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sappeared Genius Child Actor Is Back RAW novel - Chapter (40)
사라진 아역 배우가 돌아왔다 달동네 (3)(40/287)
달동네 (3)
숨을 거칠게 몰아쉰 윤제이가 찬물로 세수했다. 자꾸 숨이 차고 손이 덜덜 떨렸다. 거울을 보니 꼴이 말이 아니었다.
“아······.”
윤제이는 두 작품을 선택했고 스케쥴을 최대한 조절해 두 작품을 번갈아 찍고 있었다. 한창 방송 중인 <달동네>와 사전 제작 중인 <크라운>이었다.
‘앞으로 한 작품 맡으면 다른 작품은 안 하는 게 낫겠어.’
그는 북받쳐 오르는 트라우마를 틀어막기 위해 비교적 멀쩡한 과거를 덧씌우고 있었다.
하지만 작품 속 캐릭터를 합쳐 세 개의 가면을 이리저리 바꿔 끼니 혼란스러워서 자꾸 몸에 이상이 생기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그의 변화를 눈치챈 사람이 있었다.
“선배, 이제 한국에는 아예 계실 거예요?”
“그래야지.”
윤제희······ 아니지. 윤제이가 다시 연기를 시작한다는데 당연한 거 아닌가?
조유경은 일 때문에 미국에 있었지만, 윤제이의 얼마 안 되는 필모그래피를 나오자마자 봤다. <아롱아롱>도 그렇고 특별 출연으로 나온 <대기업 사람들>도 봤고 지금의 <달동네>도 마찬가지였다.
작품뿐만 아니라 쌍둥이랑 함께 나온 예능도 시청했다. 그가 어떻게 살았는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미국 직원에게 물어보니까 제희······ 가 아니지. 제이를 알더라고.”
“그래요?”
당연히 인터넷이 시끄러웠던 과거도 알고 있었다. 이건 이서원이 최대한 막아도 어쩔 수 없었다.
[아, 이 사건. 유명했죠. 저희 미국 지부에도 추모식 다녀온 직원 있었어요.] [그래?] [네. 그때 진입했던 대원들이 절차를 어겼다고 징계하느니 마느니 시끄러워졌던 적도 있어서······.]그에게 부탁해 지역 방송국의 특집 다큐멘터리 파일을 받아서 보기까지 했다.
카메라가 그를 조명하자 치우라며 피하는 모습, 이영창에게서 윤제이가 오랫동안 카메라 공포증을 앓았다고 들었다.
[카메라 좀 치우세요.] [네?] [저는 이런 거 못 찍습니다.]아마 그때 그 반응은 트라우마와 더불어 카메라 공포증도 한몫했겠지. 조유경은 한숨을 푹 쉬었다.
“에휴, 우리가 그때 조금만 신경 썼으면 그런 고생도 안 하는데.”
“이미 지나간 일 어쩔 수 없죠.”
이영창도 소식을 들었을 때 안타까웠다. 부친의 장례식장에서 처음 봤을 때 아직 갈무리하지 못한 날 선 기세로 산전수전 다 겪은 것을 짐작했긴 해도, 자세히 알게 되는 건 별개니까.
-인텁에서 말한 증명해야 할 이유가 뭘까? 궁금하다
-야 근데 윤제이 진짜 열심히 살았다
-배우 윤제이 봐서 다행ㅠㅠ
-요즘 윤제이 억까충 안오네
맨날 글싸지 않았냐?
└빼박 증거 나왔잖아ㅋㅋ
└아냐 이제 쿨 돌았음 ㅇㅇ 이제 특수부대 주작설로 나올거임
-근데 아직 모르는거 아냐?
과거 소방관인건 짧게 일했던거라며 그럼 그사이 뭘 했는지 아직 모르잖아 특수부대 뭐 어디 부대인지도 안 밝히고
└어서오고
└진짜 왔네?ㅋㅋㅋ
-그래서 그 스폰서 루머는 어케됨??
└너무 구라임
└맨날 누가 뜨면 누구 하나 걸려라식으로 주작하는거 원투데이 보냐
└처음 글 올라온데 직원 2명이던데ㅋㅋ 무늬만 언론사지 그냥 인터넷 악플러ㅇㅇ
이영창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그의 눈에 윤제이는 아직 <어린이> 시절 촬영장을 누비는 천진난만한 아이였다. 본인이 괜찮다고 해도, 걱정되는 건 매한가지였다.
“다시 연예인이 된 이상 옛날처럼 소문도 많아질 텐데 애가 괜찮을지······.”
“그, 그렇지.”
소문 하니 갑자기 자신의 잘못이 생각나서 부끄러워진 조유경은 화제를 다른 곳으로 돌렸다.
“근데 참, 잘하네. 레슨 같은 것도 안 받았다고 했지?”
“그렇다고 하더라고요.”
이영창은 이서원의 신인 배우 자랑을 자주 들었다. 그 신인 배우의 정체가 이서원을 영화의 길로 이끈 윤제희라는 사실을 그가 알게 되면 어떻게 될까?
‘왜 안 말해줬냐고 나한테 따지겠지······.’
화면 속 윤제이, 김상현은 악성 민원인에게 시달리고 있었다.
(아니, 이거 돈 몇 푼 한다고 못 참고 여기까지 찾아와서 난리 치시는데요!)
(뭐? 이 썩을······!)
아직 제 버릇 개 못 준 김상현의 막말에 민원인이 화나서 바구니 속 고구마를 그에게 던진다. 경쾌한 배경음이 깔리면서 움직임에 슬로우를 건다. 고구마를 피해 책상 아래로 숨은 그가 눈을 크게 뜬다.
(뭐 저런 사람이 다 있어?!)
<아롱아롱>의 무휘대군처럼 사극 보정을 받은 폭군 악역과 비슷한 역할도 아니고, 하물며 <악의 동산>의 백진리처럼 존재감이 강한 캐릭터는 아니었다.
“근데 왜 하필 신인 작가 작품이래?”
“그냥 마음이 이끌렸다네요. 잘하는 배우들이 종종 그러잖아요.”
“하긴, 너무 얼굴값만 하는 무게 있는 역할은 벌써 하면 안 되지. 신인 때 다양하게 접해 봐야······.”
이미 윤제이에게 콩깍지가 씌인 두 사람은 그가 무슨 작품을 맡았든 다 좋았다.
<달동네>는 동 시간대 드라마랑 다른 호흡의 드라마였다.
초반은 옴니버스 형식으로 다양한 사람들을 보여준다.
자식 잃고 병까지 얻어 단칸방에 홀로 사는 엄마, 홀로 남은 치매 노인의 고군분투기. 가진 건 두 다리밖에 없었는데 사고로 한쪽 다리를 잃은 아저씨.
시원시원한 전개에 사이다 감성은 없다.
-아 솔직히 달동네 보고 울긴 했는데 너무 신파감성임
-가난한 사람이 저렇게 착하지만은 않던데ㅋㅋ
-ㄹㅇ 내 친구 못사는지역 행복센터에서 일하는데 진상 개많다고 맨날 욕하더라
-야 그래도 윤제이랑 한다연 캐미는 개쩐다
-윤제이 이게 두번째작인가? 연기 잘하네ㅇㅇ
-근데 막 이렇게 불탈 정도로 신파는 아니던데 드라마 보긴 봤냐?
한 면만 보고 하나씩 말을 얹어 이런저런 논란도 생겨났다. 하지만, 반응이 없는 드라마는 논란도 안 생긴다.
<달동네>는 젊은 층이 신파라며 프레임을 씌웠지만, 그 신파 감성이 중장년층을 잡아서 천천히 올라가더니 동 시간대 시청률 2위를 달성했다.
(나이는 어떻게 되세요?)
(······스물아홉인데요.)
(동갑이네? 나 여기 와서 아는 사람도 없는데 친하게 지내자.)
(뭐, 그러던가요.)
이윽고 최아라를 보고 한눈에 반한 김상현이 그녀를 따라다니면서 계속 찔러본다. 유들유들하고, 조금 얄밉지만, 애교를 부려 미워할 수 없게 만드는 모습.
평소 윤제이의 성격과는 정반대였다.
“능글거리는 연기도 잘하네.”
“흠?”
“왜 그래?”
윤제이와 자주 만났던 이영창은 알 수 있었다. 화면 속 윤제이의 모습이 뭔가 이상하다는 걸.
잘하긴 잘하는데······ 뭔가, 묘하게······.
‘이런 걸 위화감이라고 하나?’
뭐라 설명할 수 없는 균열이었다.
***
<달동네>의 주인공 박윤성은 신고를 받고 출동한다. 아래층 반지하에서 이상한 냄새가 난다고 신고한 건데, 들어가 보니 부패한 시체가 있었다.
“박 형사님, 뭐 하세요?”
“으으······.”
박윤성은 남들이 말리는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시체의 입을 벌려 무언가를 꺼냈다. 바로 종이학이었다.
“세 번째다.”
최근 발견된 시체의 입 안에 남은 종이학은 살인범의 서명과도 같았다. 같은 수법, 같은 장소. 하나같이 빈곤층에 약자만 노린. 시체가 발견된 건 세 번째지만, 시체의 부패 정도로 봐서는 아마 이 사람이 처음 살해된 사람일 거다.
“이제 연쇄 살인이네.”
그는 복잡한 표정으로 돌아섰다. 사망한 사람은 아무도 찾지 않는 독거노인이다. 언덕길을 내려가던 박윤성은 뒤돌아서 동네의 풍경을 바라보았다.
재개발되니 마니 해서 CCTV도 없고, 홀로 살거나 거동이 불편한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연쇄 살인범에게 이만한 사냥터가 어디 있을까?
그리고 김상현은 최아라를 보기 위해 복지 부서의 일을 자진해서 맡았다.
“이거 어디로 배달 갈까요?”
“슈퍼 옆에 초록 대문집 알아요?”
“아, 그 집. 다녀오겠습니다.”
김상현이 싱글벙글 웃으며 복지 물품을 배달 가고, 박 주무관은 그런 김상현의 모습을 의외라는 듯 쳐다봤다.
“뭐야, 무슨 바람이 분 거야?”
“아라 보러 간 거예요.”
“아라? 아 그, 식물인간 아버지 병원비 대는 걔?”
강수빈은 이미 김상현의 의도를 다 알고 있었다.
슬쩍 지켜보니 무슨 초등학생이 썸 타는 것처럼 조심스러워서 선을 넘지는 않는 것 같았고, 요새 살인 사건으로 흉흉하니 적당히 눈감아주고 있었다.
아버지는 병원에 있고, 그 동네에서 혼자 사는 젊은 여성은 위험하니까.
“저러고 시간 때우다 늦게 오고 이러는 건 아니야?”
“아슬아슬하게 제시간에 와요.”
“미꾸라지처럼 잘 빠져나가네.”
그렇게 말하는 박 주무관도 김상현의 미워할 수 없는 모습 때문에 평가가 바뀌고 있었다.
“그나저나, 그 소식 들었어요?”
“아, 살인 사건? 강 주무관 소꿉친구가 형사라며, 뭐 들은 거 없어?”
“시체 입 안에서 종이학이 발견됐대요. 언론에서는 아마 ‘종이학 연쇄 살인 사건’으로 붙여질 거 같다고······.”
네 번째 시체가 발견되고, 의선시를 떠들썩하게 만들 사건이 드디어 뭍으로 올라왔다.
***
최아라는 요즘 들어 자주 마주치는 김상현을 생각했다.
‘잘 생기긴 했는데, 너무 뺀질거려.’
말버릇이 딱 있는 집에서 자란 도련님이라 열받기도 하는데, 그래도 내 기분을 살피면서 애교를 부리니 미워할 수 없다.
게다가 내 번호는 어떻게 알고 밥 먹자고 메시지까지 보내고······ 그녀는 마침 울리는 톡 메시지에 핸드폰 화면을 켰다.
(김모씨) 야 나 또 김치배달하러 간다ㅠㅠ
(김모씨) 오늘 치맥할래? 내가 쏜다
돈 버느라 또래 친구는 없었고, 팍팍했던 삶이 조금 활기차지긴 했다. 그녀의 입가에 미미한 미소가 떴다. 그리고, 누군가가 그녀를 불렀다.
“저······.”
“아, 죄송해요. 오늘도 반나절 있으시나요?”
“네.”
“그럼, 13만 원이요.”
최아라는 남자가 건네는 돈을 두 손으로 소중히 받았다. 남자는 그녀가 하는 쪽방촌 체험의 단골손님이었다. 돈도 잘 주고, 해코지도 안 하고 그렇다고 방을 더럽히지도 않았다.
“근데 왜 자주 오시는지 여쭤봐도 되나요?”
“빈곤층에 관련한 논문을 쓰고 있어서요. 혹시, 기분 나쁘신가요?”
“아뇨, 뭐······.”
어차피 돈만 받으면 상관없는 처지다. 이 돈으로 밀린 월세 갚고, 아버지 병원비는 아르바이트로 메꾸면 된다. 그녀는 돈을 소중히 품에 안고 아르바이트를 나섰다.
하지만, 행복은 오래가지 않았다. 사장은 갑자기 그녀에게 해고를 통보했고, 밤늦게 집에 와 보니 공공기관에서 우편이 와 있었다.
“야! 최아라! 오빠가 뭐 사 왔게?”
분노한 최아라가 김상현의 멱살을 잡았다.
“너지?! 너야?!”
“뭐, 뭔데?”
“네가 신고한 거냐고!”
“아 뭔 소리야! 알아듣게 말해!”
“이거!”
자세히 보니, 불법 숙박업 운영이 적발되어 과태료를 부과하겠다는 내용이었다.
김상현은 억울했다. 최아라에게 잘 보이기 위해 노력할 뿐이지 이렇게 뒤에서 찌르는 비겁한 짓은 안 했다.
“내가 왜 이런 걸 신고해? 쌀 나르느라 바쁜데.”
“진짜 너 아닌 거지?”
“아니······! 야! 너 어디가!”
의심했다는 사실이 쪽팔리고 짜증나서 최아라가 위로 뛰쳐 올라갔고, 김상현은 그녀를 따라갔다. 그들이 도착한 곳은 달동네의 맨 꼭대기 공터였다.
“야!”
“뭐!”
“에이 씨, 더럽게 높은 곳까지 올라왔네.”
“여긴 왜 따라왔는데?”
“넌 뉴스도 안 보냐? 이 동네서 살인 사건 났잖아. 얘가 위험한 것도 모르고.”
사실 무섭기도 했다. 그래서 김상현이 따라와 준 것에 괜히 미안하고 고마워졌다. 그녀는 그가 뚜껑까지 따서 건넨 맥주를 벌컥벌컥 마셨다.
“······달동네 뜻이 뭔 줄 알아? 높은 곳에 있어서 달이 잘 보여서 붙여졌대.”
“······.”
“근데 이젠 저기 재개발 때문에 보이지도 않네.”
최아라의 검지를 따라 시선을 돌리니, 달은 옆 동네의 고층 아파트에 가려져 있었다.
“재개발이면 여기도 가능한 거 아냐?”
“우리 집 자가 아니야.”
“뭐?”
“월세라고.”
재개발 확정되면 최아라의 삶도 풀리겠다고 해맑게 웃었던 김상현의 표정이 웃은 채로 멈췄다. 사실 저렇게 조그맣고 다 무너지는 집이 몇 푼 한다고, 집은 자기 명의일 줄 알았다.
“우리 집이랑 저기, 저 집이랑, 저 주황색 지붕 집. 그리고 요 앞 슈퍼 건물이랑······ 열두 채 집주인이 다 같아.”
“그, 그래?”
“너 전에 자존심도 없냐고 왜 이런 가난 전시를 하냐고 했지?”
“그······.”
“집주인은 월세 30만 원이 당장 필요한 것도 아닌데 몇 시간 밀렸다고 방 뺀다고 협박해. 어제는 뭐라는 줄 알아? 보증금을 더 올리겠대. 아버지 병원비는 밀려 있고, 알바는 스포츠 토토로 돈 날린 사장 아들이 한다고 짤렸어.”
최아라는 애써 덤덤하게 말했지만, 점점 말에 물기가 어렸다. 김상현은 어쩔 줄 몰라서 입을 꾹 다물었다.
“나한테 가진 거라고는 가난인데, 가난이라도 팔아야 하지 않겠어?”
“······.”
“근데 이젠 팔 가난도 없잖아!”
울컥한 최아라가 엉엉 통곡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