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sappeared Genius Child Actor Is Back RAW novel - Chapter (125)
사라진 아역 배우가 돌아왔다 영구동토 (3)(125/287)
영구동토 (3)
채설환이 부끄럽다는 듯 흘러내린 제 안경을 슬쩍 올렸다.
어리숙하고, 전형적인 너드남이다. 물론, 미디어 식 너드남이다. 배우 본체인 권민재는 미남 배우에 속했으니.
“저는 허수아비 소장일 뿐이라서······ 의원님께서 도와주신다면 가능합니다.”
“좋습니다. 내가 책임지고 저 친구 남극 파견팀에 꽂겠습니다. 따로 보호할 사람도 물색해보죠.”
그렇게 국 의원과 배 박사가 손을 맞잡았다.
문창민과 고광일, <악의 동산>에서 대척점에 섰던 두 사람은 <영구동토>에서 동맹 관계가 되었다.
그리고 같은 시간, 대기업 산하 제약회사 테라셀바이오에는 박철문 의원이 방문했다.
그는 누군가의 개인 연구실을 노크 없이 열었다.
“유나야.”
“그렇게 부르시지 마시죠. 그리고 좀, 함부로 오지 마세요. 내가 뭘 실험할 줄 알고.”
“오랜만에 본 삼촌한테 말버릇이 그게 뭐냐?”
“친삼촌도 아니면서······.”
백다은이 연기하는 테라셀바이오 연구원 정유나는 보육원 출신으로, 박철문 의원의 후원을 받아 이렇게 개인 연구실까지 있는 과학자가 되었다.
“여긴 어쩐 일이세요?”
“남극에 가 줘야겠어.”
“네?”
“K.I 연구소의 배 박사는 알지? 네 스승.”
박철문 의원이 오늘 회의실에서 있었던 일화를 풀었다. 정유나의 표정이 점점 상기되었다.
“네 표정을 보니, 그 계획이 가능한가 보구나.”
“네. 백신, 만들어질 수 있을 거예요.”
“그러면, 그러면 말이다. 네가 남극에서 가져온 자료로 백신을 만든다면 말이다. 일단 내게 먼저 알려주겠니?”
“······위에 보고하는 게 아니라요?”
“언제까지 누구 밑에서 밑천 다 털릴 생각이야?”
정유나의 눈빛이 사나워졌다. 밑천 털어가는 가장 첫 번째 사람이 눈앞의 이 사람이다.
이 사람은 끝까지 불쌍한 고아 새끼 거둬서 사람 만들어줬다고 착각하겠지.
‘나도 삼촌 이용할 거야.’
하지만, 백신을 만들 수만 있다면······ 이런 기업 소속이 아니라 자신이 기업을 세울 수 있다.
박 의원은 자신의 이득을 놓치지 않는 사람이니 자신을 도와주겠지. 그녀도 야망이 많은 사람이었다.
“네가 그걸 가지고 백신을 만들지 못하겠다면······ 아무도 가지지 못하게 전부 없애버려.”
“······.”
“할 수 있지?”
정유나는 아랫입술을 꽉 깨물었다. 그녀는 야망이 높긴 하지만, 천성이 나쁜 사람은 아니었다.
대의와 개인의 이익 사이에서 저울질하라는 얘기다.
전자는 한국의, 어쩌면 세계의 암 덩어리를 없애버릴 기회이지만, 후자는 그냥 내 이익이 없으면 다 부숴버리라는 얘기고.
그런 중요한 선택을 나한테 떠넘기다니······ 정유나는 어깨에 닿는 박 의원의 손길에 고개를 들었다.
“내가 널 후원했다는 걸 잊지 마. 네가 어떻게 이걸 걸고 있을 수 있는지.”
정유나는 제 목에 걸린 사원증을 건드리는 박 의원의 손을 탁, 쳐냈다.
독기를 품은 정유나의 얼굴에 박 의원의 입가에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럼 난 간다.”
박 의원이 문을 닫고 나가고, 홀로 남은 정유나는 주먹을 꽉 쥐었다.
그리고 진영도의 삭막한 집, 평소였으면 또 자살을 시도했을 진영도는 침대에 걸터앉아 한참을 생각했다.
“······.”
그는 덮어놓았던 탁상 액자를 들어 올렸다. 5년 전, 남극 기지에 파견 갔던 자신과 동료들의 단체 사진이었다.
이윽고 무언가를 결심한 진영도가 겉옷을 입고 집 밖을 나섰다.
***
‘흠, 그럼 임지환이랑 백다은이 동맹이고, 문창민과 고광일, 권민재가 같은 편이고······.’
그럼 윤제이는 어떤 모습을 보여줄까. 관객석에 앉은 기자는 수첩에 질문거리를 휘갈겨 썼다.
스크린에서는 일사천리로 남극 파견팀이 꾸려지고, 공군 기지에 하나둘 모습을 드러냈다.
오랜만에 총을 잡은 진영도와 미끼로 차출된 사형수들, 그들을 통제할 몇몇 군인들은 위 준장의 사람이기도 하고, 박 의원이나 국 의원의 사람이기도 했다.
“유나야.”
“채설환. 오랜만이네.”
“그······ 잘 지냈어?”
두 사람은 배 박사 밑에서 함께 공부했었다. 채설환은 귀가 빨개진 채 정유나를 흘끔댔다.
딱 봐도 채설환은 정유나를 마음에 담고 있었고, 정유나는 떨떠름한 게 채설환을 만나기 싫어했던 것 같다.
“넌 겁도 많으면서 여긴 왜 지원했어?”
“백신 만들어야지.”
“정말 그거뿐이야?”
“응?”
“뭐, 백신 만들어서 부자가 되겠다거나 아니면 권력의 정점에 서겠다거나······.”
정유나는 채설환을 살짝 떠봤다. 그녀도 천재 소리 듣고 자랐지만, 채설환에 비하면 아직 멀었다.
따라잡을 만 하면 아득히 멀어지는 채설환을 동경하기도 했고, 질투하기도 했다.
“국가 연구소 소속인데 어떻게 그러냐?”
“그럼 만약 네가 K.I 소속이 아니면? 어떻게 할 거야?”
“음······ 무상으로 뿌려야지?”
“왜?”
“그게 옳은 일이니까.”
정유나는 이래서 네가 싫다고, 자기 어깨로 채설환의 어깨를 밀었다. 잠깐 스쳐 간 정유나의 표정이 어두웠다.
그도 그럴 게 자신의 의도는 너무 더러웠고, 채설환은 너무 찬란했다.
두 연구원이 재회했을 때, 진영도는 단상 위에 섰다.
“앞으로 여러분의 총책임을 맡을 진영도다.”
“진 대위잖아······.”
“그 남극 기지 초토화 낸 사람?”
앞에 늘어선 사람들이 수군거렸다. 진영도는 한숨을 푹 쉬었다.
“불만 있으면 나와.”
몇몇 사람들이 앞으로 나왔다. 진영도는 이들을 하나씩 상대하며 전부 때려눕혔다.
채설환과 정유나는 넋을 놓고 지켜보았다. 벌써 살벌하네······ 가서 별일 없겠지?
서열을 정리한 진영도는 딱 봐도 연구원 같아 보이는 두 사람에게 다가갔다.
“연구원분들이십니까?”
“네. 아, 저는 K.I 연구소······.”
“자기소개는 됐습니다. 빨리 타시죠.”
진영도는 다른 이들을 인솔하기 바빴다. 채설환이 입맛을 쩝, 다셨다.
“정 없네······.”
“난 저런 게 더 좋은데.”
“뭐?”
“어떻게 해서든 임무만 잘 수행할 사람 같아 보이잖아.”
“너, 너 저런 사람이 취향이었어?!”
발끈하는 채설환에 정유나가 히죽 웃었다. 이 재수 없는 천재 동기 놈을 건드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뭐, 취향이긴 하지? 잘생겼고, 몸도 좋······ 진짜 장난 아닌데?”
“유나야!”
채설환이 쩔쩔매는 모습을 보이자, 정유나가 피식 웃었다. 미워하고 싶어도 도저히 미워할 수 없었다.
그렇게 남극으로 갈 사람들이 헬기 위에 올라탔다. 근미래 배경이라 무인 헬기가 제 자리에서 둥실 떠올랐다.
화면은 채설환과 정유나 그리고 진영도의 얼굴을 보여주었다.
대의를 지키려는 자,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 움직이려는 자, 그리고 죽으러 가는 자. 세 사람의 시선이 허공에서 얽혔다.
국민한 의원은 진영도 대위를 찾아 그를 내세워 현 정부의 병폐를 알리려고 했다.
하지만 이를 알아챈 위 준장이 사람을 시켜 국 의원을 방해했다.
“남극 파견팀 명단에 진영도 대위가 있다고?”
“네.”
“이런······ 한발 늦었군.”
국 의원이 제 이마를 짚었다. 누군가의 방해만 아니었더라면 먼저 확보하는 건데······ 이미 남극으로 떠났다니.
그는 아직 진영도를 모른다. 자신에게 누명을 씌운 정부에게 악감정을 가져서 남극으로 파견 간 사람들을 다 죽일지도 모를 일이지 않은가.
“무사해야 할 텐데······.”
남극 팀의 손에 인류의 희망이 담겨 있다. 기도하는 수밖에 없었다.
***
진영도와 정유나 그리고 채설환을 태운 헬기는 오랜 비행 끝에 남극 기지로 갈 첫 번째 베이스캠프에 도착했다.
“오늘은 여기서 하루 지내고, 내일 출발한다.”
진영도는 짧은 해산 명령을 끝으로 홀연히 사라졌다.
“우리 이렇게 있어도 되는 거야?”
“아니, 저렇게 책임감 없는 사람이랑 어떻게 같이······.”
진영도가 못마땅한 군인들과, 자기들은 여기에 왜 왔나 싶은 사형수들 그리고 두 연구원의 눈동자가 불안함으로 떨렸다.
채설환은 자기도 무서우면서 정유나를 격려했다.
“유나야. 걱정하지 마. 넌 내가 지켜줄게.”
“풉, 네가?”
“왜? 나도 남자야.”
그리고 첫날부터 사건이 생겼다.
누군가가 발걸음을 죽인 채 걸어온다. 그리고 채설환의 침실에 조용히 들어온다. 미닫이문을 조심스레 여는 손가락이 까딱거린다.
마치 공포 영화와 같은 연출이었다. 침입자가 침대에 누운 채설환에게 칼을 찍으려는 찰나······.
“뭐 하냐?”
이럴 줄 알고 침입자의 뒤를 밟은 진영도가 그를 한 번에 제압하고는 망설임 없이 칼로 침입자의 목을 찔렀다.
“커, 커헉······!”
“이, 이게 무슨······.”
“들어가 있으세요.”
침입자의 정체는 사형수 중 하나. 사형수가 뜬금없이 자신의 방에 왜 왔겠나, 누군가의 사주를 받고 자신을 죽이려 한 거다.
상황을 파악한 채설환이 침을 꿀꺽 삼켰다.
“앞으로 문은 잠그시고.”
“저기, 대위님. 팔에 피가······.”
“아.”
채설환이 칼에 긁힌 상처를 봐주려고 진영도에게 다가갔다.
그런데 진영도의 눈빛이 이상했다.
이곳은 진영도에게 큰 트라우마를 안겨준 남극이다. 언제 쳐들어올지 모르는 괴물, 꼭 복수해야 한다는 심리적 압박감이 더해져서 순간 피아식별을 할 수 없었다.
“으, 윽······!”
갑자기 멱살 잡힌 채설환이 벽에 쿵! 등을 찧었다.
아파서 인상을 찌푸리던 채설환은 숨을 격하게 몰아쉬는 진영도의 모습에 멍해졌다. 아니, 멱살 잡힌 건 난데 왜 이 사람이 더 괴로워 보이는지?
“지금 뭐 하는 거야?!”
소란을 듣고 찾아온 정유나가 채설환의 멱살을 잡은 진영도의 팔을 때리고, 물었다.
그러자 초점이 나가 있었던 진영도의 표정이 점점 돌아왔다.
“······아.”
“괜찮으세요?”
“이 사람 괜찮은지 네가 왜 걱정해?! 너나 걱정해!”
“아냐, 진 대위님은 나 구해주려고 온 거야.”
“대체 무슨 상황인 거야?”
“아무래도 백신이 만들어지는 걸 싫어하는 사람이 있나 봐······.”
정유나의 뇌리에 한 사람이 떠올랐다.
삼촌, 박철문 의원. 그는 정유나의 라이벌인 채설환의 존재를 안다. 정유나가 그를 따라잡으려 안간힘을 쓰는 것도 알고.
‘설마. 나를, 믿지 못해서?’
그래서 아예 없애버리려고······ 정유나가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9시 정각에 출발한다. 준비해.”
그리고 아침, 진영도는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브리핑을 시작했다. 첫날부터 핵심 연구원이 살해당할 뻔한 걸 알려봤자 좋을 게 없었다.
다행히 사형수 하나 없어졌다고 신경 쓰는 사람은 없었다.
베이스캠프에서 남극 기지로 가는 길은 순탄치 않았다.
일단 언제 나올지 모르는 괴물, 특히 바이러스의 시발점이 녹아내린 빙하에서 해방된 고대 바이러스 때문이었다. 남극의 괴물들은 한국의 변이체와는 차원이 다를 거다.
관객들은 정유나와 채설환이 있어야 백신이 만들어질 수 있다는 걸 안다. 그런데 이 두 사람도 자신들을 호위하는 사람에 의해 언제든 암살당할지도 모른다.
게다가 총책임자인 진영도는 전부가 달라붙어도 처치하기 힘들었던 괴물을 단신으로 죽여 믿음직스럽긴 하지만, 언제 트라우마 때문에 돌변할지 모른다.
지켜보던 관객들이 긴장감으로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사이, 시점은 다시 서울로 옮겨졌다.
(속보입니다. 5년 전 알 수 없는 폭발로 무너진 남극 기지에서 바이러스를 박멸할 치료제의 핵심 데이터가 전송되었다고 합니다.)
(백신 개발 가능성을 본 정부가 비밀리에 파견대를 꾸렸으며······.)
남극 파견은 극비였다. 백신과 치료제가 개발된다면 다음 선거를 위해서, 권력을 더 확실히 쥐어 잡기 위해 이용할 생각이 만발했으니까.
“대체 어디서 샌 거야?!”
국무총리가 TV를 보며 짜증을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