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sappeared Genius Child Actor Is Back RAW novel - Chapter (258)
사라진 아역 배우가 돌아왔다-258화(258/287)
아버지 (2)
남자는 이름이 없었다.
어린 시절에는 번호로 불렸다. 10번. 사람을 사람으로 안 보고 가축으로 봤던 시절이었다.
지금은 그를 아무개 혹은 ‘무명’으로 불렀다.
이름이 없다는 뜻의 이름은, 그를 부르는 하나의 명칭이 되었다.
영화의 초반부는 그들이 사는 세계가 어떤지를 보여준다.
장엄한 오케스트라 OST가 흐르고, 카메라를 원경으로 뺀다. 그리고 어딘가로 걸어가는 남자를 점처럼 멀리 잡았다.
아무도 쓰지 않아 산화된 빌딩, 그걸 칭칭 감아 올라가는 넝쿨, 긴 전쟁이 끝나고 점점 회복되어가고 있는 자연을 보여준다.
과거, 찬란했던 도시 문명은 이제 자연에 섞여서 그 자체로도 하나의 자연이 되었다.
신비롭고 장엄한 자연에서 카메라는 남자를 가까이 들여다본다. 그리고 화면은 일부러 그의 주변에 왜곡을 준다.
자연과 대비되어 남자는 세상에 섞이지 않는 이질적인 존재라는 듯, 혹은 남자가 세상에 섞이려 들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쾅!
벙커의 철문을 거칠게 열어젖힌 남자는 내부에 있는 것들을 훑었다. 쓸만한 물건은 가방에 담고, 과거의 잔재는 망설임 없이 드럼통에 버렸다.
“······.”
소년병을 양성했던 기록이 담긴 서류를 드럼통에 던진 그가 성냥으로 불을 붙였다.
불을 바라보는 남자의 눈빛에 여러 감정이 담긴다. 깊은 증오와 슬픔이었다.
남자는 자신을 만들었던 흔적을 지우고 있었다. 그에게 있어서 소년병 시절이었던 과거는 지우고 싶고, 도망치고 싶은 기억이었다.
이영창은 소품과 장면 하나하나에 의미를 주었다.
불은 윤제이와도 연관되어있다. 실제로 그는 이 장면을 연기했을 때도 과거를 생각했다.
[윌리엄스가 죽은 건 너 때문이 아니야. 그건 사고였어.]윤제이는 불이 싫었다. 불은 순식간에 번져 모든 것을 집어삼킨다.
그가 소방관을 관두기로 마음먹었던 것도 이 때문이었다. 불에 집어삼켜져 구할 수 없었던 동료 때문에.
열기로 인해 아지랑이가 그의 주변을 맴돈다. 남자를 감싼 왜곡이 더욱 심해진다.
그리고 남자는 벙커를 샅샅이 뒤진다. 화면은 벽과 선반으로 면을 나눠 마치 남자가 벽에 내몰린 듯한 느낌을 주었다.
그렇게 남자의 주변에 어른거리는 왜곡과 불규칙함이 관객의 눈에 익게 되고, 규칙적인 것이 이질적으로 보일 때쯤, ‘소년’이 등장한다.
철컥
뒤에서 느껴지는 인기척을 향해 총구를 들이민 남자의 눈에는 짙은 살기만 있었다.
“······헉!”
소년이 놀라서 숨을 삼켰다.
감독은 의도적으로 두 사람에게 서로의 눈을 쳐다보지 말고 시선을 비껴가라 얘기했다. 그리고 화면도 그들의 시선이 맞물리지 않는 것을 보여준다.
소년을 감싼 배경은 왜곡과 불규칙에 감싸인 남자와는 달랐다. 소년을 감싼 것들은 놀랍도록 규칙적이고, 정돈되어 있다. 두 사람의 대비를 준 것이다.
꿀꺽, 소년이 침을 삼키는 소리가 들린다.
소년을 옥죄는 숨 막히는 분위기에 ‘설마, 애를 죽이려고 하나?’ 관객들의 심장이 쫄깃해졌을 때쯤, 남자는 총을 거둔다.
“아······.”
그리고 쓸만한 것들을 챙겨 밖으로 나가는 남자의 뒷모습을 소년이 멍하니 쳐다보았다.
이윽고 소년은 뒤늦게 남자를 따라간다. 여기 숨어 살면서 처음 보는 ‘어른’이다. 여기 있다가는 홀로 말라 죽는다.
남자는 필사적으로 뒤에서 따라오는 소년의 인기척을 느껴도 뒤돌아보지 않았다.
윤제이에게서 ‘소년’은 과거, 윤제희였다. 그리고 윤제이는 연기로 내면 갈등을 해소하지 못했던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윤제희 시절을 그렇게 좋아하진 않았다.
그래서 이영창은 아이가 뒤따라오는 것을 일부러 공포스럽게 연출했다.
숲길을 거닐 때는 숲의 그림자를 따라 소년을 배치해 마치 어둠이 남자를 쫓아오는 것처럼 묘사했고, 황무지를 걸을 때는 뒤에 조명을 세게 줘서 아이의 그림자가 남자를 삼키는 것 같이 묘사했다.
그렇게 묘한 동행이 이어질 때, 남자는 높이 솟은 깃발을 발견하게 된다. 해골과 숫자 7, 밧줄에 묶인 아이를 그린 상징은 위협적으로 다가왔다.
‘그 녀석인가······.’
7번, 과거 소년병 시절의 동료. 그리고 지금은 ‘인신매매범’이 되어 살아남은 아이를 납치해 돈 받고 부유층에게 파는 일을 한다.
남자는 그제야 뒤를 돌아보았다. 필사적으로 남자를 쫓은 소년의 몰골은 좋지 않았다.
머리는 산발이고, 낯빛은 죽었다. 신발도 없이 맨발로 먼 거리를 걸어온 탓에 발은 상처투성이였다.
아이는 도망치고 싶고 잊고 싶은 과거지만, 그래서 그와는 떼놓을 수 없다. 왜냐면 윤제희도 자신이니까.
“가자.”
결국, 남자는 소년을 향해 손을 내민다. 소년의 얼굴이 단번에 화색이 되어 남자의 손을 잡는다.
화면은 손을 잡고 걸어가는 두 사람의 뒷모습을 담았다.
그리고 그들을 감싼 풍경은 왜곡 없이 선명하고, 규칙적이었다. 아이의 손을 잡음으로써 남자의 심경 변화가 일어났다는 거다.
***
남자가 소년을 데리고 온 곳은 생존자들이 정착한 마을이었다.
“무명, 왔나?”
“오늘은 쓸만한 거 가져왔어?”
정착촌의 사람들은 이윽고 남자의 손을 잡고 걸어오는 아이를 보고 놀란다.
“잠깐만, 애잖아.”
“세상에······ 건강해 보이는데?”
인간들의 이기심으로 비롯된 전쟁은 세계의 멸망을 가져왔다.
결국 금기시되던 소년병을 육성하기에 이르렀고, 아이들은 영문도 모른 채 전쟁의 희생양으로 갈렸다.
그리고 의미 없는 소모전으로 멸망 직전에 갔고, 전쟁은 끝났다.
무명을 비롯한 소년병 출신은 노력에 따른 보상을 받지 못했다. 책임을 물을 국가조차도 사라졌으니.
가서 희생하라 전장으로 떠밀 때는 언제고, 아이에게만 발병하는 바이러스로 인해 아이가 귀해진 시대가 되었다.
이제 아이는 전쟁터를 누비며 공포의 상징이 아닌 희망을 상징했다.
“삐쩍 말랐잖아.”
“무명! 여기로 와!”
그렇게 소년은 존재만으로도 사랑받는 삶이 예정되어 있었다. 무명은 아이를 데리고 카페였었던 곳에 들어간다.
화면은 유리창에 아직 남아있는 ‘노 키즈 존’ 문구를 의미심장하게 비춘다. 마치 요즘 사회 문제를 은유하는 듯.
“무명, 네 애야?”
“주웠어.”
소년은 정착촌 사람들의 환대를 받았다. 다들 소년에게 뭐 하나 먹이려고, 입히려고 안달이었다.
“애야. 이것도 먹어봐.”
“너무 그러지 마. 애 체한다.”
소년을 챙기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몸이 불편한 사람들이었다. 누군가는 팔 한쪽이 없었고, 누군가는 양다리가 없어서 휠체어 신세였다.
본인 하나 챙기기에도 벅찬 상황에서도, 타인에 관한 애정은 넘쳤다.
“부럽네.”
멀찍이 떨어져서 앉아 그 광경을 보고 있던 무명의 옆에 한 여자가 앉았다.
백다은이 연기하는 ‘김희망’은 무명과는 같은 시설에 있던 훈련생이었다. 전쟁이 무섭고 앞으로 총알받이가 되어야 한다는 공포에 벌벌 떨던 그녀를 무명이 밖으로 빼돌렸다.
마치 현실에서 ‘윤제희 특별법’의 영향을 받아 소속사의 노예 계약에서 벗어난 것처럼, 김희망도 무명의 영향을 받아 전쟁터를 누비지 않고 정착촌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다.
그리고 자신을 스스로 번호가 아닌 ‘김희망’으로 불렀다. 그리고 그녀와 같은 소년병 출신을 찾아 보살피고 거두었다.
마침내 자유를 찾은 무명은 김희망처럼 이름을 새로 지어 자신을 정의하는 것도 하지 않았다.
마치 세상에 지워지고 싶어서 안달 난 사람처럼 보였다.
“우리도 늦게 태어났어야 했는데.”
이젠 아이는 희귀해서 후세대의 희망이 되었다. ‘김희망’이 자신의 이름을 희망으로 지은 것도 비슷한 맥락이었다.
“몇 살 정도 되어 보여?”
“글쎄······.”
“여섯, 일곱은 넘어 보이지? 이제 아이만 죽이는 바이러스가 사라진 건가?”
소년을 바라보는 김희망의 눈에는 어떠한 질투도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바이러스가 없어진 거 아니느냐는 희망을 입에 담았다.
무명은 그런 김희망을 바라보았다. 쉽게 희망을 담는 모습이 철없어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찬란했다.
“밖에서 무슨 일은 없었지?”
김희망의 질문에 무명은 숨을 후, 토해냈다.
“녀석의 흔적을 봤어.”
그 말에 김희망이 놀라서 그를 바라보았다.
“······7번?”
무명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모습이 많이 지쳐 보였다.
“아직도 애 납치해서 팔아넘기나?”
“그런가 봐.”
세 사람은 같은 훈련소 출신이었다. 그리고 세 사람이 가는 길은 너무도 달았다.
“우린 왜 이렇게 됐을까.”
“······.”
한 사람은 삶의 목적이 없어 떠돌이 생활을 했고, 한 사람은 자신과 비슷한 환경에 처한 사람들을 보살피고, 베풀었다.
그리고 한 사람은 온갖 약탈과 밀수 등 비도덕적인 행위를 일삼았고, 기어코 인신매매까지 손을 댔다.
김희망은 이름에서 그렇듯, 고난과 역경을 딛고 스스로 오롯이 선 자였다. 그리고 그녀의 대척점에 선 인물이 7번, 인신매매범이었다.
“저 애는 어떡할 거야?”
“네가 보살폈으면 하는데.”
“나야 좋지만······ 괜찮겠어? 애가 널 따르는 거 같은데.”
소년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인 와중에도 무명을 흘끔흘끔 바라보았다. 소년은 남자를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어른으로 봤다.
“이참에 나랑 같이 여기서 살자. 언제까지 떠돌아다닐 거야?”
“그럴 순 없어.”
“왜?”
무명은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그도 이유를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곳곳에 남은 소년병 육성 시설을 파괴하는 것만이 그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어이, 아저씨.”
“······?”
“애가 ‘세상의 끝’으로 가고 싶다는데, 좀 도와주면 어때?”
신나서 소년과 뭐라 뭐라 대화하던 아저씨는 문창민이 연기했다. 그가 무명의 맞은편에 앉았다.
“내가 왜 들어줘야 하지?”
“우리는 몸이 불편하잖아.”
그 말은 설득력이 없다. 소년은 짐이다. 게다가 인신매매범이 활개를 치고 있었다. 괜한 일에 휘말릴 것이다.
“우리 부탁 좀 들어줘.”
“애가 안쓰럽잖아.”
하지만 무명은 매몰차게 거절하지 못했다. 소년을 보고 있자면, 자꾸 과거에 놓쳤던 것들이 생각났다.
그가 품어왔을 희망과 가능성, 삭막한 전쟁터에서도 서로를 도와줬던 전우애 등 좋은 추억이 말이다.
“······대가는?”
“기다려 봐.”
사람들은 소년의 소망을 위해 가진 것들을 모두 내놓는다. 소년이 놀라서 죄책감이 깃든 얼굴로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저, 저는 드릴 게 없는데······.”
“괜찮아.”
“무명, 애 좀 봐줘라.”
하루하루 먹고사는 것도 벅찬 현실에 ‘세상의 끝’을 보겠다는 꿈을 꾸는 건 사치다. 하지만 사람들은 소년을 위해 애썼다.
그렇게 두 사람이 ‘세상의 끝’으로 향하는 첫날이 되었다.
무명은 아침 일찍 나와 사람들이 기증한 오토바이를 손보고 있었다. 그리고 2층 난간에서 소년이 나왔다.
“안녕히 주무셨어요?”
“······.”
“오늘 날씨가 좋아요.”
정착촌에 머문 며칠 동안 소년은 필사적으로 무명과 친해지려고 했다. 이 사람은 꼭 잡아야 한다는 어떤 영혼의 이끌림이 있는 듯했다.
“제가 뭐라고 불러야 할까요?”
“아무거나. 무명이라 불러도 되고.”
“그건 싫어요.”
소년은 드디어 무명이 대답해주었다는 사실이 기쁜지 발을 동동 굴렀다.
그러면서도 두 손은 뒤로 꽈악 맞잡았다. 이 사람이 날 버리면 어떡하지? 초조함을 담고서.
“아빠?”
무명의 손이 멈칫했다. 그리고 고개를 올려 소년을 바라보았다.
그동안 화면은 계속 두 사람의 시선이 어긋난 것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지금에서야 두 사람의 시선이 온전히 맞물린 것이다.
화면은 무명의 시선을 대변하는 듯 아래에서 위로 소년을 비춘다. 소년의 배경에는 구름 한 점 없는 푸른 하늘이 펼쳐져 있었다.
“아빠.”
그리고 화면은 소년이 보는 시야로 넘어간다.
붉고, 주홍빛이 도는 삭막한 모랫바닥을 딛고 선 무명. 그리고 카메라가 뒤로 빠지며 두 사람을 담는다.
푸른 하늘과 붉은빛이 도는 모래, 두 사람을 상징하는 색감의 대비다.
“그게 좋겠어요.”
“······.”
무명은 뭐라 말을 하려다가 다시 입을 다물었다. 기분이 이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