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sappeared Genius Child Actor Is Back RAW novel - Chapter (67)
사라진 아역 배우가 돌아왔다 미끼를 던지자.(67/287)
미끼를 던지자.
이한림 감독이 쓴 대본은 그렇게 친절하지는 않았다. 대사는 나름대로 공들여 쓰긴 해도 상황 지문은 간결해서 배우들과 대화를 통해 디테일을 완성하는 편이었다.
그래서 배우들이 캐릭터에 몰입해서 나오는 애드리브를 좋아했다.
“윽······.”
실제 윤제이가 받은 지문은 두 줄이 채 안 됐다.
감독도 별다른 디렉팅을 하지 않고 일단 그가 어떻게 하는지 보고 싶었다. 게다가 윤제이도 자세히 묻지 않고 일단 카메라 앞에 섰다.
‘군인 출신이라고 했는데······ 실제 경험이 섞인 건가?’
다시 찍는 진영도의 모습은 정말 PTSD에 시달리는 군인 같았다. 따로 물을 뿌리지 않아도 식은땀이 가득하고, 손이 덜덜 떨린다. 게다가 윤제이는 감독이 염두에 뒀던 은유를 적절히 사용했다.
‘에이, 설마.’
늘 줄을 묶어 놓았던 천장을 복잡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탁상 위에 올려진 총을 이리저리 돌리다가 허공을 겨눴다.
증오로 가득한 표정으로 보건대, 자신의 대원을 죽인 괴물을 앞에 두고 사격 연습을 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이윽고 총구의 방향은 자신의 관자놀이로 향했다.
방아쇠를 당길까 말까? 내리깐 눈으로 고민하는 게 보였다. 울고불고 감정이 폭발하는 구간은 아니었다. 덤덤하지만, 저릿저릿하게 울리는 무언가가 있었다.
‘쓰읍······ 이 장면은 애매해서 안 쓸려고 했는데.’
영화는 편집의 예술이다. 워낙 쟁쟁한 배우들이 나오니 일단 생각해둔 건 다 찍어놓고 편집으로 살릴지 말지 결정하려고 했는데······ 결과물을 보니 그냥 버리긴 아까운 장면이 되었다.
‘그러고 보니 이 대표가 뭐라고 했더라?’
이한림은 이서원과 했던 대화를 곱씹어보았다.
[출연 확정은 언제 내줄 거예요? 이거 참, 쩐주라서 뭐라고 하지도 못하겠고.] [조금만 기다려 봐. 아직 고민 중인가 봐.] [신인 아닌가? 신인이 그렇게 잰다고?]<영구 동토>는 그와 KE 그룹 산하 제작사에서 몇 년 동안 기획 중이었던 대작 영화였다. 어느 신인이 이런 영화에 들어갈 기회가 있는데 고민을 해? 바로 오케이 해야지.
게다가 이서원의 방식은 일단 배우를 꽂아보고 결정하지 않았나? 과할 정도로 배우의 의사를 매우 존중하고 있었다. 이 대표가 이런 적이 있었나?
[복잡한 사정이 있어서 그래. ]사실 너무 질질 끌어서 선입견을 품었었는데, 연기를 보니 윤제이에 관한 안 좋은 감정은 눈 녹듯 사라졌다. 정말 그가 생각하는 진영도 대위가 현실로 튀어나온 것 같았으니까.
‘민재가 사람은 진짜 예민하게 가리는데······.’
권민재는 아역 시절 믿었던 부모에게 배신당한 일 외에도 많은 일이 있었다. 절친이라고 여겼던 사람에게도 배신당했고, 믿고 의지했던 사람들이 떠나는 걸 자주 겪어서 웃는 얼굴로 벽을 치고 누구를 쉽게 믿지 않았는데, 윤제이랑은 잘 지냈다.
“컷! 좋습니다!”
배우들은 콜 타임을 잘 지켰고, 별다른 사건도 없었다. 이대로만 이어지면 남극 팀의 촬영 계획대로 끝날 거라 예상했다.
그런데······ 며칠 뒤 일이 생겼다.
“감독님, 잠시 오셔야 할 것 같아요.”
“네?”
조감독의 심각한 표정에 따라 나와보니, 권민재의 매니저가 부른 두 형사가 있었다. 두 사람이 서있는 경찰차 안에는 수갑을 찬 남자가 있었다.
“안녕하세요. 여기 책임자 되십니까?”
“아, 예······.”
대체 이게 무슨 일이야? 느닷없는 경찰의 등장에 이한림과 조감독이 쭈뼛거렸다.
“저희가 쫓는 용의자가 여기 스태프로 위장했다는 제보를 받았습니다.”
“예?”
“자세한 건 촬영 끝나고 서에서 얘기합시다. 여기 매니저님한테 듣기로는 촬영 도중에 접을 수 없다면서요?”
“네······.”
배우들의 몸값이 워낙 높다 보니 하루하루 일정도 치밀하게 짜여 있었다. 쉽게 철수할 수 없는 현장이었다.
감독과 조감독은 주차장 밖으로 떠나는 경찰차를 멍하니 쳐다보았다. 두 사람의 손에는 경찰의 명함이 들려 있었다.
“······너 뭐 들은 거 없냐?”
“저도 모르겠어요.”
“아니 그래도 그렇지······.”
갑자기 경찰이 와서 우리 스태프를 잡아갔다는데 제대로 된 촬영이 되겠나 이거? 대체 무슨 일이야?
“감독님. 무슨 일 있었습니까?”
권민재는 뻔뻔히 말하는 윤제이를 보고 웃음을 참았다. 조금 전까지 범인을 무섭게 제압한 사람이라고는 보이지 않았다.
“아, 아뇨. 다음 슛 들어가죠. 준비되셨어요?”
“네.”
“맞다. 커피 잘 마실게요. 어제 밥차도 그렇고, 제이 씨 팬들 덕분에 호강하네.”
윤제이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뒤에는 팬들이 보낸 커피차가 있었다. 범인을 마주한 뒤로 기분이 좋지 않았는데, 저걸 보고 금세 괜찮아졌다.
그렇게 오늘 예정된 촬영을 마치고 황급히 담당 경찰서로 향한 감독과 주요 스태프진들은 황당한 소리를 들었다.
“일단 첫 신고자는 권민재 씨고요.”
“미, 민재요?”
“윤제이 씨가 범인을 제압해서 저희에게 인계했습니다.”
“네?”
“모르셨습니까?”
“아니······.”
정말 금시초문이다. 이 배우들이 대체 무슨 일을 한 거야?
“자칫하면 큰일 날 뻔했습니다. 범인 가방을 보니까 촬영장에 불을 지르려고 한 것 같더라고요. 차에도 기름통이 세 통이나 나왔습니다.”
“허, 허억······.”
감독은 순간 눈앞이 아찔해졌다. 그, 그런 큰일이 있을 뻔했는데 어떻게 미리 알고 잡은 거지?
그때, 뒤에서 문이 열리고 또각또각 구두 소리가 들렸다. 경찰들이 그녀를 알아보고 엉거주춤 일어났다.
“안녕하세요. 우리 촬영장에서 일이 있었다고 들었는데요.”
“헉······ 부회장님.”
조유경이 직접 행차했다.
***
“제 역할이 중요하다고요?”
미끼 작전에 가장 필요한 사람은 백다은이었다. 그녀도 권민재처럼 자신의 콜 타임이 아닌 때에도 촬영장을 자주 찾았다.
‘권민재가 걱정돼서 그런가?’
윤제이는 두 사람의 우정이 조금 부러워졌다. 사실 두 사람은 윤제이의 연기를 보기 위해서였으나, 티 내지 않아서 오해하게 됐다.
“범인은 민재를 자신의 아바타로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네?”
“민재를 보고 자신을 투영하고 있습니다. 예전에 아역배우를 지망했다가 잘 안 됐거나, 자식을 데뷔시키는 데 실패했을 겁니다.”
권민재와 백다은은 멍하니 윤제이의 말을 들었다.
“자기의 기준에서 민재가 엇나가는 게 보이면 어긋난 애정을 표출합니다. 이성적인 감정보다는 부모의 마음과 비슷합니다.”
“무슨, ‘공주 키우기’처럼요?”
“비슷하죠.”
‘공주 키우기’가 뭔지는 모르지만, 일단 고개를 끄덕인 윤제이는 다시 말을 이어갔다.
“죽은 까치나 고양이를 차에 올려두면서 수법이 대담해진 건, 아마 범인은 ‘영구 동토’가 마음에 안 들었을 겁니다. 내 배우가 이런 영화에서 비중 없는 조연을 맡다니, 늘 주연만 맡아야 하고 늘 빛나야 하는데. 그래야 내 가치도 올라가는데.”
<영구 동토>가 제작사에서 힘을 준 영화라는 건 중요하지 않다. 오로지 권민재가 주연임을, 분량이 많은 역할을 맡아야 하는데 그게 아니니 감정이 폭발한 거다.
‘백다은이 권민재를 거울로 보는 것과 비슷하지.’
물론 비슷하다 뿐이지 전혀 다른 유형이다. 범인은 권민재를 통제하려고 하고, 필요하다면 위협할 마음도 가득하니까. 아직 행동을 안 했다 뿐이지. 그래서 함정을 팔 예정이다.
“제이 씨, 무슨 관심법이라도 쓰세요?”
“여태까지 나온 통계와 분석자료를 통해 추론한 것뿐입니다.”
윤제이는 남들과는 다른 재능이 있었고, 직감도 좋았다. 그 직감을 활용해 여러 위기에서 빠져나와 동료들을 구할 수 있었다.
이런 범죄 심리학을 본격적으로 공부한 건 소방관 시절 동료, 윌리엄스를 죽인 방화범을 잡을 때였다. 죽은 친구가 떠오르자, 눈앞에 불이 화르륵 타오르는 착각이 일어서 눈을 지그시 감았다 떴다.
“우리 2년 전에 드라마 찍었을 때 기억나?”
“‘착한 형사’ 말하는 거지?”
“어. 거기 자문 오셨던 프로파일러분이랑 똑같이 말하지 않아?”
“그러고 보니······.”
두 사람의 반짝반짝한 시선이 부담스러울 법도 한데, 윤제이는 덤덤하게 대답했다.
“그냥, 이것저것 잡지식이 많습니다.”
다른 이가 말했더라면 신뢰하지 않았을 텐데, 윤제이가 가진 분위기와 산전수전 겪은 과거가 덧붙여져서 제법 그럴듯해 보였다.
“괜찮겠습니까?”
“잡을 수만 있다면 해야죠.”
범인의 기준에서 백다은은 권민재에게 어울리는 사람이 아니었으니, 아예 대놓고 붙어 다녀서 도발해보자는 얘기였다.
그 때문에 촬영장에서 이상한 말이 나올 수도 있다. 백다은이 시원하게 대답하자, 되레 권민재가 걱정했다.
“다은아. 안 그래도 돼.”
“난 괜찮은데? 너나 조심해.”
서로를 위하는 게 참 좋은 관계다. 윤제이는 두 사람의 대화를 듣다 보니 문득 팝콘이 먹고 싶었다.
“저······ 제이 씨.”
“네.”
“또 이게 왔는데요······.”
윤제이는 권민재의 매니저가 건넨 편지를 빠르게 정독했다. 조금 더 악의적인 내용이 담겨 있었는데, ‘그 여자’ 뿐만 아니라 ‘그 새끼’도 나왔다. 이건······.
“그 새끼? 이건 누구지?”
“내 얘기네.”
아마 흉터 가득한 내 몸을 봤을 거다. 우리 민재는 좋은 사람들과 어울려야 하는데, 저런 위험해 보이는 사람과 친하게 지내다니. 화가 났겠지.
‘백다은까지 안 가도 되겠는데.’
아마 조금만 도발하면 범인은 바로 행동을 개시할 것이다.
그렇게 세 배우가 은밀히 계획한 스토커를 잡기 위한 미끼 작전이 시작되었다.
‘이게 잘 되려나?’
백다은은 권민재와 자주 붙어 다니며 근처를 두리번거렸다. 윤제이도 마찬가지였다. 범인의 기준에 못 미치는 친구가 덤으로 있으니 슬슬 열받았겠지?
“이제 미끼를 던지자.”
이제 충분히 범인을 도발했다. 범인은 늘 보내던 편지도 안 보내고 짧은 메시지만 남겼다.
(알 수 없음) 너 후회할 거야.
윤제이는 그 메시지에서 범인의 초조함과 불안이 보이는 것 같았다. 내 ‘조언’을 무시하다니. 내가 얼마나 무서운 사람인지 보여줘야 내 통제를 따르겠지.
그래서 권민재를 의도적으로 외진 곳에 떨어뜨려 놓고 윤제이는 근처에서 대기했다. 그는 이미 촬영장이 제집처럼 편했다. 아마 범인보다도 자세히 알고 있을 거다.
‘저 사람인가?’
조금 기다리자, 권민재의 뒤를 따라가는 누군가가 보였다. 윤제이는 권민재에게 무슨 일이 생기기 전에 끼어들었다.
“어디 가세요? 거긴 촬영장이 아닌데.”
“아, 길을 잘못 들었네요.”
윤제이는 범인이 목에 건 출입증을 바라보았다. 내가 아는 사람이랑 다른 얼굴인데. 아마 스태프의 출입증을 슬쩍 해서 복사한 거겠지.
“김용주 씨?”
“네.”
“당신 김용주 아니잖아.”
“······.”
범인은 윤제이를 노려보았다. 도망치려고 해도 빈틈이 없었다. 그때, 뒤에서 백다은과 권민재의 목소리가 들렸다. 윤제이는 일부러 고개를 틀었다.
“제이야. 찾았어?”
“제이 씨.”
그 사이 범인이 윤제이에게 달려들었다. 하지만 이마저도 계획한 듯 가볍게 몸을 피한 윤제이는 범인의 손목을 잡고 틀어 벽에 밀어 세웠다.
쾅!
“으윽······!”
“입 닥치고 가만히 있으세요.”
윤제이는 한 손으로 범인의 두 손목을 제압했는데, 전혀 힘겨워 보이지 않았다.
범인은 몸을 버둥거리며 소리를 치려고 했지만, 윤제이의 눈빛을 보는 순간 얼어붙어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임시우를 넘어뜨리게 했을 때의 분위기보다 더 험악했다.
‘이 핸드폰은 비밀 폴더가 있었지.’
그 사이 윤제이는 범인의 주머니를 뒤져 핸드폰을 찾았고, 그의 지문을 이용해 핸드폰의 잠금을 풀었다. 몇 번 화면을 터치하니 증거가 나왔다.
“맞네.”
“지, 진짜요?”
윤제이는 핸드폰을 백다은에게 건넸다. 그동안 권민재를 스토킹하면서 찍었던 사진이 제법 많았다.
“으······ 미친 새끼.”
그걸 본 백다은이 인상을 찌푸리고 말했다. 윤제이는 범인이 떨어뜨린 가방이 신경 쓰였다. 뭐가 들었을까?
“민재야, 그 가방 좀 열어줘.”
“어? 어어······ 잠깐만.”
“뭐 들었어?”
“이건, 기름 같은데?”
“뭐?”
기름통과 도화선으로 보이는 줄이 보였다. 윤제이가 미간을 찌푸렸다.
범인은 <영구 동토>를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다. 권민재에게 직접적인 해를 입히는 것을 넘어서 <영구 동토>를 엎어버리기 위해 일을 저지르려 한 것이다.
“여기에 불 지르려 했습니까?”
“흐, 흐흐.”
윤제이의 표정이 더 무섭게 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