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sappeared Genius Child Actor Is Back RAW novel - Chapter (241)
사라진 아역 배우가 돌아왔다-241화(241/287)
인터미션:아르페지오 (5)
“뭐냐고.”
유태혁은 케이스에서 기타를 꺼내 꼼꼼히 살폈다.
중간중간 마이클과 안토니를 살벌한 눈으로 흘겨보는 것도 잊지 않았다.
“형, 기타 깨끗해.”
“태혁아. 살인은 안 된다.”
“그래. 쟤네가 잘못하긴 했지만, 여기서 범죄는 안 돼. 우리 대사관 가는 길도 몰라.”
조그만 흠이라도 보이면 즉시 기타를 거꾸로 잡고 대가리를 깨버릴 거라는 생각이 읽힌 듯 아지타토 세 명이 유태혁의 어깨를 부여잡았다.
“왜 말이 없냐? 내 기타가 왜 여기 있냐고.”
“그, 그냥 네가 기타를 아무렇게나 두니까 내가 보관했다가 갖다주려고.”
“솔직히 말해, 변명하지 말고. 왜 훔쳤어?”
마이클과 안토니는 분하다는 얼굴로 입을 꾹 다물었다가, 결국 제 감정을 폭발했다.
“네 기타를 쓰면 우리도 좀 잘 칠 수 있을 거 같아서······.”
“그게 뭔 개소리야?”
마법 학교의 나라라고 이상하게 물들어 버린 거야? 너넨 영국인도 아니라며? 유태혁은 답답하다는 듯 한숨을 쉬었다.
“질투 나서 그랬다! 우리가 더 먼저 왔는데, 너희는 벌써 공연이 꽉 찼잖아!”
“그래! 기타 없으면 당분간 공연이 힘들겠지, 우리도 좀 나눠 먹으려고 했다!”
“너넨 잘나가잖아! 그거 양보하는 게 뭐가 어려운데?”
“나도 너희들처럼 잘 치고 싶다고!”
결국은 본색을 드러낸다. 민준영이 눈살을 찌푸렸다. 저 얘기는 조금 전 1층에서 자신이 했던 얘기랑 비슷했으니까.
정이현의 통역으로 그 말을 알아듣게 된 오인수마저도 싸늘한 표정을 지었다.
“야, 그냥 가자.”
“얘네한테 시간 써 줄 가치가 없다.”
아지타토가 싸늘한 표정으로 계단을 내려갔다. 소란을 듣고 모여든 숙소의 사람들이 왜 그랬냐며 마이클과 안토니를 꾸짖는 소리가 뒤에서 들렸다.
“나랑 동등해지고 싶다는 게, 너도 저렇게 되고 싶다는 거였냐?”
유태혁의 말에 민준영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나는······.”
1편에서 유태혁은 정이현을 향한 열등감을 드러냈고, 그걸 인정하고 같은 멤버로서 나란히 섰다.
하지만 2편에서 민준영이 가진 감정은 열등감과는 다르다. 굳이 단어로 정의하자면 동경이다.
자신도 음악적으로 그룹에 기여하고 싶다는 마음과 실력이 따라주지 않는 자신에 관한 짜증으로 화가 폭발한 거다.
“그냥, 너희랑 어깨를 나란히 하고 싶었어.”
“무슨 개소리를 하는지 모르겠는데.”
유태혁은 한숨을 내뱉었다.
“넌 예전부터 내 옆이었어.”
“······.”
“아니지, 내 밑이었나?”
“그건 뭔 소리야.”
발끈한 민준영이 미간을 찌푸렸다. 유태혁은 실실 웃었다. 그리고 정이현과 오인수를 보고 말했다.
“아까 쟤 말하는 거 들었냐? 쟤 지금 개 쪽팔릴걸.”
“아! 씨!”
정이현과 오인수는 웃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모르겠는 표정으로 두 사람을 쳐다보다가 뒤늦게 웃음을 터뜨렸다. 웃음은 전염된다. 아지타토는 실성한 사람처럼 웃었다.
“야, 민준영. 넌 너무 걱정이 많아.”
“그게 너 때문이라는 생각은 안 하냐?”
“난 너 없으면 밴드 시작 안 했을 건데.”
뚝, 웃음이 끊긴다. 민준영과 유태혁이 시선을 마주한다.
“나라는 재능충을 록 음악계에 풀었으니 책임을 다해.”
“지랄.”
민준영이 유태혁의 어깨를 밀어 넘어뜨린다. 유태혁은 쉽게 옆으로 넘어갔다.
숙소의 관리인이 허둥지둥 그들을 찾아 논란을 일으킨 마이클과 안토니는 바로 퇴소 처리할 거라며 사과하고 갔다.
“너는 안 불안하냐?”
“뭐가.”
“우리가 계속 아지타토로서 이 인지도를 지켜낼 수 있을까? 갑자기 우리가 안 팔리는 뮤지션이 되면 어떡해?”
“······실패해 봐야 성공도 하지.”
추락도 해 봐야 올라가는 법을 아는 거다. 유태혁은 무심코 그렇게 생각했다가 멈칫했다.
이 말은 자신에게도 해당되는 말이니까.
“그만 징징대. 떨어지면 뭐 어떠냐.”
“······.”
“우린 팀이야. 떨어져 봤자 함께 떨어지는 거야. 적어도 외롭지는 않을 거 아니야.”
그리고 올라올 때도 함께 올라오는 거다. 유태혁은 별거 아니라는 듯이 말했다.
“하······ 그래?”
그 말을 들은 민준영이 헛웃음을 내뱉더니, 이내 다시 웃었다. 오인수와 정이현도 마찬가지다.
“뭐가 웃기냐?”
유태혁은 뚱한 얼굴로 그걸 쳐다보았다. 그리고 어깨에 닿는 멤버들의 손이 느껴진다.
“역시 이 밴드는 네가 있어야 해.”
과거 민준영은 유태혁을 버린다고 했고, 실제로 유태혁을 뺀 3인조로 스케쥴을 나갔다. 그때와 대비되는 말이었다.
유태혁이 입꼬리를 올렸다.
“알아.”
***
다음날, 유태혁은 같은 숙소를 쓰는 다른 밴드를 찾았다.
“태혁, 얘기 들었어. 기타 찾았다며?”
“어.”
“마이클이랑 안토니가 그런 애들인 줄 알았으면 나도 친하게 지내지 않았을 거야.”
“됐어. 걔넨 꺼졌으니까. 그나저나 노라, 기타 부족하다고 했지?”
“어! 쓸만한 놈 있어?”
“있지, 얘.”
유태혁은 민준영을 앞으로 밀었다.
“네 기타리스트잖아. 우리가 데려가도 되는 거야?”
“착각하지 마. 잠깐 빌려주는 거야. 잘 쓰고 돌려주라고.”
민준영이 어리둥절해서 유태혁과 노라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다른 애들이랑 놀다 와 봐.”
“갑자기 이게 뭔 개소린데? 우리 공연은?”
“오늘 공연은 취소했어. 이제 내 독선에 익숙해질 때도 되지 않았냐?”
유태혁이 씨익 웃었다.
“네게 부족한 건 자존감이야.”
“뭐?”
“잔말 말고 가 봐.”
“이 새끼가.”
투덜거리는 말과는 다르게 노라의 밴드에 잠시 합류한 민준영은 길거리 버스킹을 나섰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민준영은 티 나지 않게 노라 밴드의 면면을 살폈다.
‘뭐야.’
애들이 열심히 치긴 한다. 앞에 사람이 꽤 모인 거 보니 제법 잘 치는 것 같다. 하지만 민준영은 이상하게 부족함을 느꼈다.
‘얘네가 못하는 거야, 내가 잘하는 거야?’
둘 다다. 민준영은 물 만난 물고기처럼 연주했고, 노라 밴드가 살살 하라며 주의를 주기도 했다.
“병신, 지가 원석인 것도 모르고.”
그리고 그걸 지켜보던 유태혁이 중얼거렸다.
정이현은 불세출의 천재다. 유태혁은 그에 미치지 않지만, 실력이 출중하다. 두 사람을 따라오는 것만으로도 재능이 있다는 거다. 오인수 그리고 민준영도.
노라 밴드의 길거리 연주를 보다가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마주친 것은 콰르텟 버스커였다.
그들은 악기를 정리하려 하고 있었다. 지금까지 연주하고 있었던 건가?
“어? 그때.”
“버스킹은 두 시부터라며?”
“정신없이 연주에 빠져들다 보니 벌써 이 시간이더라.”
그 맘 잘 알지. 유태혁은 공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케이스에 막 들어간 바이올린을 가리켰다.
유태혁은 그걸 응시했다.
왠지 모르겠는데, 바이올린을 연주하고 싶었다.
“바이올린, 빌릴 수 있겠어?”
“좋아. 오늘은 켤 마음이 들었나 보지?”
상대는 흔쾌히 제 바이올린을 내밀었다. 그걸 어깨에 낀 유태혁은 잠시 허공을 바라보았다. 무슨 곡을 연주할까.
‘그래, 그거로 하자.’
이윽고 유태혁은 활을 든다.
바이올리니스트라고 하면 대부분은 파가니니를 떠올릴 것이다. 하지만 신지원 감독은 곡 선택을 대충 하지 않았다.
하지만 유태혁이 연주하는 곡은 사라사테의 카프리스 바스크였다.
사라사테는 기타의 나라 스페인 태생이며, 바이올린 기교에 크게 이바지한 인물이다.
그리고 카프리스 바스크는 4옥타브의 아르페지오가 현란하게 펼쳐지고, 왼손 피치카토 구간은 마치 기타를 연주하는 것 같다.
마치 기타와 바이올린의 중간에 있는 유태혁처럼.
‘별거 아니잖아.’
유태혁은 눈을 감았다. 뭐가 이렇게 두려웠을까. 이젠 이게 무섭지 않았다.
“세상에.”
“그냥 못 치는 게 아닌 수준인데 이건?”
콰르텟 연주자들이 멍하니 유태혁을 바라보았다. 화려한 기교에 길을 지나는 사람들의 걸음이 멈춘다.
“와아!”
그리고 연주를 끝마쳤을 때는 그의 주변에 많은 사람이 몰려 있었다. 유태혁은 후련한 숨을 내뱉었다.
“자, 빌려줘서 고마워.”
“이런 실력을 숨기고 있었던 거야?”
“별거 아니야. 놓은 지도 오래됐고.”
“이게 별거 아니라니······.”
바이올린을 빌려준 연주자가 허탈한 표정으로 그를 올려다보았다. 구경꾼들은 계속 박수를 치며 다음 곡을 종용하고 있었다.
“어때? 성원에 힘입어 한 곡 더?”
“아니, 이제 됐어. 난 밴드로 돌아갈 거야.”
“밴드? 너 밴드 해?”
“어. 내일 체셔 캣 펍으로 와. 죽이는 음악 들려줄게.”
미련 없이 그 자리를 벗어나려던 유태혁은 익숙한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자네, 바이올린도 켤 줄 아나?”
“······당신은.”
벤치에 한 노인이 앉아있었다. 동양인이 밴드를 해 봤자 뻔하다며 중얼거리던 성격 이상한 노친네.
“인종차별 영감님이잖아.”
“그 무슨 실례되는 소리를, 그리고 난 인종차별주의자가 아니야.”
그럼, 그때는 왜 그런 말을 했냐는 눈빛으로 쳐다보자, 노인이 큼큼 헛기침했다.
“자네들을 도발하려고 했지. 정말이야.”
“도발은 왜요?”
“눈빛이 죽어 있었잖냐.”
유태혁은 이해가 안 된다는 듯 눈살을 찌푸렸다. 그리고 노인의 옆에 털썩 앉았다.
“나 그때 엄청 재밌게 연주했는데요.”
“내 눈은 못 속이지.”
노인은 신난다는 듯 어깨를 들썩였다. 그동안 말벗이 없었나?
“드럼이랑 기타는 제 실력에 자신이 없었고, 또 다른 기타는 다른 거에 정신 팔렸었던 거 같던데.”
오인수와 민준영, 또 다른 기타는 정이현인가.
“그걸 노친네가 어떻게 아는데요?”
“노친네? 이 녀석이. 음악으로 자신의 감정을 표출하잖냐.”
“그걸 듣는 것만으로도 다 안다고요?”
“자네도 할 수 있지 않나? 저기 저 광장에서 연주하는 기타리스트 표정이 좋던데.”
이 사람, 듣는 귀가 좋다. 앞서 노라 밴드의 연주를 보고 왔군. 유태혁은 어깨를 으쓱하면서 그 말을 긍정했다.
“그럼, 나는요?”
“자네는······ 너무 고정관념에 휩싸여 있었지.”
정곡을 찔렸다. 유태혁은 최근 몇 년간 무조건 밴드 음악만 고집했으니까.
“그래서요?”
“나한테 해결법을 묻는 거야? 자네는 이미 해답을 찾은 거 같은데?”
유태혁이 팔짱을 풀고 노인을 응시했다. 장단이나 맞춰 줄까.
오랜만에 바이올린을 잡아 고양된 기분이기도 했고, 이 신비한 영감님과는 죽이 잘 맞을 거 같다.
“영감님은 음악을 잘 아나 봅니다?”
“잘 알지. 나도 소싯적엔 기타 좀 쳐봤는데. 바이올린은 언제 배웠나?”
“몰라요, 한 네 살 때였나. 세 살 때였나. 한글을 제대로 떼기 전부터였죠.”
“호오?”
그 정도면 유년기를 정말 바이올린을 위해 던진 거나 다름없다.
“연주하는 거 보니 제법 성과는 올린 거 같던데?”
“나름 신동이라 불렸죠. 재밌는 거 알려드릴까? 한국 남자라면 군대에 가야 하거든요. 그런데 저명한 콩쿠르에서 상을 타면, 군대가 면제돼요.”
“그거 재밌구먼.”
그 말인즉슨 유태혁도 저명한 콩쿠르를 휩쓸었다는 말이다. 노인은 킬킬 웃었다.
“그런데 왜 관뒀나?”
“벽을 넘지 못해서요. 세상에 천재들이 왜 이렇게 많아?”
그래서 1편에는 정이현을 향한 열등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바이올린을 마지못해 버리고 시작한 새로운 음악에서도 잘하는 사람이 널렸으니까.
하지만 이렇게 털어놓는 것 자체가 이젠 그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거다.
“뭐, 집에 돈도 없고. 사정도 생겨서 관뒀죠.”
“그 뒤로 바이올린은 연주 안 한 거야?”
“아예 바이올린은 쳐다도 안 봤어요.”
“왜?”
“내가 실패한 흔적이니까.”
바이올린은 유태혁의 유년 시절이었다. 바이올린을 외면한다는 건 살아온 것을 부정하는 것과 같았다.
“원래 인생이라는 게 실패도 좀 해보고 상처 좀 받아 가는 거라는 걸 늦게 깨달은 거죠.”
“그렇지.”
멤버들에게 잘난 듯 말했지만, 정작 실패를 두려워한 건 유태혁이었다.
그리고 방금 바이올린을 연주한 뒤로 깨달았다. 실패가 무조건 나쁜 게 아니라는 것을.
[실패도 해 봐야 성장하지.]어머니의 말을 이제 이해할 수 있었다.
“이제 뭘 할 텐가?”
노인의 질문에 유태혁은 고개를 기울였다. 그걸 왜 물어보냐는 눈빛이다. 답은 정해져 있는데.
“음악을 계속해야죠.”
밴드든 클래식이든 바이올린이든 기타든 드럼이든 뭐든 간에 모두 다 음악이니까.
이렇게 말하는 것도 음악일 수 있고, 불현듯 허벅지를 때리며 리듬을 타는 것도 음악이다.
그는 이제 형식에 얽매이지 않기로 했다. 무조건 밴드 악기만 고집하지 않을 거고, 곡에 어울린다면 놓았던 바이올린을 다시 잡을 용기도 생겼다.
“언제 들을 수 있지? 자네들의 진짜 음악을.”
노인이 씨익 웃었다.
“지금은 말고, 한······ 한 달 뒤에 우리 밴드 신곡 들으러 펍에 오시죠.”
“좋네. 기대하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