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sappeared Genius Child Actor Is Back RAW novel - Chapter (181)
사라진 아역 배우가 돌아왔다 181화(181/287)
자기소개
오디션장에 카메라를 설치하는 사이 제작사 직원 중 한 명이 윤제이의 SNS 계정을 검색했다. 사실 남몰래 팔로우를 누르기도 했다.
“헉, SNS 팔로워가 3천만이 넘는데요?”
한국 배우 중 최고 순위였다.
<백스테이지>가 일본에서 흥행하면서 한 번 크게 늘었고, <인터미션>과 <영구동토>가 국내뿐만 아니라 아시아권에서 흥행을 석권하면서 더 유입됐다.
-우리 아라야를 챙겨줘서 감사하다. 당신은 최고의 남자.
-oppa 한국은 당신이 있기에 너무 좁다.
-MyTube 예능을 보고 왔습니다. 멋진.
-saranghae♥♥♥♥♥♥♥
게다가 ‘출장 레크리에이션’의 출연도 한몫했다. 외국인 멤버의 소통을 돕고, 그들이 나서도록 배려해 주는 모습에 반한 사람이 많았다.
“그래요?”
“보니까 저쪽에서는 꽤 유명한 거 같은데요?”
아까부터 못마땅한 티를 내던 캐스팅 디렉터가 입을 열었다.
“사샤, 우리가 굳이 한국 기성 배우를 섭외하지 않은 이유는 새로운 얼굴이 필요해서가 아니었습니까?”
“우리 쪽에서는 신인이나 다름없지 않나요? 이 사람, 우리 쪽 미디어에서 본 적 있어요?”
뉴스에서는 몇 번 본 적 있겠지. 하지만 그것도 지나가듯 몇 번 본 게 다다. 한국 컨텐츠를 즐겨 보는 사람들에게나 눈에 익겠지, 미국 배우로서는 새로운 얼굴이 맞다.
사샤 베르너는 캐스팅 디렉터를 응시했다.
‘일본이랑 무슨 커넥션이 있는지 자꾸 데이브 무라사키를 추천하는데······.’
데이브 무라사키는 최종 목록에 든 3인 중 한 명이다.
캐스팅 디렉터는 오디션을 건너뛰고 스크린 테스트 급으로 준비하는 이 현장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자신이 추천한 배우는 뒷전이고, 거의 캐스팅이 확정된 것처럼 판을 깔고 있으니까.
“그리고, 말이 신인 발굴이지, 그게 출연료가 싸니까 굳어진 거 아니에요?”
그 말에는 반박할 수 없었다. 그들 드라마가 처음부터 큰 자본을 들인 건 아니다. 각본과 소품 등에 공을 들이고 배우들을 전부 신인으로 썼는데, 시즌 1이 예상외로 터졌다.
시즌 1의 배우들은 이후 좋은 작품에 캐스팅되면서 스타 반열에 올랐다.
그 때문에 캐스팅 디렉터는 힙스터 병에 걸린 것처럼 취해 있었다. 본인이 스타를 만들었다는 것에 도취한 것이다.
사실 그 때문에 시즌 4가 망한 것도 있다. 이젠 예전 방식을 바꿀 때가 됐다.
“무엇보다, 우리 지금 그거 가릴 때 아니잖아요.”
“그건······.”
“이번 시즌 망하면 시리즈 자체가 캔슬될 수 있는데······ 나야 다른 작품 제작 맡으면 되지만, 여러분들은?”
사샤 베르너는 잘나가는 드라마 제작자다. 짤릴 염려는 없지만, 다른 이들은 달랐다. 요즘 들어 제작사를 휩쓸고 있는 해고의 칼바람 때문이었다.
다들 이번 시즌에 사활을 걸어야 하는 상황이었다. <엣디엔드> 시리즈는 세계적으로 인기가 많긴 했지만, 아직 아시아권에는 화력이 약했으니까. 겸사겸사 좋다.
“그런데, 한국 방송 촬영 조건은 뭡니까? 너무 건방진 거 아닙니까?”
“내가 허락했는데요.”
“예?”
“총괄 제작자의 권한으로요. 왜요, 불만이에요? 홍보되고 좋잖아? 어차피 대기 시간에 잠깐 찍는 거고, 여기까지는 못 들어오게 했는데?”
사샤 베르너가 직급으로 찍어 누르니 할 말이 없어진 캐스팅 디렉터가 입을 꾸욱 다물었다. 그 분위기에 공간이 싸늘해졌다.
“저, 저는 이 사람 좋아요.”
작가, 올리비아 박이 소심하게 손을 들었다.
어차피 이런 권한은 제작사에 있어서 작가는 아무 힘이 없다. 하지만 작가는 윤제이가 마음에 들었다. 일단 한국계라는 것부터 먹고 들어간다. 게다가 얼굴도 잘생겼다.
‘최종 후보에 든 3인은 그림체가 비슷비슷하단 말이지.’
쌍꺼풀이 없이 옆으로 찢어진 눈이나 광대뼈가 도드라지는 모습이 비슷했는데, 이는 저들이 동양인에게 가진 고정 관념이 사라지지 않았다는 걸 의미했다.
오디션에 몰린 사람이 몇 명인데, 분명 저런 이미지에 벗어난 지원자도 있었을 텐데 말이다.
“작가님.”
캐스팅 디렉터가 살벌한 눈빛으로 작가를 바라보았다.
“아니, 제 의견은 그렇다고요. 어차피 제 의견은 그리 중요하지 않잖아요. 캐스팅은 어차피 제작사에서 하는 건데.”
캐스팅 디렉터가 밀고 있는 일본계 배우 때문에 두 사람은 감정의 골이 깊었다.
아무리 국적이 미국이라고 해도 독립운동가 후손 역할에 일본계는 절대 용납할 수 없었다. 하지만 캐스팅 디렉터는 작가 주제에 네가 감히 내 안목을 무시하냐는 입에 담지 못할 발언까지 했다.
‘저 사람 전부터 맘에 안 들었어.’
총괄 제작자인 사샤 베르너가 강력하게 밀고 있으니 캐스팅 디렉터에게 쫄아들 필요 없다. 올리비아 박은 이참에 사샤 베르너 편에 섰다.
“감독님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흠, 저요?”
갑자기 지목받은 감독은 제 턱을 쓸어내렸다.
‘저 사샤 베르너가 강력하게 주장하는 것을 보면 단순 외모가 뛰어나서는 아닐 거야.’
사샤 베르너는 무언가에 홀린 듯 윤제이를 추천했는데, 어디서 뭔가를 추가로 보고 온 게 분명했다.
‘대체 뭐 때문일까.’
마일즈 밀러니 한국에서 잘나가는 배우니 미국의 영웅이니 이런 배경을 다 지우고 보자.
일단 마스크가 훌륭하다. 피지컬도 좋아서 키가 큰 바네사 왓슨과도 잘 어울릴 거다. 이건 최종 후보에 든 3인도 마찬가지지만, 그들보다 더 뛰어났다.
‘너무 잘난 지원자가 와도 곤란하네.’
감독은 ‘나는 왜 여기 있지?’ 어리둥절한 바네사 왓슨을 바라보았다.
그녀와 윤제이가 나란히 앉은 모습을 상상하자, 이거 왠지 윤제이를 캐스팅하게 되면 메인 커플까지 위협할 것 같은 기묘한 예감이 들었다.
“아직 캐스팅이 확정된 게 아닙니다. 시작도 전에 이러지들 마세요.”
“역시 그렇죠?”
“네. 가장 최우선인 것은 연기니까요.”
일단 ‘연기’만 보자. 연기가 처음인 바네사 왓슨을 이끌어줄 상대 배우가 필요한 것도 사실이니까.
최종 목록에 든 3인은 신인이니 미리 시놉시스나 지문을 전달해주고 연습할 시간을 줬다. 하지만 이 사람은 경력 있는 배우이니 아예 돌발 상황을 만들면 어떨까?
“지원자 부르러 갔나요?”
“네.”
“얼마나 걸릴 것 같아요?”
“슬슬 올 것 같습니다.”
일부러 드라마에 관한 지문을 오디션을 보기 직전에 전달했다. 대본도 아니고, 작가가 짤막하게 휘갈긴 글이다.
과연 이 사람은 어떻게 반응할까. 저 문을 그냥 열고 들어와서 자기소개를 하고, 시놉시스에 관한 것을 물어볼까?
“······바네사.”
“네, 감독님.”
“저기 서서 노래를 불러줄 수 있겠나요?”
감독의 정중한 요청에 바네사는 엉거주춤 일어나서는 심사위원들 앞에서 노래를 불렀다.
바네사 왓슨은 연기력보다 노래로 뽑힌 사람이었다. 작품 속 ‘라리아 제나 루이스’는 미국의 3대 재즈 디바를 오마주한 캐릭터였다.
“나는 늘 외톨이였어요.
누구도 나를 원하지 않았죠.”
그녀의 입에서 애달픈 재즈 노래가 흐르자, 오디션장의 분위기가 한결 달라졌다. 노래 하나만으로 뽑은 배우답게 정말 좋았다.
쾅!
이윽고 문에 몸을 부딪친 윤제이가 몸을 휘청거리면서 바닥에 엎어졌다.
“헉.”
“뭐, 뭐야?”
갑작스러운 큰 소리에 다들 놀라서 어깨를 떨었다. 바네사도 놀라서 노래를 중단했다.
‘감독님, 어떻게 해요?’
‘계속 불러요.’
바네사 왓슨이 감독을 쳐다보니, 감독이 손을 돌렸다. 그의 입꼬리는 위로 솟구쳐 있었다.
바네사는 다시 노래를 불렀다. 심사위원들은 밖에서 소란이 일었나? 싶었지만 이윽고 윤제이의 얼굴이 멀쩡하다는 것을, 그가 지문 속 상황을 연기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진짜 어디 맞은 줄 알았어.’
‘세상에, 이런 등장은 처음 보는데.’
마치 벽에 기대앉은 것처럼 바닥에 자리 잡은 윤제이는 지치고 처량해 보였다. 그는 옷소매로 입가를 쓱 훔치며 보이지 않는 피를 닦았다.
그가 돌발 지문을 본 시간은 3분이 채 되지 않았다. 그 짧은 상황이었음에도 두 남녀가 어떤 상황인지 이해했다.
노란 원숭이와 물라토. 이 땅에서 차별받는 존재. 두 사람은 비슷한 처지에 놓였기에 서로를 이해하고 깊게 공감할 수 있을 거다.
“당신도 똑같나요?
어둠 속에서 허우적대고 있나요?
나와 함께 있어요. 내 손을 잡아줘요.”
그리고 바네사 왓슨이 부르는 노래 가사는 그들의 상황을 은유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남자에게 있어서 여자가 부르는 노래는 그의 일탈이자 안식처나 다름없었다.
‘내가 당신의 손을 잡아줄 수 있을까?’
바네사에게서 등을 돌린 채 노래만 듣던 윤제이는 남자의 상황에 동화되었다. 이윽고 용기 내서 몸을 돌린다.
돌발적으로 준 지문에는 없는 행동이다. 상관없었다. 불친절한 건 제작사 측이니까. 그가 어떻게 이 지문을 해석했는지 보여주면 된다.
남자는 여자의 얼굴을 처음 마주한다. 자신과 피부색이 다르지만 실망하지 않는다. 오히려 더 빠져든다.
당신도 나와 비슷하구나. 나는 혼자가 아니구나. 남자의 표정이 서서히 바뀐다.
“······허.”
그 표정 연기만으로 남자가 여자에게 한눈에 반하는 순간임을 알 수 있었다.
사샤 베르너는 마일즈 밀러가 보내온 영상을 봐서 알았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모진 고문 끝에 구원받은 군인의 연기와는 궤가 달랐다. 한 남자가 한 여자에게 깊게 빠져드는 순간. 고전적이고 마법 같은 로맨스는 우리 드라마 시리즈의 주제와 잘 맞지 않는가.
‘그 짧은 사이에 분석해서 저 정도면, 미리 대본을 주면 어떤 연기가 나올까?’
‘한국에서 인기 있다고 해서 단순 얼굴 때문인 줄 알았는데······ 얼굴이 아니라 연기 때문이구나.’
‘······뭐, 꽤 잘하긴 하는데. 이러면 데이브 무라사키가 이길 수 있을까?’
감독과 작가, 그리고 캐스팅 디렉터마저도 벅찬 숨을 내뱉으며 그의 연기에 빠져들었다.
‘말을 걸고 싶어.’
제삼자 입장인 심사위원들이 점점 그에게 홀리고 있다. 그렇다면 앞에서 노래만 부르고 있던 바네사 왓슨은 어떨까? 더 했다.
그녀는 윤제이가 작품 속 캐릭터를 연기한다는 걸 알았지만, 내 노래를 저렇게 듣고 있는 저 사람은 누구일까? 왜 보기만 할까? 라는 생각이 끊임없이 들었다.
“아······.”
바네사의 노래가 끝난다. 윤제이는 아쉬운 듯 숨을 토해냈다.
바네사도 애가 탔다. 그녀가 이 드라마 시리즈를 위해 작곡한 곡은 이거 하나밖에 없다. 어떻게 할까?
가만히 있다가는 저 남자가 저 문을 통해 나가버릴 것만 같아서, 다시는 볼 수 없을 것만 같아서 바네사는 홀린 듯 윤제이에게 다가간다.
“있잖아요.”
“······!”
윤제이가 몸을 흠칫 떨었다. 그는 소매로 제 얼굴을 가리고 두세 걸음 물러났다. 지금 그는 집단으로 폭행당해 한쪽 눈이 붓고 옷이 더럽다. 이런 볼품없는 모습을 보이기 싫었다.
내가 몰래 노래를 듣는다는 것을 들켰어. 어떡하지? 내게 실망하지 않을까? 아니지. 내가 뭐라고. 당신에게 있어서 난 그저 지나가는 사람일 뿐인데.
“이름이 뭐예요?”
하지만 여자는 점점 더 다가왔다. 남자는 도망칠 듯 뒷걸음질 쳤다.
“나, 난! 라리아, 라리아예요!”
그녀는 바네사 왓슨이 아닌 극 중 자신이 맡을 배역의 이름을 소개했다. 왠지 이래야 할 것만 같아서였다.
“당신이 늘 이 시간에 내 노래를 듣고 있다는 걸 알고 있어요.”
남자, 윤제이가 멈춘다. 나를 알고 있어? 어떻게? 부드러운 여자의 목소리에서 점점 희망이 생긴다.
“내 노래는 어땠어요?”
“······좋았습니다. 더할 나위 없을 만큼.”
여자가 기쁜 듯 환하게 웃었다. 남자는 그 표정에 제 얼굴을 가린 손이 내려갔다는 것도 모른 채 홀린 듯 여자를 보았다.
“이제 당신의 이름을 알 수 있을까요?”
여자가 악수하듯 손을 내밀었다. ‘나와 함께 있어요. 내 손을 잡아줘요.’라는 노래 가사가 어디서 들리는 것만 같다.
남자가 미세하게 떨리는 손을 여자에게 얹었다. 내가 당신과 닿아도 괜찮을까? 하는 조심스러운 몸짓이었다.
바네사는 남자의 온기가 닿자마자 전기가 찌릿 흐르는 것 같았다.
남자는 바네사의 어깨 너머로 자신을 찍는 카메라를 향해 입을 열었다. 제작진은 ‘김노아’라는 배역의 이름을 알려주지 않았다. 그래서 대신 자신의 이름을 말했다.
“윤제이, 입니다.”
정말 강력한 자기소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