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sappeared Genius Child Actor Is Back RAW novel - Chapter (68)
사라진 아역 배우가 돌아왔다 외양간 고치러 왔다.(68/287)
외양간 고치러 왔다.
윤제이가 두려워하는 게 있다면 감춰놨던 과거가 자신을 삼키는 것, 그리고 불이었다. 그는 불이 싫었고, 방화하려는 사람도 싫었다.
범인의 웃음에서 긍정을 읽은 윤제이의 분위기가 더 험악해졌다.
“흐흐, 윽······.”
남자는 실컷 웃으려다가 살기 넘치는 눈동자에 숨을 삼켰다. 저 시선을 마주하고 있자니 숨이 이상하게 안 쉬어진다.
이러다가는 이 사람이 나를 죽일지도 모른다는 공포감에 휩싸였다.
윤제이가 한쪽 입매를 비틀었다. 본인은 남을 그렇게 괴롭혀놓고, 눈빛 한 번에 꼬리를 내리는 게 우스웠다.
“저······.”
윤제이를 부르려던 권민재가 멈칫했다. 표정을 확인하지 않아도 기세가 달라졌다는 걸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제이야.”
“어.”
“밖에 경찰 왔다는데.”
윤제이는 눈을 질끈 감았다 떴다. 기세를 누그러뜨린 그가 남자를 벽에서 떼어내고 경찰을 기다렸다.
“어디 있습니까?”
“여기요.”
윤제이는 남자를 넘기고 손을 가볍게 털었다. 그의 기세에서 벗어난 스토커는 몸을 버둥거리며 고함을 질렀다.
“민재야! 민재야!”
남자는 권민재를 애타게 불렀다. 하지만 그마저도 윤제이에게 가로막혔다.
“넌 여기에, 저 사람들과 어울리지 않아! 내 말을 들었어야 했어!”
남자가 편지로, 메시지로 계속 경고했는데도 그의 기준에 못 미치는 백다은과 친밀하게 굴고, 험악한 과거가 엿보이는 친구와 어울렸다.
‘아마 두려워하는 권민재를 어디선가 지켜봤을 테지.’
내 손안에 있다고 느낀 권민재가 통제에서 벗어났다는 분노가 커졌을 거다.
감정이 극단적으로 치달았으니 이성적인 판단이 흐려진 거고, 그래서 아예 <영구 동토>에 못 나오도록 촬영장 전체에 불을 지르려 한 거겠지.
“어이고, 힘세네.”
권민재의 스토킹 사건을 담당했던 형사는 제법 힘이 센 남자를 이끌고 밖을 향하려다가 윤제이를 흘끔 바라봤다.
권민재의 매니저가 말했던 배우가 저 사람인가? 건장한 성인 남성을 한 손으로 가볍게 제압한 게 인상적이었다.
“이제 진짜 끝난 거지?”
그렇게 경찰과 범인이 촬영장에서 벗어나고, 세 사람은 아무 말 없이 서 있었다. 폭풍이 지나간 것 같다. 백다은의 혼잣말로 긴장이 풀린 권민재가 깊은숨을 푸욱 내질렀다.
“고맙다.”
짧은 한마디지만, 많은 감정이 담겨 있었다. 그동안 이상한 사람한테 시달려도 어디에 말하지도 못했다. 약점이 생기면 여기저기서 물어뜯긴 적이 한두 번인가. 티는 내지 않아도 그동안 정신적으로 많이 몰려 있었다.
“그래.”
윤제이는 별거 아니라는 듯 대답했다. 그 대답에 권민재는 환하게 웃었다. 이렇게 웃어본 적이 몇 년 만이지?
그렇게 세 사람은 아무렇지 않은 듯 촬영을 마쳤다. 오늘분의 촬영을 마친 그들은 참고인 조사를 위해 주요 스태프들과 함께 담당 경찰서로 향했다.
“이게, 이게 무슨 일이야.”
경찰서에 들어선 이한림 감독은 믿을 수 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윤제이가 먼저 담당 형사의 앞에 앉았다.
“가벼운 참고인 조사니까 너무 긴장 안 하셔도 됩니다.”
“네.”
“어쩌다가 잡게 됐습니까?”
그는 백다은에게 말했던 것을 다시 말했다. 촬영 전 습관이 있고, 모든 스태프의 얼굴과 이름을 외웠다고.
“그 사람들을 다 외울 수 있다고요?”
“네.”
“꽤 많을 텐데······.”
담당 형사는 못 믿겠다는 듯 미간을 찌푸렸다. 백다은이 보였던 반응과 비슷했다. 윤제이는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어갔다.
“최근에 민재가 스토커에 시달린다는 얘기를 들었거든요.”
“아, 그렇죠.”
“수상한 사람이 우리 스태프 명찰을 달고 민재를 따라가길래 혹시 몰라서 따라가 봤다가 잡았습니다.”
사실 권민재가 무슨 일을 당하기도 전에 잡았지만, 권민재를 위협하려고 하길래 제압했다고 말을 꾸몄다. 이어서 권민재와 백다은도 똑같은 말을 했다.
목격자가 다 같은 말을 하는데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게다가 핸드폰에서 나온 권민재의 스토킹 흔적과 촬영장에 방화를 저지를 뻔한 정황증거가 많았다.
“혹시 임상우, 그 친구 아십니까?”
“그분이라면, 민재 매니저님이요?”
“네. 같은 촬영장 배우한테 이것저것 조언을 받았다고 했는데, 혹시?”
“그냥 있어 보이려고 한 소리입니다.”
윤제이는 가벼운 웃음을 섞어서 대답했지만, 담당 형사는 믿지 않았다. 글쎄, 그냥 있어 보이려고 한 소리라고 보기에는 전문가처럼 논리가 단단했는데.
“아무튼, 정말 고생하셨습니다.”
별로 고생한 것 같아 보이지는 않지만, 큰 사고로 번질 뻔한 걸 막은 건 윤제이 덕분이었다.
“그······.”
형사는 윤제이의 묘한 눈빛을 마주했다. 마치 내가 범인을 잡는 동안 당신들은 뭐 했냐고 추궁하는 듯했다.
그동안 이런 눈빛을 많이 받아서 그냥 무시할 법도 한데, 저절로 입이 열렸다.
“사실, 저희라고 아예 손 놓은 건 아니었습니다. 다만, 연예인이라는 신분에다가 본인도 밝혀지길 원하지 않아서요. 저희가 24시간 붙어 다닐 수도 없고요. 게다가 이런 범인은 고작 벌금형이라······.”
“네. 이해합니다.”
“고생했다고 말하는 게 아니라 감사를 해야 했네요. 감사합니다.”
그리고 촬영장에 있던 일은 바로 누군가의 귀로 들어갔다.
“저, 부회장님. 윤제이 씨 관련한 일은 바로 보고하라고 하셨죠?”
“······무슨 일인데?”
조유경은 비서를 통해서 자세한 상황을 들을 수 있었다.
촬영장에서 방화를 저지르려던 범인을 직접 잡은 사람이 윤제이라는 것을 듣고 놀라서 직접 온 것이다.
이어서 권민재에게 자초지종을 들은 그녀는 경찰서 복도에 홀로 앉아있는 윤제이의 앞에 서서 그를 내려다보았다.
“그 사람이 아니었으면 어쩔 뻔했니.”
“확신 있었습니다.”
“제이야.”
조유경은 무슨 말을 덧붙여야 할지 몰라서 한숨을 쉬었다.
“촬영에 방해 안 되게 조용히 처리했는데요.”
“그게 문제니?”
그깟 촬영이 대수인가. 윤제이가 얽힌 일로 촬영에 지장을 받았다고 한다면, 그녀는 그 때문에 손해 본 제작비를 곱절로 메꿔주고 윤제이에게 힘을 실어줄 수 있었다.
“난 널 걱정한 거야.”
“이모.”
조유경이 미간을 찌푸렸다. 얘는 내가 이모라 불리면 마음이 약해진다는 걸 알고 이러는 걸까?
“아시잖아요. 제 몸은 제가 잘 지킬 수 있는 거.”
“그래. 누가 널 제압하겠니.”
방송에서 이미 밝혀진 만큼 조유경도 윤제이의 특이한 이력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지금도 날카롭게 벼려져 있었다는 것도 안다.
“내가 걱정한 건 네가 또 예전과 같은 일을 당할 수도 있었다는 걸 걱정한 거야.”
펜으로도, 키보드로도 사람을 죽일 수 있다. 윤제희는 거친 2000년대 초의 언론과 사람들의 악의를 온몸으로 받았었다.
지금이라고 뭐가 다를까. 자정의 목소리가 조금 커진 것뿐이지, 아직도 혐오의 시대에서 살고 있었다.
조유경은 윤제이가 과거와 비슷한 일에 휘말려서 어릴 때의 기억을 떠올리는 게 걱정됐다.
“걱정하시는 것도 알고 있어요. 저를 아끼시는 것도요.”
윤제이는 제 옆에 앉은 조유경을 흘끔 쳐다보았다. 조유경이 자신을 진짜 조카 대하듯 아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근데 일이 잘 안 풀려도 저는 괜찮았을 겁니다. 이제 다 컸으니까요.”
“후우······ 내 심정을 알긴 알았네?”
“그냥, 도와주고 싶었거든요.”
사실 윤제이는 이렇게 오지랖 넓은 성격이 아니었다. 오는 사람 안 막고 가는 사람 안 붙잡았다.
왜일까? 권민재가 ‘윤제희 특별법’의 수혜자라서? 아니면 어릴 때 잠깐 스쳐 지나간 인연 때문에?
그는 이제 잃을 게 두려워서 시작도 안 하는 걸 그만두기로 했다. 이제 방황은 끝내고 이 일에 정착하고 있으니까.
권민재는 그가 친구라 여기는 사람이니 도와주고 싶었다.
“아무튼, 잘한 건 잘한 일이지. 잘했어. 덕분에 크게 됐을 사건을 방지했네.”
“범인이 금방 풀려날까요?”
윤제이는 권민재를 도와주기로 마음먹은 뒤로 이것저것 알아봤다.
미국과 한국은 환경이 다르니 미리 숙지해두는 차원이었는데, 한국에서 관련 처벌이 약하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내가 압력을 넣으면 좀 다르겠지.”
그의 말이 뭘 의미하는지 눈치챈 조유경은 자신만만하게 대답했다. KE 그룹의 장녀이자 차기 회장인 그녀의 말이다. 이제 권민재는 안전하겠지.
‘이, 이모라고?’
복도 끝에서 나갈 타이밍을 놓쳐버린 감독과 조감독이 서로를 바라보았다. 이서원이랑 조유경이 친척이었지? 그렇다면 윤제이도······ 재벌가?
‘어쩐지 이 대표가 질질 끌더라니. 친척을 꽂아주려고?’
이렇게 오해는 쌓여갔다.
***
경찰서에서 목격된 권민재·윤제이···“참고인 조사일 뿐”
워낙 기대작이라 촬영장에 있었던 일이 새어 나가는 건 빨랐다.
대신 권민재의 스토커가 일을 저지를 뻔했다는 건 밝혀지지 않았다. 권민재는 이런 일로 자신의 이름이 오르내리는 걸 싫어했고, 범인을 잡는 데 일조한 윤제이도 원치 않았다.
“제이 씨!”
마주치는 얼굴들이 다들 긍정적이었다. 원래도 콜 타임 잘 지키고 연기도 잘해서 칼퇴를 유발했던지라 스태프들의 호감도는 좋았다.
게다가 촬영장에 큰일이 있을 뻔한 것을 미리 방지한 사람이 윤제이라는 소문이 퍼졌었다.
“진짜, 진짜 고마워요.”
“저도 촬영이 엎어지면 곤란해서 나선 거뿐입니다.”
“그래도 그게 쉬운가? 나서준 게 대단한 거죠.”
기사가 난 것 때문에 다른 스태프에게도 알릴 수밖에 없었다. 이한림 감독은 아예 그를 띄워주기로 했다.
연기도 잘하고 성격도 좋은 데다가 그 조유경에게 이모라 할 정도면 배경도 좋다는 거잖아. 완벽한데 투자까지 끌어올 수 있는 배우? 미리 친분을 쌓아둬야지.
“근데 진짜 저희 이름 다 외웠어요?”
“네.”
윤제이는 옜다, 하는 느낌으로 지나가는 스태프들의 이름을 읊었다. 다들 오오······ 하면서 감탄했다.
“근데 촬영장이 뭔가 어수선하네요.”
“네? 아······ 촬영장 보안에 관한 얘기가 나와서요. 저분들 제이 씨랑도 친하다던데?”
저분들? 윤제이가 몸을 돌리자, 익숙한 얼굴들이 보였다.
“형님.”
“······정승우?”
정승우가 고개를 끄덕이며 인사를 대신했다. 평소처럼 헬렐레한 게 아니라 묵묵한 것을 보니 일하러 왔다는 뜻인데, 우리 촬영장에서?
“제이야.”
“형.”
촬영장을 훑던 사람 중에는 최태양과 박철우까지 있었다. 윤제이는 고개를 기웃거리며 의문을 표했다.
“뒤늦게 외양간 고치러 왔다. 여기 무슨 사건 있었다면서?”
“아······.”
범인은 이미 잡아서 이제 위험할 일은 없었음에도 조유경은 기어코 경호 업체를 고용했다. 그게 윙스 컴퍼니인 건 좀 공교로웠다.
“이야, 네가 연기하는 모습을 현장에서 보겠네.”
“일하는 중에 괜찮아요?”
“난 네 영화라 해서 그냥 꼽사리 낀 거야 오늘 휴가고.”
박철우가 자랑스러운 듯 히죽 웃었다. 마치 이 애가 우리 애라고 자랑하는 듯한 느낌이 만발했다.
“네가 또 한 건 했다며?”
“별거 아닙니다.”
“이걸 운이 좋다고 해야 할지. 사건 사고가 잘 꼬인다고 해야 할지.”
<아롱아롱>에서도 화재 잡아서 난리였지? 이번엔 잠재적 범죄자를 잡은 거로 또 한 건 하다니······ 박철우는 허허 웃었다.
“야, 연예인. 연예인이다.”
옆에서 드물게 긴장한 최태양이 윤제이의 팔을 툭툭 치면서 작게 호들갑을 떨었다. 그, 일단 나도 연예인이긴 한데. 윤제이는 웃음을 흘렸다.
“제이야.”
“왔어?”
“이분들은 누구셔?”
함께 범인을 잡기 위해 공조했던 백다은과는 이제 말을 놓게 되었다. 최태양은 백다은의 주변이 밝게 빛나는 것 같은 착각이 일었다.
“전 직장 동료들.”
“안녕하세요. 설마······ 그 일 때문에 오신 건가?”
“그런가 봐.”
백다은은 잘 부탁한다며 예의 바르게 고개를 숙이고 다른 곳으로 향했다.
“개 예쁘네. 성격도 좋은 거 같고. 너랑은 뭐 없냐?”
“한눈팔지 말고 일이나 하러 가지?”
“절친한테 이게 무슨 망발이야. 너 벌써 연예인 병 걸렸어? 나랑 거리두기 해?”
“어떻게 알았냐? 수고해라.”
최태양과 웃으며 농담을 주고받은 윤제이는 전 동료들의 어깨를 툭툭 토닥이고 분장을 하기 위해 자리를 떴다.
윙스 컴퍼니의 경호원들은 본업을 하기 위해 각자 포지션으로 흩어졌고, 일을 안 하는 박철우만 남아서 촬영장을 구경했다.
“저, 대표님. 안녕하세요.”
“제이 매니저시죠?”
“네. 저희 형이랑 엄청 친하다고 들었는데요······.”
“걔가 그런 말을 해요? 기특하네. 뭐, 거의 형제라고 볼 수 있죠.”
박철우의 옆으로 한진우가 섰다. 분장을 다 끝낸 윤제이가 감독의 디렉팅을 듣고 있었다. 박철우의 너스레에 긴장이 풀린 한진우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지금 이런 질문드리는 게 좀, 그렇긴 한데요.”
“아, 저는 직원들 따라온 거라 괜찮습니다. 말씀하시죠.”
“그······ 대표님도 군인 출신이시죠?”
“그렇습니다만······.”
박철우는 한진우의 질문에서 의아함을 느꼈다. 이거 왠지 윤제이와 관련한 일 같은데? 그의 표정이 단번에 진지해졌다.
“······무슨 일 있었습니까?”
“그, 일이 좀 있긴 했는데요.”
한진우는 이걸 말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하다가 한숨을 푹 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