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sappeared Genius Child Actor Is Back RAW novel - Chapter (42)
사라진 아역 배우가 돌아왔다 달동네 (5)(42/287)
달동네 (5)
“제이야, 이제 진정됐어?”
“네. 죄송합니다.”
“아냐 몰입하다 보면 그럴 수 있지.”
강수빈 역의 배우, 이혜인이 윤제이의 어깨를 살짝 토닥였다. 16살에 데뷔한 그녀는 34년 경력의 베테랑으로, 그녀가 강수빈을 맡아서 편성이 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인지도 있는 배우였다.
“선배님, 뭐 하나 여쭤봐도 될까요?”
“말해.”
이혜인은 잘생기고 실력도 좋은 후배의 말을 기꺼이 들어주었다.
“연기 중에 몰입을 깨는 기억이 갑자기 튀어나와서 방해한 적 있었어요?”
“정확히 어떤?”
“극 중 상황과 내 과거가 묘하게 닮아있을 때요.”
이혜인은 곰곰이 생각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여러 대학에서 특강도 나가는 교육자이면서 대선배였다.
이혜인의 금쪽같은 조언을 들으려고 한다연이 슬금슬금 윤제이의 옆으로 붙었다. 이혜인과 윤제이가 그들을 거부하는 기색이 안 보이자, 다른 배우들도 모여들었다.
“있었지. 극 중에서 어머니가 돌아가시는 장면이었는데, 그때가 우리 엄마 49재였거든.”
“아······.”
“그렇게 미안해할 필요 없어. 이미 지난 일이니까.”
“슬프지 않으셨어요? 그러니까, 극 중 배역이 아니라 ‘내’가 드러날 정도로······.”
“맞아. 그때 감독님도 그 얘기를 하시더라. 그날 NG를 한 세 번 냈나?”
이혜인은 윤제이가 무슨 의도로 이런 질문을 했는지 눈치챘다.
인터넷과는 담을 쌓아서 그가 115 참사의 대원이었던 것은 모르지만, 감독과 스태프들이 역시 전직 소방관이라 체력이 좋다며 추켜세웠던 게 떠올랐기 때문이다.
다른 이들보다 죽음에 가까운 사람, 최아라가 위급 상황인 것을 보고 감정의 격류가 심하게 일었을 것으로 추측했다.
“하지만 나중에는 그걸 이용했지.”
그래. 나도 카메라 공포증을 이용해서 백진리를 연기했다. 하지만, 지금은 자신 없다. 애써 막아왔던 가면이 언제 깨질지 모르니까. 윤제이는 모호한 표정을 지었다.
“난 그 작품을 연기하고 그해 연기 대상을 받았어. 그 장면 때문이래. 너무 실감 나서 화면 밖 시청자를 다 울렸다고.”
그 말에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아, 그 작품이요? 아는 체를 했다.
“우리는 어쩌면 나를 감추고 대본 속 배역을 드러내는 일을 하잖니? 마치 가면을 쓴 것처럼.”
“아.”
“하지만 굳이 완벽히 감춰야 할 필요가 있을까? 적절히 섞으면 그게 메소드고 실감 나는 연기가 되지 않을까?”
이혜인은 물론 자신이 정답은 아니라고, 오히려 정신적 피로도가 심해질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아무리 외면해도 계속해서 생각난다면.
“그냥······ 김상현, 그리고 너 자신의 흐름에 그냥 맡겨 봐. 감정 과잉이면 다시 찍으면 되는 거고, 아니면 편집으로 살릴 수 있는 거고, 그러라고 연출이 있는 거야.”
“감사합니다.”
그는 깊게 심호흡을 했다. 한번 해 봐야지. 나 때문에 촬영이 지연되면 안 되니까. 이윽고 자신을 살피는 감독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흐름에 맡긴다, 라······.’
촬영이 재개되고 다시 한다연을 업고 뛰었다.
“제발······!”
그는 김상현이 되어 최아라를 살리기 위해 뛰고 또 뛰었다. 초반에 숨을 헥헥 거리며 힘겹게 달동네를 올라가던 그는 더는 없었다.
그가 달동네 사람들을 구질구질하게 여기다가 연민을 느꼈던 것을 신체적 변화로도 녹여낸 것이다.
“헉, 헉!”
아까처럼 그를 둘러싼 환경이 바뀐다. 좁은 골목길, 학교 복도, 그리고 격전지로. 그렇다면 내 등에 업힌 사람은 누군가?
‘벤? 아냐. 벤은 이미 죽었어.’
작년에 이미······ 이제 그걸 인정해야 한다. 벤은 이미 죽었고, 만약이라는 가정으로 과거에 묶어봤자 나만 힘들다는 것을.
그렇다면 지금 내가 업은 사람은? 최아라. 그래, 그녀부터 살려야 한다.
그런 그의 미세한 표정 변화는 오히려 극에 더 잘 어울렸다. 내가 지금 누굴 업고 있는 건지 혼란스러운 감정은 최아라가 죽을 수도 있다는 불안으로 보였다.
‘죽지 마.’
등에 업힌 최아라의 온기가 식어가는 착각이 일었다. 김상현은 그동안 의선시에서 겪었던 모든 기억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그 모든 기억의 끝에 최아라가 있었다.
간신히 언덕 아래로 내려왔을 때, 먼저 밑으로 내려간 강수빈이 차를 끌고 왔다.
“야! 여기야!”
그리고 차에 급히 올라타고, 감독의 오케이 사인이 들린다. 차에서 내려 묵묵히 다음 장소로 이동하던 윤제이를 한다연이 부르려고 했다.
“와······.”
“다연아. 쉿.”
“네?”
“······방해하지 말자.”
윤제이의 상태가 심상치 않았다. 이혜인도 전에 느꼈었던 감각이었다. 스태프들은 몰입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윤제이 근처를 정리했다.
그리고 대학병원 응급실로 장면은 전환된다. 수술실 앞에서 안절부절못하는 김상현과 침착하게 의자에 앉아 기다리는 강수빈으로.
“어, 어떻게 됐어요?”
“일단 중환자실로 옮겨 상황을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만, 급한 고비는 넘겼습니다.”
“하아······.”
김상현이 아래로 무너졌다. 연기가 아니라 진짜 다리에 힘이 풀린 거다. 강수빈이 그의 어깨를 잡았다.
“괜찮아?”
“······네.”
김상현은 강수빈을 올려다보며 울면서 웃는다. 내가 늦지 않았나? 하는 의심에서 안도로, 끝까지 버틴 최아라에 고마움과 애정으로.
‘무슨 연기가······.’
복잡한 감정의 홍수에 이혜인은 애써 무너지려는 배역을 붙잡았다. 그의 얼굴을 찍는 카메라도 마찬가지였고 모니터를 통해 보고 있던 감독도 마찬가지였다.
“감독님, 감독님.”
“아······ 컷! 좋습니다!”
뒤늦게 컷 사인을 외친 감독이 벌떡 일어났다. 이건 다시 안 봐도 명장면이다.
“와······.”
“진짜 대박이다.”
몇몇 사람들이 여운을 즐기고 있을 때, 윤제이는 아직도 주저앉은 채 가만히 있었다.
“제이 씨?”
“제이야.”
“아, 네!”
슬슬 걱정돼서 부르니 윤제이는 벌떡 일어나 눈물을 닦았다.
‘그 감각이 다시 느껴졌었어.’
<어린이> 촬영 후반부에서 느꼈었던 감각. 내가 온전히 박동화가 되는 순간, 잠깐이지만 다시 느낄 수 있었다.
게다가······ 또 한 가지 얻은 게 있었다. 나는 벤자민을 구해내진 못했지만, 최아라는 살려냈다.
‘너무 눌러 담고 사는 것도 좋지 않다고 했지.’
최아라가 가상의 인물이라는 건 중요하지 않다. 그는 최아라를 구함으로써 벤자민을 덜어낼 수 있었다.
이 작품이 이유 없이 끌린 이유를 알겠다. 나는 이 작품을 통해서 내 개인적인 아픔을 보낼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이날 촬영분이 전파를 탔다. 윤제이라면 하던 일도 멈추고 티비 앞에 앉은 이영창은 이 장면에서 전에 느꼈던 위화감을 다시 느꼈다.
“음?”
NG를 냈던 장면도 적절히 편집했다. 윤제이의 가면이 깨지는 순간, 적어도 이영창은 느낄 수 있었다. 배우 본체의 모습이 잠깐 나왔다 사라졌다.
이어서 최아라의 경과를 확인하고 무너지는 장면, 그 미세한 표정과 감정 변화에 이영창의 눈이 아이처럼 반짝반짝 빛났다.
“저건······.”
<어린이> 때의 그 모습이 보였다. 아주 잠깐이었지만. 이영창은 갑자기 벅차올랐다.
그가 과거 뮤즈의 모습을 곱씹고 있을 때, 시청자들은 다른 감각을 느꼈다.
-야 나 이장면 뭔가 이상해
아 뭔가 맘이 안좋은가? 뭐라 설명못하겠음
└헐 나도
└와 나도 막 설명 못하겠는데 뭐지?
-아니 저게 뭐라고 슬픈것도 아닌데 눈물나옴 진짜 이상해;;
-나만 이상한게 아니었구나
-뭐지? 진짜 뭐지? 대체 나한테 뭘 한거야?
-윤제이 연기 때문인가? 연출은 되게 별거 없었잖아
대놓고 신파를 떠먹여주는 것도 아니고 울으라고 슬픈 오슷 깔린 것도 아닌데 이상하게 먹먹?함 나만이래?
└맞아ㅠㅠ
└아니 근데 나만 그런것도 아니고 다들 이러니까 진짜 뭐지? 싶음 연기 진짜 개잘해
이런 이들의 반응은 즉시 기사로 옮겨졌다.
‘달동네’ 15회서 느낀 먹먹한 감성, 시청률로 나왔다···자체 최고 경신
‘달동네’ 최아라를 살리려 뛰어가는 윤제이의 신들린 연기 화제
이영창은 이 기사를 슬쩍 훑어보다가 마이튜브를 들어가 봤다. 요즘은 마이튜브에 촬영 현장 영상도 자주 올라온다고 들었다.
그래서 혹시나 해 들어가 보니, 방송이 끝나고 곧바로 올라와 있었다. 따로 마이크를 몸에 지닌 건 아니라서 이혜인과 윤제이가 무슨 말을 하는지는 정확히 들리지 않았다.
[달동네 비하인드] 역시 이혜인! 촬영 중 연기 특강에 이어 몰입해서 눈물 쏟는 윤제이ㅠㅠ└윤제이 배우님 진짜 연기 개잘하시네요
└여기서도 괜히 눈물 나오잖아요 진짜 나한테 뭘 하신거에요ㅠㅠ
└와 이런말 하면 왠지 안될거같은데 우는 것도 진짜 예쁘게 운다
└진짜 몰입했나보다 눈물이 멈추지 않네ㅠㅠㅠ
화면 속 윤제이의 모습을 눈에 담은 이영창은 평소의 그를 생각했다.
어릴 때의 상처를 덤덤히 고백하고 이제는 괜찮다고 되레 나를 안심시켰었지.
하지만, 아직 아물지 못한 상처가 엿보였다. 내가 알지 못하는 다른 시간에 무언가가 더 있었군.
그러면······ 그가 여태껏 봐 왔던 윤제이는 무언가 막으로 덧씌운 느낌일 테고, 방금 순간적으로 나온 그 표정은······.
‘이게 네 진짜 모습이겠구나.’
그는 한창 작업하고 있던 작품 시나리오를 미련 없이 삭제했다. 윤제이를 위한 시나리오 작업, 가닥이 잡힐 것 같다.
***
종방연 현장으로 향하는 차 안에서 윤제이는 뒤늦게 <달동네>에 관한 반응을 검색했다.
-솔직히 가난한 사람 무조건 착하게 그리는 것도 에바임
-너무 뻔하지 않냐?
-최아라는 뭔데 저렇게 나댐?
-취지는 좋은데 어쨌든 돈은 내야한다 아님?
-저거 봐라 가난하고 자식도 없으면 저렇게 고독사하는거ㅋㅋ
-드라마 이렇게 하나하나 따져가면서 봐야해?
제발 드라마는 드라마로 봐라
└222
└아니 진짜 별거 아닌데 논란 만들려고 살붙이는 느낌이야.
사실 요즘 라이징인 윤제이를 견제하기 위해 억지로 말을 붙이는 것도 있었지만, 참 다양한 의견들이 나왔다.
<어린이>가 지금 나왔다면 이런저런 논란을 피하긴 힘들었겠군. 박동화는 뇌성마비 장애인이니 더욱 이런저런 말이 나왔겠지. 윤제이는 고개를 저었다.
-이런 소재의 드라마는 있어줘야 한다고 본다ㅇㅇ
-솔직히 나는 좋았음 신파라고 말한것도 그냥 슬프던데
-억지 사이다보다는 이게 나은데
하지만 호평도 제법 많았다. 느릿하지만, 휴머니즘을 챙겼다는 이유가 대부분이었다. 게다가 연쇄 살인 사건으로 극의 긴장감을 높였다는 것도 한몫했다.
-윤제이 연기 그새 더 늘었네;;
-아니 마지막에 휘몰아치는 그 장면 미쳤음 진짜 막 울라고 판 깔아준 것도 아닌데 눈물 좔좔
-차기작 뭘까 진짜 기대되네
-배우덕질 힘들다.. 차기작 나올때까지 존버해야하네ㅠ
우태윤 작가는 리딩 현장에서 이런 말을 했다.
<달동네>의 시작은 인터넷에서 본 하나의 글이었다고. 가난하면 진상이고 부자면 오히려 착하다는 글.
개개인 인성 문제는 가난이고 부자를 안 가리는데, 그리고 빈부격차는 사회적 문제인데 왜 이 사람들은 색안경을 끼고 서로를 비난하려고 할까?
[근데 마침 제이 씨가 티비에 나왔어요. 그, 마지막에 왕과의 대면 씬 있잖아요?] [격차에 따라 보상을 달리하면 갈라선다는 그 대사요?] [네.]그걸 보고 꼭 윤제이를 캐스팅하고 싶었다고 한다. 하지만, 갑자기 떠 버려서 반쯤 포기하고 있었다고.
“작가님, 이젠 어떠세요?”
“음······.”
신인인 우태윤 작가는 <달동네>를 집필하면서 많은 딜레마를 겪었다. 내가 이 사람들을 이렇게 그려도 되는 걸까? 억지라고 욕하면 어쩌지?
하지만 곧 마지막 방송인 지금은 생각이 많이 달라졌다.
‘달동네’ 효과···각 지자체 저소득층 지원 사업 강화
‘달동네’에 나왔던 소액체납관리단 대대적으로 꾸린다···자원봉사 모집
소외 계층 주목한 ‘달동네’에 시의원 관심···우리 사회의 따뜻한 시선이 필요
어차피 모두를 만족하게 만들 순 없다. 하지만······ 우태윤은 자신이 보던 휴대폰 화면을 윤제이에게 내밀었다.
“이거면 되지 않았나 싶어요.”
“그렇네요.”
“제이 씨는 어떠세요?”
우태윤은 바쁜 집필 시간에도 윤제이가 최아라를 업고 뛰어 내려가는 장면을 현장에서 직접 보았었다. 다들 말은 안 꺼냈지만, 그때의 윤제이가 이상했다는 건 다 알고 있었다.
“······저는 정말 좋았습니다.”
짐을 한결 덜어낸 윤제이의 표정은 밝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