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sappeared Genius Child Actor Is Back RAW novel - Chapter (3)
사라진 아역 배우가 돌아왔다 말씀 안 해 주시던가요?(3/287)
말씀 안 해 주시던가요?
“야 저기 봐봐.”
“헉, 설마······.”
주변에서 두 남매를 알아보고 쑥덕이는 것을 보니 유명한가 싶었다. 남매의 외양이 빼어나서 그런가 싶었지만, 연예인이라고는 생각 못했다. 요즘 학생들도 SNS나 스트리머 등으로 제법 유명해지긴 하니까.
“집안일이라······ 매니저님은 먼저 가셔도 됩니다.”
“아, 네.”
매니저라 불린 남자는 물러나면서도 제이에게 반짝이는 시선을 보냈다. 눈치만 보고 있던 두 남매가 재빨리 자리에 앉았다.
“이분은 누구셔?”
“아버지께 들어서 알지? 너희들의 배다른······ 그 상자 주인이야.”
“진짜?”
반문하는 얼굴은 순수하게 놀랄 뿐이지 경악이 섞이진 않았다. 아마 친부가 제이의 존재를 계속 얘기한 게 분명했다.
“안녕하세요, 음······ 형. 저는 윤도준이라고 해요.”
“윤도화에요.”
“······제이라고 불러.”
나도 한 넉살 하는데, 넉살 좋은 건 유전인가. 제이는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두 사람의 인사를 받았다.
‘내 가족 관계도 참 희한하군.’
피 한 방울 안 섞인 백인 가족들에다가 갑자기 생긴 어머니에 배다른 동생들까지. 제이의 헛웃음을 놀란 것으로 생각한 박현아가 황급히 설명했다.
“얘들은 쌍둥이고, 올해 18살이야. 그······ 놀랐지?”
“조금요. 아버지와는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로 왕래가 끊겼으니까요.”
“아······ 돌아가셨구나.”
숙연해질 것 같은 분위기에 제이는 저 상자가 뭐냐고 질문했다.
“네 물건이라고, 우리는 손도 못 대게 하신 거야.”
“그런가요?”
윤도준이 가져온 상자를 받아든 제이는 상자의 테이프를 뜯었다. 제법 묵직한 게 옛날에 쓰던 옷가지나 사진 앨범 같은 게 들어있겠거니 생각했다.
“아.”
내용물은 단출했다. 사진 앨범 한 개 그리고 벨벳 상자에 들어있는 트로피 몇 개. 제이는 그중에서 단연 눈에 띄는 것을 집어 들었다.
“······이걸 가지고 계셨구나.”
“그건······.”
황금 잎사귀는 업계 관계자라면 모를 수 없는 트로피였다. 그걸 알아본 박현아와 쌍둥이가 눈을 크게 떴다. 그냥 동명이인인 줄 알았는데 설마······.
“네가······?”
제이는 되레 어리둥절해서 박현아를 쳐다봤다.
“아버지가 말씀 안 해 주시던가요?”
***
고인 윤수헌
주부 박현아
상주 윤도준, 윤도화, 윤제이
분향소 앞에 올려진 이름이 낯설다. 외국의 이름을 쓰면 누가 귀찮게 물어볼 것 같아서 친부의 성을 다시 썼다.
‘재혼 상대와 자식들에게도 밝히지 않았으니, 나를 아는 사람은 적겠지만······.’
장례식장에 하나씩 설치되는 부조 화환은 대부분 연예계와 관련된 것들이었다. 그래서 더욱 윤제희라는 사실을 밝히기 싫었다.
[아들, 이것도 해 볼래?] [네!]어린 시절은 제법 행복했었다. 아버지의 사업은 탄탄했고, 부모님은 사이가 좋았다.
윤제희에게는 재능이 있었는데, 뭘 하든 스펀지처럼 빨아들이는 습득력. 그걸 뒷받침하는 집중력이 있었다.
나이치고 영특한 게 아니라 정말 초능력이라도 있는 듯 비범했다.
[여보, 우리 제희 천재 아냐?] [왜?] [뭘 시켜도 다 잘해!]영화계 쪽 일을 하던 아버지, 윤수헌은 아들의 능력을 알아보고 활용할 방법을 찾았다. 바로 연기였다.
[이영창 감독 아세요?] [타율 좋은 감독이죠.] [그 감독이 이번에 영화를 새로 만드는데······.] [근데 솔직히 이게 되겠어요?] [연기만 잘 되는 아이만 있다면······.] [그런 애가 있겠어요? 있다고 해도 주연이 아이인데 투자는 잘 받을 수 있을지······.]그 소식을 듣자마자 제 아들이라면 잘할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생겼다.
[이 책 속 아이는 저랑은 다른 거죠?] [그래. 할 수 있겠니?] [······이런 아이를 보고 싶어요.]윤제희에게는 또 다른 재능이 있었다. 뭘 하든 한 번 보고도 완벽히 따라 할 수 있는 능력, 마치 상대의 인생을 흡수한 것처럼.
실제 뇌성마비를 앓고 있는 아이들을 만난 윤제희는 오디션 현장에서 완벽한 연기를 펼쳤다.
[드디어! 내가 찾았던 아이야!]이영창 감독은 윤제희의 연기를 보고 기립박수 쳤고 그렇게 영화 <어린이>는 순탄히 촬영을 마쳤다.
그리고 영화는 예상치 못하게 국내 영화제를 휩쓸고 해외 영화제까지 대박이 나 버렸다.
[윤제희 어린이, 최초 칸 영화제 남우주연상을 받은 소감이 어때요?] [앞으로 어떤 작품에 참여하고 싶어요?] [드라마 ‘바이올린’에 캐스팅됐다는 게 사실입니까?]데뷔와 동시에 거머쥔 명성은 최초와 최연소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먹잇감이 되었다. 그들은 집과 학교까지 찾아와서 윤제희와 가족을 귀찮게 했다.
[쟤 장애인이라며?] [그거 다 거짓말이라는데. 티비에 나오는 사람들처럼······.] [아니래. 진짜 장애인이라서 상도 받을 수 있는 거래.]자연스레 같은 학교 아이들의 시기와 질투가 따라왔다. 그에 동조하는 악의 없는 말도 송곳으로 찌르는 듯한 느낌이었다.
어딜 가나 사람들의 시선이 따라온다. 우리 집, 내 방에서 홀로 있어도 누가 자신을 지켜보는 듯한 느낌까지 들었다.
[헉, 허억······.] [제희야? 제희야!]자기 사업으로 바쁜 아버지 대신 매니저를 자처한 건 모친이었다. 모친, 정연재는 카메라 앞에 서서 과호흡 증상을 보이는 아들의 모습에 상황이 심각해졌다는 걸 깨달았다.
[엄마. 카메라가 무서워.]역대 최연소로 국내와 국제 유수의 영화제에서 상을 탔다.
언론은 그를 두고 천재라 칭송했고, 사람들의 기대가 꼬리를 물었다. 시기 질투를 받아 안티 카페까지 생겼다. 어린 윤제희에게는 그 모든 게 다 마음의 짐이었다.
[뭐야. 천재라더니 별거 아니네.] [어린이 때는 뽀록이었나?] [너무 부담 주지 맙시다. 아직 애잖아요.] [참나, 시간 없는데······ 다른 애 연락 돌려봐요.]아버지의 욕심으로 잡은 스케쥴에 억지로 참여했지만, 전부 그냥 돌아가야 했다. 그런 아이의 뒷모습을 보고 사람들은 제멋대로 수군거렸다.
[애가 카메라도 무서워하는데 어떻게 촬영을 나가!] [우리 아들은 이겨낼 수 있다니까!] [제희 이용해서 당신 꿈 이루려 하지 마! 애가 얼마나 힘들어하는지 알아?!]아이가 무너지자 부모는 빠르게 파경을 맞았다. 어린 윤제희는 그게 자신 때문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냥 평범하게 살았더라면, 연기하기 싫다고 떼라도 쓸걸.
“혹시······ 제희니?”
윤제희, 이젠 윤제이가 된 그는 상념을 털어내고 현실로 돌아왔다. 친가 쪽 어른들이 그를 알아본 것이다.
“안녕하세요.”
“세상에. 이렇게 컸구나.”
“잘 지냈어?”
***
박현아는 윤제이를 신기한 눈으로 쳐다봤다.
미국에 오래 살아서 한국식 장례 문화는 모를 텐데, 윤제이는 옆 호실 장례식장에 조문을 다녀오더니 완벽하게 적응해서 손님을 맞이했다.
“윤 이사한테 저런 장성한 아들이 있으리라곤······.”
“어머니. 잠시 이쪽으로 와 주시겠어요?”
게다가 곤란하게 물어보는 사람이 있을 때마다 타이밍 좋게 나타나서 박현아를 빼 오기도 했다.
“애가 참 싹싹하네.”
“그러게요.”
그 모습에 불편함을 내비쳤던 친정 식구들마저 잠잠해졌다.
‘잘 컸구나.’
박현아도 드라마 작가이기에 ‘윤제희’의 명성을 익히 들어왔다.
<어린이> 속 윤제희의 연기는 독보적이었고, 국내외 영화제를 최연소로 석권했다. 그해에 뉴스를 접했더라면 알 수밖에 없는 이름 석 자.
심지어 지금까지도 근황을 궁금해하는 사람이 많았다.
“이거 봐봐. 두유노 클럽 초기 멤버래.”
“오, 위키 페이지가 있는데?”
쌍둥이들은 배다른 형제의 과거가 화려한 것을 보고 신나서 검색하고 있었다.
윤제이는 묘한 얼굴로 그들을 쳐다봤다. 어려서 그런가? 열여덟 살이면 어린 건 아닌데······ 난 그때 입대했으니까.
“너넨 이상한 아저씨가 갑자기 형, 오빠라고 나타났는데 아무렇지도 않아?”
“이미 아빠한테 들어서 알고 있었거든.”
“그리고 오빠 아저씨처럼 안 보이는데. 이상하지도 않고.”
오히려 귀에 딱지가 앉게 들어서 보고 싶은 마음이 컸다. 게다가 귀찮은 일 처리는 윤제이가 나서준 덕분에 쌍둥이들은 편히 앉아있을 수 있었다.
“솔직히 난 좋아. 얘는 오빠 같지 않거든. 5분 일찍 태어났다구 아주······.”
“나도 너 같은 동생은 별로거든?”
“그래서, 오빠. 장례식 끝나면 미국으로 다시 돌아갈 거야?”
“그냥 여기 계속 있으면 안 돼?”
아버지의 장례식임에도 쌍둥이는 밝아 보였다.
그들은 한국에 계속 머무르라고 종용했다. 쌍둥이가 보기에도 윤제이는 떠돌이 같은 느낌이 있었다. 볼일만 끝나면 미련 없이 어디로 사라질 것만 같은.
그때, 입구가 소란스러워졌다.
“어, 형들 왔네.”
“네 멤버들?”
오전에는 윤도화의 그룹 멤버들과 소속사 직원들이 한바탕 휩쓸더니, 지금은 윤도준 차례인가. 관리를 잘 한 듯 보이는 몇몇 아이들과 직원들이 우르르 장례식장 안으로 들어왔다.
‘둘 다 아이돌이라고 했지.’
쌍둥이들은 경쟁 심리가 남달라 보였다. 윤도준이 먼저 아이돌 연습생으로 들어가자, 지길 싫어하는 윤도화도 아이돌 연습생으로 들어가 거의 같은 시기에 데뷔했다고 한다.
두 그룹 다 나름 유명하다고 하는데, 윤제이는 그보다 장례식장 입구에서 카메라 렌즈를 들이대는 사람들에 집중했다.
‘파파라치인가?’
그는 벌떡 일어났다. 할리우드 근처에서 근무한 적 있어서 저런 사람들은 익숙하다.
“저기요.”
“네?”
“여기서 사진 찍으면 안 되는데요.”
동생들이 생각보다 더 유명한가 보다. 기자들도 한바탕하고 갔는데, 이제는 파파라치까지. 일부러 목소리를 내리깔고 위압적인 분위기를 풍겼다.
“비공개 장례식인데 여긴 어떻게 알고 왔습니까?”
“······.”
“이만 가세요.”
“네에······.”
그들은 멍하니 윤제이를 보다가 주섬주섬 카메라를 챙겨서 물러났다. 윤제이는 상대의 혼이 빠진 느낌에 내가 너무 무섭게 했나? 싶어서 고개를 기우뚱했다.
“이야, 쟤 걔잖아. 피치망고.”
“악질 홈마요? 순순히 물러나 주는데요?”
“뭐겠어. 저 얼굴 때문이겠지.”
안에서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소속사 직원들은 돌아서서 다시 들어오는 윤제이의 얼굴에 주목했다. 이미 카페에서 그를 본 적 있던 매니저가 넌지시 물었다.
“도준아. 그래서 저분은 누구셔?”
“제 형이요.”
“형 있다고 안 했잖아?”
“배다른 형이에요.”
엿듣고 있던 실장이 다급하게 물었다.
“호, 혹시 형님은 뭐 하시는 분이야?”
“지금은 일 관두고 쉬고 있대요.”
“그래?”
소속사 직원들의 눈이 희번뜩 빛나는 게 느껴졌다. 그들의 회사는 배우도 매니지먼트한다. 저런 원석이 어디 숨어있다가 지금 나왔나 다들 궁금한 듯했다.
“혹시 네 쌍둥이 소속사 사람들도 왔다 갔니?”
“이미 왔다 갔죠.”
“쓰읍······ 늦었나?”
쌍둥이는 연습생으로 들어가는 것도 경쟁이었다. 수십 번의 오디션 끝에 서로 대형 소속사에 들어가 데뷔까지 했다.
“이미 많이 늦었을걸요? 박 작가님도 그렇고, 고인분도 업계 마당발이었잖아요.”
“하, 그렇지······ 일단 찔러나 볼까?”
그 밖에도 아버지와 어머니의 인맥으로 이미 많은 업계 관계자가 윤제이에게 명함을 주고 갔다.
윤도준은 소속사 직원들이 조심스레 윤제이에게 다가가는 것을 심드렁하게 쳐다보았다.
‘별로 안 좋아하는 것 같던데.’
갑자기 연기 판에서 사라진 것도 그렇고. 상주에 윤제희라는 이름이 아니라 윤제이라고 올린 것만 봐도······ 윤도준은 할 말이 많았지만 입을 꾹 다물었다.
***
‘내가 윤제희라는 걸 아는 사람은 별로 없네.’
객관적으로 생각했을 때 친부는 욕심도 많았고 허영심도 많았다. 동네방네 떠들 거라고 예상했는데, 그를 아는 사람은 친가 쪽 사람들이 전부였다.
‘다행이군.’
그는 이미 ‘윤제희’에 대한 걸 다 검색해본 뒤였다. 아직도 날 아는 사람이 많을 줄이야······ 귀찮은 건 질색이니 그를 알아보는 사람이 없을수록 좋았다.
한산해진 밤늦은 시간, 한 중년 남자가 장례식장 안으로 들어왔다. 윤제이는 그를 알아보고 직접 안내했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직접 육개장까지 떠서 가져다주고는 맞은 편에 앉았다.
“드세요.”
“고맙다.”
남자는 얼굴에 주름이 진 것과 머리가 흰 것 빼고는 기억 속 그대로였다. 육개장을 한술 뜬 남자가 윤제이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오랜만이지?”
“네. 감독님.”
“삼촌이라고 불러. 옛날처럼.”
<어린이> 이후로도 많은 명작을 탄생시켜 영화계에서 인정받는 거장이 된 이영창 감독. 그의 표정에서는 그리움과 반가움 그리고 기쁨이 보였다.
“많이 컸구나.”
“20년이나 지났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