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sappeared Genius Child Actor Is Back RAW novel - Chapter (216)
사라진 아역 배우가 돌아왔다 216화(216/287)
힘없이 손을 늘어뜨린 그가 한숨을 쉬었다. 그의 몸은 그가 잘 알았다.
이 상태로라면, 복귀는커녕 군인으로서의 직업도 이어갈 수 없다는 것을 직감했다.
“젠장.”
한참을 손바닥에 얼굴을 파묻던 그는 인기척을 느끼고 고개를 들었다.
그의 옆자리에 따뜻한 커피가 놓여 있었다. 제이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커피를 준 사람을 찾았다.
그리고 눈이 마주쳤다.
고개를 까딱한 상대가 병원 안으로 들어가고, 윤제이는 따뜻함이 남은 커피잔을 바라만 보다가 손을 뻗었다.
***
‘영화 촬영도 생각보다 일찍 끝날 거 같은데.’
윤제이가 미국에 있는 동안 ‘인신매매범’이 소년을 납치하는 장면을 찍었다.
리딩 이후 권민재는 어떻게 변했을까? 윤제이는 이영창에게서 그날 찍었던 영상을 받았다.
권민재도 꼭꼭 숨겨 잊고 있었던 날것의 감정을 윤제이가 끄집어낸 뒤로 권민재는 정말 날아다녔다.
권민재는 대체로 연기를 잘한다는 평을 받지만, 일부 평론가들 사이에서는 깊이가 없다는 평을 받았었다. 그리고 부족한 깊이는 <아버지>에 폭발했다.
[좋겠다. 나도 너 같았으면.] [내가 네 아빠야!]욕망의 덩어리가 된 ‘인신매매범’은 소년을 향해 제 열등감과 열망을 표출해냈다.
정신이 오락가락해서 소년을 죽여 가죽을 뒤집을 생각을 하기도 했고, 어떨 때는 정말 친아버지처럼 다정하게 굴었다.
감정이 이리저리 널뛰는 것을 소름 끼치게 연기하는 것이 정말 사이코 같았다.
‘더 늘었네.’
그 상태에서 더 늘 수가 있나? 윤제이는 괜히 주먹을 쥐었다 폈다. 괜히 마른 입술을 적시며 화면 속 권민재에게 승부욕을 불태웠다.
그러다가 고개를 저었다.
이건 경쟁이 아니다. 그는 한국으로 돌아가자마자 ‘인신매매범’과 대면하는 장면을 찍는다.
권민재가 만들어낸 이 긴장감을 어떻게 유지하고 뺏어올지, 그리고 어떻게 조화를 이뤄야 하는지 상상으로 시뮬레이션을 돌렸다.
‘노엘이도 제법······.’
그가 주목한 건 권민재뿐만이 아니다. 연노엘은 권민재의 연기에 끌려가면서도 제 중심을 잡았다.
연노엘은 나이에 맞지 않게 조숙했다. 이해력도 빨랐고, 같이 보육원에서 살던 아이들이 귀찮아 근처의 도서관에서 살아서 어휘력이 뛰어났다.
(이영창 감독님) 노엘이는 걱정 마
(이영창 감독님) 애가 참 잘해 가르쳐주는 것도 스펀지처럼 흡수하고
의욕에 앞서 과한 연기를 펼치지 않을까 싶었는데, 다행히 그의 충고를 받아들인 것 같다.
게다가 <아버지>에 참여하는 배우들은 하나같이 연기력이 뛰어났고, 연기가 처음인 아이에게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고개만 살짝 돌려도 선생들이 넘쳐나니 첫 단추를 잘 끼운 셈이다. 아마 <아버지> 이후 다른 작품을 맡아도 어렵지 않게 연기를 펼칠 수 있을 거다.
“JJ. 그럼 이 건은 최종 거절하도록 하겠습니다.”
“네.”
“잘 생각하셨어요. 요즘 이런 거로 문제가 많거든요. 저도 찜찜해서 계약서를 꼼꼼히 검토해보니까, 정말 교묘하게 속였더군요.”
윤제이는 미국 에이전시에서 물어온 일거리를 살피고 있었다.
굳이 한국에만 국한되지 않고 다양한 작품을 맡고 싶었다. 아무래도 들이는 자본이 많은 미국은 장르의 폭이 넓었다.
그중 특이한 제안이 왔는데, 바로 게임의 모션 캡처 연기였다.
주연은 아니다. 짤막하지만 강렬한 등장과 퇴장을 하게 되는 중간 보스 역할이었다.
그래서 윤제이 측에서 하고 싶다는 의사를 내비쳤고, 그쪽에서도 환영했다.
[그럼 연기는 어떤 식으로······.] [아, 직접 연기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네?]그렇게 계약서를 조율하러 마주친 자리에서는 뜻밖의 소식을 들었다.
[한 5시간만 바디 스캔에 협조해 주신다면 이 계약서상의 출연료를 드리지요.]출연료가 제법 셌지만, 윤제이는 검토해본다고 말하고는 그 자리에서 벗어났었다.
배우 활동을 하는 이유가 돈을 버는 거라는 가치관을 가진 사람이라면 혹할만한 제안이었지만, 윤제이는 그런 가치관이 없었다.
‘요즘 기술이 정교하단 말이지.’
이건 계륵이다. 자칫 그의 바디 스캔 데이터가 AI로 활용될 수 있다.
어쩌다 TV를 트니 그가 검토해보지도 않은 작품에 뜬금없이 출연하는 모습을 볼 수도 있다. 출연료는 바디 스캔의 대가로 받은 것으로 대신할 테고.
이런 일로 배우 조합이나 작가 조합이 파업을 반복했다. 어찌어찌 현상 유지 중이지만, 언제든 그 문제가 수면 위로 드러날 수 있다.
“그럼, JJ. 어차피 다다음주에 오실 거니까 담백하게 인사하고 떠나겠습니다.”
“그래요, 래빈. 다음에 봐요.”
몰아치듯 바쁜 스케쥴을 끝내고 다시 한국으로 돌아갈 때가 됐다.
다시 안 오는 건 아니다. 당분간은 미국과 한국을 오가며 드라마에 관한 일정을, 그리고 <아버지>의 남은 촬영분을 찍는다.
“그동안 고생 많았습니다.”
“제가 할 일입니다.”
그동안 경호를 책임졌던 제리 허드슨과 악수한 윤제이는 입을 달싹였다.
“그때, 커피 감사했습니다.”
“······그때라면.”
제리가 눈썹을 들어 올렸다. 설마······.
“기억하고 계시는군요.”
“그럼요.”
윤제이는 제리의 새삼스러운 표정을 보고 우리가 언제 만난 적이 있냐 질문한 게 아니었다. 정말 과거에 마주친 적 있어서 그런 질문을 건넨 것이다.
정말 짧게 스쳐 지나갔을 뿐인데, 그걸 기억하고 있다니.
“제가 먹어본 커피 중에 가장 맛있었다고 하면, 너무 과장일까요?”
“그거 영광이로군요.”
내심 선망하던 사람이 자신을 기억하고 있다는 건 제법 설레는 일이다.
“······그 씹어먹어도 부족할 사자 놈은 말입니다.”
제리는 홀린 듯 입을 열었고, 슬슬 들어가 볼까 생각하던 윤제이를 붙잡았다.
“제 절친한 친구를 난도질했죠.”
“······.”
“정말 말 그대로의 의미입니다. 그 녀석의 시신은 얼굴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였죠. 나중에 치아 기록과 지문을 대조해보고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윤제이는 미간을 찌푸렸다. 그 아픔에 공감한다는 표정이었다.
“놈이 그렇게 죽인 우리 친구들이 많았죠.”
“그렇죠.”
윤제이가 어떤 식으로 사자를 죽였는지는 언론에 잘 알려지지 않았다. 그들의 영웅은 온갖 고난과 역경을 겪고도 정의로워야 했다. 그냥 깔끔히 총으로 죽였다고 아는 사람이 많았다.
“놈은 어떻게 죽었습니까?”
윤제이는 고개를 대각선으로 기울여 쇄골께에 드러난 흉터를 보여주었다. 제리는 저 셔츠 안에 숨겨진 무수한 흉터를 알고 있었다.
“놈에게 받은 것 이상으로 돌려주었습니다.”
“그거 참 기쁜 사실이네요.”
제리 허드슨이 씨익 웃었다.
“제가 바쁘신 분을 계속 붙잡고 있었네요.”
“괜찮습니다. 저도 반가웠으니까요.”
“······당신에게 감사하고 있는 사람이 많다는 걸 알려드리고 싶었습니다. 당신의 생각보다 더 많이요.”
대신 복수를 해 줘서 고맙다고. 당신의 노력은 헛되지 않았다고 말하고 싶었다. 노골적으로 말하기는 조금 부끄러우니 조금은 돌려서.
윤제이는 그 말에 숨겨진 의미를 알아채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감사합니다.”
***
“삼촌, 여기 맞아요?”
“맞아. 비행기가 좀 연착됐나 봐.”
한진우는 윤제이를 마중 나가고 싶다는 연노엘의 요구에 같이 공항을 찾았다.
출국 게이트만 뚫어져라 쳐다보던 한진우가 손을 흔들었다.
“형!”
그들을 발견한 윤제이가 미소를 띠며 그들에게 다가갔다. 안 그래도 키도 크고 덩치도 큰 데다가 얼굴에서 빛이 나니 사람들의 이목이 쏠렸다.
“헐, 윤제이다.”
“대박.”
“미쳤어.”
제 길을 가던 사람들이 멈춰 서서 핸드폰을 들었다.
어떻게 하지? 발을 동동 구르던 연노엘이 한진우가 등을 살짝 미는 것에 결국 참지 못하고 뛰쳐나갔다.
윤제이가 없는 동안 연노엘은 권민재와 연기 합을 맞췄다. 촬영 내내 자신을 납치한 ‘인신매매범’이 은근한 공포를 심었다.
“아빠!”
그래서 그런지 저절로 ‘아버지’에 관한 애틋한 마음이 솟아 넘치는 상태였다. 원래라면 아저씨라 불렀을 텐데, 자제했던 본심이 터졌다.
“뭐야?”
“방금 아빠라고 했지?”
힘차게 달리던 연노엘의 귀에 한 행인의 목소리가 박혔다. 어떡하지? 괜히 나섰나? 주춤한 그를 번쩍 안아 든 건 역시 윤제이였다.
“우왁!”
“노엘이, 잘 지냈어?”
“네!”
연노엘이 환하게 웃었다. 윤제이도 마주 웃어 보이며 성큼성큼 공항 밖으로 걸어갔다.
이영창은 아이가 사랑을 받아 밝아진다면 특유의 분위기가 없어지지 않을까 걱정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아이는 변함없었다.
“가서 어땠어요?”
“좀 바빴어. 그쪽에서 잡은 스케쥴이 생각보다 더 많았거든.”
“와 진짜요?”
“응.”
“하긴, SNS 보니까 ‘엣디엔드’ 홍보 진짜 성대하던데······.”
한진우는 묘하게 밝아 보이는 윤제이의 표정이 신경 쓰였다. 노엘이랑 함께 마중 와서 그런가?
“거기서 좋은 일이 있었나 본데요?”
“그걸 어떻게 알아?”
“형, 제가 형 매니저 한 지가 몇 년인데요.”
윤제이는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인연이라는 건 참 신기하다.
다신 못 만날 줄 알았던 사람을 만나고, 정말 연을 맺을 거라 생각 못 했던 사람과 연을 트게 되었다.
“어디로 갈까요?”
“음······ 노엘아. 액션 스쿨 구경하고 싶댔지?”
“네!”
그렇게 곧바로 액션 스쿨에 도착하니, 권민재가 땀을 흘리며 물을 마시고 있었다.
“왔냐?”
“왔다.”
“바로 온 거야? 안 그래도 되는데······.”
“왜? 좋으면서.”
윤제이와 권민재는 하이 파이브를 하듯 손을 들었다. 그리고 서로의 손을 가볍게 붙잡고 떨어졌다.
“감독님한테서 너 촬영분 봤다. 살살하지 그랬어?”
“야. 네가 그런 말을 하면 안 되지.”
권민재가 헛웃음을 흘렸다. 그는 제 콜 타임이 아닐 때도 <아버지>의 현장을 조용히 찾아 윤제이가 어떤 연기를 펼치는지 은밀히 보고 갔다.
<아버지>의 등장인물이 자신의 인생을 모티브로 해서 그런지 깊이가 상당했다. 어떨 때는 숨이 막힐 정도였다.
이영창과 따로 말하지 않아도 통하는 것이 부럽기도 했고.
“제이야, 왔어?”
“감독님.”
무술 감독이 화색을 띠며 윤제이에게 다가갔다.
윤제이는 무술 감독이 지시하는 동작을 정말 막힘없이 수행했고, 오히려 전쟁터에서 겪은 경험을 알려주며 무술 감독을 가르치기도 했다.
“공항에서 바로 온 거야? 안 피곤해?”
“제가 빨리 합류해야 좋잖아요.”
이번에는 권민재도 대역을 안 쓰고 직접 고난도의 액션을 소화하고 싶다고 했다. 상대 배우가 빨리 합을 맞춰줄수록 좋으니까.
“어떻게, 동작 좀 알려줄까?”
“일단 보여주세요.”
의자에 앉은 윤제이가 차분한 눈빛으로 권민재와 무술 감독의 동작 시범을 관찰했다.
공개
<아버지>에서 나오는 ‘아버지’는 제대로 된 이름이 없었다.
소년병 시절에는 10번이라는 숫자로 불렸다. 그리고 지금은 그를 아무개 혹은 무명(無名)이라 불렀다.
“10번, 오랜만이야.”
소년을 납치한 ‘인신매매범’이 그토록 닮고 싶어 했던, 그리고 그만큼 괴롭히고 싶었던 무명의 등장이다.
그는 무명의 표정에 균열이 가는 것을 즐거운 마음으로 지켜보았다.
“7번, 아이는 어디 있지?”
“어어? 안부 인사 같은 건 없어? 우리 오랜만에 만났잖아.”
‘인신매매범’이 이죽거리면서 무명을 도발했다. 하지만 무명은 도발에 넘어가지 않았다. 오히려 역으로 그를 긁었다.
“네가 가지고 싶었잖아.”
“아니야!”
분노를 참지 못한 인신매매범이 무명에게 달려들었다. 그들이 펼치는 동작은 소름 끼치도록 닮았다. 같은 소년병 출신이라 배운 게 똑같기 때문이다.
‘그거 시범 한 번 봤다고 바로 따라 하다니.’
원테이크로 진행되는 무술 시퀀스. 이를 지켜보던 무술 감독이 혀를 내둘렀다.
NG는 권민재 쪽에서 나왔다. 하지만 다들 이해하는 분위기였다. 고난도의 액션을 단번에 소화해낼 수 없으니까.
“나 좀 도와줘.”
“어디가 어려운데?”
윤제이는 막힘없이 동작을 수행했다. 헷갈리는 권민재를 직접 가르치고, 정말 기계적으로 동작을 따라 했다. 그렇게 몇 번의 시도 끝에 완성된 원테이크 장면.
“윽!”
어린아이를 납치하는 일거리로 먹고사는 인신매매범과 황무지를 떠돌며 온갖 고생을 겪어온 무명은 애초에 게임이 되지 않았다.
무명은 바닥에 나동그라진 인신매매범의 목을 발로 콱 짓눌렀다.
“끄윽!”
인신매매범이 몸을 버둥거렸지만, 무명의 발은 기둥처럼 단단했다.
“난, 난······ 네가······”
인신매매범, 7번은 말을 끝까지 잇지 못하고 무명에 의해 죽게 된다.
무명은 눈을 뜬 채 죽은 상대를 무심하게 바라보았다. 눈을 감겨줄 만큼 자비롭지는 않았다.
옛 동료였을 사람임에도 냉정한 태도였다.
그만큼 소년을 납치한 인신매매범에 유감이 많았고, 소년이 무명의 마음에 스며들었다는 것을 본인은 깨닫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