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sappeared Genius Child Actor Is Back RAW novel - Chapter (182)
사라진 아역 배우가 돌아왔다 182화(182/287)
오디션은 기세야.
배역 ‘김노아’가 아닌 배우 본체의 이름을 부르자마자, 오디션장을 감돌던 긴장의 끈이 맥없이 끊어졌다.
“······와.”
“이건······.”
작가, 올리비아 박은 제발 저 사람을 뽑아달라며 이글이글 타는 눈빛으로 사샤 베르너를 바라보았다.
사샤 베르너는 팔짱을 끼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뿐만 아니라 오디션장을 준비하고 벽에 대기하고 있던 스태프마저도 탄식했다.
감독은 순식간에 사랑에 빠진 볼품없던 청년에서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오는 윤제이를 바라보았다.
사실 바네사의 노래가 끝나면 연기도 끝일 것 같아서 아쉬웠다. 노래를 들으면서 서서히 바뀌는 눈빛과 표정만으로도 윤제이는 충분히 보여줄 것을 보여줬다.
하지만 바네사도 그 순간에 애드리브를 넣으며 마치 극에 들어갔다 나온 것처럼 행동했다.
‘바네사. 저 배우가 단기간에 실력이 상승한 건 아닐 테고, 역시 저 사람 때문이겠지.’
바네사 왓슨은 가장 먼저 뽑힌 배우였다. 소소하게 마니아층이 있는 싱어송라이터였는데, 주로 재즈곡을 커버해 마이튜브에서 유명했다.
1920년대를 다루면 재즈를 빼놓을 수 없었다. 연기는 디렉팅을 잘 주면 되고, 그래도 연기가 어색하다면 연출로 커버할 자신 있었다. 하지만 저 모습을 보니 점점 욕심이 생긴다.
‘상대 배우의 연기력까지 끌어올리는 배우라······.’
이 순간 바네사 왓슨은 ‘라리아 제나 루이스’였다. 자신이 판을 깔아주긴 했어도,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어떻게 진짜 누군가에게 맞은 것처럼 문을 박차고 들어올 수 있는지······ 순발력이 대단하다.
옆에 앉은 사샤 베르너가 이럴 줄 알고 있었냐고 속삭였다. 감독은 고개를 저었다.
‘이거 참. 이걸 보고 그냥 지나치라고?’
결국 캐스팅 디렉터까지 항복했다. 데이브 무라사키와 그의 회사에는 미안하지만, 그들도 이 연기를 본다면 수긍할 거다. 그는 올리비아 박이 치는 박수에 합류했다.
“브라보!”
“바네사. 진짜 잘했어요.”
바네사는 조금 전 감각에서 헤어 나오질 못하고 있다가 저 깐깐한 사람들이 박수 쳐 찬사를 보낸다는 것에 놀랐다.
윤제이가 제 노래를 들으면서 서서히 사랑에 빠지는 눈빛과 동시에 두 사람이 있는 장소가 오디션장이 아닌 재즈 바의 뒷골목으로 바뀌는 듯한 착각이 일 정도였다.
“어······ 어어······.”
“안녕하세요.”
“아, 네. 안녕하세요.”
윤제이의 인사말에 정신을 차린 바네사가 그를 올려다보았다.
“진짜 이름을 들을 수 있을까요?”
“바네사 왓슨이예요. 라리아가 배역 이름이라는 건 어떻게 알았어요?”
“연기를 잘하셨으니까요.”
윤제이가 미소를 지어 보이자, 바네사 왓슨은 고개를 살짝 돌려 그의 시선을 피했다. 얼굴이 살짝 화끈거린다.
“제가 다 한 건 아니죠. 대단하시네요.”
연기는 이 남자가 다 했다. 자신은 그 흐름에 무심코 편승한 것뿐.
‘······이런 느낌은 처음이야.’
그리고 가능하면 다시 겪고 싶다. 연기 수업을 받으면서 같이 연기했던 상대 배우는 많았지만, 이렇게 완벽한 합이 이루어지는 순간은 처음 겪었다.
바네사는 노래로 뽑히긴 했어도, 연기에 욕심이 없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제게 별로 기대 안 하는 듯한 제작진들의 시선, 기본만 하라는 인식을 바꾸고 싶었다.
“어떠셨습니까?”
바네사는 당당하게 말하는 윤제이를 올려다보았다.
연기 하나 보여줬다고 오디션장의 공기를 바꾸는 사람이다. 아마 이 사람은 최종 합격할 거다.
대기하는 시간에 얼핏 듣기로는 한국에서 유명한 배우라던데······ 잠깐, 그러면 합격해도 안 하겠다고 하는 거 아냐?
‘그러면 안 되는데.’
바네사는 애타는 눈으로 사샤 베르너를 쳐다보았다. 이 사람 아닌 상대 배역은 이제 상상하기 어려웠다.
‘그림 좋네.’
사샤 베르너는 그 심정도 모르고 흡족하게 웃었다. 두 사람은 지금까지 손을 잡고 있었다. 얼굴 케미도 좋고 덩치 차이도 좋다.
“어떻다니······ 방금 박수 친 거 못 봤어요? 겸손하시네요.”
“훌륭했습니다. 바네사, 고마워요.”
바네사가 화들짝 놀라서 손을 내리고 제 자리를 찾아 들어갔다.
윤제이는 스태프가 가져온 접이식 의자에 앉아 물을 마셨다. 그를 평가하러 온 사람들이 수군거리면서 의도치 않게 잠시 휴식 시간이 되었다.
[제이랑 민재는 오디션 별로 안 봤었나?] [응. 한두 번 정도?] [나도.]권민재는 아역 때부터 차근차근 자리를 잡아서 그런지 오퍼가 들어온 작품을 골라갈 수 있었다.
윤제이도 윤제희 시절 <어린이> 한 번이 고작이고, 재데뷔 이후로는 이서원의 힘으로 작품을 골라갈 수 있어서 오디션을 볼 기회가 없었다.
<인터미션>도 악기 연주가 핵심이라 연기로 오디션을 봤다고 하면 애매하다.
대학생 때 중소 소속사에 캐스팅되어 두 사람보다 오디션을 많이 본 최우주와 박다율이 진지하게 목소리를 내리깔면서 말했다.
[잘 들어. 오디션은 기세야.] [그렇지. 우리가 쌩 신인도 아니고, 우리나라에서는 잘나가는 배우 아니냐? 너무 쫄 필요 없어.] [어차피 이 예능 때문에 참여하는 거니까 가벼운 마음으로······.]그럴듯한 말이었지만, 두 사람은 다리를 달달 떨면서 얘기하고 있었지. 정작 오디션을 보는 자신보다 더 긴장한 모습이 생각나서 웃음이 나왔다.
그 여유로운 웃음에 바네사가 흠칫 놀랐다. 진짜 안 하려는 건 아니겠지? 그런 연기를 보여줘 놓고서?
‘이래선 안 돼.’
바네사가 자리에서 일어나 사샤의 뒤에 서서 귓속말했다. 사샤와 제작사 직원들은 이미 ‘김노아’ 역할에 윤제이를 확정할 기세였다.
“저, 프로듀서님.”
“바네사, 왜요?”
“혹시 저 사람이 안 한다고 하면 어떻게 해요?”
“네?”
그 말에 사샤의 옆에 있던 감독과 작가가 눈을 크게 떴다.
“그······ 아까 들어보니 한국에서는 잘나가는 배우라면서요. 그쪽 스케쥴 때문에 우리가 합격시켜도 나중에 거절하면······.”
“어, 그건······ 생각 안 해봤는데요.”
당연히 해야 하는 거 아닌가? 라고 생각하던 사샤 베르너는 머리에 망치를 얻어맞은 듯 띵해졌다.
오디션을 보면서 많은 동양계 배우를 마주했다. 다들 간절하게 오디션에 임했다.
사샤도 그걸 당연하게 여겼다. 여긴 할리우드고, 우리 시리즈는 인기 시리즈니까. 거절하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자만했다.
‘그러고 보니 마일즈가 가볍게 소개해 준 거였지, 본인의 의사는 어떤지 모르잖아.’
그렇게 간절하지 않다면? 오디션을 보게 된 계기도 연기를 주제로 한 한국 예능 프로그램 때문이라는 것도 뒤늦게 생각났다.
세상에, 그러고 보니 윤제이는 꿇릴 게 없는 사람이다. 이미 할리우드 최대 규모의 영화에도 짧지만 강렬한 인상을 심어줄 역할로 나온다.
그 영화가 개봉된다면 러브콜이 쏟아질 거다. 굳이 이 시리즈 아니더라도······.
‘아, 안돼!’
사샤가 머리를 쥐어뜯자, 엿듣고 있던 사람들의 마음에도 불안함이 스며들었다. 저런 완벽한 ‘김노아’를 보여줬는데, 안 한다고 하면?
묘하게 형세 역전이 된 구도 속에서 인터뷰가 시작됐다.
“지문을 본 건 아까 대기시간에 잠깐이었을 텐데, 어떻게 그 짧은 순간에 이런 모습을 보여줄 생각을 했나요?”
“그냥 몸이 움직였습니다. 여러분도 그걸 의도하고 바네사의 노래를 들려준 거 아닌가요?”
“역시 눈치채고 계셨군요. 전달해 드렸던 지문을 읽어보고 어땠습니까?”
“표현하는 게 어렵지는 않았습니다. 누군가에게 차별받는 시선은 익숙하거든요.”
윤제이는 별거 아니라는 듯 어깨를 으쓱했다.
[쟤가 걔야? 그 장애인?] [우리 엄마가 쟤랑 친하게 지내래. 별거 아니면서······.] [괴물 같은 새끼.] [인간 맞아?]윤제희 시절이 그랬고, 그의 능력을 겪어본 몇몇 군인들이 그랬다.
제작진은 오디션 당일에나 작품의 지문 일부를 건넨 것에 찔려서 시선을 피했고, 몇몇은 윤제이가 이곳에서 살면서 인종 차별을 많이 당한 줄 알고 헛기침하기도 했다.
“그, 크흠. 모든 사람이 그러는 건 아닙니다.”
“······?”
무슨 오해를 했는지는 몰라도 상황이 제법 유리하게 흘러가는 것 같다.
윤제이는 그저 의미심장하게 웃기만 했다. 예능 촬영 협조를 받은 것에 감사해서 조금은 굽힐까 싶었는데, 그럴 필요가 없어 보인다.
[제이, 당신은 가능성이 있어요. 아니, 가능성이 아니죠. 이미 완성된 배우예요. 개인적으로 한국에만 있는 게 너무 아쉬울 정도로······.] [한국 스케쥴이 중요한 건 알겠지만, 시간이 되면 미국에도 활발히 활동해주길 바랍니다. 저희가 최고 수준으로 지원하겠습니다.]미국 에이전시 측 사람들은 윤제이와 <악의 몰락>의 현장을 다니면서 그가 어떤 연기를 펼치는지 다 봤다.
유명 에이전시 사람들이 이럴 정도면 가능성은 충분히 봤다는 건데, 그렇다면 태도를 달리할 필요가 있다.
“만약 우리 시리즈에 합류하게 된다면······.”
“글쎄요, 일정을 확인해봐야 알 것 같습니다.”
“······네?”
사샤 베르너는 ‘그럼 그렇지’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푹 숙였다. 그녀의 반응에 다른 이들이 어리둥절해서 윤제이를 바라보았다.
흔쾌히 하겠다는 소리가 아니라 생각해 보겠다고? 왜지? 야심하게 할리우드 진출을 하려는 게 아니었나?
“어······ 왜죠?”
“프로듀서님이 한번 보라고 초대해 주셔서 본 거라서······ 기회를 주신 것에 감사합니다.”
내가 굽히게 되면, 내 뒤로 이쪽에 진출하게 될 한국 배우가 무시당할지도 모른다.
이건 최우주가 해준 조언이다. 그는 할리우드에서 잠깐 단역으로 출연한 적이 있었다. 자세히 알려주지 않아서 모르지만, 별로 좋은 기억은 아니었나 보다.
“저는 제가 연기했던 배역의 이름도 모릅니다. 어떤 캐릭터인지, 어떤 서사를 가졌는지 시놉시스를 제대로 읽지 못했으니까요.”
별개로 최우주의 얘기에는 공감한다. 이쪽은 자본도 환경도 좋은 거 같으니 발을 뻗어도 되겠다. 게다가 조금 불만스러운 것도 사실이다.
“아, 그건······ 저희 오디션 방침이라 어쩔 수 없었습니다.”
“그런가요?”
윤제이는 잇새로 웃음을 흘려보냈다. ‘일단 속아는 줄게’라는 태도였다.
캐스팅 디렉터가 탄식을 내뱉었다. 그의 연기를 보지 않았더라면 이 모습을 보고 건방지다 생각했을 거다. 어차피 후보군이 없는 것도 아니고, 저 사람 그냥 내보내라고 했을 거다.
하지만 저건 이유 있는 자신감이다. 이미 상황은 윤제이 쪽에 유리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연기 하나로 설득한 거다.
“그, 궁금하시다면 간단히 설명해 드릴 수는 있는데 시간 괜찮으시죠?”
“네. 궁금합니다.”
“일단······.”
감독이 나서서 간략히 설명했다. 윤제이는 마음에 드는 티를 숨겼다.
일단 이쪽 인기 시리즈에서 한국의 독립운동가를 다룰 줄은 몰랐다. 비중도 적고, 조연이지만 그래도 신선하긴 하다. 라리아와의 관계가 어떻게 될지도 흥미로웠고.
“스케쥴 조정이 어렵다고 하시면 저희가 맞춰드릴 수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다음에 또 뵙길 바라겠습니다.”
그렇게 예상보다 더 긴 시간 끝에 오디션이 끝났다. 윤제이가 문밖으로 나가자 다들 웅성거리면서 얘기를 시작했다.
“저 사람이 되겠지?”
“어차피 사샤 베르너가 침 발라놓았잖아.”
“하긴, 프로듀서가 최종 결정하니······.”
“그런데 안 하겠다고 하면 어떡해?”
“설마. 우리 시리즈가 어떤 시리즈인데.”
“모든 외국 배우가 할리우드 진출을 꿈꾸는 건 아니니까.”
***
윤제이가 오디션장을 나오자, 복도에서 대기하고 있던 권민재와 박다율 그리고 최우주가 벌떡 일어났다. 언제 왔지? 금세 복도가 북적거렸다.
예능 촬영이 아니꼬워서 쳐다봤었던 스태프는 아예 찍기 편하게 자리를 비켜주고 있었다. 그 변화를 권석현 피디가 눈치챘다. 잘 풀렸나 본데? 연기로 진짜 압살했나?
“어떻게 됐어? 엄청 오래 걸리던데?”
“뭐, 그냥 봤지.”
권민재의 질문에 윤제이는 대수롭지 않은 듯 말했다.
“그냥 봐서 저런 박수 소리가 나와?”
“들렸어? 오래 기다렸나 보네.”
“방음이 잘 안되는 것 같더라고.”
“그래서, 안쪽 환경은 어땠어?”
세 사람과 함께 자리를 옮기려는데, 뒤에서 누군가 급하게 그를 불렀다.
“저기요! 젠킨스 씨!”
사샤 베르너였다. 저 양반이 여기까지 나와서 우리 배우를 부른다고? 윤제이의 에이전시 측 매니저가 눈을 반짝였다.
“자세한 건 저와 얘기하시죠. 제가 저분 에이전시 매니저입니다.”
매니저가 일단 촬영하고 계시라고 말하며 윤제이에게 엄지를 치켜들었다.
“뭐지?”
“······잘 된 거 같은데?”
자세한 내막은 몰라도 분위기로 봐서는 느낌이 좋다. 권민재가 씨익 웃으며 윤제이의 어깨에 제 팔을 올렸다.
“합격 기념으로 네가 밥 사라.”
“아직 결과도 안 나왔는데?”
“저 반응 보니까 백 프로 같은데? 가자!”
“제이가 밥 사는 거야?”
“여기서 가장 비싼 데가 어디냐?”
윤제이는 그들 손에 이끌리면서 피식 웃었다. 요새 웃음이 헤퍼진 거 같지만, 본인은 자각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