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sappeared Genius Child Actor Is Back RAW novel - Chapter (15)
사라진 아역 배우가 돌아왔다 내 잘못이 아니야.(15/287)
내 잘못이 아니야.
‘오늘은 조금 쉴 수 있겠군.’
스태프들이 촬영장에 등장한 윤제이를 보자마자 한 공통된 생각이었다.
연기 잘하는 배우가 있으면 컷이 일찍 되기 때문에 그만큼 중간에 쉬거나 칼퇴할 수 있다.
“백 의장님. 오셨습니까?”
“농장은 잘 돌아가고 있습니까?”
윤제이의 첫 연기를 보고 난 뒤 박현승 감독은 그에게 뭐라 하지 않고 연출 방향을 수정했다.
대신 너무 과하게 하지는 말고 마지막 장면을 위해 힘을 조금 빼라는 조언을 했다.
윤제이는 그 요청을 성실히 이행하고 있었다.
‘크, 분위기 좋고.’
군중 속에서 연설하는 장면에서는 정상인인 척하는 게 보였는데, 화면 속 백진리는 조금 더 농도가 짙어졌다.
감독이 속으로 감탄했다. 윤제이가 예의 바르고 싹싹하게 굴어도 친화력은 살짝 없는 편인데, 신도를 달래는 능청스러운 연기가 아주 자연스럽다. 그리고 저런 능청을 떨면서도 눈이, 기묘하다.
“납기일까지 맞출 수는 있고요?”
“더 많은 양을 준비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좋네요.”
신도들에게 둘러싸인 채 걸어가는 모습이 유독 이질적이다. 다들 검은 정장인데 혼자 하얀 정장을 입고 있어서일까?
백진리는 대신 문을 열어주려는 신도를 만류하고 직접 문을 열었다. 그리고 펼쳐지는 ‘농장’ 내부.
“쓰읍, 하아······.”
플라스크와 알코올램프 등 학교 과학실에서나 볼 법한 풍경. 농장 인부들이 열심히 무언가를 제조하고 있었다.
옆에서 포장하는 사람은 곰 인형의 배를 가르고 제조된 마약을 집어넣는다.
자신이 만든 톱니바퀴들이 잘 굴러가고 있다는 것을 확인한 백진리가 숨을 크게 쉬었다가 서서히 내뱉었다.
“이게 은총이지.”
흰자를 살짝 보이며 황홀함에 빠진 표정이 정말 마약을 한 것 같다.
“저······ 의장님. 품질 확인은 안 하십니까?”
“새로 온 지 얼마 안 됐나 보네요?”
“예? 아, 네. 그렇습니다.”
백진리는 특유의 돌아버린 눈빛으로 신입을 응시했다.
여기서 윤제이는 호흡을 잡아 긴장감을 유지했다. 그러자 신입도 저절로 호흡이 멈춘다.
‘어, 언제 끝나지?’
신입 역을 맡은 단역 배우는 눈동자를 굴려 시선을 피했다. 왠지 이래야만 할 것 같았다. 계속 저 눈빛을 마주하다가는 어딘가 잘못될 거 같다.
몇 초가 몇 분 같다. 백진리가 호흡을 천천히 내뱉으며 긴장됐던 분위기를 푼다. 그리고 신입의 어깨를 검지로 툭툭 두들겼다.
“뭐 그렇게 긴장하십니까. 제가 잡아먹는 것도 아니고.”
잡아 먹힐 것 같아서 그렇지. 신입은 그제야 숨을 토해냈다.
“저런 건 사람을 번뇌에 빠뜨립니다.”
타인을 타락에 빠뜨리는 ‘농장’을 운영하면서 본인은 순수를 지향한다. 백진리가 입고 있는 하얀 정장처럼, 남은 더럽히면서 자신은 깨끗하게 살 거라는 모순된 신념이다.
“그래서 저는 술 담배도 안 합니다. 우리는 그분께 받은 축복을 소중히 해야죠.”
그동안 찍은 백진리의 눈동자만 보면 누구보다 중독자 같다. 이 대사는 드라마를 보는 사람에게 ‘그럼 저게 제정신이라는 말이야?’라고 생각하게 만든다.
“컷! 오케이!”
그렇게 또 한 장면이 끝났다. 이건 모니터를 할 필요도 없다. 감독은 망설임 없이 다음 장면으로 넘어가자고 했다.
“이야······ 잘하더라?”
“가, 감사합니다.”
신입 역을 맡은 단역 배우는 매니저의 칭찬에 윤제이를 흘끔 쳐다보았다.
‘나랑 같은 신인이라고 하지 않았나? 무슨 연기가 저래?’
침을 삼키는 행동은 지문에 나와 있긴 했다.
하지만 백진리의 눈빛을 바라보고 있자니 눈앞이 흐려지면서 저절로 나온 행동이었다.
지문에도 없던 식은땀이 흐른 건 덤이었다. 나랑 같은 신인이 상대의 몰입까지 끌어올리는 게, 이게 되는 거야?
‘대사는 잘 뱉은 거 같은데······.’
하지만 정작 윤제이는 만족스럽지 않았다. 몰입하려고 하면 카메라가 자꾸 신경 쓰인다.
막상 마주하니 두려우면서도 생각보다 무섭지 않은 것도 같다. 이 감정을 자신도 몰라서 혼란스러웠다.
‘다시 하자고 할 수도 없고.’
촬영은 이미 계획이 다 짜여 있다. 게다가 제작비도 많이 들어가서 조금만 늦어도 몇억짜리 손실로 이어질 수 있다.
이미 감독의 오케이 사인이 떨어졌는데 고작 몇 분 나올 뿐인 단역이 ‘제 연기가 마음에 안 드는데 다시 할 수 있을까요?’라고 말하면 혼자 예술 하지 말고 가만히 있으라는 소리나 들을 것이다.
“이야. 이러다가 기록 세우겠어요? NG 한 번 안 난 걸로.”
“감사합니다.”
스스로가 불만족스러우니 이런 칭찬도 귀에 안 들어온다. 윤제이는 동료 배우들의 칭찬에 웃으며 고개를 꾸벅 숙였다.
‘그냥 신인치고 봐줄 만하니까 이러나.’
소속 회사도 이 촬영 제작사니 잘 보이려고 이러는 거겠지. 윤제이는 그 시선을 가볍게 넘겼다.
***
‘슬슬 촬영도 끝나가는군.’
윤제이가 주어진 촬영분을 다 마치고 마지막 촬영 날이 됐을 때, <악의 동산>에서 주연 ‘김연석’을 맡은 문창민이 촬영장에 도착했다.
그가 조용히 촬영장 안으로 들어가자, 백진리가 야구 방망이를 마치 사극에 나오는 망나니처럼 흔들고 있었다.
‘와, 진짜 미친놈 같네.’
숨죽여 감독의 뒤로 다가간 문창민은 모니터 속 백진리의 모습에 흥미로운 듯 눈을 빛냈다.
그동안 이름만 알았지 직접 보지 못했던 백진리를 드디어 볼 수 있었다.
대사 치는 것도 안정적이고, 연기도 잘한다. 맘에 드는데?
“컷! 오케이!”
“이야, 잘하네.”
박현승 감독은 갑자기 뒤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몸을 움찔 떨었다.
“어우, 형. 오셨어요?”
“쟤가 백진리야?”
“네.”
내가 상상했던 것 그 이상이네.
사이비 종교 교주라길래 나이 지긋한 사람을 연상했는데, 생각지 못한 잘생긴 얼굴이 의외긴 했다.
윤제이는 문창민을 발견하자마자 종종걸음으로 그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상체를 푹 숙였다.
“안녕하십니까. 선배님. 윤제이라고 합니다.”
“드디어 내 원수를 보네. 너무 그렇게 딱딱하게 인사 안 해도 돼요.”
문창민은 본인이 가진 영향력에 비해 소탈했다. 그가 못 참는 건 오로지 하나, 연기 못 하는 상대 배우다.
연기만 잘해서 내 몰입을 깨지만 않으면 배우 본체가 싸가지가 없든 말든 다 호감으로 봤다.
그리고 그가 생각하는 윤제이의 첫인상은 당연히 좋았다.
“잘하시더라. 어디 연극 하시다 오셨나? 어디 소속이에요?”
“아스트라입니다. 연극은 안 했습니다.”
“오, 그러고 보니 나 제이 씨 이름 들은 거 같다. 요새 서원이가 꽂혔다는 친구구나?”
문창민은 천만 타이틀을 두 개나 가지고 있는 국민 배우, 그리고 연기파 배우다. 작품 잘 꽂기로 유명한 이서원과도 친했다.
‘그 이서원이 갑자기 신인 키운다길래 궁금했는데, 이렇게 보네?’
촬영 전에 너무 대화를 주고받으면 미리 의도한 반전 요소가 사라질까 봐 감독은 문창민을 다른 곳으로 이끌었다.
“자, 창민이 형. 자리 비켜주세요. 몰입하시게.”
“어? 왜?”
“잡담은 촬영 끝나고 하시면 되잖아요. 제이 씨는 이게 첫 작품이라. 예열이 오래 걸린단 말이에요.”
사실 카메라를 의도적으로 무시하느라 예열이 오래 걸린 거지만, 사람들 눈에는 몰입하기 위한 준비로 보였다.
“첫 작품? 진짜?”
하는 것만 봐서는 이쪽 판에서 몇 년 구른 중고신인 같던데. 문창민은 더 말을 걸고 싶었지만 참았다. 어차피 자신도 몰입을 위한 시간이 필요했으니.
‘그래서, 쟤가 전총교 보스라 이거지?’
잠깐밖에 못 봤지만, 저 정도 존재감이라면 이해할 만하다. 일단 몸을 잘 쓰고, 살짝 보이는 눈빛이 정말 돌아 있으니까.
‘흠······ 그런데 마지막에나 나오는 보스가 아예 신인이라고?’
하지만 문창민은 계속 의심이 들었다.
드디어 모든 떡밥이 풀려서 밝혀진 보스가 저런 신인? 하지만 소속사가 그 이서원의 회사라면······ 가능할 거 같기도?
‘에이 씨, 진짜. 그냥 알려주지.’
박 감독은 문창민의 째려보는 시선을 그대로 느끼고 있었다. 헷갈리나 보지? 좋아. 의도대로 되고 있어.
“제이 씨.”
“네.”
“창민 씨 앞에 있다고 너무 기죽지 마시고요.”
감독은 윤제이의 어깨를 토닥였다.
“평소 했던 것보다 더 발산할 수 있죠? 아예 죽여버린다는 느낌으로.”
“······해보겠습니다.”
이전까지는 그가 참고삼았던 테러리스트의 60%도 따라 하지 않았다. 여기서 더 발산하는 건 가능하다.
하지만, 카메라가.
‘소방대에서 봤던 거랑 뭐가 다르지?’
윤제이는 며칠 동안 혼란스러운 마음을 곱씹었다.
윤제희가 칸에서 남우주연상을 받았을 때, 그들 가족은 집에 있었다.
이영창 감독이 대리 수상을 하러 나왔고, 친부는 환호를 내질렀다. 친모는 걱정이 들었지만, 그래도 아들이 상을 받았다는 사실은 기분이 좋았다.
띵동
[안녕하세요. 혹시 여기가 윤제희 군 집인가요? 인터뷰를 좀······.]하지만 평화는 오래가지 않았다. 사람들의 시선이 따라붙고, 단순 혼잣말도 그런 의도로 한 말이 아닌데 이상하게 와전됐다.
[아······ 내 기대와는 별로인데?] [천재라며? 그냥 평범한데?]사람들의 기대가 그의 어깨를 짓눌렀고.
[어머니, 설마 애 상 좀 탔다고 애한테 너무 부담 주시는 거 아니죠?] [죄송합니다.]아무것도 못 하는 그의 모습에 실망한 사람들은 대놓고 윽박지르기도 하고, 매니저인 친모에게 풀었다.
묵묵히 아랫입술을 꽉 깨무는 친모의 모습은 아직도 선명했다.
그 때문에 생긴 가정불화, 부모의 이혼. 혈혈단신 미국으로 와 고생하는 친모.
어린 윤제희는 그게 모두 자신의 탓 같았다. 그가 한국에 오기 전까지 오랜 시간 자책했었다.
“김연석 스탠바이 됐죠? 자, 시작합시다.”
윤제이는 미국으로 건너가 우여곡절이 많은 삶을 살았다.
윤제희 시절 공포증과 트라우마보다 더한 일을 당하기도 했다. 다른 정신적 피로로 덮여서 괜찮을 줄 알았지만, 그냥 PTSD가 더해진 거지 카메라는 여전히 무서웠다.
그런데 한국에 온 이후로 변했다. 왜 변했을까. 생각하다 보니 딱 하나밖에 없었다.
[네 잘못이 아니다. 다 내 탓이다.]그동안 자기 탓이라 자책했었다. 하지만 이제 내 잘못이 아니라는 계기가 필요했다.
그렇구나. 친부의 유언을 들은 순간 난 나를 용서했다. 그래서 저게 더는 무섭지 않았다.
잘 봐.
저건 이제 ‘눈’이 아니야.
그 사실을 깨닫자마자 주변 환경이 변했다. 의도적으로 배제했던 ‘눈’이 이제는 그냥 카메라로 보인다.
자각하는 게 늦어서 그렇지, 카메라를 마주할 때마다 기분 나쁘게 벅차오르던 감정은 두려움과 무서움이 아니었다.
드디어 공포증에서 벗어났다는 희열, 카타르시스 때문에 감정이 휘몰아쳐서 착각한 것이다.
“······하하!”
멍하니 큐사인을 기다리던 윤제이가 고개를 하늘로 치켜들고 크게 웃었다.
이제야 진짜 고향에 온 느낌이 난다. 재밌다. 이 촬영 현장이, 그리고 내가 다시 연기를 할 수 있는 이 상황이.
“뭐, 뭐야.”
갑자기 웃음이 왜 터져, 진짜 사이비 아닌가 저거. 이미 윤제이의 연기로 홀렸던 몇몇 스태프들의 시선이 집중된다.
‘아직 아니야.’
이 기분을 ‘백진리’에 녹여낼 거다. 감독의 큐 사인이 떨어지자, 윤제이가 ‘김연석’을 응시한다.
“안녕하세요?”
대사 자체는 평범했다. 하지만 드디어 제대로 된 연기를 할 수 있는 해방감과 윤제이를 고문했던 ‘진짜 악’을 모방한 연기를 섞으니 이전 촬영과는 확연히 다른 분위기가 발산됐다.
“······.”
문창민이 숨을 삼켰다.
불쾌한 골짜기라고, 인간이 로봇과 같이 인간과 유사한 것을 볼 때 오히려 불쾌감을 느낀다는 이론이 있다.
‘이런 미, 친.’
그의 눈앞에 있는 백진리 자체가 불쾌한 골짜기 그 자체였다.
문창민이 대사를 받아치는 것도 잊은 채 고개를 확 숙였다. 도저히 기분 나빠서 오래 보기 힘든 눈빛이었다.
‘설마······.’
‘세상에.’
스태프들이 어리둥절해서 감독의 사인만 기다렸다. 이거, 끊어야 하는 거 아냐?
“······다시 한번 갈게요!”
감독이 뒤늦게 외쳤지만, 자신이 생각하고도 어이가 없는 표정이었다.
그 문창민이 NG를 냈다. 천만 작이 두 개에 작품 캐스팅 1순위에 거론되는 국민 배우가, 이게 첫 작인 신인한테.
‘와, 문창민이 기 싸움에서 밀렸다고?’
죽여버리라고 했더니 진짜 죽였네? 감독이 눈을 깜빡거렸다.
이 촬영이 끝나고 이서원에게 연락해야겠다. 내가 뭘 봤는지 당신은 상상도 못 할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