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sappeared Genius Child Actor Is Back RAW novel - Chapter (192)
사라진 아역 배우가 돌아왔다 192화(192/287)
At The End (4)
라리아가 먼저 벽을 허물고 손을 뻗으니, 한창 청춘인 노아도 거침없이 다가갔다.
두 사람의 애정 행각은 주로 어두운 밤, 인적이 드문 골목 혹은 헛간을 개조한 라리아의 집이었다. 그래도 좋았다.
“내가 왜 좋아요?”
라리아의 무릎을 베고 누워있던 노아가 그녀를 올려다보았다.
지금껏 윤제이는 경험에 기반한 연기를 펼쳤었다. 연기를 통해 심리 치료를 기대할 수 있는 상황이라 더 과거 기억을 참고했는데, <악의 몰락>이후 내면의 변화를 겪어서 그런지 이제 과거의 경험을 참고하지 않아도 괜찮았다.
그렇다고 해서 연기력이 갑자기 떨어지는 일은 없었다. 그는 이런저런 경험이 거의 없었던 아홉 살에도 극 중 엄마를 향해 여러 감정이 교차하는 연기를 펼쳤었다.
“왜 그런 질문을 해요?”
오히려 심리적 장애물이 없어져서 그런지 어릴 때부터 간직했던 천재성이 폭발했다.
누군가를 깊이 사랑한 경험은 없어도, 그저 노아라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자연스럽게 깨달았고, 그걸 연기로 녹였다.
‘으······.’
잔잔한 미소를 머금으며 자신을 올려다보는 모습에 심장이 터질 거 같다. 바네사가 눈을 질끈 감았다.
“그······ 잠시만요.”
결국 라리아 본체 바네사가 대사를 절었다. 숨죽이며 보던 사람들의 맥이 풀렸다. 그게 눈으로 다 보여서 바네사가 머리를 쥐어뜯었다.
“너무 자책하지 마. 실수할 수도 있지.”
“오히려 이 형은 너무 실수를 안 해서 인간미가 없더라.”
“오, 갑자기 나를 저격한다고?”
다음 장면을 위해 대기하고 있던 아서 본체, 제임스가 히죽 웃었다. 윤제이는 그의 어깨에 팔을 걸쳤다.
친해질 겸 그냥 장난으로 ‘형’이라 부르라고 했는데, 제임스는 어디서 그걸 계속 연습했는지 ‘형’ 발음 하나만큼은 웬만한 한국인 못지않았다.
두 사람이 그러거나 말거나 바네사는 고개를 숙였다.
‘으으, 연기라는 거 아는데! 그런데······!’
바네사가 윤제이를 흘끔 올려다보았다. 그의 눈빛은 언제 그랬냐는 듯 평소대로 돌아와 있었다.
“······?”
왜 그렇게 보느냐는 눈빛은 김노아를 연기했을 때의 멜로눈깔과 그냥 눈깔의 차이점이 확 와닿았다.
‘신인이니 헷갈릴 만도 하지.’
‘멀리서 보고 있는 나도 저릿저릿한데.’
바네사의 반응이 왜 저러는지 알만하다는 듯 웃은 몇몇 스태프가 총괄 제작자인 사샤 베르너에게 제안했다.
“한 10분만 쉴까요?”
“그러죠.”
다행히 촬영 시간이 조금 지연돼도 괜찮았다. 바네사는 물을 한 통을 다 마시면서 눈을 질끈 감았다.
연기를 하는 건 예상보다 너무 쉬웠다. ‘내가 이렇게 연기가 많이 늘었나?’ 싶어질 정도였다.
물론 다른 캐릭터를 연기하려고 하면 턱턱 막히는 게, 상대 배우인 윤제이가 흐름을 만들어냈다는 걸 알았다. 바네사는 그저 흐름에 맡기면 된다.
‘이러다가는 진짜 반하겠는데.’
다만, 이대로 흐름에 맡기다가는 극 중 라리아처럼 윤제이에게 속절없이 빠져들 것 같았다. 그래서 계속 NG라는 제동이 걸렸다.
계속 의식하는 것 자체가 반쯤은 넘어간 거라는 걸 바네사는 아직 깨닫지 못했다. 마음을 다잡은 바네사가 다시 연기를 시작했다.
“내가 왜 좋아요?”
라리아는 무릎에 누운 노아의 머리카락을 쓸어 넘겼다.
“왜 그런 질문을 해요?”
“그냥······ 우린 좀 다르잖아요.”
“우리가요?”
라리아는 낮에 봤던 것을 잊을 수 없었다. 한인 여자와 나란히 길을 걷던 그의 모습.
물론 노아는 별로 관심 없어 보였지만, 노아를 바라보는 한인 여자의 표정은 잊을 수가 없었다. 그를 보는 자신의 표정과 닮아있었기에.
“당신의 노래요.”
노아는 라리아의 표정이 어두워지자, 진심을 말했다. 힘들고 지쳤던 때에 빈 주점에서 들었던 라리아의 노래를 잊을 수 없었다고, 당신의 목소리가 내게 위로가 됐다고.
“그때부터요? 우린 얼굴도 몰랐잖아요?”
“그랬죠.”
“내가 당신의 생각보다 달랐으면 어쩌려고요?”
“당신의 피부색이 어떻든, 몸 어딘가가 불편하든 상관없이 난 당신을 사랑했을 거예요.”
노아가 주는 애정의 크기가 가늠이 안 돼서 라리아가 숨을 잠깐 참았다.
“당신의 노래가 날 살렸어요.”
“그건······.”
라리아는 허름한 주점에서 노래를 부르는 것에 한계를 느끼고 있었다. 마음은 벌써 시카고나 뉴욕의 큰 무대로 향해 있지만, 현실은 그럴 수 없어서 지쳐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내 노래를 듣기만 했을 뿐인데 사랑에 빠졌다는 건, 그 어떤 말보다 더 와닿았다. 눈에 물기가 가득한 라리아를 보고 노아가 미소 지었다.
“감동했죠?”
“그 말만 안 했으면요.”
노아는 손가락으로 제 입을 두드렸다. 보상을 바라는 눈빛에 웃음이 터진 라리아가 고개를 숙여 입을 맞췄다.
이번에는 다행히 NG를 내지 않았다.
“좋아요. 다음 씬 갑시다.”
바네사는 옷을 갈아입었다. 그리고 집에서 홀로 재즈를 부르는 장면을 찍는다.
이윽고 아이비에게 결국 항복하고 그녀에게 빠져들던 아서가 정원을 지나가다가 라리아의 노래를 듣는다.
‘노래 실력이······ 뉴욕에 있는 재즈 가수보다 잘하는데?’
처음에는 그저 착한 아이비가 친구를 밀어주려고 헛된 후원을 자처한 건 줄 알았다. 하지만 그게 아니라 라리아가 정말 투자가치가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확인하게 되고 눈에 이채를 띤다.
“좋아요!”
감독의 오케이 사인이 떨어졌다. 그 사이 윤제이는 상의를 벗고 가만히 서 있었다. 분장사가 달라붙어 그의 몸에 화장을 시작했다. 흉터가 워낙 많아서 지우는 것도 꽤 오래 걸렸다.
“일찍 끝났네?”
“······응.”
바네사는 윤제이와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 흉터를 가리고 있는 그의 몸은 정말 조각 같았다.
그녀에게 또 난관이 찾아왔다. 다음 장면은 두 사람이 사랑을 나누는 장면이다.
19금이 아니기에 은유적으로만 나올 예정이지만, 그래도 맨살이 닿기는 한다.
“너무 긴장하지 마.”
“그게 맘대로 되겠어요?”
“음······ 나 봐봐.”
윤제이는 상대 배우가 긴장하는 걸 모르지 않았다. 눈 마주치기도 어려워서 NG를 낼 정도다. 한 번에 찍는 게 좋다.
‘연기와 현실의 경계가 아직은 모호할 만하지.’
하지만 이 상황에서 계속 머뭇거리는 건 좋지 않다. 좀 도와줘 볼까.
윤제이는 바네사의 손목을 잡아 앞으로 더 오라고 부드럽게 당겼다. 뭔가 일어날 거라는 걸 직감했는지 핸드폰을 들어 동영상을 찍는 사람이 몇몇 보였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내 눈 피하지 말고. 나만 봐.”
숨이 느껴질 정도로 밀착한 바네사가 고개를 홱 돌렸다. 윤제이는 그런 바네사의 턱을 부드럽게 돌려 자신을 쳐다보게 됐다.
“벨라, 분장 좀 건드려도 되죠?”
“네. 걱정 마세요.”
분장사가 대답했다. 앞쪽 흉터는 다 지웠다. 뒤에만 조금 더하면 된다. 윤제이는 바네사의 손을 이끌어 제 볼을 만지게 하고 천천히 내려가 가슴에 손을 얹게 했다.
‘아······ 그래. 이건 연기야.’
바네사는 세차게 뛰는 자기 심장과는 다르게 일정한 윤제이의 심장 고동에 정신을 차렸다. 부끄럽다고 계속 시선을 피하는 건 프로답지 못한 행동이다. 지금은 다음 장면을 위한 집중만 필요하다.
“라리아.”
그 달콤하고 농밀한 목소리에 분장해주던 스태프가 흠칫 놀랄 정도다. 윤제이는 바네사의 몰입을 이끌고 있었다.
조감독이 분장사에게 속삭였다.
“다 됐어요?”
“네.”
“좋아요, 바로 촬영 시작하죠.”
이 흐름을 그대로 가져오면 대박 장면이 나올 거라는 걸 직감한 감독이 두 사람의 몰입에 방해되지 않게 조심스레 움직였다.
윤제이는 감독이 엄지를 치켜드는 것을 보고 바네사의 손을 잡았다. 바네사는 더 이상 부끄럼을 타지 않았다.
“갈까?”
“······네.”
바네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NG 없이 한 번에 오케이 사인이 떨어진다.
촬영은 쉴 새 없이 진행됐다.
“콜린스가 아가씨 옆에 있는 사람은 누구야?”
“약혼자래. 그 왜, 뉴욕의 부호 가문 있잖아. 뱅크스라고······.”
“와······.”
아이비와 아서는 주로 낮에 많은 사람과 둘러싸여 있었다.
“술을 팔았다는 게 걸려서 몇 주 동안 영업을 안 한대요.”
“그래요?”
“그래서 말인데요······.”
라리아는 주점 중앙으로 노아를 이끌었다.
“전에 춤춰보고 싶다고 했잖아요.”
“여기서요? 반주도 없는데?”
“뭐 어때요. 반주라면 내가 불러줄게요.”
대기 시간에 윤제이가 바네사를 가르쳤다면, 지금은 둘이 바뀌었다. 윤제이는 춤에 서투른 연기도 잘했다.
라리아가 그에게 스윙 댄스를 가르치고, 노아는 처음에는 서툴다가 곧잘 따라 한다. 두 사람이 손을 마주 잡고 춤 합을 맞춘다.
“하하!”
“잘하는데요?”
한낮의 정원에서 서민의 문화를 체험하는 부유층 아서와 아이비. 재즈 연주자를 데려와 화려한 반주 속에서 능숙한 춤을 춘다.
라리아와 노아는 혹시 또 시비가 걸릴까 봐 사람 없는 가게에서 똑같은 스윙 댄스를 춘다. 반주는 두 사람의 웃음소리뿐.
낮과 밤, 부유층 백인과 유색인종. 마치 한 시대의 명과 암을 보여주는 것처럼.
‘이렇게 교차해서 보여주면 생각할 거리가 많겠지.’
부족한 작품성을 채울 수도 있다. 감독이 고개를 끄덕였다.
***
달콤한 시간만으로는 이야기가 전개되지 않기에, 역시 위기가 찾아온다.
아서는 아버지를 존경하지만, 어머니를 그렇게 버려둔 아버지에게 미움을 간직하고 있었다. 애증이었다.
“제 말이 뭐랬어요. 한번 만나보라고 했잖아요.”
“그래, 하지만······.”
아버지의 유언대로 따르는 자신이 문득 우스워진 아서와 세바스찬의 대화를 아이비가 듣는다. 만나보라고 했지 결혼하라는 유언은 아니다.
그리고 고작 아버지의 유언에, 유산을 받기 위해 자신에게 진심인 척하는 거라 오해한 아이비는 절망에 빠진다.
“아서.”
“제니퍼?”
게다가 미래의 뱅크스 부인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아서와 제법 깊은 관계였던 전 여자 친구가 여기까지 찾아온다. 아이비는 결국 폭발한다.
“당신에게 나는 그저 유희 거리였군요.”
“그게 아니라······ 아이비? 아이비!”
상처받은 아이비가 뛰쳐나가고, 아서는 그녀를 뒤쫓는다. 그리고 라리아와 노아가 둘만의 춤을 추던 주점에 남자들이 들이닥친다.
쾅!
“아, 이런. 실례했군.”
“계속해. 보기 좋던데.”
그동안 낌새는 있었다. 밤길을 쫓아 온다거나, 낮에도 물라토와 노란 원숭이가 자주 어울린다며 시비를 걸거나.
하지만 이렇게 위험한 분위기를 풍기는 건 처음이다. 노아는 평소 자신을 괴롭히던 무리 뒤로 고깔처럼 솟은 흰색 보자기를 쓴 몇몇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설마······.’
아버지에게 들은 적이 있다. 동남부 쪽에서 움직이는 백인 우월주의 집단. 가입자 중에는 부유층과 의원까지 있는 데다가 회원 수가 몇백만이 넘는······ 요새 세력 확장세가 무섭다더니, 여기까지 세력을 뻗칠 줄은 몰랐다.
이들은 백인 외에는 다 쓰레기 취급한다. 심지어 유색인종에 호의적인 백인들까지 해코지를 가한다. 노아는 라리아에게 속삭였다.
“빨리 뒷문으로 도망치세요.”
“당신은요?”
“내 걱정은 말고. 빨리 가요!”
라리아가 뒷문을 통해 달려 나가고, 노아는 그녀를 따라가려는 사람들을 막는다.
“조져!”
“밟아!”
하지만 혼자라서 역부족이었다. 한 명이 결국 라리아를 쫓아갔고, 라리아는 얼마 가지 않아 남자에게 잡힌다.
“흐흐, 우리 오랜만이지?”
“당신은······!”
노래를 부르던 라리아에게 저급한 농담을 치던 손님이었다. 그는 감히 네가 날 거절해? 라는 심보로 악착같이 그녀를 따라온 거다.
“놔!”
“그러게 그런 더러운 놈이랑 어울리지 말았어야지.”
“무, 무슨······.”
“그 노란 원숭이한테도 대 줬는데, 나한테도 맛보여 줘야지?”
남자가 바지 버클을 풀었다. 라리아가 발버둥 쳤다. 다행히 그들을 발견한 사람이 있었다.
“거기!”
“쯧, 젠장!”
남자를 제지한 건 아이비를 찾아 거리를 배회하던 아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