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sappeared Genius Child Actor Is Back RAW novel - Chapter (55)
사라진 아역 배우가 돌아왔다 내 편은 없군.(55/287)
내 편은 없군.
윤제이는 <달동네>의 출연을 확정하고 <크라운>의 작가인 최혜란을 만났다. 작가가 꼭 그를 만나고 싶어 했기 때문이다.
“안녕하세요, 작가님. 저는······.”
“쉿.”
최혜란 작가는 검지를 입술에 대고 윤제이를 위아래로 훑었다.
“제자리에서 한 바퀴 돌아보실래요? 천천히.”
무슨 영감이라도 받은 듯 멍한 느낌이라 일단 그녀의 요구를 받아주었다.
최혜란은 <크라운> 구상 중 <아롱아롱>에서의 윤제이를 보고 그가 지금 쓰고 있는 ‘유시현’과 딱 맞는다고 생각했었다.
‘진짜 좋네.’
얼굴 분위기 무엇 하나 빠지지 않고 사람을 홀리는 매력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직접 보니 더 매력적이다.
“어우, 좋아. 내가 생각하는 시현이 그 자체네.”
“감사합니다.”
“일단 앉으세요. 어휴 내가 손님을 불러 놓고 다른 생각을 했네.”
“괜찮습니다.”
최혜란은 공전의 히트작을 하나도 아니고 몇 개나 만들어 낸 드라마 판의 스타 작가였다. 히트작 외에 다른 작품도 하나같이 시청률이 높았다.
“왜 이렇게 연락을 늦게 했어요? 나 그래도 꽤 괜찮은 작가인데.”
“죄송합니다. 아무래도 쟁쟁한 선배님들이랑 함께하려니 긴장돼서요.”
“쉽지 않은 것도 딱 시현이네요. 나 ‘아롱아롱’에서 제이 씨의 비주얼적인 면을 너무 좋게 봤어요.”
성격이 꽤 털털해 보이지만, 신인 작가의 작품을 검토하느라 답변이 늦었다고 하면 안 될 거 같다.
<크라운>은 최혜란 작가의 이름이 붙은 덕에 유명한 배우들이 총출동했다.
천사표, 캔디형 주인공만 맡다가 남편에게 복수하는 역할로 파격적인 변신을 꾀하는 여배우도 있었다. 그래서 시놉시스만 떴을 때도 기대하는 사람이 많았다.
“제가 어떻게 연기하면 좋을까요?”
“음, 솔직히 이대로도 좋은데······.”
<크라운>은 병원장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사람들, 그리고 그들의 가족이 얽히고설킨 관계를 그린다. 윤제이는 아신 병원의 젊은 마취과 교수로, 주인공인 부원장 부부의 사이에서 줄을 타는 야망 넘치는 인물을 맡는다.
“그런데, 조금······ 더 위험하고 더 치명적이었으면 좋겠네요. 내가 무슨 말 하는지 알죠?”
“네.”
위험하고 치명적인 게 뭘까. 일단 <아롱아롱>에서 연기했던 무휘대군과는 다른 의미일 것이다. 무휘대군은 수틀리면 정말 검을 꺼내 썰어버릴 것 같다면, <크라운>의 유시현은 아마 성적인 의미가 더 클 것이다.
“······라고 작가님이 말씀하셨는데, 어떻게 해야 좋을까?”
“형은 완전 섹시해야 된다는 거죠.”
한진우가 엄지를 치켜들고 반짝이는 눈으로 대답했다. 난 그런 거는 익숙하지 않은데······ 윤제이는 짧은 고민 끝에 한진우에게 마네킹을 구해달라고 부탁했다.
“형, 꼭 그렇게 하셔야겠어요?”
“그럼 네가 상대역 할래?”
“아뇨.”
한진우는 기겁하며 물러났다. 그는 마네킹을 상대역으로 두고 몸을 밀착해 여러 각도로 자신의 모습을 찍었다.
눈으로 보면 괜찮은 것들이 카메라로 볼 때는 달라질 수도 있으니 어떤 모습이 더 매력적인지, 어떤 각도가 더 시청자에게 어필을 할 수 있을지 연구 중이었다.
한진우가 지켜보고 있는데도 부끄럽지도 않은지 멈추지 않았다. 하긴, 저래서 배우 하는 거겠지.
‘근데 저런 거 안 해도 충분하지 않나?’
<악의 동산>이야 워낙 또라이니까 넘기고, <아롱아롱>에서 극 중 여주인공과 썸을 탈 때의 느낌으로 가면 되지 않을까? 게다가 저 형은 가만히 있어도 사람 잘 꼬이던데······ 라고 생각했던 한진우는 숨을 삼켰다. 어느 기점에서 윤제이의 분위기가 변했다.
‘와씨, 뭐야.’
뭔가······ 빨려 들어갈 것 같은 분위기인데 눈빛이 묘한 게, 숨이 막힐 것 같다. 만약 마네킹 자리에 상대 배우가 있었더라면 정신을 못 차리지 않았을까? 한진우는 뒤늦게 외쳤다.
“어! 그거! 딱 좋았어요.”
“그래?”
“한 번 화면으로 보세요.”
윤제이는 조금 전 자신의 모습을 진지하게 감상했다. 이런 게 작가가 바라는 느낌이려나?
“넌 어떤 거 같아?
“완전, 이게 ‘어른’의 분위기다 싶은 그런 느낌? 막 간질간질하고 풋풋한 게 아니라 보자마자 와, 진짜 방심하면 당하겠다는 느낌?”
한진우의 감상에 윤제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원하던 느낌이 나왔음에도 연습을 멈추지 않았다. 얼굴각도 그리고 몸의 위치와 시선은 어떻게 해야 좋을지 등을 계산했다.
‘와, 저 형이 작정하고 꼬시면 장난 아니겠는데.’
그 모습을 지켜보던 한진우가 허허 웃었다. 솔직히 나도 두근거렸다. 인정.
그렇게 만반의 준비 끝에 리딩 현장에 나타난 윤제이가 허리를 꾸벅 숙이며 선배들에게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어, 어어······ 네.”
<달동네>와 병행해 찍는 작품이라 몰입이 잘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렇다고 소홀히 하고 싶지는 않았다.
아직 초반부 대본만 받아본 상태지만, 유시현의 극 중 역할이나 결말을 작가에게서 미리 들어 알았다.
그의 역할은 극의 초반부에서 존재만으로 사람들의 흥미를 자극해야 한다. 누가 봐도 위험한 사랑에 빠질 수밖에 없는 독이 든 성배 같은 존재.
[남녀를 떠나서, 누가 봐도 푹 빠질만한 인물이었으면 좋겠어요.] [사실 캐릭터 자체가 도의적으로 어긋난 캐릭터잖아요? 하지만 천박해 보이지 않고 오히려 고급스러워서 보는 시청자가 혼동하게끔······.] [이런 느낌으로······ 내가 너무 어려운 부탁을 했죠?]윤제이는 작가의 어려운 부탁을 최선을 다해 소화하려고 했다. 그리고 그 결과는 다른 배우들의 반응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뭐지?’
그와 눈이 마주친 몇몇 사람들은 윤제이에게서 오랫동안 시선을 두었다. 뭔가, 눈을 뗄 수 없다.
“안녕하세요. 유시현 역할을 맡은 윤제이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이윽고 자신의 차례가 되자 일어서서 인사하는 윤제이에게서 계속 시선이 머물렀다. 타고난 얼굴과 신체 그리고 작정하고 만든 분위기까지.
‘그래 바로 이런 느낌이야.’
최혜란 작가는 자신이 무리한 부탁을 했다는 걸 알면서도 윤제이가 이렇게 완벽히 준비해올 줄은 몰랐다.
신인치고 연기를 잘한다는 건 알지만, 어차피 유시현은 초반부에나 존재감 있게 나올 인물이고 다른 주조연들 모두 인지도 면에서나 연기 면에서나 훌륭한 사람들이었으니 후반부 흐름도 잘 가져올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이러면 죽이기 좀 아까운데······.’
하지만 막상 보니 아깝다. 그래도 어쩔 수 없었다. 이미 윤제이는 <달동네> 촬영 때문에 5회 분량만 나오기로 합의되어 있었다.
최혜란은 윤시현을 초반에 쓰고 버릴 캐릭터로 둔 자신의 결정을 후회했다.
***
그렇게 <크라운>의 사전 제작이 끝나고, 예고편이 대대적으로 공개됐다. 분주해 보이는 한 대형 병원, 바빠 보이는 의사들과 환자들.
(부원장님.)
(어어 그래. 너무 그렇게 인사하지들 말고.)
미중년인 부원장이 복도를 거닐 때마다 그를 발견한 사람들은 하나같이 웃으며 인사를 한다. 그래서 사회적으로 인망이 두터워 보이는 것을 보여준다.
-장성건 진짜 잘생겼다
-미중년의 표본인듯
실시간 공개라 사람들의 반응이 하나둘 올라왔다. 부원장 ‘박윤재’ 역할을 맡은 장성건은 왕년의 청춘스타로, 누가 봐도 매력적인 중년이 되어 활발한 연기 활동을 하고 있었다.
그렇게 밖으로 나가려던 박윤재의 앞에 하얀 의사 가운을 입은 유시현이 등장한다.
(부원장님.)
(유 교수, 점심은 아직이지?)
(무슨 좋은 일 있으십니까?)
(아내와 데이트가 있어. 맛있게 먹으라고.)
약속 장소에 멈춰 선 부원장이 누군가에게 통화를 걸면서 다른 곳으로 눈을 돌렸을 때, 유시현은 남편을 향해 걸어오는 사모님을 지나쳐 간다.
그리고 교차해 지나가는 두 사람의 손이 부딪친다. 유시현의 손가락이 노골적으로 손바닥을 훑고 지나가는 모습, 누가 봐도 수상한 기류가 느껴진다.
-와 윤제이 의사가운 ㅁㅊㄷ
-와 머야 손만 닿았을 뿐인데 섹텐ㄷㄷ
-나 시놉 안봐서 그러는제 윤제이랑 임시란이랑 그렇고 그런 사이여?
-임시란 장성건 쌍방불륜이라던데
-머라고?? 역시 최혜란드다 예상을 못하겠네
실시간 반응이 점점 더 많이 올라왔다. 자극적이지만, 그만큼 카타르시스 넘치고 재밌어서 믿고 보는 최혜란이라는 작가의 타이틀에다가 배우진도 빵빵했다.
지금도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장성건과 착한 역할만 맡아왔던 임시란의 파격 변신. 그리고 데뷔부터 주목받고 잠깐 나왔던 <악의 동산>마저도 화제성을 끌어모았던 윤제이도 드라마 기대 포인트 중 하나였다.
(이번에 병원장님이 은퇴하신다면서요?)
(어머, 그 얘기는 어디서 들으셨어요?)
이윽고 화면은 바뀐다. 부부 동반 모임 중 병원에서 힘깨나 쓴다는 남편들과 사모님들의 대화, 유시현과 심상치 않은 기류를 풍기던 부원장과 사모도 있었다.
(우리 휘연이는 좋겠다. 저렇게 잘하는 남편에 곧 병원장까지 되시니까······.)
(아직 모르는 거예요, 언니.)
예고편은 다정하지만 어딘가 싸한 부원장과 아내의 관계를 보여주면서, 중간중간 주변 인물들이 어떠한 갈등을 겪는지 보여준다.
그리고 밀회를 가지는 정휘연과 유시현의 장면에서 반응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입을 맞추며 상의를 끌어 내리는 모습, 얼굴은 나오지 않지만 조각 같은 상체 근육에 온갖 캡처 짤이 생성됐다.
-방금 등근육 누구임? 나 급해 빨리빠릴
-장성건인가? 아닌거같은데
-제작진 피셜 윤제이래
-와 ㅅㅂ
-머임? 아무리 젭티라지만 방영 가능한 수위야?
-막상 저렇게 보여주고 본편 까보면 별거 없을듯 심의 기준이 빡빡해서
-아니 단순 상탈장면인데 뭐가 이렇게 덥냐
19금 판정을 받았다고 너무 노골적이고 외설적인 건 아니었다.
극 중 누군가가 피를 흘리며 죽고, 폭력적이고 약간의 선정적인 장면이 나와서 그런 심의 판정이 나온 것 같은데······ 상대적으로 개방적인 나라에서 오래 살다 온 윤제이는 이게 왜?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별거 아닌 장면이긴 했다.
“예고편에 나온 등은 형이지? 와, 근육이 막······.”
“뭐야, 오빠도 부끄럼을 타네?”
하지만 가족이 보고 감상을 남기는 건 좀······ 참을 수가 없다.
예고편만 봐도 이러는데, 본편을 봤다가 무슨 얘기를 할지······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린 윤제이를 건수 잡은 쌍둥이들이 놀렸다. 박현아는 그걸 웃으며 지켜보다가 윤제이를 꺼내 주었다.
“안 그래도 혜란 언니가 네 얘기를 그렇게 하더라.”
“최 작가님과 친하세요?”
“응. 네가 우리 애들이랑 이복형제라는 기사가 뜨자마자 나한테 전화해서 너 윤제이 걔랑 친하냐 다리를 좀 놔 줘라. 이런 청탁도 받았고.”
박현아도 인기 작가를 나열하면 한 자리 차지할 정도로 유명했다. 하지만 쌍둥이도 윤제이도 그녀의 작품을 의도적으로 피했다. 혹시나 논란이 생길까 봐서였다.
“제가 괜히 죄송하네요.”
“다 지난 일인데 뭘.”
오히려 그 고집 있는 최혜란을 애타게 했다는 것에 놀랐다. 얘 아직 신인 아닌가? 데뷔한 지 이제 1년 돼가는데 벌써 그런 작가가 개인적으로 청탁을 하게 만드네.
“그 작가님이 우리 오빠한테 뭐라고 했는데?”
“그 현장에 있던 모든 사람을 꼬셨다던데?”
구해줄 줄 알았던 박현아도 윤제이 놀리기 대열에 합류했다. 윤제이는 고개를 젓고 그저 물이나 마셨다.
“내 편은 없군.”
<크라운>은 어차피 중반부에서 하차하는 역할이라 이런 건 오래 가지 않을 거다. 게다가······.
‘그때와 같은 감각은 안 느껴졌었지.’
그는 <달동네>에서 느꼈던 그 감각을 다시 느끼길 바랐다. 과연 연기를 통해서만 트라우마를 덜어낼 수 있는 걸까?
(정승우) 형님, 저희 제안은 생각해 보셨어요?
(정승우) 다들 교관님 보고싶다고 난리에요
마침 정승우의 메시지가 화면에 떴다. 정승우는 밀리터리 서바이벌 예능에 나와서 제법 유명했다.
그리고 정승우와 친한 동기들이 군대 관련 마이튜브 컨텐츠를 기획하고 있는데, 그가 나와줬으면 한다는 제안을 준 적 있었다.
‘한 번 나가볼까······.’
듣기로는 아예 세트장을 빌려서 본격적으로 한다고 했는데······ 윤제이는 정승우에게 답장을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