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sappeared Genius Child Actor Is Back RAW novel - Chapter (286)
사라진 아역 배우가 돌아왔다-286화 (외전 완결)(286/287)
외전- 윤바다, 20세 (완결)
주말이라 그런지 추모 공원에는 많은 사람이 찾아왔다.
“여기도 오랜만이네요.”
운전석에서 내린 젊은 남자가 가볍게 제 앞머리를 털었다.
긴 코트가 잘 어울리는 장신의 청년. 머리는 금발로 염색된 상태였는데, 몇 번의 탈색 때문에 약간 부스스했고, 비활동기라 검은 뿌리가 꽤 자라 있었다.
“그러게, 오늘 날씨도 좋네.”
조수석에서 꽃다발을 들고 내린 중년 남자도 그림 같았다. 예전보다는 세월이 느껴지는 얼굴. 하지만 여전히 근사했고, 오히려 완숙미가 느껴졌다.
“허억······.”
지나가다가 두 사람을 알아본 행인이 눈을 크게 뜨고 손으로 입을 막았다. 다른 행인의 반응도 비슷했다.
두 사람은 그게 익숙한 듯 넓은 보폭으로 성큼성큼 목적지로 향했다. 워낙 다리가 길다 보니 금세 도착했다.
“꽤 깨끗한데요?”
“그러고 보니, 저번 주에 네 고모랑 삼촌이 들렀다고 했었나.”
“아아, 어쩐지. 그래도 온 김에 한 번 더 닦을 게요.”
청년이 물티슈로 추모비를 닦았다. 추모비에는 윤수헌이라는 이름 석 자가 각인되어 있었다.
“이 나무는 그새 또 자란 거 같아요.”
“역시, 내 기분 탓이 아니지?”
중년의 남자는 추모비 앞에 꽃다발을 놓았다.
“이만 갈까?”
“네.”
부자(父子)는 나란히 서서 추모비 앞에 길게 묵례한 뒤, 다시 발걸음을 재촉했다.
“저도 나중에 죽으면 수목장할까 봐요.”
“그것도 좋지.”
“아빠는요?”
음, 시작인가. 윤제이는 입가에 미소를 달고 말했다.
“아빠는 이미 누울 자리 예약되어 있는데? 저기, 버지니아에.”
“그럼, 저는요?”
“넌 네가 알아서 해야지.”
“어후, 맵다 매워. 매운 것도 잘 못 드시면서 이렇게 맥이기 있기에요?”
“대신 네가 잘 먹잖아.”
두 사람은 서로 말장난을 걸고 당해주는 게 일상이었다. 윤제이는 아니다 싶은 것에는 엄격했고, 그 외에는 다정했다. 때로는 친구 같을 정도로.
“갑자기 미국 할아버지, 할머니 보고 싶네요. 서울 할머니는 최근에 뵀으니까.”
“아빠도 보고 싶어. 우리 여행 끝나면 시간 좀 남을까?”
“저는 곧 다음 앨범 준비 들어가니까, 미국까지 갈 시간은 안 나요.”
“그럼, 다음에 같이 가자.”
차를 타고 다시 여정을 떠나는 와중에 윤제이가 입을 열었다.
“아들, 근데 너 요새 시나리오 본다는 소리 돌더라.”
“아, 역시. 아빠는 못 속이겠네요.”
윤제이는 여전히 외국과 한국을 번갈아 가며 활발한 작품 활동을 했다.
원래도 업계의 영향력이 엄청났는데, 꾸준해서 그런지 더욱 저변이 넓어졌다.
“다음 앨범 활동에다가 대학도 다녀야 하는데, 연기까지 다 하려고?”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은 걸 어떡해요.”
“그래. 열심히 사는 건 좋은데, 너무 무리하지만 말고.”
“괜찮을 거예요. 음, 아마? 저는 젊잖아요.”
“아주 한 마디를 안 지는구나.”
윤제이는 푸스스 웃었다.
윤바다가 중학교 2학년 때 진로를 고민했던 것은 사춘기의 방황이었다.
그는 아이돌로 데뷔하겠다 마음먹자마자 바로 데뷔했고, 그룹이 자리 잡기 전까지는 연기 활동을 안 하겠다고 선언했다.
“유건이 형이 꼭 같이하자는 작품이 있어서요.”
“유건이 삐진 건 좀 풀린 거 같아?”
“아마 이 작품같이 한다고 하면 괜찮지 않을까요?”
정말 데뷔 후 2년간은 시나리오를 쳐다보지 않았다. 3년 차부터 짤막한 단역, 웹 드라마 등 차근차근 다시 시작했다.
중간에 진지하게 수능을 치른다고 다시 연기를 놓았지만, 오히려 아이돌 생활로 분위기를 환기한 뒤 연기를 겸업하겠다는 전략이 좋았다.
윤바다가 딴 길로 새는 동안 정유건은 정석 코스를 제대로 밟으며 아역에서 성인 연기자로서의 발돋움을 시작하고 있었다.
정답은 없다. 방식의 차이일 뿐.
“근데 이 노래는 누구 노래야? 좋은데?”
윤제이는 차에서 나오는 노래를 흥얼거리다가 한마디 했다. 그러자, 윤바다의 광대뼈가 솟구치는 것을 포착했다.
“설마.”
“제 노래에요. 다음 앨범 타이틀에 들어갈.”
“드디어?”
“드디어.”
“대단한데?”
어느덧 배우 데뷔 12년 차, 아이돌 생활로는 5년 차가 넘은 윤바다는 그동안 작곡에도 제법 소질을 보였다.
소속사 블라인드 테스트에 낸 곡이 통과해 대뜸 앨범에 수록됐고, 이번에는 타이틀을 차지하겠다며 이를 바득바득 갈더니 기어코 쟁취해 냈다.
“정말 이 곡을 네가 작사, 작곡했다고? 아빠한테 장난치는 거 아니지?”
“저 이런 거로는 장난 안 치는 거 아시잖아요. 편곡은 다른 누나에게 맡기기는 했지만.”
“진짜 좋다. 다음 앨범도 잘 되겠는데?”
“아, 여기서 더 터지면 곤란한데.”
윤바다가 능청을 떨었다. 그의 소속 그룹은 남자 아이돌 전성기를 열었고, 이번 앨범 발매 이후 성대한 월드 투어가 예정되어 있었다.
“그런데, 방금 누나라고 했지? 설마 여친이야?”
“아빠. 저 아이돌이에요.”
정색하는 모습에 윤제이는 웃음을 터뜨렸다. 아마 계속 배우 활동만 했다면 이런 분야에서도 재능이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겠지.
“역시 우리 아들, 재능이 많네.”
“아빠만 하겠어요?”
“입바른 소리도 잘하고. 뭐 필요해?”
“말리부 별장 주세요.”
“너에게 물려주기에는 아직 일러.”
물론, 제 아들이 재산을 일찍 물려준다고 해도 버릇이 나빠지는 성향은 아니다.
윤바다는 뭔가를 잠시 고민하다가 허공을 보며 눈웃음을 지었다. 어, 저거 또 장난칠 때 나오는 버릇인데.
“아빠. 저요, 나중에 전속 계약 기간 끝나고 재계약 불발되면······.”
“설마.”
“사관학교 지원해 볼까요? 계산해 보니 딱 22세 커트라인인데. 저도 훈장 받아서 나중에 아빠 옆에 묻히도록 노력해 볼게요.”
“하아······.”
명치부터 올라오는 깊은 한숨을 내뱉었다. 그래. 인정. 이번 건 좀 셌다.
“아들, 그렇게 아빠 쓰러지는 꼴 보고 싶어?”
“잘 안 쓰러지시잖아요.”
윤제이가 끙, 앓는 소리를 냈다. 그리고 윤바다는 그 반응에 웃었다.
“장난이에요.”
“장난 한 번 더 했다가는 심장이 남아나질 않겠구나.”
물론 윤제이도 그렇게 놀라지는 않았다.
아들이 그렇게 소속 그룹에 애정이 없는 것도 아니고, 자신을 놀리기 위해 농담하는 것을 잘 알았기 때문이다.
“이제 운전 잘하네. 아까 주차도 잘하더니.”
“누구 아들인데요.”
윤바다는 수능을 마치자마자 운전 면허 학원에 다녔고, 고등학교 졸업식 직후 윤제이와 국내 로드 트립을 다니는 중이었다.
하지만 어깨가 경직된 모습에서는 아직 초보 티가 났다. 윤제이가 넌지시 물었다.
“슬슬 아빠랑 교대할까?”
“티 났어요?”
“조금. 여기까지 온 것도 잘한 거야.”
“아빠 피곤할까 봐 그러죠. 어제도 운전 거의 다 했잖아요.”
“효심이 아주 지극하구나. 감동적이긴 한데, 나는 잘 안 쓰러진다고 아까 누가 말했더라?”
윤바다가 흐흫, 하고 웃었다. 마침 휴게소가 있길래 주차장에서 교대하려고 정차했다.
“뭐지?”
그런데 저 멀리서 차가 과속하더니, 쾅! 소리와 함께 충돌 방지 볼라드를 박고서는 멈춰 섰다.
“헉, 어떡해!”
“안에 사람······!”
윤제이가 반사적으로 뛰쳐나가면서 윤바다에게 소리쳤다.
“119에 신고해!”
“네!”
윤제이는 겉옷을 벗어 팔뚝에 둘둘 감았다. 그리고 팔꿈치로 운전석의 창문을 깼다.
과자처럼 부서지는 유리를 대충 정리한 뒤 운전자를 밖으로 빼내는 동안 안에 남은 사람이 없는지 확인했다.
슬금슬금 흘러나오는 연기가 더욱 짙어졌다.
“으, 으으.”
“선생님. 괜찮으세요?”
“으, 네.”
“이름이 어떻게 되세요?”
다행히 의식이 있다. 이름도 제대로 말하는 것을 보니 그렇게 심각한 건 아니다.
그 사이 윤바다는 빠르게 119에 신고하고는 차에 있는 소화기 두 개를 가지고 뛰어왔다. 사고 차량에서 금세 불이 붙은 것이다.
“아빠! 여기!”
“잘했어. 바람 방향 저쪽이니까 넌 이쪽에서 멀리 분사해.”
“네!”
윤바다는 안전한 곳에 세우고, 윤제이는 다른 방향에서 소화기를 분사했다.
초동 대처가 완벽해서인지 불은 금세 사그라들었다. 주변에서 손뼉을 치는 소리가 들렸지만, 윤제이는 다시 운전자에게로 다가갔다.
“이 사람은 어때요?”
“심각한 상황은 아니야. 의식 있고, 말도 하고.”
“아빠는요, 유리 깨면서 안 다치셨어요?”
“다치면 큰일 나지. 너는?”
“저도 큰일 나죠. 멀쩡해요.”
집에 계시는 분이 걱정하니까. 눈이 마주친 두 사람이 작게 웃었다. 몇 년 사이 가정에도 변화가 있었다.
“우와!”
“대박! 완전 멋있어요!”
“누구야? 헐. 윤제이?”
“윤바다잖아.”
그 사이 주변에는 윤제이와 윤바다를 알아보고 사진과 영상을 찍는 사람이 대다수였다. 윤제이는 싸함이 밀려왔다.
“······저 사람들, 언제 찍고 있었니?”
“아빠랑 저랑 차에서 내리자마자 바로요.”
“이런.”
“전 한 10분 봅니다.”
저 영상이 포털 사이트에 올라오고, 기사가 떠서 동네방네 소문이 날 때까지 10분이 넘지 않을 거라는 소리다.
그리고 아들의 예상은 얼추 맞을 거다. 오히려 더 빠르게 올라올지도 모르지.
윤제이는 제 이마를 짚었다.
남들이 보기에는 용기 있는 행동이라 칭송하겠지만, 가족 된 사람의 입장이 되면 혹여 다칠까 봐 걱정하는 마음뿐일 거다.
“······혼나겠죠?”
윤바다가 눈동자를 도로록 굴렸다. 뒤늦게 깨달았는데, 사고 지점과 주유소가 무척 가까웠다.
“넌 괜찮아. 아빠는 좀 혼나겠지만.”
좀 혼나는 것쯤이야 얼마든 져줄 수 있다. 그게 애정과 걱정이 섞인 것을 아니까.
오히려 소식을 듣고 괜한 걱정을 할까 봐 마음이 편치 않다.
“아까는 잘했어.”
“누구 아들인데요.”
“그래, 내 아들이지.”
윤제이는 씨익 웃는 윤바다의 머리를 거칠게 쓰다듬었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내일 집에 좀 늦게 들어갈까?”
“좋아요.”
윤제이가 핸드폰을 꺼내 미리 별거 아니니까 안심하라고 누군가에게 메시지를 보내는 사이, 구급차와 소방차가 도달했다.
“응급 처치 기가 막히네.”
“다행히 불도 잘 꺼졌네요. 주유소가 가까이 있어서 걱정했는데.”
“근데 누가 하셨······ 어, 어어?!”
“허억! 서, 설마.”
윤제이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고 윤바다는 발랄하게 손을 흔들었다.
“네, 안녕하세요.”
“와! 저 두 분 팬이에요!”
“실물이 더 잘생기셨네요.”
보상하겠다는 것을 한사코 사양하고는 차에 다시 올라탔다.
두 사람의 최종 목적지는 윤바다의 보육 시설이 있었던 섬이다.
이제 섬에 사는 사람은 없고, 폐허만 남았다고 했는데······ 직접 가서 보니 더 을씨년스러웠다.
“사람이 안 사니 으쓱하네.”
“오래 있을 곳은 못 되겠네요. 좀만 둘러보고 바로 가요.”
“그래.”
보육원은 몇 년 전에 폐쇄됐다. 시설의 사람들과는 아직도 꾸준히 연락하고 있었다.
“너 데려가려고 수녀님 환심 사려고 할 적에······ 저기, 저 철물점에 자주 갔었어. 처음에는 연예인이 무슨 집수리냐며 한 소리 들었었지.”
“그랬었어요?”
추억을 되돌아보던 두 사람이 바닷가 근처에서 멈췄다. 저 멀리 초등학교가 보였다. <아버지>의 오디션장으로 쓰였던.
“아빠, 저 학교 기억나요?”
“기억나지. 네가 저쪽에서 뛰어왔었잖아. 막 짜증 내면서.”
“하하!”
그리고 두 사람은 한참을 말없이 푸른 바다를 바라보았다.
“아빠.”
“음?”
옛날, <아버지>로 칸 영화제에서 남우 주연상에 호명된 뒤 무대에 올라 수상 소감을 남겼던 윤제이는 이런 말을 했었다.
[그리고······ 우리 영화의 ‘소년’이자, 이제는 정말 내 아들이 된 바다에게. 여러모로 많이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그때는 아빠가 왜 제게 고맙다고 하는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어렴풋이 알 거 같다.
“고마워요.”
장난이 아닌 진심을 느낀 윤제이는 아들을 새삼스러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언제 이렇게 컸지.’
오디션에 늦을까 봐 맞지 않는 신발을 신고 달려왔던 작은 아이는 어느새 자신과 눈높이가 비슷해졌다.
빨리 철들어야 했던 아이는 충분한 사랑을 받아 타인에게 사랑을 줄줄 아는 사람으로 성장했다.
“우리 아드님이 뭐가 고마우실까.”
맡은 일에 최선을 다했고, 늘 열성적이었다. 앞으로 고난이 닥쳐도 잘 딛고 일어나겠지. 그래도 힘들다 싶으면 내가 도와주면 된다. 혼자가 아니니까.
정말 잘 자랐다. 내가 잘 키웠다고도 볼 수 있겠지.
“그냥, 전부 다요.”
실없기는. 윤제이가 피식 웃고는 돌아섰다.
“이제 집으로 돌아가자.”
“네.”
윤바다는 윤제이와 몇 센티 차이가 나지 않을 정도로 자랐다. 운동도 꾸준히 해서 체격도 좋았다.
그럼에도 아버지의 등은 여전히 넓었다. 늘 동경하고 늘 닮고 싶은 사람이다.
하지만 윤바다는 아버지의 등을 마냥 좇지 않기로 했다.
동경한다고, 닮고 싶다고 똑같이 살 필요 없다. 참고하되, 내 방식대로 살면 된다.
윤바다는 다른 방향을 찾아 다른 길을 찾아갈 용기가 있었다.
설령 그게 막다른 길이라도 상관없었다. 다시 돌아가면 된다는 걸 아버지가 알려주었으니까.
윤바다는 윤제이를 뒤따라가다가 문득 뒤를 돌아보았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과 푸른 바다의 모습은, 어느 날 보육 시설의 동생들과 로켓 발사를 바라보던 때와 닮아 있었다.
“아들.”
“네!”
윤바다는 다시 앞을 바라보며 뛰었다. 발걸음이 무척이나 가벼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