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sappeared Genius Child Actor Is Back RAW novel - Chapter (85)
사라진 아역 배우가 돌아왔다 인터미션 (6)(85/287)
인터미션 (6)
정이현의 부모는 자식을 소유물로 여겼다.
“너는 그 쉬운 문제도 하나 못 푸니?”
“네 형 봐라. 학원 이런 거 안 다녀도 S대 바로 가는데 동생이란 놈이······.”
뛰어난 형과 정이현을 비교하고 찍어눌렀다.
자신들 없으면 정이현이 제대로 사람 구실을 못 할 거라 생각하고 옭아맸다.
“저······ 음악 하고 싶은데······.”
“음악? 그거 해서 먹고살 수 있어? 네가 음악적 재능이 있다고 생각하니?”
“일단 대학 가고 생각해 봐. 요즘 인공지능? 코딩? 그런 게 대세라더라.”
너는 꼭 이렇게 살아야 해. 너는 꼭 정해진 레일 위에서 벗어나지 말아야 해. 그런 강요 속에서 살다가 딱 한 번, 다른 길로 샜다.
“너 밴드는 언제 들어갔니?”
“어, 어?”
아지타토가 매체를 타고, 입소문을 타자 그의 일탈도 밝혀졌다.
정이현의 부모는 역시 그를 응원하지 않았다. 참견했다. 밴드 해서 먹고살겠냐, 이 인기도 반짝하다가 사라진다. 빨리 안정적인 직업을 찾아라.
“네 형에게서 들었는데, 네 밴드······ 구설이 좀 많더구나.”
“그건······.”
“그만둬. 남들 보기 창피하다.”
게다가 유태혁의 행동으로 밴드 자체가 욕을 먹으니 부모의 강요는 점점 더 심해졌다.
“싫어요.”
“너 이제 스물일곱이야. 이제 와 늦바람 들면 어쩌자고······!”
“그래서 옛날부터 하고 싶다고 했잖아요!”
“내가 하지 말라고 했니? 대학 졸업장 따고 하고싶은 거 하라고 했잖아!”
“그럼 이건 뭔데요!”
정이현은 부모가 사다 준 공무원 시험 문제집을 던졌다. 벽과 대화하는 기분이었다.
감독은 정이현의 가족을 ‘사회’로 빗대었다. 무작정 사회에 반항하라는 게 아니라, 사회적 시선이라 포장하고 참견하는 여러 부정적인 강요를 통틀어서 말하는 거다.
[그게······ 미안하다. 이사님 조카가 하고 싶다고 해서.] [너 지금 아이돌 데뷔하면 얼마 못 활동하고 군대 가야 하잖아.] [나이가 좀 있으니까 그냥 다른 길 찾는 게······ 작곡 한번 해볼래? 아니면 뭐 연기 쪽이나······.]강하준의 경우에는 그의 꿈을 가로막던 사람들이었다.
‘이제 와서?’
강하준의 유년기는 아이돌 연습생으로 보냈다. 이거 아니면 다른 길이 없을 거라 생각했다.
“언제까지 이러실 건데요.”
“우리도 평생 하겠니? 네가 사람 구실 할 때까지만······.”
“언제까지요!”
사실 나도 그런 식으로 꿈 접기 싫었어.
“엄마 아빠 눈에 난 항상 못난 자식이잖아요!”
정이현이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크게 소리쳤다. 그의 모습은 악에 받쳐 있었다.
‘내가 뭐랬어.’
정이현 역할에는 강하준이 딱이라고 했잖아. 신지원 감독이 모니터 속 정이현을 보고 만족스러운 듯 미소를 지었다.
그사이 세 사람도 정이현의 집에 도착했다.
“싸우는 거 같은데?”
몰래 담을 넘어 숨어들은 유태혁과 오인수 그리고 민준영이 집안에서 흘러나오는 소란에 벽에 몸을 바짝 붙었다. 그들도 정이현의 울분을 다 들었다.
“부모님이 너무하시네.”
“야, 숨어. 숨어.”
시간이 지나고, 정이현의 부모가 나왔다.
“어휴 저거 헛바람만 들어서는······.”
“이렇게 얘기했으니 딴 생각 안 하겠지. 쟤는 원래 그런 애니까.”
그들이 차를 타고 떠난다. 민준영과 오인수는 벌써 저만치 가 버린 유태혁에게 당황했다.
“뭐 해?”
뻔뻔한 유태혁의 뒤를 따라 집 창문을 기웃거리며 정이현의 방을 찾았다.
정이현은 밖에서 창문을 똑똑 두드리는 세 사람의 모습에 창문을 살짝 열었다.
“야. 정이현.”
“여긴 어떻게 알고······.”
“전에 너 데려다줬었잖아.”
오인수가 눈을 찡긋했다. 민준영은 정이현의 얼굴이 빨간 것을 발견했다.
“야, 너 눈이 왜 그래.”
“아무것도 아니야.”
“너 설마 맞았어?”
아이고, 가지가지 하네. 유태혁이 혀를 쯧 찼다.
“문 좀 더 열어 봐.”
“어?”
창문을 통해 집 안으로 들어온 유태혁은 정이현의 방을 훑어보았다.
방이 무슨, 이케아 쇼룸 같았다. 사람 사는 냄새가 안 나고 너무 틀에 박혀있었다. 정이현의 취향과는 맞지 않은 게, 전부 부모가 꾸며준 것 같았다.
‘책장은 깊은데. 책이 이만큼 나와 있네?’
이윽고 그는 책장을 덮은 책을 바닥에 휙휙 던졌다. 안에 깊숙이 숨겨진 책은 전부 음악과 악기에 관한 책이었다.
“그래, 인정.”
“뭐가?”
“지금도 솔직히 너 꼴 보기 싫다.”
“시비 걸러 온 거면 그냥 나가.”
사실 유태혁은 기분이 좋았다.
“넌 다 쉬워 보였거든.”
그는 자신처럼 노력하지 않아도 다 잘했던 정이현이 부러웠다.
자신은 기량이 점점 떨어져 가는데, 정이현은 찬란히 빛나 보였으니까. 그가 생각했던 완벽에 가까운 사람이었다.
‘내가 너 같았으면 상황이 달랐을까?’
아마 바이올린을 놓지 않았겠지. 하지만 그렇게 완벽할 줄 알았던 정이현도 이런 고충이 숨어 있었다.
“근데 지금은 인간미 있어 보이네.”
“······나라고 이러고 싶어서 이렇게 사는 줄 알아?”
“그래서.”
“난 형이 부러웠어.”
과연 유태혁만 정이현을 질투했을까? 정이현도 유태혁을 질투했다.
나는 이렇게 발버둥 쳐야 간신히 잡을 수 있던 음악을 유태혁은 쉽게 쟁취했다. 아마 과거에도 하고싶은대로 하고 살았겠지. 그 과거가, 자유가 부러웠다.
“그래서, 지금 넌 어쩌고 싶은데?”
“뭐가.”
“거기 틀어박혀서 부모가 하라는 대로 맞추라는 대로 다 맞추고 살 거냐?”
계속 누가 보통이라고 강요하는 것에 맞춰서 살 거야? 유태혁이 던지는 질문이었다.
“언제는 부모님 말 잘 들으라며.”
“이 상황에서 그 얘기를 꼭 해야겠어?”
집안이 이 지경일 줄은 몰랐지. 중얼거린 유태혁은 다시 창밖으로 나갈 준비를 했다.
“네가 선택해. 여기서 얌전히 공무원 시험이나 준비할지, 아니면 우리랑 놀러 갈지.”
놀러 가는 건 당연히 음악이다. 돈이고 뭐고를 다 떠나서, 그냥 신나게 합주하는 것 말이다.
유태혁은 그저 손만 내밀었다. 벗어나는 건 정이현 자신이 직접 해야 한다.
유태혁은 창문을 통해 다시 밖으로 나갔다. 창문이 드르륵 닫혔다.
“이현이 창문 닫았는데?”
“야, 이대로 그냥 있어도 돼?”
“기다려 봐.”
그러다 돌연 와장창! 창문이 깨졌다.
“으악 시발!”
“갑자기 뭐야?!”
기다리고 있다 날벼락을 맞았다. 세 사람이 황급히 유리 조각을 피해 벽에서 떨어져 집안을 바라보니, 야구 방망이를 든 정이현이 보였다. 그의 아버지가 그를 때렸던 야구 방망이로, 벽을 깨부쉈다.
정이현은 창문을 통해 짐가방을 던졌다. 그건 아래에 있던 세 사람이 받아주었다.
“나 연습실에서 자도 돼?”
“그러던가.”
유태혁과 정이현은 서로를 보고 질투를 느꼈지만, 동시에 서로의 구원자기도 했다.
유태혁은 정이현이 틀에 박힌 사회에서 나오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고, 정이현이 있어서 유태혁은 자신이 가진 틀어박힌 사고에서 벗어나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
***
“······이거 진짜 소품으로 써도 될까요?”
“망가져도 됩니다. 아니, 아예 부숴도 돼요. 제이 씨라면.”
“진짜로요?”
“네. 사실 진짜 부수려고 했거든요.”
촬영용 소품이 아니라 감독의 손때가 묻은 바이올린이다. 꽤 낡아 보이는 게 가격도 상당해 보였다.
“누나, 보통 주인공의 고뇌는 맨살이 보일수록 설득력 있지 않아요?”
“맞지, 맞지.”
민준영 역의 백도경과 오인수 역의 남찬희가 지나가던 스태프를 붙잡고 말했다. 목소리가 제법 큰 게 윤제이 다 들으라고 하는 말이 분명했다.
“그건 무슨 논리야?”
“형 지금도 실루엣 장난 아닌데, 상탈 가시죠? 우리 시원하게 함 보여 줍시다.”
“내가 이 꼴이라서.”
윤제이는 한 손으로 옷을 대충 들어 올렸다. 조각 같은 복근보다 눈에 띄는 게 몸에 남은 흉터였다. 하지만 백도경과 오인수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우와 식스팩!”
“형 운동 어떻게 해요?”
내가 졌다. 윤제이는 다시 옷을 내리고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크라운에서 봤을 때는 깨끗했는데?”
“그건 화장한 거고.”
“아아······ 아쉽다.”
두 사람을 보고 웃음이 터진 윤제이는 문득 시선이 느껴져서 고개를 들었다. 그에게 몰렸던 시선들이 갑자기 사라졌다.
뭐였지? 고개를 기우뚱한 윤제이가 감독의 부름을 받았다.
“몰입할 시간 필요하죠?”
“네.”
“시간 많으니까 편하게 하세요.”
윤제이는 침대에 걸터앉고 벽에 덩그러니 세워진 바이올린을 응시했다.
제작 총괄 최수진은 신지원의 옆에 스윽 섰다. 감독은 계속 윤제이를 바라보면서 작게 말했다.
“최수진, 너 아까 노골적으로 바라보더라?”
“크흠······ 입 다물어. 아무튼, 근데 말야.”
“왜?”
“제이 씨한테는 디렉 안 줘?”
어릴 때 꾸던 꿈은 꺾였지만, 강하준은 배우인 지금의 자신에게 만족할 것이다. 인간 신지원이 바이올린을 내려놓고 메가폰을 잡은 것처럼.
하지만, 그렇다고 미련이 없어진 건 아니었다. 가끔은 계속 연주했으면 기량이 오르지 않았을까? 후회도 남았다.
그의 인생의 절반 이상은 바이올린밖에 없었기에, 이 길이 아니면 안 될 거 같았기 때문이다.
강하준도 마찬가지일 거다. 정이현과의 공통점을 끌어내서 예전에 쏟아내지 못한 울분을 터뜨리게 했다.
“하준 씨는 디렉팅이 필요했고, 제이 씨는 글쎄······.”
하지만 정작 윤제이에게는 아무런 조언도 하지 않았다.
감독의 눈에 윤제이는 디렉팅이 필요 없는 완성된 배우였다. 이미 그가 생각한 유태혁을 어려움 없이 소화하고 있었으니까.
“저 사람이 해석한 ‘나’는 어떨지 궁금해서 일단 한 번 찍어보게.”
유태혁은 신지원의 사적인 감정이 들어가 있는 캐릭터다. 유태혁의 심정은 감독이 너무 잘 안다.
그렇다면 윤제이라는 배우가 해석하고 표현하는 나, 유태혁은 어떤 모습일까? 그게 궁금해졌다.
‘이 장면은 열등감에서 탈피하고 유태혁의 정신적 성장을 보여주는 장면이야.’
감독의 경우에는 자신보다 뛰어난 동생 신주원이었다. 유태혁은 정이현이었다.
감독은 이런 해석을 굳이 윤제이에게 알려주지 않았다.
“음······.”
눈을 감았다 뜬 윤제이는 바이올린을 응시했다.
시작은 작은 의문부터였다.
‘유태혁은 왜 가족의 불화를 숨기고 멀쩡한 척 행세했을까?’
오인수는 몰라도 민준영이라면 털어놓을 수 있지 않았을까? 동창이고 절친이라 부를 만한 사람인데.
‘나는 완벽해야 하니까.’
유태혁이 가진 완벽함에 대한 강박 때문이었다. 어릴 때부터 신동으로 불리던 유태혁, 그 자존심이 어디 갔을까?
게다가 유태혁의 배경은 단순하지 않았다. 천재 아들에 기대를 걸고 모든 걸 걸었다가 삶의 의지를 잃은 아버지, 그 사건에 충격받아 쓰러진 어머니.
정신이 오락가락하면서도 경제적 사정이 어려워져 아들의 꿈을 밀어주지 못했다고 죄책감을 가지는 어머니에게 나는 이거로도 괜찮다고 멀쩡한 척을 해야 했다.
“아······.”
그건 나랑도 닮았다. 걱정하는 가족들에게 파병 후유증을 숨겨야 했으니까.
윤제이는 작게 탄식했다. 그게 하나의 신호나 다름없었다.
‘지금이죠?’
‘몰입 깨지 말고 천천히······.’
스태프들이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사실 감독은 따로 촬영 사인을 주지 않고 촬영 감독에게 조용히 윤제이의 모습을 찍으라고 지시했다.
이에 스태프들은 조용히 그의 모습을 담고, 감상했다. 배우 본인도 몰입에 빠져들어 감독의 사인을 기다리는 것을 잊었다.
‘결국은 삶을 대하는 자세가 중요해.’
강하준은 감독의 디렉팅이 필요했지만, 윤제이는 필요 없을 거라고 감독은 생각했다.
하지만 윤제이는 이미 디렉팅을 받았다. 바이올린을 진짜로 부수는 장면을 염두에 뒀다는 것에서 말이다.
[잠시만요, 소품 조금만 더 옮겨주세요.] [바이올린 어디 갔어요? 지금 장면에 필요한데.]게다가 유태혁이 정이현과 자신을 비교하고 음악적으로 갈등할 때면 항상 화면 구석에 진녹색 바이올린 케이스가 잡혔었다.
유태혁에게 있어서 바이올린은 과거의 영광이자 미련이었다. 바이올린 케이스는 먼지투성이지만, 그 안에 있던 바이올린의 상태는 항상 좋았다.
이와 반대로 그가 밴드를 하면서 부숴 먹었던 베이스는 악기상을 드나들며 수리를 반복했다.
그는 여전히 클래식을 하는 게 아니라 밴드를 하고 있다. 악기 취급으로 암시하는 그의 모순된 행동이었다.
‘나는 아직도 과거에 머물러 있었구나.’
이젠 제 자리를 찾아야 할 때다. 과거의 미련을 벗어던지고 미래로 향해야 했다. 그가 잡을 건 바이올린의 활이 아니다. 베이스의 현이고, 마이크였다.
유태혁이 의미심장하게 바이올린을 응시했다.
그에 맞춰 조명도 변했다. 어두운 밤에서 새벽이 된다. 어둡기만 했던 공간이 점점 다채로운 색으로 번졌다.
유태혁의 표정도 어딘가 답답하고 불편해 보였던 것에서 점점 편하게 이완된다.
그때였다. 벽에 똑바로 세워져 있던 바이올린에 이변이 일어났다. 줄감개집이 점점 옆으로 기울더니 바닥에 툭, 떨어졌다.
‘어?’
‘뭐야.’
‘와, 하필 이 순간에?’
이건 감독도, 스태프들도 의도한 게 아니라 우연이었다. 마치 유태혁의 심정 변화에 따라 쓰러진 것으로 보였다.
“후우······.”
돌발 상황임에도 배우의 몰입은 깨지지 않았다. 오히려 편안한 숨을 내뱉었다.
침대에서 일어난 그는 바이올린 앞에 앉았다. 이것도 감독이 따로 지시한 행동은 아니었다.
그는 손가락 끝으로 바이올린의 몸체를 쓸었다. 그리고 나지막하게 내뱉었다.
“······그래.”
내면 갈등을 해소한 인간의 벅차오르는 감정이 느껴졌다.
“컷!”
“와······.”
감독이 사인이 들리고도 숨을 죽였던 스태프들 사이에서 뒤늦게 박수가 터져 나왔다.
“봤어? 저게 저렇게 쓰러지······.”
최수진은 말을 끝맺지 못했다. 그리고 신지원이 눈을 훔치는 것을 모른 척했다. 이건 감독만의 고별식이었다.
“모니터 다시 봐봐요.”
“와, 어떻게 딱 그 순간에 바이올린이 옆으로 넘어져?”
“무슨 귀신이 건들기라도 했나.”
윤제이는 촬영이 끝났음에도 그 자리에서 가만히 있었다.
그에게 있어서 바이올린은 <어린이>의 윤제희였다. 그리고 유태혁은 바이올린이라는 과거를 보낼 준비를 마쳤다.
그렇다면 나는 어떤 태도를 보여야 할까. 나는 과거를 풀어야 할 숙제로 생각했는데.
“형, 대박.”
유태혁의 시선에서 완벽한 천재였던 정이현도 가족에게서 벗어나지 못했던 나약한 인간이었다.
완벽한 사람은 없다.
“하필 그 순간에 바이올린이 기울어지다니······ 진짜 영화 잘 되려는 징조 아니에요?”
그리고 완전한 사람도 없다.
윤제이는 고생했다며 엄지를 세우고 제게 물을 건네주는 한진우를 빤히 쳐다보았다.
“저한테 뭐 할 말 있어요?”
“아니.”
지금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