감독의 첫 작품을 본 적이 있었다. 그때는 별생각 없었는데, 이렇게 자신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녹여내 바이올리니스트가 아닌 감독으로서의 신고식을 할 줄은 몰랐다.
(준비됐냐?)
(오케이.)
그리고 공들여 찍은 마지막 공연 장면, 이건 복잡한 연출이고 연기를 떠나서 음악영화라는 본분을 다한 장면이었다.
공들여 선정한 곡과 템포를 빠르게 하며 연주하는 즉흥 연주까지.
(와아아아아!)
아지타토라는 그룹의 이름처럼 격하고 흥분해서 빠르게. <인터미션>의 화려한 피날레다.
‘와씨······.’
‘싱어롱으로 한 번 더 봐야겠는데?’
윤제이는 문득 뒤를 돌아보았다. 집중을 잃지 않고 스크린 속에 빠져들고 있는 사람들이 보인다. 고개를 살짝 흔들고 발을 까딱거리며 음악을 즐긴다.
그는 이런 반응을 보기 위해 맨 앞에 앉았던 거다.
‘이런 기분이군.’
<어린이> 재개봉 때는 그렇게 와닿지 않았다. 이미 20년이나 넘게 지난 영화였고, 윤제희 시절이 그렇게 달갑지 않았으니까.
예전에는 어려서 못 했는데, 영화를 위해 했던 홍보나 시사회에서 영화를 같이 감상하는 것 등 모든 게 다 처음이었다.
윤제이는 심장이 기분 좋게 두근거리는 게 음악 때문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 때문인지 인지하지 못했다.
“와, 재밌었다.”
“난 진짜 좋았어.”
사실 어제 있었던 언론 시사회에서도 몇몇 기자들이 대박을 예상했다.
잘생기고 개성 넘치는 각 캐릭터의 관계성. 첫 주연임에도 무게감 있게 스크린을 장악한 윤제이의 연기. 장르에 충실하게 귀에 착착 감기는 음악.
“이거 진짜 대중 픽 받을 거 같은데?”
“제 생각도요. 2030이야 말할 것도 없고, 중장년층도 락 즐겨듣던 세대잖아요.”
그리고 정이현이 부모에게 받았던 모진 말과 그가 창문을 깨고 벽을 넘는 모습은 나름의 고민을 간직하고 있는 젊은 세대를 위로하는 의미도 담겨 있었다.
“하아······.”
신지원이 크게 숨을 내뱉었다. 상영관을 울리는 박수가 예의상 하는 박수인지 아니면 정말 영화를 잘 봤다고 나오는 박수인지 아직 헷갈렸다.
청심환의 효력이 다 끝난 신지원은 비틀거리며 일어나서 출구로 향했다.
“재밌었습니다!”
“감독님. 영화 진짜 잘 나왔어요.”
상영관 밖을 나서는 사람들의 격려와 환호에 신지원의 표정이 밝아졌다.
“신 감독님.”
“이, 이영창 감독님.”
신지원은 손을 바지에 문대 땀을 닦았다. 그리고 공손히 이영창의 손을 잡았다.
“영화 잘 봤습니다. 출사표 아주 화려하게 던지셨군요.”
“가, 감사합니다.”
“다음 작품도 기대하겠습니다.”
이영창이라는 거장 감독의 칭찬이다. 게다가 번호까지 주고받아 몸 둘 바를 모르던 신지원은 익숙한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지원아.”
“······선생님.”
신지원은 깜짝 놀라서 옛 스승, 박희선 교수를 쳐다보았다.
“선생님이 왜 여길······.”
“저분한테 초대권을 받았어.”
신지원은 스승의 손끝에 이영창과 대화하는 윤제이를 쳐다보았다.
시사회 티켓을 건네준 건 윤제이지만, 여기까지 온 것은 박 교수의 선택이었다.
“······영화 어떠셨어요?”
박 교수는 우물쭈물하는 신지원을 가만히 쳐다보았다. 그녀는 영화를 자주 보는 사람이 아니기에 연출적 장치를 다 알아볼 눈은 없었다.
[그깟 슬럼프 빠졌다고 바이올린 그만둘 거야?!] [신씨 가문의 자존심에 변방에서 학원이나 운영하겠어?] [뭐? 영화감독을 한다고? 인제 와서 늦바람이라도 든 거냐?]하지만 작 중 정이현이 부모에게 들었던 얘기나 유태혁의 과거가 밝혀지며 인터넷에 조롱받던 얘기는 슬럼프에 빠져 두문불출하던 제자가 들었던 말과 비슷했다.
아마 대사도 그걸 참고해서 썼겠지.
“그동안 고생 많았지?”
“······!”
“영화계에 널 뺏겨서 아쉽지만, 앞으로 네 작품은 꼬박 챙겨볼게. 정말 잘 봤다.”
“가, 감사합니다.”
“다음에 또 봐. 신 감독.”
박 교수가 그의 어깨를 토닥이고는 영화관 밖으로 나갔다. 그녀의 뒷모습을 하염없이 쳐다보던 신지원이 중얼거렸다.
“······감독이라고 하셨어.”
절대 바이올린을 놓지 말아라, 이제 와서 다른 분야로 도전하면 성과가 있겠냐 고집하던 옛 스승한테서 자신의 시작을 인정받았다.
신지원이 소매로 눈가를 훔치고 다른 사람들의 응원과 격려를 받았다.
이영창은 신지원과 박 교수의 모습을 바라보는 윤제이를 유심히 쳐다보았다.
윤제이는 워낙 침착해서 표정 변화가 없지만, 두 사람이 왠지 부러워 보이는 듯한 눈빛이었다.
“제이야.”
“네, 감독님.”
“오늘 저녁 시간 되니?”
이영창의 제안에 윤제이는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