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sappeared Genius Child Actor Is Back RAW novel - Chapter (287)
사라진 아역 배우가 돌아왔다 짝사랑 끝내려다 내 인생을 끝내게 생겼다-181화 (외전)(287/287)
#1.
Endless Ending
누군가에게는 편안함이 독이 될 수 있다. 적어도 영웅 행세를 하며 살아온, 어느 이능력자의 삶에 있어서는 그랬다.
폭주 가능성 0.02%의 자연계 에스퍼이자, 델타 프로젝트의 주역으로 손꼽히며 에스퍼 기지를 뒤흔들었던 이단아가 퇴출당했다.
세간을 떠들썩하게 만든 사건이었으나 사람들은 금세 그의 존재를 잊었다. 해체된 델타 팀을 대신해 창설된 ‘뮤온지대 수습부서’가 연일 매스컴에 오르내리며 관심을 받고 있었으니까.
이름만 바뀌었을 뿐, 멤버들은 여전히 S급 에스퍼들로 구성돼 거센 비난에 시달렸지만, 그들은 새로운 영웅으로 추앙받으며 동에 번쩍 서에 번쩍 뛰어다니고 있었다.
몬스터들을 상대할 수 있는 것은 인류를 넘어선 초인류뿐이다. 그러니 목숨을 걸고 사투하는 것 또한 그들의 몫일 수밖에.
[단독] ‘키메라 실험 의혹’ 에스퍼 기지, “신뢰 회복 위해 최선을 다할 것” [이슈길잡이] 불안한 대한민국, 에스퍼 기지 무용론 대두하지만 전대 사무총장, 권혁운이 주도한 키메라 실험이 비밀리에 이어지고 있다는 음모론은 사그라들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탄생한 키메라들이 사람들 틈에 섞여 살아가고 있다는 유언비어들도 마찬가지였다.
그 변이개체들을 하나하나 찾아내 관리하는 것이 에스퍼 기지의 역할이 아니겠느냐는 여론이 몸집을 키우는 시점이니, 요즘의 대한민국은 그야말로 혼란과 갈등의 장이라고 할 수 있었다.
물론, 그 와중에도 누군가는 사명과 임무를 벗어 던진 채 유유자적한 라이프 스타일을 만끽하고 있었다.
그의 이름이 바로 여도운.
전대 사무총장을 혼수상태로 만들어 놓은 장본인이자, 에스퍼 기지 역사상 최초로 팀에서 퇴출을 당했다는 전설적인 이능력자다.
해고 이후의 인생은 사실 여도운에게 큰 도움이 되지 못했다. 전에 권정후가 경고한 적 있듯, 그는 알코올과 니코틴의 유혹에서 절대 자유로워지지 못할 타입이었기 때문이다.
밤낮으로 작전에 투입돼 그나마 중독 증세를 식힐 수 있었던 에스퍼 시절과 달리, 지금은 지나치게 한가로운 생활이 계속되고 있었다.
몸과 마음이 편해지니 여도운은 슬금슬금 몰래 연초를 태우고 위스키를 홀짝일 수밖에 없었다.
하우스 메이트들 전원이 서울과 강원도를 오가며 근무 중인 탓에 감시하는 시선 또한 존재하지 않았다.
이따금 집에 돌아온 차해성이 담배 냄새에 학을 뗄 떼면 여도운은 멋쩍게 웃고선 향수를 칙칙 뿌려대고는 했다. 차해성이 선물해준, 날카롭고 시원한 잔향의 향수였다.
“조용하고 좋네.”
그렇다. 여도운은 이제 게이트며 몬스터며 하는 것들에 신경 쓸 필요가 없는, 완벽한 일반인이 되었다.
뮤온지대 수습부서가 뼈 빠지게 후속조치를 취하는 동안에도 그는 강원도 소읍리의 전원주택에 틀어박혀, 둘도 없을 여유를 즐기고 있었다.
마당에 비치해둔 선 베드에 드러누워 티끌 없이 파란 하늘을 구경하고, 니코틴이 당길 때면 눈치 보지 않고 연초를 꺼내들 수 있는 하루.
그런 하루하루가… 참 즐거울 줄 알았었는데 말이다.
에스퍼 기지에서 해고된 지도 어느덧 31일째.
“돌아버리겠네.”
여도운은 점점, 이 별것 없는 인생에 지루함을 느끼기 시작하고 말았다.
늘 전속력으로만 달려오던 인생이 급브레이크를 밟고 서행 중이었으니 오죽할까.
하지만 관성 탓일 것이라 여기며 억지로 눈을 내리감았다. 바라마지 않았던 휴식을 온전히 누리기 위해서라도 쓸데없는 생각들은 접어 두는 편이 나았다.
***
지이잉-, 지이이잉-.
마당에서 선잠에 들었던 여도운은 휴대폰 진동음에 놀라 눈을 부릅떴다.
“누구야?”
수신인은 보나마나 뻔했다.
권정후, 윤민오, 차해성. 끽 해봤자 셋 중 한 사람일 것이다.
이따금 예전 동료들이 전화를 걸어오기도 했지만, 그 경우엔 어김없이 수신 거부를 누르곤 했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휴대폰 스크린에 떠오른 이름은 ‘캡틴’이라는 두 글자였다.
이제 그는 자신의 캡틴이 아니었음에도 여도운은 이전과 똑같은 호칭을 고수하고 있었다.
보통 권정후가 전화를 거는 이유는 두 가지 정도로 추려 볼 수 있었다.
첫째, 임무 완수 후 강원도에 도착했으니 시급히 차를 끌고 나올 것.
둘째, 양심이 있다면 집 청소를 해놓고 쓰레기를 버려 놓을 것. 특히 설거지 거리가 쌓여 있을 시에는 요리 담당인 차해성이 보이콧을 했기 때문에 더욱 엄격히 관리하고는 했다.
큼! 여도운은 목을 푼 뒤 전화를 받았다.
“어, 형.”
-인마. 또 속없이 퍼질러 자고 있었냐?
그의 목소리가 갈라져 있었기 때문인지 권정후가 툭 쏘아붙였다.
뜨끔한 여도운이 휴대폰을 목과 얼굴 사이에 끼워 넣으며 기지개를 켰다.
“…잠깐 존 거야. 날이 좋길래.”
통 쓰지 않아 뻐근해진 어깨를 이리저리 돌려보던 순간이었다.
권정후가 하아, 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한 일주일 치 짐 싸서 서울로 올라와라, 도운아. 숙소는 네가 원하는 위치에 잡아 줄게.
“서울? 갑자기 왜?”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내용인 탓일까 여도운이 당황한 듯 되물었다. 난데없이 서울이라니, 이 무슨 뜬구름 잡는 소리란 말인가. 다른 꿍꿍이가 숨어 있나 싶어서 권정후의 의중을 의심하고 있던 무렵이었다.
-쓰러졌어.
그가 간략한 핵심을 추려 전달했다.
얼이 빠진 여도운이 전화를 고쳐 잡으며 물었다.
“쓰러졌다고? 누가?”
때마침 수화기 너머에서 웅성거리는 소음이 퍼져 나왔다. 다른 사람들과 대화를 시작한 모양인지, 권정후는 질문에 대한 답을 돌려주지 않았다.
“형. 듣고 있어? 누가 쓰러졌냐니까?”
재촉하자 수화기에서 살짝 떨어져 있는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차해성. 한 사나흘 정도는 입원해 있어야 한대. 당분간 못 내려갈 것 같으니까 네가 올라오는 편이 낫겠다. 도착하면 차 보내 줄 테니까, 이따 보자.
뚝. 전화는 더 이상 설명을 잇지 않고서 끊어졌다. 하는 일 없이 빈둥대고 있던 여도운은 청천벽력이나 다름없는 소리에 놀라 벌떡 몸을 일으켜 세울 수밖에 없었다.
우두커니 서서 휴대폰 화면을 내려다보던 그는 이내 초조한 표정이 되어 뜀박질하기 시작했다.
뭐, 짐을 싸? 차해성이 쓰러져 입원을 했다는데 그딴 걸 챙길 시간이 어디 있겠나.
가이드도 전투 인력이 될 수 있다는 것은 지난 사건들을 통해 충분히 학습했지만, 그럼에도 여도운은 차해성에 대한 걱정을 버리지 못한 상태였다.
에스퍼에 비하면 한없이 여리고 약하기 짝이 없는 몸뚱이다.
‘설마 몬스터들한테 당하기라도 한 거면 어떡하지?’
생각만 해도 아찔해지는 상황에 여도운은 곧장 서울 도심으로 직행했다. 권정후에게서 배운 선비 운전은 집어치우고, 카레이서라도 된 듯 앞뒤 재지 않고 미친 듯이 질주하면서.
그러나 대략 두 시간가량이 지나 에스퍼 전문 병원에 도착했을 때조차도, 여도운은 차해성을 만나 볼 수 없었다.
***
권정후를 대신해 그를 데리러 나온 사람은 윤민오였다.
머리칼 끝이 부스스하게 타들어간 꼴의 윤민오가 여도운을 발견하고선 손을 들어 올렸다.
“여기예요, 형! 거 엄청 빨리 올라왔네요? 가이드 아저씨 뒈지기라도 할까 존나 걱정됐나 봐요.”
역시나 목소리엔 툴툴거림이 섞인 채였다.
벤치에 앉아 담배 끄트머리를 잘근잘근 깨물고 있던 여도운이 그를 살피며 물었다.
“…네 얼굴은 또 왜 그래?”
털썩, 여도운의 옆에 엉덩이를 대고 앉은 윤민오가 그의 널따란 어깨에 고개를 내려놓으며 답했다.
“보면 몰라요? 화상 입었잖아요, 화상.”
“심하게 입은 것 같아 보이니까 그렇지.”
여도운의 말마따나 윤민오의 얼굴은 온통 화상 자국으로 뒤덮여 있었다.
최소한의 가이딩도 받지 않은 듯싶은데, 이유를 캐묻자 윤민오는 여도운의 손등에 제 손바닥을 포개며 중얼거렸다.
“가이드 아저씨 말고 딴 새끼들한테 받으면 손 정도는 잡아야 한대요. 좆같아서 씨발… 어떻게 받아요.”
“까짓것 그거 하나를 못 잡아?”
“저 완전 보수적이거든요? 누굴 남자 셋 데리고 살면서 의자왕 노릇하시는 여 모씨랑 똑같은 급으로 생각하나.”
“…의자왕?”
흐아, 하며 짜증스럽다는 듯 자신의 머리칼을 흐트러뜨린 윤민오가 입술을 삐죽거렸다.
“맞다. 형 의자왕이 누군지 모르죠? 그러게 상식 백과사전 좀 열심히 읽으라니까. 전에 체크했더니 10p도 안 읽었…….”
“민오야. 나 좀 몰래 들여보내 줄 수 있겠냐?”
윤민오의 잔소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에, 여도운이 재빨리 선수를 쳤다.
얼굴을 가까이 들이밀며 물어온 통에 윤민오는 살짝 부끄러움을 느꼈다.
에스퍼 확인증이 없어 병원으로 들어가지 못했던 여도운은 윤민오 쪽을 공략해 보았다.
“난 퇴출 상태라 접근이 불가능하대. 너한테 가이딩도 못 해 줄 상황이면 가이드님, 꽤 많이 다치셨다는 소리인데… 아무래도 직접 확인해야 안심할 수 있을 것 같다. 부탁할게, 민오야.”
그런 여도운의 뺨을 검지로 콕 찔러본 윤민오가 피식, 웃더니 도리도리 고개를 저었다.
“가이드 아저씨 병실엔 저도 못 들어가는데 형이 어떻게 들어가요.”
“난 그렇다 쳐도 넌 왜?”
“지금은 절대적으로 안정을 취해야 한 대요. 캡틴이 설명 안 해 줬어요?”
지하 던전 사건을 기점 삼아, 윤민오는 권정후를 ‘캡틴’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묘하게 싱숭생숭한 기분을 느낀 여도운이 직선으로 뻗은 눈썹을 움찔거렸다.
이번엔 그의 눈썹뼈를 쿡 눌러본 윤민오가 말했다.
“저 이제 순찰 나가야 하니까 형은 호텔 가서 기다리고 있어요. 가이드 아저씨 상태 어떤지 들으면 연락해 줄게요.”
그가 차고 있는 전자시계에서 끊임없이 진동음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
읏챠, 하며 일어선 윤민오가 멍해 있는 여도운을 향해 빙그레 눈웃음을 쳤다.
“심하게 다치지는 않았을 거니까 걱정하지 말고요. 제가 씨발, 그 아저씨 안 다치게 하겠다고 쌔빠지게 뛰어다녔거든요. 이 개쩌는 얼굴도 포기했다고요. 왜 그랬겠어요?”
투박한 손바닥이 여도운의 뺨을 천천히 어루만졌다.
“형 전전긍긍해 하는 꼴 보기 싫어서죠.”
“…….”
“그러니까 가서 얌전히 쉬고 있어요. 가이드 아저씨도 형 여기서 기다리고 있는 거 알면 불편해하기만 할걸요? 뭐… 형한테 폐 끼쳤다고 자책이나 안 하면 다행이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