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sappeared Genius Child Actor Is Back RAW novel - Chapter (191)
사라진 아역 배우가 돌아왔다 191화(191/287)
At The End (3)
“그러니까, 한 번도 안 해봤다고요?”
“그런데요.”
“따라와 봐요.”
메인 커플은 1920년대에 유행했던 모든 것을 한다. 승마를 하고, 폴로와 테니스를 친다. 그 과정에서 서로 스킨쉽이 늘어나고, 웃음이 끊이지 않는다.
‘웃기는 여자야.’
아서는 아이비의 손길에 못 이긴 척 그녀를 따라갔다. 제 입가에 미소가 감도는 것을 아서 본인도 몰랐다.
이 드라마 시리즈는 클리셰를 자본의 힘으로 잘 말아줘서 팬이 많았다. 이번 시즌도 역시나였다.
아서는 여성 편력이 심하지만, 그 이유가 어머니의 죽음에 관한 상처 때문이었고, 아이비를 만나 치유한다. 중간에 오해가 점점 불어나서 아이비에게 상처를 주기도 한다.
아이비는 햇살이 인간화되면 이런 느낌일까? 싶은 사랑스러운 여주였다.
첫 만남은 그리 좋지 않았지만, 서로에게 빠지는 과정이 통통 튀면서 설렘을 느끼게 했다. 로맨스 코미디의 정석이었다.
그리고 서브 커플, 뒷골목의 통성명 이후 라리아와 노아의 관계는 극적으로 변하지는 않았다.
노아는 주점의 뒷골목에서 몰래 라리아의 노래를 들었고, 그녀의 일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라리아는 밖에서 기다리는 노아를 의식했다. 계속 고개가 뒷문 쪽으로 돌아가려는 것을 간신히 참았다.
‘나 오늘 상태 괜찮나?’
뒷문을 열기 전에 제 옷매무새와 머리를 매만진 라리아가 설렘이 가득한 얼굴로 문을 열었다. 벽에 기대앉아있던 노아가 고개를 올렸다.
“많이 기다렸어요?”
“아뇨.”
벽 너머에 라리아가 있다는 사실에 기다리는 것조차 즐거웠다.
노아는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주점의 조명이 역광으로 비치는 모습은 마치 후광같이 느껴졌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먼지를 털고 주먹 쥔 오른손을 명치에 댔다.
“그럼, 갈까요?”
라리아는 그 팔에 제 손을 꼈다. 그녀의 퇴근길을 함께하는 건 노아의 새로운 루틴이고, 즐거움이었다.
“오늘은 손님이 시비 안 걸었어요?”
“시비가 안 걸린 날이 없죠.”
두 사람은 공통점이 많았다. 뉴욕이라는 큰 도시에 가보고 싶다는 꿈도 똑같았고, 게다가 어릴 때부터 인종 차별을 겪었던 공감대가 있었다.
노아는 제게 공감하고 자신도 비슷한 일을 겪었다고 말했다. 그런 말을 듣고 있노라면, 자신은 혼자가 아니라는 위안을 받을 수 있었다.
이런 고충은 절친이자 후원자인 아이비도 이해할 수 없기에, 외로웠었다.
“왜 그렇게 봐요?”
“내가 뭘요?”
“그렇게······.”
내가 정말 뭐라도 된 것처럼.
라리아는 저를 바라보는 눈빛을 볼 때마다 자신이 정말 특별한 사람인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무한한 애정과 신뢰, 닿는 것조차 자신이 더러워질까 봐 조심스러운 게 보인다.
‘그런데 왜 이 이상 안 건들지.’
최근 라리아는 불만이 생겼다. 노아는 정말 신사적이어도 너무 신사적이었다. 이렇게 팔짱은 껴도 그 이상의 스킨쉽은 하지 않았다.
노아는 망설이고 있었다. 홀로 길거리를 거닐어도 제게 손가락질하는 사람이 많았다.
그런데 누가 봐도 시비 걸기 딱 좋게 생긴 남녀가 함께한다는 건 너무 위험했다. 그래서 이렇게 은밀히 밤길을 걸을 수밖에 없었다.
라리아도 그가 왜 이러는지 어렴풋이 이해했다. 하지만, 함께라면 괜찮지 않을까? 하는 근거 없는 용기가 생겼다.
그녀는 노아가 욕심났다. 아서와 자주 어울리는 아이비처럼 우리도 그런 관계가 되고 싶었다.
“다 왔네요.”
“그럼. 이만······.”
라리아는 용기 내 노아를 붙잡았다.
“자, 잠시만요.”
키 차이가 커서 그의 어깨에 손을 얹고 까치발을 들었다. 중심을 잃어 비틀거리자, 노아가 그녀의 허리를 부드럽게 안았다. 그 손길에 몸이 살짝 떨리는 게 카메라에 잡혔다.
“그, 큼······ 조심히 가요.”
차마 입에는 할 용기가 없어서 볼에 가볍게 뽀뽀한 라리아가 빠르게 뒷걸음쳤다. 그리고 몸을 홱 돌려 저택으로 들어갔다.
“다 봤어.”
“헉!”
조용히 방에 들어오던 라리아가 화들짝 놀라서 문 옆을 바라보았다. 아이비가 눈을 번뜩이고 서 있었다. 그녀는 놀리기 좋은 장난감을 찾은 것처럼 씨익 웃었다.
“저 남자야? 오, 몸 좋은데?”
“그. 그게······.”
“어머. 네가 볼에 키스한 게 좋았나 봐. 주저앉았는데? 귀엽다.”
“진짜?”
라리아가 창밖을 바라보았다. 노아는 한동안 그 자리에서 얼어붙어 있다가 바닥에 쪼그려 앉았다. 두 손을 얼굴에 묻었는데, 목까지 새빨개져 있었다.
“언제 한 번 우리 집으로 초대하는 건 어때?”
“하지만······.”
라리아는 막상 용기를 냈음에도 망설였다. 그녀는 자신을 벌레처럼 바라보는 아서의 냉랭한 표정이 생각났다.
물라토라 욕하고, 자신을 싸구려 취급하고 추파를 던지는 사람들이 떠오른다. 노아의 상황도 다르진 않을 거다. 우리 둘이 함께, 괜찮을까?
“그래! 같이 요트를 타는 건 어때? 우리 둘만 타기에는 너무 넓어서.”
제 상황도 모르고 재잘재잘 떠드는 아이비가 부럽고 질투 난다. 어두운 친구의 표정에 아이비가 넌지시 물었다.
“라리아? 화났어?”
“화난 게 아니야, 그냥······ 답답해서 그래.”
하지만 아이비가 악의를 가지고 한 말이 아님을 알기에 그저 한숨만 쉬었다.
그리고 다음 날, 오랜만에 휴가를 받은 노아는 늦잠을 자고 일어났다. 사실 잠을 제대로 잘 수 없었다. 눈을 감으면 라리아가 제게 몸을 밀착하고 볼에 뜨거운 애정을 남긴 게 생각나서였다.
“요즘 집에 늦게 들어오는구나.”
“······일이 많아서요.”
노아는 어머니의 묘한 시선을 애써 무시했다. 최근 들어 표정이 좋아진 아들을 어머니가 눈치 못 챌 리가 없었다.
“그런데, 손님 왔어요?”
“그래. 상해에 있는 임정에서······ 방해하지 말렴.”
노아는 살짝 열린 서재의 문틈 사이로 손님과 아버지의 대화를 엿들었다.
“요즘 상황은 어떤가?”
“사실 그렇게 좋지는 않습니다.”
나라를 잃은 설움이란 뭘까. 왜 저 사람들은 제게 해준 것 없는 조선을 그리도 열망할까.
‘나도 저들과 같아진다면 이해할 수 있을까.’
라리아와의 행복한 시간을 보내면서도 채울 수 없는 것은 공허함이었다.
“아! 혹시 선생님의······.”
“장남입니다. 노아, 인사하거라.”
“안녕하세요.”
노아가 큰 덩치를 구기며 인사하자, 손님의 눈이 반짝 빛났다. 체격이 정말 좋다.
“아드님이 선생님을 닮아서 그런지 참 훤칠하고 잘생겼습니다.”
“하하! 안사람을 더 닮았지요.”
“그래, 결혼은 했고?”
그 말을 듣자마자 노아는 라리아가 생각났다. 과연 그녀와 결혼할 수 있을까? 한다면, 삶이 순탄할까?
그 사이 아버지와 손님이 말을 주고받았다. 주변에 쟤 좋다는 아이들이 많은데, 아들은 별생각 없는 것 같다고 했다.
손님은 노아의 복잡한 표정을 포착하고는 굳이 한인 아이들 외에도 여자는 많지 않냐고 넌지시 물었다.
“한인은 한인끼리 뭉쳐야 합니다. 잘 아시면서.”
아버지의 말에 찬물을 끼얹은 듯 정신을 차렸다. 사회적 장벽을 신경 쓰기 이전에 당장 부모님조차도 꺼린다는 게 마음이 아팠다.
“선생님, 잠시만 이 아이와 얘기해도 되겠습니까?”
손님은 노아를 이끌고 정원으로 향했다.
“많이 힘드니?”
“네?”
“여기서 살아간다는 것 말이다. 고충이 많았을 텐데.”
“뭐, 나름 살아지던데요.”
“입가에 피딱지를 보니 그런 것 같구나.”
사실 노아는 라리아의 볼 키스를 받은 직후 한 무리에게 시비가 걸렸었다.
요즘 물라토랑 어울리는 신기한 노란 원숭이가 있다며? 라고 말하며 다가오는 그들을 떼어내느라 숨이 멎을 만큼 길을 뛰어갔다.
“한 번도 밟아보지 못한 조선을 위해 네게 강요하는 아버지가 밉니?”
노아는 숨을 삼켰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그렇게 생각한 적 없어요.”
언젠가 그렇게 생각한 적도 있지만, 그래도 아버지다. 자신을 위해 헌신했다는 것도 안다.
라리아를 만나면서 사랑을 알았다. 아버지는 조선을 짝사랑하고 있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이해가 안 되는 것도 아니다.
“혹시 다른 장래를 찾는다면 여기로 오렴.”
“이건······.”
“임정의 주소야.”
임정의 주소를 준다는 건, 독립운동의 동지를 구함이었다. 노아는 의아해서 그를 쳐다보았다.
“저는 딱히 애국심이랄 게 없는데요. 일단은 미국인이고.”
“알아. 나도 처음엔 그랬어.”
노아가 미간을 찌푸렸다. 손님이 웃었다.
“애국심이 없는데 왜 독립운동을 하느냐는 표정이구나.”
“······네.”
“나도 너와 비슷한 상황이었단다. 부모님은 조선 독립을 위해 싸웠고, 자식인 나도 물 흐르듯 부모님을 따랐지.”
손님은 잠시 말이 없었다.
“하지만, 독립을 위해 싸울 때마다 내가 살아있음을 느꼈다. 그전에는 아무런 인생의 목표도 없었거든.”
“······.”
“미워도 내 뿌리가 자랐던 땅이지 않니.”
“이해가 잘 안 돼요.”
“언젠가 너도 이해할 날이 올 거야.”
그렇게 손님이 떠나갔다. 노아는 손님의 쪽지를 쓰레기통에 버리려다가 망설였다. 이윽고 그것을 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
“자, 여기서 몸을 돌려요.”
“이렇게요?”
“네. 이제 잘하네요.”
윤제이의 칭찬에 바네사가 수줍게 웃었다. 옆에는 두 주연 배우가 손을 맞잡고 경쾌한 재즈 음악에 맞춰 춤을 췄다.
“JJ, 우린 어때?”
“잘하는데? 굳이 나한테 배울 필요가 있었나?”
윤제이는 한국 연예계에서 은근히 인간 자석, 배우계 카피바라라고 불렸었다. 이는 여기서도 해당됐다.
처음에는 라리아 역할의 바네사 왓슨이 자주 다가왔다. 둘이 붙는 장면이 많기에 윤제이도 트레일러에 콕 박히지 않았고 그녀와 자주 어울렸다.
이윽고 아이비 콜린스 역할의 배우 에밀리 로웰도 그의 근처에 맴돌았다.
“그래서, 이거 다 사실이에요?”
“네, 뭐······.”
“우와.”
에밀리는 위키 페이지에서 찾은 윤제이의 신기한 이력을 보고 다가왔다. 주, 조연 배우가 윤제이를 중심으로 뭉치니 남자 주연인 제임스 리드도 자연스럽게 합류했다.
처음에는 윤제이를 못마땅하게 생각했던 제임스는 언제 그랬냐는 듯 형처럼 그를 따랐다.
‘······동생들 보는 거 같네.’
다들 신인 배우고 나이도 윤제이보다 어렸다. 그래서 그런지 익숙한 느낌이 든다.
“사이 좋네요.”
“우리 드라마 시리즈의 매력이죠.”
아무래도 신인 위주로 캐스팅해서 그런지 배우들끼리 똘똘 뭉쳤다. 모든 시즌의 배우들이 그랬다.
‘그나저나 대단한데.’
감독은 배우들의 중심에 있는 윤제이를 바라보았다.
‘노아가 원래 이런 캐릭터가 아니었는데······ 극의 완성도가 확 올라갔어.’
김노아라는 캐릭터는 단순 대본과 시놉시스로만 보자면 별 볼 일 없는 캐릭터였다.
이 시리즈의 주 시청자는 로맨스를 보기 위해 재생한다. 타국의 아픈 역사에 공감하는 시청자가 많을까? 초기만 해도 조선이나 독립운동가는 이용만 당한 수준이었다.
서브 커플의 플롯은 라리아가 부르는 재즈가 중점이었다.
하지만 윤제이는 그 짧은 장면에도 연기로 서사를 부여해 분량을 늘렸다.
제 뿌리의 나라인 조선에 관한 은근한 애증, 제게 국적을 준 미국 땅에서 받는 차별. 그 중간에서 혼란을 겪는 감정 연기가 일품이었다.
이건 단순 국적과 인종의 차이가 아니라 인간이 겪는 정체성의 혼란을 표현하는 것처럼 보였다.
‘흠, 수상을 기대해봐도 되나?’
그들 시리즈는 인기 시리즈지만, 너무 애들이나 여자나 보는 작품이라고 낮잡아 평가하고, 작품성이 없다는 소리를 자주 들었다.
하지만, 이번 시즌은 다를 거라는 예감이 든다. 점점 기대하면 실망만 커지는데······ 감독은 윤제이에게 시선을 계속 고정했다.
“감독님. 슬슬 어두워지는데 다음 장면 들어갈까요?”
“좋아.”
해가 지길 기다렸던 감독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빨리 이 드라마를 찍고, 편집해서 세상에 내보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