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sappeared Genius Child Actor Is Back RAW novel - Chapter (4)
사라진 아역 배우가 돌아왔다 다시 연기할 거야?(4/287)
다시 연기할 거야?
“그래, 잘 지냈니? 네가 올해 몇 살이더라······?”
“한국 나이로는 서른둘입니다.”
한국 나이라, 미국에서 살았다더니. 이영창은 새삼스러운 눈으로 윤제이를 훑었다. 외국에 오래 산 사람에게서 풍기는 특유의 분위기가 전혀 안 느껴졌다.
“밖에는 윤제이라고 되어 있던데······.”
“별로 밝히고 싶지는 않아서요. 감독님도 그렇게 불러주셨으면 합니다.”
“그 시절이 네게는 좋은 시절이 아니었니?”
“좋은 기억은 아니죠.”
이영창의 표정이 잠시 어두워졌다가 평온을 되찾았다.
신기하게도 그들 사이에 20년이 넘는 공백은 없었다. 이영창은 신나서 <어린이> 촬영 시절 그리고 영화제 수상 이후 자신의 이야기를 풀었고, 윤제이도 적당히 맞장구쳤다.
“지금도 너 어디 갔냐고 좀 찾아달라는 사람이 엄청 많아.”
“어린애가 흉내 좀 잘 냈다고 과한 관심이네요. 지금까지······.”
“아니, 아니야. 너는 정말 재능있었어.”
이영창은 ‘윤제희’를 처음 봤을 때가 아직도 선명했다.
당시 이영창은 아역 배우에게 많은 기대를 하지 않았다. 어설프게 흉내라도 내면 감지덕지라고 생각했다. 부족한 부분은 연출에서 메꾸자고.
[이 애다!]하지만 오디션에서 윤제희의 연기를 보자마자 가슴에 불이 화르륵 타올랐다. 천재가 제 발로 걸어들어왔다.
더 놀란 것은 촬영 때였다. 의젓하게 촬영 일정을 소화하던 윤제희의 느낌이 어느 기점에서 갑자기 변했다. 조금 더 다채로워진 느낌이었다.
[제희야. 왜 이번 장면에는 느낌을 다르게 했니?] [‘엄마’요.]여기서 말하는 엄마는 정연재가 아닌 배우 추영미. 작품 속에서 같이 연기하는 엄마였다.
[엄마가 왜?] [엄마는 정말 엄마 같아요.] [음?] [나는 그냥 영민이를 따라 하고 있는 거잖아요.]참고를 위해 만나봤던 아이의 이름을 대면서 이젠 흉내 내는 것으로는 만족하지 못한다는 의중을 내비쳤다.
고작 열 살밖에 안 된 아이가 연기에 자신의 스타일을 담으려 한다. 이영창은 숨을 삼켰다. <어린이>를 위해 많은 아역 배우를 만나봤지만, 이런 아이는 처음이었다.
[영민이를 따라 하는 걸 넘어서 너의 색깔을 담고 싶었구나. 진짜 박동화처럼.] [움······ 네.]흉내를 넘어 작품 속 배역인 ‘박동화’ 그 자체가 되고 싶다는 의미였다. 그리고 윤제희는 훌륭하게 그 배역을 소화했다.
정작 지금의 윤제이는 기억을 못 하는 것 같지만.
“그래, 결혼은 했고? 지금은 뭘 하니?”
“아뇨.”
지금은 하는 일이 없다는 대답에서 이영창은 제 속마음을 내비쳤다.
“······다시 연기를 해볼 생각은 없겠지?”
“생각 없습니다.”
단호한 대답에 이영창은 쉽게 물러났다. 그는 어린 윤제이에게 부채감을 느꼈다.
촬영이 끝났다고 끝이 아니라 몇 번이라도 찾아가 볼걸. 그랬다면 천재적인 재능을 더 많은 작품에서 볼 수 있었을 텐데.
“사실 장례식장에서 한번 난리 날 줄 알았습니다.”
아직도 인터넷 커뮤니티에 잊을 만하면 끌어올려지고, 이영창의 말을 들으니 업계에서도 여전히 찾는 것 같았다. 하지만 장례식장은 조용했다.
“네 아버지가 꽁꽁 숨겼거든.”
“왜죠? 그러니까······ 제 기억에 아버지는 자랑하는 걸 좋아하셨거든요.”
“그걸 크게 후회하기도 했지.”
이영창은 윤수헌이 부탁했던 것을 윤제이에게 돌려주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한사코 거절했지만, 윤제이는 밖까지 그를 배웅했다.
‘무슨 삶을 살았는지는 모르지만······.’
이영창은 뒤를 돌아보았다. 그를 배웅하고 돌아서는 윤제이에게 많은 시선이 따라붙었다.
잘생겨서도 있겠지만,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한 번쯤은 눈길이 가게 만드는 것은 타고난 분위기 때문일 것이다.
‘저런 존재감이 그냥 사라질 것 같지는 않고······.’
아마 윤제이는 이쪽으로 돌아올 것이다. 자의로든 타의로든.
***
입관식은 당연히 눈물바다였다. 박현아는 거의 실신 직전까지 가서 친정 식구들의 부축을 받았다.
“흐어엉······!”
아버지의 긴 투병 생활에 이미 마음의 준비를 다 했다고. 괜찮다고 계속해서 말하던 쌍둥이는 통곡하고 있었다. 애써 밝은 척을 하고 있었나 보다.
“흑······.”
“쉬······ 괜찮아.”
너무 울어서 비틀거리는 윤도화를 부축해준 윤제이는 도리어 제 품으로 파고드는 온기에 어깨를 감싸 토닥였다.
[네 아버지가 내게 남긴 게 있어.]이영창 감독은 그냥 온 게 아니었다. 큰아들이 SNS를 통해 연락이 닿았다고, 곧 올 거라는 소식에 기뻐했던 윤수헌은 그를 맞이하기 위한 준비를 시작했다.
[이렇게 하는 게 맞나?]아마 윤제이가 한국에 오기 전에 죽을 것 같다는 예감도 한몫했을 것이다. 그러지 않으면 이런 영상 편지를 남겼을 리 없으니.
[음······ 안녕. 제희야.]영상 속 친부는 기억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오랜 투병 생활 때문인지 피부는 거무죽죽했고 주름이 많았으며 실내임에도 머리에는 모자를 썼다.
[오랜만이지? 그동안 잘 지냈니?]어색하게 인사하던 윤수헌은 자기 잘못 때문에 가정이 파탄 났다며 잘못을 고했다. 자신의 욕심 때문에 어린 네게 상처를 줬다며 눈물까지 흘렸다.
[어린 네가 사람들에게 상처받은 건 네 잘못이 아니다. 다 내 탓이다.]배우가 꿈이었지만, 데뷔에 실패한 윤수헌은 그 꿈을 재능있는 아들에게 투영했다.
내 아들은 실패했던 나와는 다르다고, 아들을 위해 좋은 작품을 찾는다고 혈안이 되었다고 한다.
정작 현장에서 고생하는 아내와 아들을 외면했다.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 거라고 합리화하면서.
[네게 용서를 바라지 않는다. 이미 자격을 잃었으니까.] [하지만 그래도 용서를 빈다. 미안하다. 제희야.]이혼하고 두 사람이 떠나자마자 뒤늦게 후회했고, 술로 하루하루를 보냈다고 한다.
이영창 감독의 도움으로 다시 일어선 윤수헌은 당시 드라마 작가 지망생이던 박현아를 만나 재혼했다고 한다.
[앞으로 네가 행복하길 바란다.]어린 시절의 기억은 끔찍했지만, 그게 아버지 탓이라고는 생각 안 했다. 어른도 실수할 수 있으며, 나에게 비수를 꽂은 사람들이 잘못한 거니까.
이런 핸드폰 화면이 아니라 직접 만나 대화했으면 더 많은 얘기를 할 수 있지 않았을까.
‘조금 일찍 올 걸 그랬나······.’
윤제이는 윤도화를 안고 토닥이면서 유리창 너머를 바라보았다. 염습이 끝난 아버지는 천에 감싸여 있었다.
눈물은 나오지 않았다. 코가 조금 시큰거리긴 했다.
“저, 여기서 이러면 안 되는 거 알지만······.”
장례식이 끝날 무렵, 윤제이는 익숙하게 상대방이 내미는 명함을 받았다. 이런 식의 권유는 미국에서도 많이 받았기 때문이다.
연기는 재능 없지만, 좋은 시나리오를 보는 눈은 있던 친부는 제작 쪽에서 제법 이름을 날렸다.
장기 투병 생활에도 시나리오를 들여다봐서 돌아가셨음에도 명예 이사로 남는다고 한다. 게다가 드라마 작가인 박현아와 아이돌인 쌍둥이까지.
‘온 가족이 연예계 종사자군.’
그래서 장례식장에는 거의 모든 연예 기획사가 찾아왔다고 해도 무방했다.
“또 명함 받았어?”
“안 쉬어도 돼?”
“실컷 우니까 괜찮아졌어.”
윤도화는 아직 가라앉지 않은 눈으로 머쓱하게 웃었다. 부끄럼을 타는 건가.
윤제이는 작게 웃었다. 입관식이 끝나자 왜 너만 형한테 붙어있냐고 짜증 내던 윤도준까지 안아줘야 했다.
윤제이는 그게 제법 기꺼웠다. 미국에 있는 동생들은 살갑진 않았으니까.
“그럼, 이제 미국으로 돌아갈 거니?”
“글쎄요······.”
장례식이 끝나고 수목장을 나서면서 넌지시 물어보는 말에 윤제이는 쌍둥이들을 흘끔 바라보았다.
젠킨스 부부는 사랑하는 부모님이고, 마리아의 자식들 또한 가족이라고 생각한다. 그래도 어색해서 밖으로 돈 건 윤제이였다.
그렇게 돌고 돌다가 뒤늦게 자신과 같은 핏줄을 만나게 된 것은 조금 새롭게 다가왔다. 어차피 돌아가 봐야 할 일도 없으니 조금은 머물다 갈까? 라고 마음먹을 만큼.
“잠시 있다 가려고요.”
그 대답에 쌍둥이의 얼굴이 밝아졌다. 이윽고 한국에서 지낼 데는 있냐는 물음에서 박현아의 배려를 느낀 윤제이는 고개를 저었다.
“더 신세 질 수는 없죠.”
“네가 신세 진 거 없어. 부담스러우면 네 아버지의 작업실에서 지내도 돼. 거긴 네 거니까.”
“천천히 생각해 볼게요.”
친부는 유언장을 수정해 윤제이에게 작은 주택을 남겼다. 윤제이는 한사코 거절했지만, 가족 친지들은 이 정도는 받아도 괜찮다고 했다.
“형! 나 휴가받는데 같이 놀러 가자!”
“부럽다······ 난 시간 없는데.”
장례식 동안 윤제이는 의지할만한 어른의 표본이었다. 같이 지낼 시간이 생긴다니 쌍둥이는 신났다.
“근데 그럼 다시 연기할 거야?”
“오빠. 명함 줘 봐. 내가 거를 회사 알려줄게.”
박현아도 내심 궁금한지 그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윤제이는 고개를 저었다.
“그럼 뭘 하려고······?”
“일단 부업을 좀 해보려고요.”
***
쌍둥이들과 시간을 보내려면 이곳에 오래 머물 것 같았다.
그는 이영창 감독의 제안한 <어린이>의 재개봉을 긍정적으로 생각했다. 재개봉 수익이 조금 들어올 테니 생활비는 벌지 않을까?
하지만 그렇다고 가만히 있는 건 그의 성미에는 안 맞았다.
“여보세요. 정승우 씨 번호 맞나요?”
(네. 맞습니다만, 누구시죠?)
“나다. 제이.”
(제이······? 헉! 형님! 이 번호 뭐예요? 아예 들어오신 거예요?!)
윤제이는 핸드폰에서 고개를 멀리 뗐다. 좀 시끄러운 놈이긴 해도 착하고 붙임성이 좋아서 몇 번 연락하고 지냈었다.
서로의 근황을 얘기하다가 만나서 얘기하자는 제안에 정승우는 흔쾌히 수락했다.
“여기.”
“제, 제이 형님?”
약속 장소에 도착하자마자 두리번거리던 정승우는 윤제이를 보고 눈을 크게 뜬 채 그 자리에서 굳었다.
이윽고 호들갑 떨며 맞은 편에 앉았다. 덩치 큰 남자의 촐싹대는 행동에 안 그래도 몰렸던 시선이 더 쏠렸다.
“우와, 와. 형님 맞으세요? 상상한 거랑 엄청 다른데.”
“날 어떻게 상상했는데?”
“험악할 줄 알았죠. 목소리도 막 낮고 그래서······.”
정승우는 복면 쓴 윤제이의 모습만 봐서 맨얼굴을 보는 건 지금이 처음이었다. 계속 감탄만 하던 그는 자세를 고쳐 앉았다.
“전화로 부탁하신 거 대표님 한테 말씀드려 봤는데, 가능할 거 같아요. 안 그래도 사람이 부족해서.”
“고맙다.”
“형님 정도면 밸런스 붕괴죠. 아! 그래도 우리 대표님 면접은 보셔야 해요. 지금 시간 괜찮으세요?”
“좋지.”
시원시원해서 맘에 든다. 정승우를 따라 사무실에 도착한 윤제이는 널찍한 공간에 책상은 몇 개 없고 운동기구들이 즐비한 것에 입꼬리를 올렸다.
“시설 잘되어 있네.”
“그쵸? 경호 회사 중에 이 정도로 잘 되어 있는 곳 없어요.”
단순 사원인 정승우가 이렇게 자랑할 정도면 회사 분위기도 좋은가 보다. 그를 따라 안쪽으로 들어가니, 몇몇 사람들이 대련하고 있었다.
“대표님, 모셔 왔습니다.”
“그래.”
허, 모셔 와? 어지간히 따르나 보군. 윗몸일으키기를 하던 대표는 벌떡 일어나 손을 내밀었다.
“안녕하세요. 윤제이입니다.”
“윙스 컴퍼니 대표, 박철우입니다. 아, 죄송. 손에 땀이······.”
“괜찮습니다.”
윤제이는 아랑곳하지 않고 손을 맞잡았다. 박철우는 손에 닿는 단단한 촉감에 한쪽 눈썹을 들어 올렸다. 코트 사이로 보이는 몸도 제법 탄탄한 것 같고······.
‘잘생겼네.’
저절로 시선을 끄는 게 경호원으로서는 좋은 점은 아니지만, 연예인 경호 쪽으로 사업을 확장해서 사람은 턱없이 부족했다. 박철우는 한창 대련 중인 사람들에게 고갯짓했다.
“우리 쪽 면접은 이런 건데, 괜찮죠? 일단 실력 좀 봅시다.”
“네.”
윤제이는 코트를 벗어 대충 바닥에 두었다. 오히려 바라던 바였다.
“그럼 상대는 누가 할까······ 승우, 네가 할래?”
“아뇨, 저는 안 할래요.”
“네가?”
정승우가 수다스러워도 실력은 발군이었다. 그만큼 본인도 자신감이 넘쳤고, 신입 테스트에 빠지지 않았다.
그런데 사색이 되어 고개를 빠르게 젓는 모습이 이상했다.
“저는 저 형 한 번도 이기지 못했어요.”
“그래?”
더 흥미로운데? 박철우가 눈을 빛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