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sappeared Genius Child Actor Is Back RAW novel - Chapter (120)
사라진 아역 배우가 돌아왔다 겉 포장(120/287)
겉 포장
취미라고 하기에는 조금 이상하지만, 한국에 다시 정착한 윤제이는 사람 구경을 자주 했다.
하지만 그가 유명해지고 나서는 그가 만족할 만큼의 사람 구경을 할 수 없었다.
사람들이 자신을 의식하고 평소와 같은 행동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설마 제가 늦은 건 아니죠?”
강필현은 긴 앞머리에 살짝 가려진 윤제이의 눈빛이 인상적이었다. 어제는 날카롭고, 탐색할 것 같은 눈빛이었더라면, 지금은 묵직하다.
‘이야, 좋네.’
어제의 ‘형’이 맹금류 같았다면, 지금의 ‘동생’은 굶주린 늑대 같다.
“일부러 시간을 이렇게 잡았습니다. 어제처럼 밖에서 오는 모습을 보고 싶었거든요.”
“어떤 거 같으세요?”
“글쎄요.”
강예진은 그의 모습이 제법 마음에 들었지만, 일단 평정을 가장했다. 믿을 수 있었던 배우에게 크게 데인 건 아직 잊을 수 없었다.
“제이 씨는 이런 곳 오신 적 있어요?”
“아뇨.”
이번 미팅 장소는 길거리 포차였다. 자유분방한 분위기, 지척에는 도로가 있어서 차가 오가고 느닷없는 연예인의 등장에 핸드폰을 들어 사진을 찍는 사람도 있었다.
“그래요? 부국제 가면 동료 배우들이랑 갈 기회 많은데.”
“아직 불릴 일이 없어서요.”
강필현과 강예진이 아, 하고 짧은소리를 내뱉었다.
워낙 데뷔 때부터 이름을 알려서 그런지 영화 한 5편은 있을 거 같은 경력자로 착각했다. 게다가 올해는 거의 윤제이의 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니까.
윤제이는 두 사람의 반응을 유심히 관찰했다.
“올해는 가보시겠네요.”
“네. 저도 주변에서 얘기만 들어봐서······ 기대됩니다.”
강필현은 지금 윤제이의 모습이 기대 이상이었다. 하지만 어제의 모습과 비교돼서 더 극적으로 보이는 것일 수도 있다.
‘뭘 보고 있는 거지?’
강필현이 윤제이의 시선을 따라가 보았다.
사실 윤제이가 오기 전, 그는 근처 테이블의 남자들에게 눈길이 갔었다. 너무 고성방가를 질러서 그랬다.
하지만 남자들이 너무 무섭게 생겨서 뭐라 할 수는 없었다. 그런데, 남자를 관찰하는 윤제이의 몸짓이 묘했다.
‘설마······?’
윤제이는 부족한 사람 구경을 실시간으로 채우고 있었다.
그는 저런 부류의 사람을 마주칠 일이 거의 없었다. 그래서 흡수할 것은 흡수하고, 버릴 건 버렸다.
남자는 친구들과 건배하고 잔을 털어내고, 테이블을 주먹으로 두드렸다. 근처 사람들이 눈살을 찌푸려도 거침없었다.
그가 생각하는 ‘동생’의 이미지와 얼추 비슷했다. 윤제이는 남자를 따라 한쪽 무릎에 한쪽 발목을 올리고 몸을 비스듬히 하고 팔뚝을 테이블에 올려놓았다.
“술은 좀 하시나요? 강요는 아닙니다.”
“네, 주세요.”
강필현도 그의 변화를 눈치챘다. 그는 시험 삼아 윤제이의 빈 잔에 소주를 채웠다.
윤제이는 그 잔을 한 손으로 받았다. 언뜻 보면 건방져 보이기도 했다.
주변 사람에게 듣기로는 윤제이가 예의 없는 편은 아니라고 했다. 그렇다면, 이것조차 배역을 구축하는 과정일 것이다.
‘내 착각이 아니었던 건가?’
윤제이는 건너 테이블의 양아치 남자를 모방하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악기 연주를 금방 따라 한다고 했었지?’
그때는 터무니없다고 생각했는데······ 그와 윤제이의 시선이 부딪쳤다.
강필현은 숨이 살짝 막히는 듯해서 그의 눈동자를 피했다.
“작품에 관해서 조언 주실 게 있을까요?”
조언은 무슨, 혼자 알아서 다 했는데. 강필현은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묵묵히 윤제이를 보던 강예진이 입을 열었다.
“액세서리가 추가된 거 빼고는 옷은 그대로시네요? 저는 화려한 셔츠를 입고 오실 줄 알았는데······.”
설마, 사람들 눈을 의식한 건가? 그러면 조금 실망인데······ 강예진은 그 말을 애써 삼켰다.
시선을 의식할 만하지, 윤제이는 현시점에서 가장 잘나가는 배우니까. 괜히 이상한 말이라도 돌면 곤란했다.
‘신경이 좀 예민해졌어······.’
강예진이 한숨을 쉬었다.
이해는 해도 조금 아쉬웠다. 사극처럼 따로 의상실이 있는 게 아닌 이상 의상은 보통 배우가 준비한다.
지금 이 자리가 미팅을 가장한 오디션인 만큼 의상도 더 신경 써줄 줄 알았다. 어제의 모습이 좋은 쪽으로 인상적이어서 그랬다.
“아뇨, 그런 건 아닙니다.”
“그럼 뭐죠?”
“차림새가 그 사람의 특징을 보여준다고 하지만, 겉 포장일 뿐입니다.”
계속 작품 활동을 하다가 보면 옅어지겠지만, 현시점에서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은 윤제이는 아직 유태혁의 포장에 쌓여 있다는 점이다.
두 사람만큼은 그의 겉 포장에서 빨리 벗어나 <기억의 끈> 속 쌍둥이로 봐주길 바랐다.
“알맹이를 먼저 봐주셨으면 좋겠어서요.”
그의 의도를 이해한 두 사람이 고개를 끄덕였다. 흠잡을 데 없는 대답이었다.
‘이야, 신기한 사람이야.’
강필현은 윤제이의 모습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여러 대화를 주고받으면서 윤제이의 자잘한 자세와 몸짓이 변했다.
건너 테이블 남자의 깡패 같은 면을 흡수하고 자기 것으로 만들어 아예 새로운 몸짓으로 만들어냈다.
<기억의 끈> 속 ‘동생’처럼 말이다.
강필현은 업무상 중요한 연락이 왔다고 양해를 구하고 핸드폰을 들었다.
(나) 강 작가
(나) 어때보여?
(강강강) 어떻긴
(강강강) 오히려 내가 저사람을 참고해서 대본을 써야할거 같은데
감독이 눈치챈 만큼, 작가도 마찬가지였다. 윤제이는 실시간으로 변화하고 있었다.
이제 그가 꽃무늬 티셔츠를 입었든 아니면 어디서 거적때기를 입고 오든 상관없었다. 사람 그 자체가 배역에 맞춤이 되었으니까.
저렇게 변화하는 사람이니, 촬영장에서 다시 봤을 때는 완벽한 코디를 갖추고 올 것이다.
‘서로 대화를 하고 계시나?’
윤제이는 두 사람이 뭘 하는지 알고 있지만, 모르는 척 길거리에 고개를 돌렸다.
“슬슬 일어날까요?”
“네.”
그렇게 몇 번 대화가 오가고 자리를 파할 때쯤, 그들 테이블에 갑자기 그늘이 졌다.
‘그 양아치 무리잖아?’
강필현은 많이 쫄았지만, 몸을 옆으로 기울여 강예진을 가렸다.
“어? 나 이 사람 알아.”
“우와아! 연예인 행님이시네?”
이 사람들의 목적은 맞은 편에 앉은 윤제이였다.
“와씨, 개 잘생기셨네.”
“자, 형님. 여기 봐주세요. 인별에 올려야지.”
남자들은 윤제이의 어깨에 팔을 걸치고 셀카를 찍으려 했다. 윤제이는 한숨을 쉬고 손으로 제 얼굴을 가렸다.
“제, 제이 씨.”
“두 분, 오늘 즐거웠습니다. 먼저 가세요.”
“아니 이 상황에서 저희가 어떻게 가요.”
괜히 이런 장소로 잡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다른 데 가는데······ 강필현이 제 머리를 쥐어뜯었다.
“괜찮습니다.”
분위기가 점점 험악해져서 두 사람이 멀찍이 떨어졌다. 마침 정승우와 최태양도 인근에서 대기 중이었다.
작가와 감독이 위화감이 들까 봐 떨어져 있으라고 했는데, 아마 지금 상황을 어디서 보고 달려오고 있을 것이다.
“우리 형님, 생각보다 까칠하시네? 팬서비스 좀 해 줘요.”
“많이 취하셨네요. 그냥 가세요.”
윤제이는 살짝 웃으며 말했다. 그는 기분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신선했는데, 키도 덩치도 커서 그런지 살면서 이렇게 시비 걸리는 일이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상대가 술에 취해서 보이는 게 없거나, 연예인이 만만하거나. 아니면 둘 다겠지.
윤제이는 이 상황에서도 남자의 행동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동생’역에 참고할 수 있을까?
“형님, 이분 긴장 좀 하셨나 본데요?”
“아이, 우리가 뭐 시비 걸었나? 어? 친하게 지내면 좋지.”
“여기 번호 좀 찍어주면 안 될까?”
누가 봐도 시비 맞다. 주변 사람들이 어떡하냐고, 경찰 불러야 하는 거 아니냐고 수군댔다.
정작 시비 걸린 당사자는 미동도 없었다. 오히려 시비를 거는 사람들이 점점 말이 없어졌다.
‘무슨 사람 눈빛이······.’
양아치 남자들은 윤제이의 눈을 계속 보고 있자니, 점점 위축되는 느낌을 받았다.
건드리지 말아야 할 사람을 건드렸다는 본능적인 경고가 어디서 울리는 듯했다.
“가시라고.”
윤제이는 쐐기를 박았다. 그 한 마디로 단번에 술에서 깬 남자는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 쳤다.
그러다가 얼굴이 새빨개졌다. 고작 연예인한테 쫄았다는 게 자존심이 상해서였다. 남자가 씩씩대며 다시 걸음을 내디뎠다.
어차피 그는 잃을 게 없었다. 싸구려 포차에서 양아치들과 시비가 붙었다는 기사가 뜨면 오히려 곤란한 건 윤제이니까.
“아니 근데 눈깔이 씨ㅂ······!”
“손 떼세요.”
“무슨 일이십니까?”
마침 정승우와 최태양이 늦지 않게 와 줬다. 근처에서 지켜보던 사람들이 안도의 한숨을 쉬는 게 곳곳에서 보였다.
안 그래도 윤제이한테 쫄았는데 검은 정장을 입은 장정 둘이 가로막으니, 남자들이 돌아섰다.
“에이 씨!”
“조심 좀 하쇼.”
그들은 포차를 나가면서 애꿎은 빈 테이블을 발로 찼다.
‘내가 저 사람을 알았던가?’
윤제이는 그중에서 선두에 있는 남자의 등을 바라보았다. 어딘지 모르게 익숙한 느낌이었다.
“형님, 죄송함다. 더 빨리 왔어야 했는데.”
“아니야. 잘 왔어.”
애초에 정승우와 최태양이 우선해야 할 건 윤제이의 경호가 아니라 윤제이에게서 다른 사람을 보호하는 일이다.
“하아, 어쩐지 느낌이 안 좋더라니. 이러다가 이상한 기사 뜨는 거 아니겠지?”
“주변에 영상 찍는 사람 많았어. 괜찮아.”
그중에서는 강필현과 강예진도 있었다. 윤제이와 눈이 마주친 두 사람이 엄지를 들었다. 증거는 넉넉히 확보했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그 뒤로 강필현과 강예진 그리고 윤제이 세 사람은 몇 번을 더 만나서 같이 밥을 먹고, 대화를 나눴다.
<기억의 끈>은 쌍둥이 형제의 얘기를 담아서 그런지, 세 사람 사이에서 많이 나온 주제는 ‘가족’이었다.
“부모님이, 동생들이 어렵진 않았어요?”
“어려웠죠.”
그 과정에서 윤제이는 자신의 드라마 같은 가정사를 밝혔다.
털어놓기 별로 어려운 건 아니었다. 인터뷰에서도 몇 번 밝힌 적 있었고, 부끄러운 가정사는 아니니까.
“친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세상에 혼자 남겨진 것 같았거든요.”
“외가는요?”
윤제이는 말없이 고개를 저었다. 외가와 친모 사이에서 무슨 사정이 있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장례식에도 얼굴을 비추지 않는 외가는 그도 필요 없다.
“아버지는 그런 저를 방에서 끌어내 주셨죠.”
“정말 멋지신 분이네요.”
두 사람의 반응은 이영창의 반응과 비슷했다.
이영창은 윤제이의 과거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이었다. 요즘은 무슨 일 때문인지 연락이 잘 안 되긴 하지만, 깊은 속을 터놓을 수 있는 사람은 이영창이 유일했다.
“그래서 아버지의 재혼은 저도 기뻤어요.”
어머니를 잃어서 슬퍼했던 아버지를 기억한다. 그래서 아버지의 행복을 바랬다.
그런데 재혼 상대가 두 자녀가 있다는 것을 아니까 기분이 이상했다.
“미국에 있는 동생들에게 친절했던 건 처음에는······ 조금 의도가 불순하긴 했죠.”
약간의 불안감 때문이다. 버림받기 싫어서 노력했다가 정이 든 거다. 그는 외로웠으니까.
“별로 멋있는 얘기는 아니죠?”
“왜요? 난 좋은데. 세상을 꼭 멋있게 살아야 하나요? 그러면 그 쌍둥이는요?”
“도준이랑 도화요? 그 애들은······ 너무 애들이잖아요.”
강예진이 다시 질문했다.
“제이 씨가 만약 쌍둥이였으면 어땠을 거 같아요? 아니면, 갑자기 쌍둥이 형제가 생겼다고 가장한다면?”
“글쎄요······.”
그런 상상은 한 적 없었는데······ 윤제이는 잠시 고민했지만, 대답을 잘하지 못했다.
그냥, 보통의 형제와 별반 다르지 않을까? 쌍둥이 심정은 쌍둥이에게 물어보는 게 낫겠지.
“너랑 도준이가 쌍둥이잖아.”
“차기작 얘기야?”
“응.”
쌍둥이는 이제 윤제이가 구체적으로 얘기하지 않아도 얼추 알아들을 수 있었다.
“너희들은 둘이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은 적이 있어?”
“뭐 어디 드라마나 영화에서 본 것처럼?”
“에이, 그건 쌍둥이 편견이지.”
재잘재잘 떠들던 윤도준과 윤도화는 정말 연결되어 있다는 상상을 한 것인지 표정이 구겨졌다.
“으, 그건 상상만 해도······”
“역겨운데.”
“내가 더 역겹거든?”
윤제이는 두 사람이 투닥거리는 것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윤도준은 잠시 삐졌었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 되돌아왔다. 단순한 건지, 아니면 담아 두고 있는지는 몰랐다.
[그럼 그 쌍둥이는요?]그리고 한 가지 깨달았다.
‘아, 그랬나.’
겉 포장에서 벗어나지 못한 사람은 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