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sappeared Genius Child Actor Is Back RAW novel - Chapter (179)
사라진 아역 배우가 돌아왔다 179화(179/287)
계속 생각나.
근무 시간도 예전과 바뀐 게 없었다. 마침 퇴근 시간이라 차고가 북적거렸다. 윤제이는 아는 얼굴들을 보자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저기······.”
클로이를 통해 오늘 온다고 했건만, 다들 그가 떡하니 서 있는데도 발견하지 못한 듯 보였다.
‘이상하다. 분명 나를 봤는데.’
윤제이는 가만히 옛 동료들의 표정을 살폈다. 입꼬리가 씰룩거리는 게 보였다. 애써 모른 척하고 있지만, 눈동자는 자신에게 향해있었다.
아마 나를 놀리기 위해서 이러는 것 같은데······.
‘이걸 넘어가 줘야 하나.’
팔짱을 끼고 어쩔까 고민하던 윤제이는 작정하고 연기를 펼쳤다.
하긴, 작별 인사 없이 담백하게 떠나버렸으니 나한테 악감정이 남았겠지, 라고 생각하며 ‘나 사연 있어요’하는 표정을 짓고는 몸을 돌렸다. 어깨까지 추욱 늘어져서 밖을 향하는 꼴이 처량했다.
“야, 야야!”
“잠깐만! JJ!”
그 모습에 양심이 찔린 옛 동료들이 후다닥 윤제이의 어깨를 잡았다. 작정하고 연기하는 그의 모습은 모두를 속이기에 충분했다.
올리버는 윤제이의 어깨가 미세하게 떨리는 것을 느꼈다. 우나? 아니 우는 게 아니라······ 웃음을 참는 듯한.
“나를 상대로 장난은 아직 이르지.”
“뭐야 이 새끼!”
“젠장, 또 당했네.”
다들 넘어간 게 자존심 상해서 제 머리를 부여잡았다. 그 뒤로는 서로 웃으며 가볍게 포옹했다. 윤제이는 하나도 변하지 않은 옛 동료이자 친구들의 얼굴을 천천히 살폈다.
“잘 지냈어?”
“우리야 잘 지냈지. 그래서, 우리한테 할 말 많지 않아?”
“맞아. 대체 무슨 일이야? TV에서 널 봤을 때 얼마나 놀랐는지 알아?”
사실 132 소방대의 대원들은 클로이를 통해 윤제이가 오늘 온다는 소식을 듣고 아예 바비큐 파티를 준비했다.
“이따가 천천히 말해줄게.”
그 말에 윤제이를 아는 모두가 의외라는 듯 눈을 크게 떴다. 그 신비주의 JJ가 자기 얘기를 해준다고?
“JJ.”
“캡.
윤제이는 캡틴을 보고 반가워서 두 팔을 벌렸다. 오랜만에 보는 캡틴은 머리카락이 희끗희끗한 것이 늙은 티가 났다.
“내가 은퇴하기 전에 와서 다행이야.”
“은퇴하세요?”
“할 때 됐지. 사실 이번 달이 마지막이었어.”
조금만 늦었으면 못 볼 뻔했다. 윤제이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는 차고에 모인 대원들을 보고 말했다.
“모르는 얼굴이 꽤 많네요.”
“너 떠나고 나서 들어온 대원들이야. 저 아이는 알지?”
“알아요. 영화제에서 저 애의 아버지를 만났거든요.”
“영화제라······.”
캡틴은 윤제이의 얼굴을 살폈다. JJ와 배우라니, 예전이었다면 참 안 어울리는 단어라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바뀐 모습을 보니 그럴듯했다.
“그래서, 친아버지는 만났나?”
“제 얼굴을 보기 전에 돌아가셨어요.”
“유감이다.”
캡틴은 솥뚜껑 같은 두툼한 손바닥으로 윤제이의 어깨를 두드렸다. 그사이 성대한 바비큐 판이 벌어졌다. 윤제이는 옛 동료들 사이에 껴서 그간의 회포를 풀었다.
“그래서, 어쩌다가 배우가 된 거야? 훈장 얘기는 또 뭐고?”
“어릴 때 잠시 아역 배우로 활동한 적 있었어.”
윤제이가 미국의 영웅이라는 소식은 그들도 뉴스를 통해 알게 되었다. 테러와의 전쟁은 수년간 이어졌다. LIS의 우두머리를 사살하고 하나씩 밝혀지는 진실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사실 윤제이가 ‘그 부대’ 출신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다들 그저 자연스럽게 이해했다.
원래도 씰 출신에 은성 훈장을 받은 이력으로 특채된 거긴 했어도, 윤제이는 뭔가 범상치 않은 구석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른 일은 금시초문이었다. 갑자기 배우 활동이라니? 한국에서 잘나간다니?
윤제이는 궁금했을 옛 동료들에게 대충 자신의 과거를 설명했다.
“미친놈.”
“어쩐지 애가 범상치 않다 싶었어.”
“칸 영화제면, 유명한 거 아니야?”
“아카데미 상이랑 비슷할걸?”
뉴스로 일부를 듣는 것과, 본인의 입으로 직접 듣는 건 달랐다. 다들 낄낄거리며 마이튜브에 뜬 윤제이의 연기 클립 영상을 찾았다.
“이거 봐봐. 오오, 치명적인데?”
“아, 제발.”
“JJ. 부디 슈퍼스타와 셀피를 찍을 수 있는 영광을 주겠어?”
“진짜 그만해.”
“우리랑 찍은 사진을 네 3천만이 넘는 팔로워의 SNS에 올려도 좋아.”
윤제이는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고개를 푹 숙였다. 곤란해 보였지만, 사실 곤란하진 않았다. 이 정도 시달림은 얼마든지 당해줄 수 있다.
간신히 그들 사이를 빠져나온 윤제이는 계속 자신을 흘끔대는 신참 소방관에게 미소를 지었다.
“안녕, 오랜만이지?”
“······네! 저 기억하세요?”
“당연히 기억하지.”
엘리나 오브라이언이다. 그녀는 총기 난사 사건에서 극적으로 구출됐었다. 그녀가 구출될 수 있었던 것은 윤제이와 132 소방대 덕분이었다.
“정말 소방관이 됐구나.”
“네!”
“힘들진 않아? 너 원래 과학 장학생이라고 했잖아.”
“좀 힘들긴 한데, 좋아요. 보람도 있고.”
윤제이는 그녀와 친구들을 진정시키기 위해 했던 질문과 답을 다 기억하고 있었다. 올리버가 끼어들었다.
“신참이 우리 소방대 왔을 때 첫 마디가 뭔지 알아?”
“그, 그만······!”
“그 잘생긴 생명의 은인은 어디 갔어요?”
“하하하!”
그렇게 늦은 밤까지 회포를 풀었다. 먼저 귀가할 사람은 귀가하고 남은 사람들끼리 단골 펍으로 가기로 했다. 윤제이는 그 전에 소방대를 천천히 돌아보았다.
“이건······.”
윤제이는 올리버의 사물함 옆에 제 이름이 붙은 사물함을 보고 눈을 크게 떴다.
사물함의 위치가 나름 명당자리라서 노리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아직도 윤제이의 자리를 치우지 않고 그대로 남아 있었다.
“아직도 내 사물함이 있다니.”
“왜, 우리가 치운 줄 알았어?”
“응.”
“캡틴 명령이었어. 우리도 치우긴 싫었고. 그냥 내버려 두는 게 편하잖아.”
말은 이렇게 해도 다들 그가 돌아오길 바라고 있어서 외면한 것일 거다. 윤제이는 뿌듯함을 느꼈다. 부모님이 계신 집 외에도 돌아올 자리는 여기도 또 있었다.
올리버는 윤제이를 흘끔 쳐다보았다. 예전에는 애써 괜찮음을 포장해도 날카로움이 숨겨져 있었다. 하지만 지금의 친구는 정말 많이 달라졌다. 정말 안정을 찾은 것으로 보였다.
‘이제 미련은 버려야겠지.’
올리버는 미소 짓는 친구의 표정에서 이 사물함의 주인을 바꿀 때가 됐다는 것을 직감했다. 지금까지 돌아올 자리를 지켜왔지만, 윤제이는 이제 돌아오지 않을 거다.
“뭐, 이제는 다른 사람한테 넘겨줄 때가 됐지. 안 그래?”
“······그래.”
윤제이는 자신이 썼던 사물함을 매만졌다.
***
늦은 시간까지 옛 동료들과 회포를 푼 윤제이는 다음 날 아침 ‘액터즈 4’ 제작진과 브런치를 먹으며 앞으로의 방향을 논의했다.
테러 때문에 불투명해진 동부 쪽 일정을 모조리 취소하고 여기서는 신인이나 다름없는 네 배우가 오디션에 도전하는 흐름으로 가기로 했다.
“진짜 제이 씨 아니었으면 우리 촬영 어떻게 됐을지······.”
“운이 좋았죠.”
그 밖에도 팔라스 필름 컴퍼니의 도움을 받아 할리우드 쪽의 촬영장을 견학해보고, 근처 연기 아카데미에서 짧게 연기 수업을 듣는다.
사실 네 배우는 본격적으로 연기 수업을 받아본 적이 없었다.
권민재는 어릴 때 데뷔해서 쭈욱 현장에서 굴렀고, 최우주와 박다율은 대학생 때 길거리 캐스팅을 당했다. 그 뒤로 회사에서 붙여주는 소소한 레슨을 받은 게 다였다.
윤제이도 마찬가지였다.
“어떤 배역인데?”
“듣기로는 이 땅에 처음으로 정착한 조선인을 다룬다고 하더라. 자세한 건 나도 모르겠어.”
최우주와 박다율 그리고 권민재는 윤제이가 제안받았던 드라마 시리즈에 놀라서 눈을 크게 떴다.
“그 시리즈라면 하도 주변에서 난리길래 나도 봤어.”
“나도. 내 동생이 넌 왜 이런 거 안 하냐고 하다가 지 혼자 토하고 난리 나더라.”
최우주와 박다율이 말했다. 엣디엔드는 로맨스가 주된 스토리인 드라마다.
사실 윤제이가 제안받은 ‘엣디엔드’의 시즌 5 오디션은 아무나 볼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워낙 인기도 많고 제작사도 콧대 높아서 그런지 지망생은 오디션을 볼 기회가 전혀 없었다.
인근 유명 필름 스쿨에서 교수의 추천을 받거나, 신인 유망주를 데리고 필름 테스트를 본다고 한다.
한국에서 제법 경력 있는 그들도 오디션 정도는 찔러볼 수 있었다.
“원한다면 다 같이 오디션을 봐도 된다고 했어.”
“흠, 그래?”
끌리긴 한다. 하지만······ 최우주는 일단 윤제이를 이길 자신이 없었다. 빠르게 치고 올라오는 후배······ 사실 알고 보니 후배도 아니었지만, 아무튼 같이 붙으면 백 프로 질 거 같았다.
박다율도 비슷했다. 그는 아직 영어가 서툴러서 대사가 얼마 없는 단역 혹은 무성 연극 위주로 알아보고 있었다.
어차피 오디션은 예능 촬영용 이벤트나 마찬가지여서 윤제이처럼 본격적으로 조연 자리까지는 알아보지 않았다.
“정말 좋은 기회이긴 한데, 나는 다른 작품에 도전하고 싶어.”
“다른 작품?”
“내 쪽 에이전시에서 잡아 온 작품인데······ 우리식으로 치면 한 4롤, 5롤 될까 싶은데. 뭔가 하고 싶더라고.”
권민재는 소속 에이전시에서 물어다 준 작품을 준비하기로 했다.
“우주 형이랑 다율이 형은 어떡할 거야?”
“일단 분위기를 좀 보게. 너희 둘은 그거 해. 우리는 현장에서 발로 뛰어볼 거야.”
“맞아. 즉흥적으로 해보려고.”
각자 결론이 난 거 같아 보이자, 권석현 피디가 분위기를 환기했다.
“일단 빨리 이쪽 프로필을 만들어야겠는데요?”
제작진이라고 놀지는 않았다. 이쪽 오디션을 보기 위해 프로필을 만들어 줄 전문가를 구했다. 사진 스튜디오를 부르고, 전문 사진사를 고용했다.
다들 경력이 꽤 길어서 이런 프로필 사진쯤은 빠르게 찍을 수 있었다. 이후 짤막한 연기 동영상을 찍었다.
“이런 기분 신인 때 이후 처음이야.”
“나도.”
***
(사샤, 마침 동양계 남자 배우를 찾는다고 했지?)
(내가 꼭 추천하고 싶은 배우가 있는데.)
(네 맘에 들 거야.)
시작은 한 통의 전화였다.
(영상 봤어?)
(빨리 봐.)
(그 영상을 안 보고 있는 너는 지금 인생의 절반을 헛산 거야.)
사샤는 계속해서 울리는 메시지에 신경질적으로 노트북을 켰다.
‘대체 어떤 인물이길래 그 마일즈 밀러가 이렇게 호들갑이야?’
게다가 아직 크랭크업도 안 된 영화 촬영분을 보내주기도 했다. 이거, 기밀인데 괜찮은 건가?
<엣디엔드 시즌 5>의 제작자, 사샤 베르너는 영상을 재생하기 전에 윤제이의 프로필 사진을 훑었다.
‘어디서 많이 본 얼굴인데······.’
이렇게 잘생긴 얼굴은 한 번 보면 안 잊는데, 계속 기시감이 든다. 게다가 에이전시도 대형 에이전시다.
‘작정하고 밀어주려는 신인인가?’
사샤 베르너는 윤제이의 신체 조건과 소속 에이전시만 훑어서 그가 어떤 이력을 가졌는지 자세히 보지 않았다.
“······허.”
맨 마지막에 정중하게 쓰인 문장에 인상을 찌푸렸다. 혹시 오디션을 볼 때 한국 예능 촬영에 협조할 수 있느냐는 문장이었다. 사샤는 기가 차서 헛웃음을 내뱉었다.
‘한국에서는 꽤 잘나가나 보지? 그냥 거기서 있지 왜 우리 작품에 지원해서.’
벌써 선입견이 쌓인다. 그를 추천한 마일즈 밀러는 사샤의 성격에 이럴 것임을 짐작했다.
하지만 윤제이의 연기를 보면 싹 사라질 거라 예상했다.
그리고 그 예상은 맞았다. 마일즈가 보내온 영상은 그저 제이든에게 구출되어 밖으로 빠져나가는 장면 하나였다. 하지만 사샤는 그 장면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당시 촬영장에 있던 모든 스태프를 홀린 연기였다. 영상을 통해 걸러져도 그때 윤제이가 느낀 감정은 여과되지 않고 사샤에게 고스란히 전달되었다.
영상을 다 본 사샤는 일단 밀린 업무를 처리했다. 하루 종일 멍했다. 구원받은 한 인간이 빛을 받아 서서히 바뀌는 표정이······.
‘계속 생각나.’
왠지 이 사람을 캐스팅하지 않으면 안 될 거 같은 예감이 들었다. 사샤 베르너는 곧바로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바네사? 혹시 모레 있을 오디션에 와줄 수 있어요?”
(네? 저야 시간은 넘치는데, 왜요?)
“당신 파트너가 될 사람이 올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