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sappeared Genius Child Actor Is Back RAW novel - Chapter (88)
사라진 아역 배우가 돌아왔다 접니다.(88/287)
접니다.
이서원은 40대 초반의 젊은 대표이자 투자자다.
그가 <어린이>를 본 건 19살 때 일이었다. 그는 당시 집안에서 위치가 애매했고 반쯤 내놓은 자식이라 세상에 불만이 많았었다.
‘어떻게 저런 어린 애가 이 정도의 연기를 펼칠 수 있는 거지?’
조유경의 제안으로 보게 된 <어린이>는 방황하던 그의 마음에 충격으로 남았다.
이영창 감독의 감각적인 연출, 무엇보다 주연 배우가 저걸 찍을 땐 9살에서 10살 넘어가는 시기라 했다.
저 정도의 어린아이가 이런 복잡한 연기를 할 수 있다고?
[누나. 나도 제작사를 차려볼까?] [네가?] [좀 도와줄 수 있어?]<어린이> 덕분에 지금의 천직을 찾은 것이다.
그의 시작은 한국 영화에 기여하고 싶다가 아니었다. 빨리 업계에 자리 잡아 윤제희를 내 소속으로 데려와서 내가 보고 싶은 것과 윤제희가 하고 싶은 거 다 하게 해주려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 바람은 실천하지는 못했다. 윤제희가 갑자기 사라졌으니까.
[저 좀 구해주세요!]그 대신 부모의 속박에서 달아난 권민재를 지원했다.
그래도 미련은 계속 남았다. 그래서 많은 아역 배우를 지원하고, 인맥을 쌓으면서 업계에 발을 넓혔다.
‘아깝다 아까워.’
그래도 가끔 모임 자리에 <어린이>가 거론될 때면 괜히 후회됐다.
내가 좀 더 빨리 엔터 사업을 시작했다면 달라졌을까? 계속 생각했다. 생애 첫 덕질 대상이 허무하게 사라져서 그런 거다.
‘지금이라도 어디서 나타나면 내가 잘해주는데.’
이제 그런 미련은 희미해진 지 오래였다.
그는 딸린 식구가 많았고, 최근에는 윤제이라는 신인을 키우느라 정신없었기 때문이다.
‘사실 키울 맛은 없지.’
윤제이는 알아서 연기도 잘하고 투자자도 물어오고 작품 고르는 눈도 좋았고 게다가 운도 좋았다.
그가 계약서에 막 사인한 뒤 ‘알아서 잘 받아먹으라’라고 자신 있게 선언했지만, 윤제이는 알아서 받아먹는 정도가 아니라 알아서 물어왔다.
그 때문에 제대로 지원해주지 못한 것 같아서 이서원도 뭘 더 해주려고 안달이 난 상태였다.
그는 회사 직원들과 함께 <인터미션>의 마지막 공연 장면을 구경하러 갔었다.
“와 노래도 잘하네.”
“인간 자체가 개사기 아니에요?”
“저 연주도 직접 했대요.”
“에이, 설마······.”
“진짜래요. 우리 홍보팀에서 영상 만들 때 연습 영상도 받았잖아요.”
회사 직원들의 수군거림을 들으면서 무대 위에서 날뛰는 윤제이를 바라보았다.
‘대단한 사람이야.’
어떻게 저런 사람이 내 회사 소속이지?
‘그리고 뭘 어떻게 해야 더 밀어주지?’
이제 그의 맘속에 윤제희는 잠시 묻어두고, 윤제이를 어떻게 키울지에 관한 생각으로 가득 찼다.
***
윤제이는 처음이야 벽을 세우는 느낌도 있고, 제 얘기를 밝히지 않던 신비로운 사람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래도 많이 부드러워졌다.
사적인 얘기는 전혀 안 하던 그가 자신에 관한 얘기를 종종 꺼내고, 자주 식사하며 작품에 관한 얘기를 나눴었다.
‘대체 이렇게 심각하게 말할 게 뭐가 있지?’
하지만 특유의 신비로운 분위기는 없어지지 않았다.
곽도현은 제작사 미팅을 위해 윤제이의 몸에 남은 흉터도 미리 알고 있었다. 전직 군인이라 쳐도 저런 흉터가 남을 일이 뭐가 있겠나.
게다가 소방관, 바텐더에 듣기로는 목수에 정비사도 했다는데, 이렇게 파도 파도 계속 나오는 과거사라든지, 수상할 정도로 재주가 많은 점이 말이다.
‘분명 엄청 중요한 일일 건데······.’
그래서 이 사람이 이렇게 진지하게 말할 일이 대체 뭔지 저절로 긴장됐다.
이서원과 곽도현 그리고 한진우가 침을 꿀꺽 삼켰다.
“그래도 세 분은 이제 알고 계셔야 할 것 같아서요.”
<인터미션> 속 유태혁은 바이올린이라는 과거를 팔고 아지타토를 위한 새 차를 마련해서 미련을 미래로 바꿨다.
윤제이는 아직 마음속에 내재한 불안함과 싸우고 있었다.
하지만 유태혁을 연기하면서 그의 심경 변화를 간접적으로 체화했다. 그래서 그도 한 발짝 앞으로 나서 행동해보기로 했다.
‘일단 이 세 사람부터.’
이들도 그의 삶에 중요한 사람이 되었다. 일 적으로도 엮여 있는데 사적으로도 친한 사이다.
나중에 사실을 알게 되고 배신감으로 일그러지는 표정은 보기 싫었다.
“그럴 리는 없겠지만, 무슨 사고가 있는 거면 빨리 말해요. 우리가 최대한 수습을······.”
“대표님, 설마 제이 씨가 사고를 쳤겠어요?”
“물론 사고를 칠 리 없겠지. 당할 수는 있잖냐. 요즘 연예인 상대로 사기가 얼마나 판치는데.”
“아하. 제이 씨, 이상한 서류에 사인은 안 했죠? 했으면 법무팀 부르게······.”
윤제이가 잠시 침묵하는 사이 이서원과 곽도현은 이미 윤제이가 사고를 쳤다고는 생각도 안 하고 사기를 당했다고 염두하고 일을 어떻게 해결할지 논의했다.
한진우는 혼자 엄청나게 심각해져서 입을 꾹 다물었다. 윤제이가 그를 적으로 판단하고 위협했던 사건, 그 이후로 윤제이가 자신의 눈치를 계속 살폈었다.
“형 설마······ 그거 때문이에요? 전 정말 괜찮은데······.”
“그거? 그게 뭔데?”
“아니면, 설마 죽을 병 걸렸어요? 전에 유언장 수정한 것도 그거 때문에?!”
“대체 그게 뭔데? 유언장? 그거도 썼었어?! 야, 진우야. 너는 그 중요한 사실을 왜 지금······.”
결심을 해도 제 입으로 밝히는 건 쉽지 않았다.
[네가 그 영화에 나왔다는 애야?] [응, 맞아.]어릴 때 깊게 박힌 트라우마는 오래갔다.
당시 그가 <어린이>에 나왔던 주연 배우임을 밝히면 좋은 일은 겪은 적이 별로 없었다.
이는 그가 테러와의 전쟁을 겪고, 불과 싸우고 생사를 겪어도 남아있었다.
‘말보다는 일단 보여주는 게 낫겠지.’
윤제이는 가방에서 꺼낸 벨벳 상자를 책상에 쿵 내려놓았다. 그리고 상자를 열어 그들에게 보여주었다.
“이건······.”
황금 잎사귀가 눈에 띄는 트로피. 윤제희가 최연소 수상으로 모습을 알렸고, 그 이후에도 이영창 감독이 여러 번 들어서 대중적으로도 알려진 그 트로피에는 FESTIVAL DE CANNES 2001이라고 적혀 있었다.
“······어?”
저 연도에 저 트로피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대한민국에서 이영창과 윤제희가 유일하다.
“일부러 속인 건 아닙니다.”
“어어······?”
“이 트로피가 왜 형한테······.”
세 사람이 얼어붙어서 멍하니 트로피를 바라보았다. 특히 이서원은 미동도 없었다.
“아무래도 어릴 때 안 좋은 기억이 각인되어 버린 탓인지 쉽게 밝히기가 어렵더라고요.”
“어, 그러니까······.”
“세 분은 이제 아셔야 할 것 같아서요.”
“그러니까 제이 씨가······ 저기, 저······.”
곽도현의 떨리는 손끝이 향한 곳은 이서원이 걸어 놓은 포스터로 향했다.
이서원이 액자에 걸어놓은 <어린이> 재개봉 판 포스터였다. 여러 감정이 느껴지는 윤제희의 얼굴이 큼지막하게 있었다.
“윤제희가 접니다.”
“어억!”
“진짜요?!”
윤제희가 누군가. 두유노클럽 1세대, 이영창 감독과 함께 2000년대 한국 영화계를 부흥하게 한 일 등 공신이 아닌가.
윤제이는 사실 식사 자리에서 과거 이름이 나올 때마다 이해를 못 했다. 내가 대단한 일을 한 것도 아닌데 왜 자꾸 <어린이>와 과거 이름을 들먹이는지 말이다.
하지만 업계에 오래 있었던 이서원과 곽도현은 <어린이>의 파급력을 직접 체감한 업계 사람이다.
이영창도 50대에 상대적으로 젊은 감독인데 벌써 원로 취급을 받는 게 이유가 있다.
[혹시, 영화 ‘어린이’ 아세요?] [알죠. 제가 그거 때문에 이 판에 뛰어들었는데.] [와, 저도 연영과 시험 그거로 봤는데.]<어린이> 이후 업계 투자가 폭발적으로 늘었고, 자본이 쏟아지니 양질의 작품도 쏟아져나왔다.
게다가 <어린이>를 보고 영화계에 뛰어든 사람들은 이제 각 분야에서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업계가 좁아서 일면식은 있어도 데면데면한 사람을 만나게 되면 대화를 끌어내기 위한 수단으로 <어린이>가 먼저 거론된다. 20년이 넘게 지난 지금도 말이다.
[솔직히 윤제희 걔 보자마자 이건 물건이다 싶더라니까.] [진짜 잘 크면 대배우 됐겠죠.] [아쉽긴 해. 우리도 월드 스타 키워보나 했는데······.] [저도 ‘윤제희 특별법’ 수혜자잖아요.]윗세대가 저렇게 떠드니 아랫세대도 대화에 참여하기 위해 <어린이>를 봤고, 윤제희의 연기가 얼마나 대단한지, 그리고 그가 안타깝게 사라진 썰을 너무 자주 들어서 달달 외울 지경이다.
그 때문인지 <어린이>와 윤제희 그리고 이영창 모르면 업계인 아니라는 이상한 공식이 생겨서 지금까지도 전파되고 있었다.
게다가 최근에는 재개봉도 있었다. 추억 팔이에 다시 화제로 거론되는 거다.
그런데 그 사람이 우리 배우라고? 어쩐지 연기가 바로 되는 게······ 아니, 일단 이걸 생각할 때가 아니다.
윤제희는 이서원이 광적으로 좋아하는 영화 속 천재적인 연기를 펼쳤던 아역이다.
“대표님······?”
곽도현과 한진우가 동시에 고개를 돌려 이서원을 바라보았다. 이서원의 안색이 눈에 띄게 창백해졌다.
“······허.”
오늘 4월 1일인가? 아닌데······ 무엇보다 이 사람이 거짓말을 할 리는 없고. 내가 꿈을 꾸는 건가.
눈을 비벼봤지만 달라지는 건 없었다. 그는 영롱한 트로피를 만지려다가 손을 다시 거뒀다. 내가 감히 이런 트로피를······.
“어떻게, 어떻게······.”
“대표님, 여기 물! 물 좀 드시고!”
한진우가 재빠르게 물을 건넸다. 하지만 이서원은 그걸 마시지 않았다. 사레들릴 것 같아서다.
“그럼 윤수헌 이사랑은 어떻게 되는 거예요? 친부잖아요?”
“이 상 수상 이후로 이혼하셨거든요. 저는 어머니 연고가 있는 미국으로 갔고요.”
“아니 윤 이사님은 그런 것도 안 알려주고······.”
“그 영화 이후 안 좋게 갈라섰으니까요. 쌍둥이도, 그 애들 어머니도 몰랐다가 장례식 직전에 알게 된 거고요.”
“아니······ 세상에.”
이서원이 제 머리를 쥐었다가 쓸어넘겼다가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했다. 안절부절못해서 행동이 계속 튀는 것이다.
그 사이 한진우는 검색창에 윤제희의 이름을 쳤다. 윤제희가 대단한 건 알아도 자세한 내막은 모르기 때문이다.
“그, 형. 그러면 여기 뜬 추측이 사실이에요?”
한진우가 보여준 화면에는 윤제희가 갑자기 사라진 이유를 추측하는 글이 장황하게 늘여져 있었다.
주변에서 천재라고 치켜세우는 부담감으로, 왕따를 당해서, 가정의 불화 등이 있었다.
“대부분은 사실이야.”
“힘들었겠네요.”
곽도현이 대답했다. 그도 업계에 있으면서 이런 추측을 하도 많이 들은 적이 있었다.
숙연해진 분위기 속에서 이서원이 퍼뜩 고개를 들었다.
“그럼, 이 감독님이나 조 부회장도 알고 있어요?”
“네. 재개봉 때문에······.”
“아아······.”
그럼 윤제이가 한국 와서 바로 알았다는 거잖아. 이서원이 탄식했다.
한 사람은 지금도 주기적으로 만나는 친한 감독이고, 한 사람은 무려 친척이다.
내가 <어린이>를 얼마나 좋아하는데 이걸 1년 동안이나 숨길 생각을 해?! 이서원은 두 손바닥으로 얼굴을 묻었다. 윤제이보다 두 사람에 관한 배신감이 더 컸다.
“다 제가 비밀로 하자고 해서 그런 겁니다. 그분들 잘못은 아니고요.”
“하······ 아니 그래도 그렇지······.”
이서원이 한숨을 푹푹 쉬었다. 쉽게 헤어나오지 못하는 상태라는 걸 눈치챈 한진우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 형. 이제 공항 가야 하는 거 아니에요?”
“맞아요. 일단 가고 나중에 돌아와서 얘기하면 되지.”
상대적으로 멀쩡한 한진우와 곽도현이 윤제이를 먼저 보냈다.
그리고 신입을 데리고 점심을 먹고 온 이다현은 막 회의실에서 나오는 윤제이를 발견했다.
“어? 제이 씨. 아직 안 갔어요?”
“이제 가려고요.”
윤제이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아, 후련하다.’
진작에 밝힐 걸 그랬나. 이서원의 마음에 폭탄을 투척한 것도 모르고 윤제이는 상쾌해졌다.
“······맞다. 괜히 뭐 사 오려 하시지 마세요. 전에 주신 것도 아직 많이 남았어요. 조심히 다녀오시고.”
“네, 다녀오겠습니다.”
이다현은 그 표정에 잠시 버퍼링이 걸렸다가 금세 해방됐다. 이제 저런 얼굴에 면역이 다 됐다고 생각했는데, 난 아직 내공이 부족하구나.
“근데 대표님은······.”
말이 끝나기 무섭게 이서원과 곽도현 그리고 한진우가 비척비척 회의실을 나왔다.
이서원의 손에는 윤제이가 두고 간 벨벳 상자가 들려 있었는데, 무슨 신줏단지 모시듯 소중하게 안고 있었다.
출국하는 마당에 저걸 가지고 갈 순 없어서 일단 회사에서 보관하라고 한 거다.
‘설마 제이 씨가 사고를 쳤을 리는 없겠고.’
그럴 리 없는 사람인데. 이다현도 윤제이가 무슨 사고를 쳤으리라고는 하나도 생각하지 않았다.
성격도 성격인데, 일단 얼굴이 신뢰를 만들지 않나. 적어도 이다현의 생각에는 그랬다.
“안에서 무슨 일 있었어요? 진우야, 뭔데?”
“······그런 게 있어요.”
“잉?”
그러고 보니 한진우랑 곽도현의 표정도 어딘가 이상했다. 무언가 충격적인 사실을 들은 느낌이랄까.
그래서 더욱 궁금해졌는데, 곽도현이 그녀의 업무랑 ‘아직은’ 관련 없다고 딱 잘라 말해서 뭐라 추궁하기도 애매했다.
“근데 제이 씨 네가 안 데려다줘도 돼?”
“네. 지인 차 타고 간다네요.”
“그래?”
공식 행사에 참석하는 것도 아니고, 그냥 본가 간다는데 별일이 생기겠어?
‘아, 여친 논란도 그때 생겼지.’
다시 생각해도 기가 차다. 물론 인종이 다르니 오해의 소지가 있을 수는 있어도······.
‘그러고 보니 그렇게 인종이 다른 걸 보면 입양 가정인가?’
이건 회의실에 들어갔던 세 사람도 몰랐다. 비행 일정 때문에 복잡한 가정사는 아직 밝히지도 않았다.
“근데 제이 씨가 가서 뭐 한다고는 얘기하지 않았어?”
“뭐, 가족들 만나러 가는 거겠죠. 아.”
뒤늦게 뭔가 생각난 한진우가 말을 이었다.
“지나가는 말로 장례식에 참석해야 한다고 했었어요.”
“장례식?”
“네.”
그래도 별일 없겠지. 이다현은 아직도 정신 차리지 못하는 이서원을 흘끔 바라보았다.
대체 안에서 무슨 얘기를 했길래 대표님이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