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sappeared Genius Child Actor Is Back RAW novel - Chapter (208)
사라진 아역 배우가 돌아왔다 208화(208/287)
<아버지>의 첫 리딩은 성공적이었다. 윤제이는 첫 장면의 걸음걸이만으로 배우들의 집중력을 끌어올렸다. 다들 의욕적으로 자신이 해석한 캐릭터를 연기했다.
[죄송합니다. 다시 할게요.] [괜찮아. 어차피 다음 리딩 또 있으니까.]다만, 한 사람이 걸렸다.
“그런데, 감독님.”
“음?”
“민재는 왜 ‘인신매매범’이에요?”
윤제이도 같은 생각을 했는지 넌지시 물었다. 의욕적이던 권민재는 갑자기 맥이 빠진 듯 집중을 못 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다들 어차피 리딩이 이번 한 번도 아니고 촬영까지 많이 남아서 격려했지만, 이대로라면 조금 힘들지도 모른다.
<아버지> 속 부자(父子)는 세상의 끝으로 향하면서 다양한 인간 군상을 겪는다.
‘아버지’는 소년병 출신이다. 소년병일 시절에는 숫자나 코드명으로 불렸고, 지금은 이름을 잃은 사람이었다.
먹고 살기 팍팍한 세상 속에서 그는 ‘소년’을 발견한다.
처음에는 무시하려고 했다.
본인마저 입에 풀칠하기 힘든데 어린아이까지 데리고 다닐 여력이 없었으니까.
하지만 ‘소년’에게서 어린 자신을 연상하게 되고, 결국 그의 바람을 들어주기 위해 세상의 끝으로 가는 여정을 떠난다.
‘인신매매범’은 ‘아버지’의 옛 동료였다. 같은 소년병 출신으로, 믿고 의지하던 옛 동료인 ‘아버지’가 사라지고 그의 대신 위험한 작전에 투입된 사람이었다.
전쟁이 끝나고 소년병은 쓸데없어졌다.
그리고 머릿수가 많으니 가서 희생하라 전쟁터로 보낼 때는 언제고, 아이에게만 발병하는 바이러스로 인해 아이가 귀해진 시대가 되었다.
그는 부유층을 위해 어린아이들을 찾아 그들이 벌이는 알량한 부모 놀이의 장난감으로 던졌다.
그는 자신이 발견한 아이 중에서도 가장 어린 ‘소년’을 보게 되고, 세상의 끝으로 가는 여정을 방해한다.
“네가 보기에 민재, 걔는 어떤 거 같니?”
이런 배역은 권민재가 이제껏 해보지 못한 새로운 캐릭터였다. 그는 악역을 별로 해본 적이 없다.
‘인신매매범’은 미디어에서 보이는 단순한 사이코패스가 아니라 더 복잡한 인물이었다.
음습하고 끈적한 욕망을 꾹꾹 눌러 담고 살며 ‘소년’에게 이상하리만큼 집착하는.
권민재의 성격과도 정말 다른 캐릭터고, 안 입은 옷을 입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을 거다.
‘감독님이 아무 생각 없이 걔를 그 배역에 배정한 건 아닐 텐데.’
이영창은 영화의 대가다. 권민재를 정말 새로운 배역으로 캐스팅한 것에는 어떠한 의도가 숨겨져 있을 거라 생각했다.
“좋은 친구죠. 착하고, 배려심도 넘치고.”
“그리고?”
“이성적이죠. 생각해보면 걔가 화를 낸 걸 한 번도 보지 못한 거 같네요.”
“또?”
계속해서 묻는 말에 윤제이는 미간을 살짝 찌푸린 채 생각에 잠겼다. 권민재는 친구로서 더할 나위 없는 인물이지만, 조금 답답한 구석이 있긴 했다.
“음, 뭐라고 해야 할까······.”
“억눌려 있다고 생각하지?”
정곡을 찌른 이영창의 말에 윤제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민재 됨됨이야 유명하지. 하지만, 나는 그 모습이 좋게 보이지는 않더구나.”
“······.”
“그게 어느 정도는 만들어졌다고 생각하거든.”
이영창은 제 턱을 쓸어내렸다. <아버지>에 심혈을 기울이던 탓에 수염이 거뭇거뭇하게 나 있었다.
“만들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 해야 하나. 내가 무슨 말 하는지 알겠니?”
“······네.”
권민재가 아역 생활을 시작한 건 어머니의 욕망 때문이었다. 너무 일찍 연예계라는 사회에 내던져진 그는 얼굴과 이름이 알려져 다른 길을 택할 수도 없었다.
권민재의 어머니는 그에게 나중에 나이가 들어서도 마주칠 사람들이니 친절하게, 말썽 피우지 말라고 했었다.
‘윤제희 특별법’ 시행, 아역배우 권민재 모친과 분리 조치
극성 어머니에게 시달린 아역배우 권민재, 새로운 시작
그리고 천성이 착한 그는 자신으로 인해 손가락질 당하게 된 어머니에게 죄책감을 느꼈다.
그래서 그 말을 철저히 따랐다. 싫어도 별로 싫지 않은 척, 자신은 다 괜찮은 척. 속마음을 꼭꼭 숨겨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았다.
성인 연기자로 가는 길은 험난했을 거다.
유독 아역배우에게만 만만한 사람이 많았다. 마치 부모에 빙의한 것처럼 이래라저래라하는 사람이 많았고, 항상 비교당했던 윤제희는 돌연 사라져서 경쟁조차 못 하는 상대가 되었을 거다.
“내게 실망했니?”
“제가 왜 실망해요?”
“난 ‘아버지’를 너만을 위한 헌정 영화로 만들려고 했어.”
“저는 지금도 과분한 선물을 받은 거라 생각하는데요.”
“그럼 다행이고.”
하지만 윤제이는 <악의 몰락>으로 묵은 감정을 해소했다.
<아버지>는 그의 과거를 되돌아보고 윤제이로서 새 출발을 하는 그를 위한 선물이다. 그럼, 그로 인해 인생이 바뀐 다른 사람들은 어떨까?
“너와 민재는 정말 복잡하게 얽혀 있지 않니? 그래서 꼭 이 이야기에 넣고 싶었어.”
“······.”
“네게 영향을 받은 사람들도, 이 영화를 통해 얻어가는 게 있었으면 좋겠구나.”
이영창과 늦은 밤까지 대화하고 돌아온 윤제이는 액터즈 4에서 덤덤하게 중얼거리던 권민재의 말이 생각났다.
[나 그렇게 좋은 사람 아니야.]윤제이는 가끔 권민재의 허심탄회한 속마음이 궁금했다.
윤제희가 사라지고 그의 대타가 되었고, 끊임없이 비교당하던 유년 시절, 그저 자두 사탕으로 때울 감정은 아니었으니까.
[진짜 괜찮은 거 맞아?] [이제와서 말 해 봤자 달라지는 거 없잖아.]자신의 심리가 괜찮아지니, 비로소 보이는 게 있었다. 권민재도 속마음을 꼭꼭 숨기는 게 예전의 나와 같다.
그리고 연노엘과 함께 살면서 권민재의 심리가 더욱 궁금해졌다.
아역배우가 성인 연기자로 자리를 잘 잡을 수 있는지, 특히 누군가의 대역으로, 제2의 누군가로 비교당하면서도 꿋꿋이 버틴 산증인이 권민재였다.
‘내가 했던 방법을 써볼까.’
그리고 그는 권민재에게 받은 게 많았다. 단순 물질적인 게 아니라, 윤제희임을 숨겼던 신인 때부터 심리적으로 받은 게 많았다.
뭐든 첫 상담이 제일 어렵다. 자신의 감정을 가감 없이 토해내는 건 더 어렵다.
자신이 작품을 통해 감정을 해소한 것처럼, 권민재도 그런 게 필요할지도 모른다.
“여보세요? 다은아.”
***
(문창민) 내일 점심 이후에 시간 되는 사람?
(백다은) 저요
(추영미) 나는 스케쥴이 있어서~
첫 리딩 이후로 <아버지>의 출연 배우들은 교류를 활발히 했다.
굳이 리딩이 아니더라도 시간 나는 사람 있으면 몇 시까지 어디로 오라고 소집해 영화를 위한 연습을 시작했다. 누가 주도한 것도 아니고, 자연스레 일어난 일이었다.
조연과 단역, 엑스트라까지 굳이 자기 연습 장면이 아니더라도 연습실을 방문했다. 그리고 배우들의 연습을 보고 자극을 받고 돌아갔다.
“저, 선배님. 참관해도 될까요?”
“당연하지. 밥은 먹었어?”
배우들은 그들을 막지 않고 환영했다. 이렇게 서로 독려하니 저절로 캐릭터에 깊이가 생기고, 배우들의 연기는 점점 농밀해져갔다.
윤제이도 연노엘을 데리고 꾸준히 출석하면서 연노엘의 보는 눈을 키워줬다.
“하아······.”
권민재는 그 자리에 단 한 번도 오지 않았다.
그는 집에 틀어박혀 나오질 않았다. 리딩에서 ‘소년’을 연기한 윤제이가 했던 말이 뇌리에서 잊히지 않았다.
[둘 다 저니까요.]사실 시나리오와 대본을 읽고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었다. 하지만 윤제이의 입으로 직접 들으니 자신이 맡은 배역에 심리적인 거부감이 생겼다.
‘인신매매범’은 ‘아버지’를 향한 질투와 원망 그리고 ‘소년’에 관한 집착을 드러내는 인물이니까.
‘이 역할을 내가 해도 좋은 건가?’
배역은 배역일 뿐이라는 걸 알지만, ‘인신매매범’을 제대로 표현하면 자신도 모르는 자신의 깊은 감정이 튀어나올까 봐 무서웠다.
“권민재, 왔어?”
“어. 조용하네?”
그렇다고 계속 회피만 하고 있으면 프로답지 못한 걸 알기에, 연습 나오라는 백다은의 집요한 요청에 못 이긴 척 참여를 결정했다.
“다른 사람들은?”
“오늘은 우리끼리만 모이는 거야.”
“뭐?”
이윽고 문을 열고 윤제이가 들어왔다.
“왔어?”
“어, 어어.”
권민재는 왠지 모르게 수상한 분위기에 떨떠름하게 대답했다. 윤제이는 그저 입꼬리를 올리며 미소 지었다.
“좀 애매한 장면이 있는데, 네가 도와주면 나을 거 같아서. 씬 63, 여기 맞춰볼까?”
“어, 음······ 그래.”
권민재가 대본을 펼치고 어떤 장면인지 훑었다.
‘아, 하필······.’
아, 지금 상태에서 이 장면을 연습하면 진짜 위태로울 거 같은데. 하지만 이미 윤제이는 연기를 시작했다.
“애, 어디에다가 숨겼어?”
이 장면은 ‘소년’을 납치한 ‘인신매매범’을 찾아오는 ‘아버지’의 장면이다.
금세 분위기가 바뀌어 아이를 잃은 아버지가 된 윤제이를 멍하니 보던 권민재가 간신히 대사를 뱉었다.
“숨겨? 이미 팔아넘긴 지가 언젠데?”
“웃기지 마. 네가 애 아직 데리고 있다는 거 다 알아.”
윤제이의 깊은 눈동자에 몰입이 확 되었다. 권민재는 눈동자를 굴렸다. 내가 애를 숨기고 있었다는 걸 어떻게 알았지?
“애 팔려고 데려간 거 아니잖아. 내 말이 맞지?”
“······.”
“네가 가지고 싶었잖아.”
“······.”
“말해!”
위화감을 느낀 백다은은 대본을 넘겨보았다. 대본이랑 다르다. 하지만 윤제이에게 미리 들은 게 있기에 조용히 숨을 죽였다.
“왜 애를 숨겼어?”
“그건······.”
권민재는 다리에 힘이 풀려 털썩 주저앉았다. 그리고 고개를 무릎에 푹 숙이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네가 되고 싶었어.”
<아버지>에서 ‘소년’은 윤제희를 의미하기도 했지만, 아이의 미래는 무궁무진하다. 그래서 이 영화에서는 미처 꽃피우지 못한 가능성이자, 희망으로 묘사되기도 한다.
<아버지> 속 ‘인신매매범’은 ‘소년’을 납치하지만, 의뢰인에게 넘기지 않고 ‘소년’을 데리고 다닌다.
그리고 제 몸이 망가지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소년’에게 먹을 것을 공수해준다. 본인이 되고 싶었던 아이를 곁에서 지켜보면서 대리만족을 느끼는 거다.
그래서 ‘인신매매범’은 ‘소년’을 납치한다. 그리고 ‘소년’은 윤제희를 의미하기도 한다.
“뭐?”
“너 같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고!”
권민재는 자신을 지탱하고 있던 끈이 맥없이 끊어지는 것을 느꼈다. 어릴 때 해소하지 못하고 마음속 심연으로 가라앉힌 감정이 울컥 터져 나왔다.
‘차라리 내가 너였으면.’
권민재의 어린 시절은 윤제희와 비교당하며 살았다. 그리고 윤제희가 사라진 이후에는 그의 대타로 되어 여기저기 불려 나갔다.
걔만도 못하다는 평가를 받으면서도 꿋꿋이 버텼다. 차라리 내가 윤제희였으면 더 잘할 수 있었을 텐데, 라는 생각을 수없이 많이 했다.
“넌 왜 떠났는데?”
대본대로라면 ‘소년’를 납치한 것은 ‘아버지’를 엿먹이고 싶은 감정이었을 거다.
그렇게 애지중지 싸고돌던 아이가 사라지니 어때? 내가 전우이자 라이벌이자 친구로 믿었던 네가 돌연 사라진 그 상실감을 너도 느껴보라고.
하지만 지금 말은 다르게 읽혔다. 윤제희, 너는 왜 사라졌냐는 질문으로.
“씨발, 네가 끝까지 버티기라도 했었으면 내가 이렇게 비참하진 않았을 거야.”
차라리 나처럼 계속 버티지. 그래서 정당하게 경쟁할 기회라도 주지. 나도 더 잘할 수 있었는데. 너는 편했을지 몰라도 혼자 남은 내가 어떤 취급을 받았는데.
이미 다 묻어뒀던 감정이 계속 튀어나온다. 고개를 든 권민재의 눈가가 새빨갰다.
“그렇게 사라지니까 좋냐?”
“······.”
“네가 뭐가 그렇게 잘났는데!”
솔직히 억지임을 안다. 당시 윤제희와 친한 것도 아니고, 못 버티겠으면 중간에 그만둘 수 있었다.
윤제희도 윤제희만의 사정이 있었겠지. 그러니 못 버티고 떠났겠지. 하지만 그걸 내가 왜 이해해야 하지?
하지만 이런 말을 어떻게 하는가. 그가 사라진 덕에 자신도 도움을 받았는데.
네가 되고 싶다. 그리고 네가 부럽다. 윤제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데뷔해서 승승장구하는 것까지도 질투가 난다. 그런데, 또 친구로서 함께하고 싶은 마음도 든다.
“······아.”
어느새 윤제이와 백다은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으아아······.”
그걸 뒤늦게 눈치챈 권민재는 얼빠진 소리를 내더니 비명을 질렀다. 내가, 내가 무슨 말을 한 거지?
“와······ 이거, 진짜 부끄럽네.”
어떡하지? 나한테 뭐라고 할까? 진짜 아무에게도 말하고 싶지 않았는데. 찌질하다고 실망하면 어떡하지?
“나 안 멋있지.”
“아니? 멋있어.”
“······그래?”
백다은은 진심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권민재가 느끼는 감정은 지극히 인간적이었다.
“진작 얘기하지 그랬어.”
“이런 걸 어떻게 얘기해? 이런······ 찌질하고 이상한 생각을.”
“우리가 그냥 친구는 아니잖아. 그리고 찌질한 생각 아니야. 내가 너였으면 더한 말도 했을걸? 솔직히 쟤 재수 없잖아.”
솔직히 공감 못 할 얘기도 아니다. 윤제희는 그만큼 전설 같은 존재였고, 동시대의 아역 출신인 백다은도 그런 윤제희에게 자격지심을 많이 느꼈었다.
비단 백다은과 권민재뿐만 아니라 다른 아역 출신도 윤제희의 이름값에 짓눌린 사람이 많을 거다.
“민재야.”
어딘지 모르게 후련해진 권민재가 고개를 올려 윤제이를 바라보았다. 그는 손을 내밀고 있었다.
“아무도 네게 뭐라 안 해.”
언젠가 권민재가 사탕을 건네주면서 했던 말을 돌려주었다.
“그동안 고생했다.”
권민재는 그 손을 잡고 일어났다.
네가 했니?
이대로 연습을 이어갈 수 없었던 세 사람은 연습실 근처 맥주집을 들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