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sappeared Genius Child Actor Is Back RAW novel - Chapter (13)
사라진 아역 배우가 돌아왔다 그냥 넘기긴 아까운 작품이라.(13/287)
그냥 넘기긴 아까운 작품이라.
“누님, 어땠어요?”
“이 대표. 재밌는 친구를 데려왔네?”
이서원의 부탁으로 윤제이의 연기를 봐주게 된 배우, 배선영이 입꼬리를 올렸다. 그는 연기 학원을 운영하면서 취미로 연극을 하는 잔뼈 굵은 배우였다.
“뭐 하던 사람이야?”
“전직 군인에 경호원 출신이요.”
“그래? 완전 다른 분야인데······ 지망생도 아니었다. 이거지?”
“혼잣말만 하지 말고요. 어땠는데요?”
“내 스타일 알지? 일단 대본 던져주고 보는 거.”
“알죠.”
일단 대충 ‘사람처럼’ 연기하는 게 확인되면 작품에 꽂아 넣고 알아서 해보라는 이서원과 비슷한 성향이다.
“일단 봐봐.”
배선영은 우선 핸드폰을 내밀었다. 이서원에게 보여주려고 레슨을 녹화했었다.
“오?”
역시 이 누님 실력 여전하다. 연기 처음 하는 사람을 ‘사람처럼’ 끌어올리는 데 일가견이 있다.
이서원의 표정을 읽은 배선영이 작게 숨을 토해냈다.
“내가 봐준 거 아니고, 그게 처음 한 연기야.”
“네?”
배선영은 다시 생각해도 기가 막힌다는 듯 피식피식 웃었다.
대본을 주자마자 윤제이는 빠른 속도로 대본을 넘겨보더니 적당히 바닥에 던져두고는 몸부터 풀었다.
‘기본은 알고 있나 보네?’
초보 연기자가 자주 실수하는 게, 몸에 힘이 너무 많이 들어간다는 거다. 그래서 긴장을 풀고 몸을 이완하는 것을 먼저 시키는데, 따로 말하지 않아도 잘했다.
[준비됐습니다.] [그러면, 씬 34. ‘영수’가 ‘정현’을 추궁하는 장면으로 하죠.] [무슨 역할 할까요?] [‘영수’요. 제가 ‘정현’으로 받아칩니다. 근데 대본 안 보고 하나요?] [다 외웠습니다.]사실 이때까지는 허세인 줄 알았다. 가끔 잔머리 잘 굴리는 지망생들이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고 대본을 미리 달달 외워오는 일도 있으니까.
이 사람도 비슷한 유형인가 보다. 암기력이 뛰어나다고 어필할 생각이겠지.
‘그래놓고 도중에 까먹어서 대본 찾고 허둥대고, 어휴······.’
그래도 준비해 온 게 가상하니 한 번 넘어가 줘볼까. 턱을 괴고 심드렁하게 대본만 쳐다보던 배선영은 윤제이의 첫 마디에 고개를 들었다.
[말해. 어디다 숨겼어?]언제 이렇게 가까이 와 있지? 배선영이 숨을 들이켰다. 절벽에 몰린 것처럼 절박한 눈빛이 눈앞에 있었다.
원래라면 ‘정현’이 바로 받아쳐야 했다. 윤제이는 멈추지 않고 다시 입을 열었다.
[마늘밭에서 꺼낸 돈! 어디다 숨겼냐고!]대본에는 없는 대사다. 배선영이 한 박자 늦었으니, 애드리브로 흐름을 이어가는 거다.
뭘 어디서 꺼냈는지는 뒷부분에 자세히 밝혀진다. 그렇다면······.
‘진짜 그사이에 다 외운 거야?’
게다가 목소리 톤도 좋다. 곧 울음을 쏟아낼 것 같이 떨리고 있지만, 과하지도 않다.
[아이, 형님. 잘 굴리고 있죠.] [그거 지금 줘야겠어.] [네?] [줘! 긴히 쓸 데가 생겼으니까!]배선영은 넋 놓고 ‘정현’의 대사만 읊었다. 그가 보고 있는 이 대본은 자세한 행동 지문이 없었다.
낯선 사람 앞에서 부끄럼 없이 대사는 잘 칠 수 있는지, 발성과 발음은 어떻게 되는지 알아보려고 준 거지 이렇게 심화한 걸 기대한 건 아니었다.
게다가 본인은 뭔가 만족스럽지 않은지 눈을 감고 생각에 잠기다가 다시 요구하기도 했다. 삐딱했던 배선영의 자세가 점점 펴졌다.
[‘영수’의 직업은 몸을 자주 쓰는 직업입니까? 말투가 거칠어서요.] [네, 맞아요. 건설 현장 노동자입니다. 돈의 최초 발견자죠.] [흠.]돈을 최초로 발견했는데 남에게 홀랑 넘길 정도면 지능이나 판단력이 부족한가?
그리고 이름에서 연령대가 좀 있어 보인다. 윤제이는 목을 가볍게 꺾어가며 몸을 풀고 자세를 구부정하게 구부렸다. 그리고 이미 머릿속에 있는 대본의 문장 하나하나를 곱씹었다.
영수 (몸을 크게 비틀거리며) 빠, 빨리 내놔.
술을 먹었나? 전체적으로 버럭 화내고 말도 더듬는 대사가 많았지. 그럼 아예 알코올 중독증일까? 그 생각이 들자마자 윤제이의 손이 파르르 떨렸다. 전형적인 금단 증상 중 하나다.
그렇게 몇 번을 대사를 주고받으니 시간이 훌쩍 지나가 버렸다.
[레슨은 여기까지 하죠.]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은 언제 오면 될까요?] [그냥······ 그만해도 될 거 같네요.]그 시간 동안 배선영은 상대의 대사를 읊어주고 윤제이가 구축하는 캐릭터의 상세 설정을 툭툭 던져줬을 뿐이다.
이러면 내가 가르칠 게 있나? 난 왜 부른 거야? 싶었다. 하지만 이서원의 얘기를 들어보니 진짜 초심자인 것 같고.
“물건이야 물건. 우리 이 대표 안목 죽지 않았네.”
이 누님이 이렇게 말할 정도면 대단한 건데. 얘기를 듣던 이서원은 자신의 턱을 매만졌다.
‘잘됐네.’
마침 적당한 작품도 있고, 시간 안 끌고 바로 들어가도 되겠군. 그는 곧바로 윤제이를 찾았다. 아직 집에 안 간 윤제이는 배선영이 준 몇 개의 대본을 펼쳐보고 있었다.
“대본 아직도 봐요?”
“재밌네요.”
유명해지는 게 목적이 아니라 작품에 자주 출연할 기회 때문에 날 찾았다고 했지? 그래서 그런지 대본을 보는 눈이 열정적으로 보였다.
고인물 입장에서 뉴비가 의욕 넘치면 기분 좋은 법이지. 그는 윤제이의 맞은편에 앉았다.
“레슨 잘 받았다면서요? 그분이 칭찬하시던데.”
“아직 모르겠습니다.”
윤제이는 방심하지 않았다. 나름 열심히 했지만, 카메라 앞에서 어떨지는 알 수 없다.
“근데 진짜 연기 처음이에요?”
윤제이는 대답하지도, 고개를 끄덕이지도 않았다. 처음은 아니지만, 21년이나 지났으니 신인이나 마찬가지 아닐까?
그가 윤제희였다는 사실은 아직 비밀이다. 윤제이로서 연기를 제대로 시작하지도 않았는데 과거의 영광 때문에 필요 이상으로 조명되는 건 원치 않는다.
“사전 조사를 좀 했습니다.”
“어떤 조사요?”
윤제이는 남들과 다른 능력이 있었다.
한 번 보면 완벽하게 따라 할 수 있고, 한 번 체감한 경험은 없어지지 않는다. 그걸 처리할 수 있는 습득력과 집중력 그리고 기억력도 있다.
자신이 평범하지 않다는 것을 학교 다닐 때 어렴풋이 짐작하긴 했다. 그걸 알아본 사람은 그의 첫 지휘관이었고, 능력을 제대로 써본 건 파병을 나갔을 때였다.
“연기법에 관련된 책을 한 15권 정도 읽었고, 마이튜브에 뜬 연기 레슨 영상은 거의 다 봤습니다.”
“허. 그 짧은 사이에?”
이것도 농담인가? 싶지만, 배선영이 보여준 윤제이의 연기를 이미 봤다. 믿기 힘들지만, 실력으로 이미 증명했지 않은가.
‘설마 10개 국어도······?’
그건 아무리 생각해도 좀 오바지? 가벼운 웃음으로 딴생각을 날려버린 이서원은 윤제이에게 무언가를 내밀었다. 드라마 시놉시스였다.
“그럼 이것도 잘할 수 있나 볼까?”
“제가 들어갈 작품입니까?”
“그래요. 우리 회사에서 제작하고 주연은 문창민. 혹시 제이 씨도 알아요?”
“······미국에서도 한국 영화 볼 수 있습니다.”
“하하! 그렇지. 창민이 형이야 뭐, 천만 배우니까.”
문창민은 경력이 무려 25년 넘는 배우로, 우리나라 남배우 상위 10 안에 들 정도로 유명한 사람이었다. 연기력이야 논할 것도 없이 잘한다.
‘신경 많이 써 주는군.’
이런 사람의 작품에 나도 들어갈 수 있다 이 말이지? 역시 이서원과 계약하길 잘했다.
“사실 이 작품 말고, 그냥 다른 작품에 특별출연으로 끼워서 얼굴이나 조금 알리려고 했어요.”
“그 다른 작품도 기대작일 거 같은데요.”
“그렇지. 내가 손 뻗은 데가 많아서.”
하지만 배선영의 극찬으로 먼저 싹수를 보여줬으니, 그거에 걸맞은 것을 준비해 줘야지.
물론 이거 하나 잘 못 받아먹으면, 아웃이다. 이서원이 시나리오를 툭툭 쳤다.
“근데 이건 그냥 넘기긴 아까운 작품이라.”
“저를 염두에 둔 건 어떤 배역입니까?”
“여기.”
이서원의 손가락 끝을 따라 눈동자를 굴린 윤제이는 의외라는 듯 눈썹을 들어 올렸다.
***
[일어나.]그 말과 동시에 물이 끼얹어졌다. 정신이 번쩍 든 제이는 잘 움직여지지 않는 고개를 힘겹게 들었다. 상대는 엉망진창인 제이의 몰골에 실실 웃었다.
[언제 봐도 엿 같은 얼굴이군.] [너무 그러지 마. 우리 이제 친구 아니었나?]이런 친구 관계는 사양인데. 제이는 눈을 깜빡였다. 뭐가 들어갔는지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그사이 잠들다니. 우리의 손님 대접이 시원치 않았나?] [너무 간지러워서 말이야. 하품이 저절로 나오던데.]그렇게 대답한 제이는 옆으로 침을 퉤 뱉었다. 침에서 진한 피가 섞여 나왔다.
못 씻어서 머리는 엉겨 붙었고 쿰쿰한 냄새가 나지만, 그보다 몸을 뒤덮는 피가 눈에 더 띄었다. 의자에 묶인 손과 발끝이 뭉툭하다. 손톱과 발톱이 다 빠진 것이다.
[너희 미국인들 농담은 별로 유쾌하지 않아서 문제야.] [······.] [그래도, 비명 하나만큼은 명곡이지.]상대는 탁자에 늘여놓은 공구를 하나씩 들어 제이에게 보여줬다. 그리고 고개를 앞으로 뻗어 제이와 얼굴을 가까이했다.
[흐흐, 오늘은 다른 식으로 놀 거야.]머리에서 흐르는 피 때문에 흐려졌던 초점이 점점 선명해진다. 광기 그 자체인 눈동자. 어긋난 신념이 보이는 조화롭지 않은 표정.
“······!”
벌떡 일어난 윤제이가 화장실로 달려갔다.
‘아, 젠장.’
먹은 게 없어서 위액만 나왔다. 귀를 찌를 듯 이명이 들리고 시야가 핑핑 돈다.
잠시 바닥에 앉아 흥분을 가라앉힌 제이는 핸드폰을 들었다. 악몽을 꾼 덕인지 평소보다 일찍 일어났다.
(최태양) 야 기사봤다 축하한다
(정승우) 형님 드라마 꼭 본방사수하겠습니다!
얘네는 새벽에 잠도 안 자나. 그리고, 아직 촬영도 안 들어갔는데 본방사수라니.
윤제이는 그들이 보내온 인터넷 기사를 눌러보았다. 손가락이 떨려서 몇 번 헛손질했다.
커뮤니티 달군 원더콘 경호원, 윤제이 배우 데뷔
‘엠마 스튜어트 경호’ 과거 밝혀진 화제의 경호원, 소속사 전속계약
······원더콘 레드 카펫에서 센스 넘치는 행동과 사고를 막고, 할리우드 스타 엠마 스튜어트의 경호원 시절 과거가 밝혀지고 유명 아이돌 멤버의 목격담에 자주 나타나는 등 SNS서 화제가 된 경호원 출신 윤제이는 신생 배우 회사 ‘아스트라’와 전속 계약을 맺고 늦깎이 연기를 도전한다.
그는 내년 공개 예정인 엔플릭스 드라마 <악의 동산>에서 첫 연기를 도전할 예정이다.
서른둘이 늦깎이 소리 들을 나이인가. 윤제이는 뒷머리를 긁적였다. 다른 데로 신경을 분산하니 몸의 떨림이 잦아들었다.
└와우
└바로 문창민 드라마 꽂히네 ㄷㄷㄷ
└사진 개잘생겼는데?
└연예인 안하긴 아까운 외모긴 했어
└아스트라가 어디야? 바로 문창민 작품 꽂히는게 가능해?
└그냥 지나가는 단역 1일듯ㅇㅇ 이렇게 오지게 홍보해놓고 분량 5분도 안되는거 많잖아
└아스트라는 뭔 회사임? 어그로는 잘끄네ㅋㅋ
└윤제이 이름 본명인가? 검색해도 뭐 안나오는데
└예명이겠지ㅋㅋ 과거 구린거 아냐?
때맞춰 곽도현 실장의 메시지가 상단에 떴다. 우리 회사는 이런 허접한 홍보 기사는 안 쓴다는 내용이었다.
아마 이서원이 업계에서 유명하니, 누군가가 출처를 받아 쓴 게 분명했다.
‘분량, 얼마 안 나오기는 하지······.’
살짝씩 얼굴만 보이다가 후반부에 잠깐 나오는 단역이라고 한다.
하지만 배역의 한 줄 요약에 재미있는 단어가 쓰인다. ‘중간 보스 격’ 그리고 ‘반전 요소’
[이거, 잘만 하면 단 한 번으로 각인 잘 될 수 있습니다.] [어떡할래요, 이 작품 할래요? 아니면 특별출연 몇 개 나가서 간 볼래요?]특별출연 몇 개 나가기엔 감질난다. 그리고 이서원을 설득할 한 방이 없다. 그에게 잘 보여야 더 많은 작품에 들어갈 수 있으니.
윤제이는 그래서 전자를 골랐다. 비중 있는 단역으로 카메라를 볼 시간이 더 많으니 좋다. 그래서 받은 짤막한 캐릭터 시놉시스였다.
사이비 종교 전총교 교주 <백진리>
며칠 캐릭터를 어떻게 구성할지 몰입하다 보니 문득 다른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사이비 종교 지도자와 테러리스트는 한 끗 차이 아닌가?’
공교롭게도 테러리스트와는 제법 마주한 적 있다.
‘그 새끼를 참고할 날이 올 줄이야.’
사실 이렇게 후유증이 길게 남을 줄 알았더라면 아예 생각도 안 하는 건데. 윤제이는 한숨을 푹 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