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sappeared Genius Child Actor Is Back RAW novel - Chapter (190)
사라진 아역 배우가 돌아왔다 190화(190/287)
At The End (2)
“약혼이요?”
“네 할아버지의 오랜 친우의 가문이야. 뱅크스라고, 뉴욕에서 유명한······.”
“그래서 그 사람이 여기까지 왔다고요?”
“그래. 한 번 만나보는 게 어떠니? 여기까지 왔는데.”
아이비 콜린스의 모친은 정략결혼을 쌍수 들고 환영했다. 굳이 제 딸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객관적으로 본 아이비는 아름다웠다. 다만 적령기가 지났는데도 결혼할 생각이 없으니 애가 탔었다.
“어떻게 나랑 상의 한마디도 없이 결정할 수 있어요!”
“아이비? 아이비!”
저 자유분방한 성격만 좀 어떻게 하면······ 아이비의 모친은 한숨을 쉬었다. 설마, 이대로 집을 나가버린 건 아니겠지? 오늘 손님이 오는데?!
“얘 어디 갔어?”
“모르겠어요.”
“주인마님! 손님 오셨어요.”
“뭐, 벌써?!”
아이비의 모친이 화들짝 놀라서 창밖을 바라보았다. 고급 자동차에서 내린 금발의 남자는 소문대로 잘생겼다.
여자가 많이 꼬일 얼굴이긴 한데, 아무래도 상관없다. 모친은 딸을 좋은 가문에 시집보낼 좋은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빨리 아이비 좀 잡아 와!”
“네!”
“라리아, 라리아는 어디 있지?”
작정하고 숨어버린 라리아를 찾을 수 있는 건 절친인 라리아밖에 없었다.
“어떻게 이렇게 갑자기 말할 수 있어?!”
모친이 애타게 찾는 것도 모르고 비밀 장소에 무릎을 끌어안고 있는 아이비를 발견한 건 마침 근처에서 노래 연습을 하는 라리아였다.
“이렇게 도망칠 걸 알아서 주인마님이 당일 통보한 거지.”
“너까지 이럴 거야?”
아이비가 눈을 흘겼다. 라리아는 그저 웃었다. 콜린스 가는 이 지역에서 제법 유명한 가문이었다.
기름이 터진 LA 땅을 꽉 잡은 부동산 부자. 여유롭게 투정을 부릴 수 있는 상황이 부럽기도 했다.
“미안.”
“갑자기 왜?”
“네게 화풀이하고 있잖아. 넌 아무 잘못도 없는데.”
이렇게 말하니 도저히 미워할 수 없는 아가씨다. 라리아는 토라진 아이비의 옆에 앉았다. 넝쿨이 텐트처럼 늘어져 있었는데, 이곳은 두 사람만 아는 은신처였다.
“그 주점에서 노래를 부르는 건 어때?”
“좋아. 어제는 사장님이 반주자를 데려왔어.”
“오.”
빈 주점에서 몰래 노래를 부르는 건 금세 발각됐다. 하지만 주인은 몰래 가게에 들어온 라리아와 아이비를 나무라지 않았다.
라리아의 노래 실력이 범상치 않음을 문밖에서부터 알았기 때문이다.
은밀한 경로를 뚫어 술 밀수에 성공한 주점 사장은 곧 영업을 재개한다며, 작은 무대를 라리아에게 맡겼다.
홀로 숲에서 노래를 부르던 재즈 가수 지망생은 자그마한 무대 위에 서는 영광을 얻었다.
[물라토가 노래를 불러봤자 얼마나 잘 부른다고.] [이봐, 네 팔을 그으면 무슨 색의 피가 나올까? 소문대로 피에서 오물 냄새가 나나?] [세상 살만해졌군. 물라토가 노래를 부르는 펍에서 술을 마시다니.]물론 무대에 올라선다고 모든 게 꽃밭으로 펼쳐지지는 않았다.
그녀의 피부색은 애매했다. 백인에도, 흑인사회에도 섞여 들 수 없었다. 물라토라 낮잡아 부르며 허락 없이 그녀를 만지거나 더럽다고 욕을 했다.
‘오늘도 왔네.’
온갖 모욕적인 말을 들어도 라리아는 꿋꿋이 무대 위에 섰다. 이 기회 아니면 사람 앞에서 노래를 부를 수 없다.
그리고 주점의 뒷문에 기대 자신의 노래를 듣고 가는 검은 머리의 남자 덕분도 있었다. 그는 그녀의 진정한 관객이었다.
주점의 손님들은 그녀를 신기한 동물원 원숭이를 구경하듯 바라보고, 그녀의 노래를 들었다.
하지만 남자는 달랐다. 남자는 일정 시간에 나타나서 그녀의 노래를 엿듣고 소소한 선물을 남기고 갔다. 노래 잘 들었다는 짤막한 쪽지를 남겨주기도 했다.
남자가 어디선가 꺾어온 들꽃다발은 아직도 라리아의 방 화병에 소중히 꽂혀 있었다.
“밤길이 위험하지 않아? 내가 마중 나갈까?”
“음······ 괜찮아.”
라리아는 애써 평정을 가장했지만, 입에는 피식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밤길에 시비가 걸려 위험에 빠질 뻔한 이후로 남자는 일정 거리에서 떨어져서 그녀를 따라왔다.
처음에는 저 남자가 왜 나를 따라오나 경계했다. 하지만 그게 밤길이 위험한 자신을 위한 일이었음을 깨달았다.
아마 처음 시비가 걸렸을 때도 멀리서 큰 소리를 내 주위를 돌린 것도 남자가 한 일일 거다.
“뭐야?”
“큼, 뭐가?”
남자를 떠올리자 입가에 미소를 숨길 수 없었다. 아이비는 친구의 표정 변화에 히죽 웃었다. 목석같은 내 친구가 이런 표정을 짓는다고?
“뭐 있구나! 누구야?”
“아니야.”
라리아는 손을 휘저었지만, 아이비는 집요했다.
“손님이야?”
“음······ 손님이라면 손님이지.”
“그렇게 애매하게 말하지 말고, 뭔데? 남자야?”
결국 남자에 관해 실토한 라리아의 얼굴은 사랑에 빠진 여자의 표정이었다.
아이비는 운명적인 사랑을 믿었다. 우연히 어딘가에서 만나서 한눈에 사랑에 빠지는 것 같은······ 그래서 지금까지 자연스러운 만남을 추구했지만, 잘 풀리지 않았다.
아이비는 라리아가 내심 부러웠지만, 티를 내진 않았다.
“한 번 말을 걸어보지 그래?”
“음?”
“얘기 들어보니 남자는 먼저 다가올 생각이 없어 보이던데.”
“그런가?”
“그래!”
아이비는 제 일이 된 것처럼 흥분해서 말했다. 백인과 흑인 혼혈이라는 것 때문에 연애는 이미 포기했다는 친구의 변화를 진심으로 응원했다.
“그렇게 설레면 너도 만나보지 그래? 약혼자.”
“할아버지끼리 정한 약혼인데 뭐. 생각 없어.”
“왜? 아직도 운명적인 만남을 꿈꾸는 건 아니겠지?”
아이비는 뜨끔했지만, 애써 모른 척 말했다.
“그냥, 누군지도 잘 모르잖아.”
“이제라도 알아보면 되는 거 아냐?”
“하지만······ 선대가 정해줬다고 냉큼 찾아오는 것도 별로······.”
“냉큼 찾아와서 미안하군요.”
낯선 남자의 목소리에 아이비와 라리아는 등에 소름이 끼쳤다. 고개를 돌려보니 금발의 훤칠한 미남이 팔짱을 낀 채 짝다리를 짚고 있었다. 누가 봐도 좋은 감정이 안 느껴졌다.
아서 뱅크스와 눈이 마주친 라리아는 벌떡 일어나 그 자리에서 벗어났다. 저 남자는 아이비에게는 관대해도 자신에게는 관대하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다.
“손님을 퇴짜 놓고 어디 계시나 했습니다.”
“헉.”
라리아의 뒤로 두 사람의 대화가 들렸다. 슬슬 뒤를 바라보니, 냉랭한 남자가 아이비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하지만 눈치 빠른 라리아는 그의 눈에 깃든 호의를 읽었다.
‘잘될 거 같은데?’
사회에서 받아들여지지 않는 출신답게 어릴 때부터 눈칫밥을 키워왔다. 첫 만남이 좋지 않았지만, 저런 운명적인 만남도 있는 거지.
그녀는 웃으며 저택 밖을 나섰다. 오늘은 주점에 출근하는 날이다. 그 남자가 또 올까? 오겠지. 하루도 빠지지 않고 찾아왔으니까.
주점의 주인은 라리아가 설 수 있는 무대를 주긴 줬지만, 그렇다고 좋은 사장은 아니었다. 오픈 준비부터 온갖 잡일을 떠넘겼다.
“나는 늘 외톨이였어요.
누구도 나를 원하지 않았죠.”
고된 일을 하면서도 입에는 절절한 노래가 흘렀다. 그러고 보니, 아이비의 약혼자가 뉴욕에서 왔다고 들었다. 그곳에서는 재즈 가수가 큰 무대에서 공연하고 흑인이든 상관없이 유명 가수로 대접해준다고 한다.
‘여기서 돈을 더 모으면······ 나도 갈 수 있지 않을까?’
라리아는 괜한 꿈은 꾸지 말자며 단념하지 않았다. 언젠가는 자신도 뉴욕이나 시카고의 무대 위에서, 더 많은 관객을 보며 노래를 부르고 싶다.
한창 노래를 부르던 라리아는 뒷문 쪽에서 인기척을 느꼈다.
‘그 사람이 왔구나.’
사실 일부러 뒷문을 더 열어놓았다. 남자가 자신을 볼 수 있도록. 남자는 자신을 제대로 보지 않았다. 그래서 반응이 궁금했다. 나를 보고 실망하지는 않을까?
그리고 오늘도 어김없이 라리아의 노래를 듣기 위해 뒷골목을 찾은 노아는 입가에 묻은 피를 소매로 닦아냈다.
평소보다 더 열린 문 사이로 라리아의 얼굴을 제대로 볼 수 있었다.
“당신도 똑같나요?
어둠 속에서 허우적대고 있나요?
나와 함께 있어요. 내 손을 잡아줘요.”
노아의 눈이 커졌다. 아아, 당신도 나와 같구나. 그래서 당신의 노래가 내 심장에 와닿을 수 있었구나.
라리아는 남자의 눈빛이 변하는 순간을 포착하자마자 그 자리에서 얼어붙었다. 소름이 끼쳤다. 기분이 나빠서가 아니라, 좋아서.
자신을 이렇게 순수하게 바라봐 주는 사람이 있었나? 내게 반했다는 걸 여지없이 드러내는 사람이 있었나?
두 사람은 서로 눈이 마주치는 것도 깨닫지 못한 상태였다.
‘당신도 나와 같구나.’
라리아에게 있어서 남자가 동양인이라는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자신도 비슷한 상황이었으니까.
어쩐지 제게 쉽게 다가오지 않는 이유가 있었다. 라리아는 심장이 과하게 뛰는 것을 느꼈다.
아이비의 목소리가 어디에선가 들렸다. 라리아는 뒷문을 향해 직진했다. 아직도 멍하니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남자를 향해.
“있잖아요.”
“······!”
노아가 몸을 흠칫 떨고는 뒤로 물러났다. 이때 잘 붙잡지 않으면 영영 남자를 못 볼 거 같아서 라리아가 다급히 그를 붙잡았다.
그리고 두 사람은 드디어 서로의 이름을 들을 수 있었다.
***
그렇게 두 커플이 서로를 마주하는 순간을 찍어냈지만, 아직 갈 길이 멀긴 했다.
첫 만남이 좋지 않은 아이비와 아서의 로맨스 코미디를 드러내야 했고, 시대상 몰래 만날 수밖에 없던 노아와 라리아의 잔잔한 연애가 시즌 5를 견인할 거다.
‘이거······ 나만 느낀 거 아니겠지?’
감독이 주위를 둘러보았다. 제작사 직원과 스태프의 표정이 좋다. 다들 이번 시즌의 성공을 예감하고 있었다.
“좋아요, 바네사. 눈빛 좋은데요?”
“감사합니다.”
감독의 옆에서 모니터를 바라보던 바네사 왓슨이 작게 숨을 내뱉었다. 그리고 옆에 서 있는 윤제이를 흘끔 올려다보았다.
‘오디션 때보다 더 감정이 진했어.’
오디션 때는 약과였구나. 작정하고 판을 깔아주니 감정의 농도가 더 농밀하게 다가왔다. 바네사는 김노아를 연기하는 윤제이의 눈빛에 심장이 속절없이 뛰었다.
배역 때문에 이러는 건지, 아니면 배우 자체에 관한 호감인지 헷갈렸다. 윤제이는 사람 자체가 매력적이니까. 남녀를 막론하고 호감을 표하는 스태프들도 많았다.
“JJ, 눈빛이 벌써 꿀이 떨어지던데. 이러다가 나중에 연기는 어떻게 하려고요?”
“더 진하게 하면 되죠.”
“여기서 더? 그게 가능해요?”
“못할 건 없죠.”
윤제이가 자신 있게 미소 짓자, 감독은 믿을 수 없다는 듯 그를 바라보았다.
시즌 5의 흐름은 메인 커플인 아서와 아이비의 몫이다. 하지만 렌즈 너머 김노아를 보고 있노라면, 더 담고 싶은 충동이 불쑥불쑥 튀어나왔다.
비단 감독뿐만 아니라 작가인 올리비아 박도 윤제이의 오디션 이후 김노아와 라리아가 나오는 장면을 추가했고, 제작사는 이를 허락했다.
원래라면 라리아는 재즈 시대를 상징하는 양념 정도로 등장할 예정이었다. 노아도 마찬가지였는데, 두 사람의 케미에 분량이 더 늘어났다.
이에 제작사는 약 2회 정도 추가 촬영을 하는 것으로 가닥을 잡았다. 그만큼 제작비가 더 들지만, 어디서 투자자가 불쑥 튀어나와 추가 투자를 약속했다.
‘배우들도 의욕적이고.’
윤제이의 연기에 자극받은 주연, 제임스 딜런도 적극적으로 촬영에 임했다.
“대체 어떤 연애를 해야 그런 눈빛을 표현할 수 있어요?”
윤제이는 제임스의 질문에 피식 웃었다. 가벼운 연애라면 방랑하던 시절 몇 번 해보긴 했다. 하지만 그런 경험보다는 동생의 드레스 차림을 황홀하게 보던 알렉스의 모습이 많은 참고가 됐다.
“그냥 하면 돼요.”
“그게 그냥 해서 되는 거였어요?”
“그러는 제임스도 잘하던데요.”
제임스는 사실 윤제이의 모습에 위기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의 촬영은 공기부터 달랐다.
‘아냐. 그래봤자 내 분량이 더 많아.’
이 드라마가 공개되면, 윤제이보다는 자신에게 스포트라이트가 올 거다. 제임스는 고개를 저으며 상념을 떨쳐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