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sappeared Genius Child Actor Is Back RAW novel - Chapter (93)
사라진 아역 배우가 돌아왔다 아직 보여준 게 없는데.(93/287)
아직 보여준 게 없는데.
윤제이는 고성현이 왜 저러는지는 사실 궁금하지 않았다.
고마운 선배들을 통해 참석한 자리에서 몇몇 무례한 사람이 있긴 했다.
하지만 워낙 판이 좁아서 다들 겉으로는 문제를 안 일으키려고 했다. 거슬리는 게 있다고 하면 교묘하게 돌려 까는 화법을 썼다.
‘고성현이 괜찮냐고 한 말에 감정이 드러났었지.’
그런데 그 노련한 권민재가 저렇게 대놓고 말할 줄은 몰랐다. 윤제이는 벽에 기댄 권민재를 흘끔 바라보았다.
“너 ‘인터미션’ 개봉 얼마 안 남았지?”
“어. 아무래도 무대 공개한 것 때문에 편집을 빨리한다고 하더라고.”
듣기로는 신지원 감독이 편집실에서 살다시피 하면서 자신을 갈아 넣는다고 했다.
감독 본인도 빨리 공개하고 싶어서 안달 났고, 배급사도 일정을 빨리 잡아뒀다. 게다가 복잡한 CG 작업도 마지막 군중 장면 외에는 없다.
단기간에 후반 작업을 했다고 기록을 세울 거라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고 한다.
“저분이 이번에 엎어진 그 영화 조연으로 나왔었거든.”
“아, 그랬어?”
듣기로는 최근에 터진 검사 게이트와 겹치는 게 많아서 개봉이 미뤄졌다고 한다.
영화는 촬영과 편집하고 개봉하기까지 시간이 꽤 걸려서 개봉 시기에 사회적 이슈라던지 세계적으로 전염병이 퍼진다든지 안 좋은 쪽으로 겹치면 골치 아프다.
“그 일로 좀 맺힌 게 많은가 봐. 너 오기 전부터 벼르고 있더라.”
그 자리에 <인터미션>이 들어간 건 좋은데, 그쪽 스태프나 배우로서는 날벼락이나 다름없었다.
“게다가 조 부회장님 말로는 네 영화 잘 빠질 거 같다고 들었거든. 그게 소문이 났나 봐.”
조유경은 윤제이의 영화 주연 복귀작을 업계 최고 수준으로 밀어주고 있었다.
그 때문에 제작사 측에서는 기쁘지만, ‘이렇게까지 잘해준다고?’ 어리둥절한 반응이 더 컸다.
[이번에 ‘인터미션’ 홍보 배급 일정 미리 도는 거 봤어요?] [벌써 스크린 확보 장난 아니라던데?] [광고도 엄청 성대하게 한다던데요.] [미쳤네. 원래 여기 자리에 ‘칼잡이’ 들어가는 거 아니었어? 그쪽 사람들 배 아파서 어쩌냐.] [앞으로 민감한 정치 이슈 들어가는 시놉은 피해야 할 것 같아요.]그러니 <인터미션>이 아니었더라면 자기 영화가 그런 걸 다 받을 수 있을 텐데, 라고 생각하는 거다. 사실은 윤제이 때문에 그런 일을 벌이는 건데, 알 방법이 없지 않은가.
“알 만하네.”
“그리고 갓 데뷔한 신인이 영화 첫 주연을 맡은 데다가 만약 흥행한다? 근데 드라마 출신이다? 아마 저런 반응이 더 심해질 거야. 게다가 저분은 데뷔부터 지금까지 영화만 하셨거든.”
음, 드라마 출신이 무슨 상관이지? 윤제이는 아직 이해하지 못했다.
“아, 너 모르겠구나.”
권민재는 가끔 윤제이가 자신처럼 오래 배우 활동을 한 줄 착각했다. 무엇이든 완벽한 친구에게 조언할 거리가 생기자 권민재는 약간 신났다.
“요즘은 덜하지만, 옛날에는 좀 심했어. 드라마랑 영화랑 갈라치기 하면서 출신 가르고 급 나누고.”
“그래? 별게 다 있네.”
“데뷔부터 영화로 시작한 사람들은 자부심이 엄청나지. 흥행작이 있든 없든.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그런 거 있었잖아. 연기 시상식에 축하공연 왔는데 박수도 안 치는 거. 그런 거랑 비슷해.”
예능인은 쳐다도 안 본다든가, 드라마 판에서 온 배우는 대놓고 배척한다든가. 권민재가 손가락을 접어가며 열거했다.
‘도준이도 연기에 관심 생긴 거 같던데.’
실제로 오퍼도 많이 들어온다 들었다. 윤제이는 가만히 듣고 있다가 말했다.
“아이돌은? 요새 많이 병행하지 않나?”
“그쪽도 처음 진출했을 때는 시끄럽긴 했지. 근데 요즘은 의외로 괜찮아.”
의외로 아이돌에게는 관대하게 보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판 자체가 아예 다르다고 생각하고, 코어 투자자가 붙기 때문에 호의적이라 한다.
“약간, 귀여운 강아지를 보는 정도?”
“그건 그거대로 기분이 이상하네.”
권민재는 윤제이의 어깨를 가볍게 툭 쳤다. 이런 질문을 왜 하나 싶더니 동생들 때문이구나.
“네 동생 정도면 배척은 안 당할 거야. 아무튼, 내가 처음 영화 주연 맡을 때 공동 주연이었던 문혜린 누나가 들은 얘기가 뭔지 알아?”
“뭔데?”
“드라마 찍다 와서 영화 현장 잘 모르시구나.”
윤제이는 미간을 찌푸렸다. 문혜린은 데뷔를 드라마로 시작했다. 그리고 지금은 영화계에서 알아주는 배우다.
“아무튼, 그런 인식이 아예 사라진 건 아니거든. 당장 ‘어린이’만 해도 이쪽 판의 바이블 격이잖아. 잊을 만하면 떠오르고.”
“아아······.”
당사자 앞에서 그런 얘기를 하니 좀 민망하다.
“아마 저기 사람 중에서도 네 영화 개봉되면 태도 바뀔 사람 많을걸? 미리 견제하는 거지.”
“뭘, 별걸 다.”
윤제이는 코웃음을 쳤다. 그런 거로 태도가 바뀔 사람이면 이쪽에서 사양이다.
“고성현, 저 사람은 너한테 인기도 얼굴이나 피지컬로도 밀리니까 데뷔 연차로 걸고넘어지려는 거였고.”
“아까 미리 끊어줘서 고맙다.”
“뭘. 너한테 갚아야 할 것도 있잖아.”
“안 갚아도 돼. 어려운 것도 아니었고.”
“하긴, 네 출신 생각하면 그런 스토커쯤은 껌이었겠다.”
드라마 판에서 올라와 무시하던 귀여운 후배가 만약 예술성이 있고 상업성까지 갖춘 영화에서 연기를 잘한다? 그 순간 자기 밥그릇 뺏을 경쟁자로 보이는 거다.
그릇의 크기에 따라서 똥줄 타는 사람이 있을 거고, 인정하고 건전한 라이벌 의식을 불태우거나 친분을 과시하려고 붙는 사람도 있을 거다.
‘아직 보여준 게 없는데.’
언젠가 견제가 들어올 거는 미리 짐작하고 있었다.
그런데 도무지 이해가 안 되는 게, 그는 아직 영화로 보여준 게 없었다. <영구 동토>와 <인터미션>이 개봉하지 않았다.
대체 뭘 보고 이러는지······ 그의 표정을 읽은 권민재가 웃음을 흘렸다.
“너 연기 잘하잖아. 그것도 엄청. 데뷔부터 신드롬인데, 영화에도 홈런 치는 거 아니냐는 얘기가 벌써 돌아.”
이들이 견제하게 된 계기는 <악의 동산>이 공개되고부터다.
문창민은 유명 극단 출신으로 연기력과 흥행을 잡은 배우였다. 그 문창민에게 밀리지 않는 연기. 오히려 압도하는 모습도 보였었다.
게다가 그 문창민이 사석에서 윤제이를 싸고도니 감독들이 관심을 보였고, 자기의 파이를 뺏겼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거 외에도 이유는 많았다. 벌써 거물급 투자자를 확보한 거라든지.
“내가 너무 부담 줬나?”
“딱히? 괜찮아.”
윤제이의 표정은 평소처럼 평온해 보였다. 권민재는 헛웃음을 내뱉었다.
“아무튼, 어이가 없지. 지가 뭔데 내 밥그릇을 걱정해. 자기 밥그릇이나 챙기지.”
그래서 고성현이 윤제이에게는 데뷔 연차로 찍어 누르려 하고, 권민재까지 살살 긁은 거다. 염려하는 척하면서.
“그럼 아까 저 사람이 한 말은······.”
윤제이가 권민재의 반응을 살피려 모른 척 말끝을 흐렸다. 권민재는 양손을 내보이며 마치 항복하는 듯한 행동을 취했다.
“인정. 솔직히 나도 너 신경 많이 쓰인다. 너랑 나는 특히 연령대도 똑같잖아. 얼굴도 잘생긴 쪽에 묶이고. 분명 너랑 나랑 들어오는 배역이 겹칠 거라고.”
“그러기엔 내가 좀 더 생긴 거 같은데.”
“뭐라고?”
“키도 내가 더 크고.”
“너 일루 와.”
윤제이는 권민재와 자신의 키를 비교하면서 약 올렸다. 권민재가 도망치는 그를 잡으려다가 멈칫했다.
‘근데 얘가 이런 농담을 하는 건 처음이지 않나?’
처음 봤을 때보다 벽이 허물어진 느낌이다. 윤제이는 동갑에 입도 무겁고 개인적으로 도움을 주기까지 했으니······ 그걸 생각하자 권민재는 기분 좋게 웃었다.
윤제이도 미소를 지었다. 많이 신경 쓰일 법도 한데 깔끔하게 인정하고 한결같은 권민재의 태도 때문이다.
“내가 괜한 선입견을 심어주는 것일지도 모르지만, 그런 사람도 있다고.”
“어느 집단이나 이런 건 똑같네.”
“전에도 당해봤나 봐? 표정이 안 좋네.”
“군에서.”
거기는 이미지 관리할 필요 없는 바닥이니 더 심했다. 오죽하면 상관한테 몸을 대 줬냐는 얘기까지 나오겠나. 그 생각이 들자, 인상이 와락 찌푸려졌다.
“대체 어떤 일을 당했길래······ 아무튼, 괜찮게 알고 지내던 사람이 나중에 돌아서면 실망하지 말고 아마 이런 이유일 거라 생각하고 있어.”
“조언 고맙습니다. 선배.”
“오냐.”
윤제이가 고개를 꾸벅 숙이고, 권민재는 거만하게 받았다.
사실 선배로 따지면 윤제희가 더 위이긴 하다. 그래서 마음이 걸린다. 얘한테도 언젠가 미리 사실을 밝혀야 할 텐데······.
“무슨 얘기를 그렇게 해?”
“왔어?”
“어우, 야. 너네 왜 빠졌어? 너네 없으니까 나한테 짜증 나게 굴잖아.”
“우리가 프렌드 쉴드냐?”
“어.”
백다은이 질린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윤제이에게 조언을 가장한 뒷담화를 했다.
“너 저기 들어가면 고성현, 주동혁, 김지호. 이 사람들이랑은 친하게 지내지 마. 여자 엄청 밝혀.”
“그래. 나도 별로였어.”
“역시 사람 볼 좀 아네.”
세 사람은 한참을 시간을 보내다가 다시 들어가고를 반복했다. 윤제이는 두 사람이 귀가할 때 같이 빠져나갔다.
적막하고도 쓸데없이 넓은 집에 들어서자 한기까지 느껴졌다.
‘머리가 또 아프네.’
어디서 뱀이 쉭쉭 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
그를 둘러싼 화제가 잠잠해질 때까지 작품활동을 안 한다 뿐이지 예정된 스케쥴은 취소할 수 없었다.
윤제이는 라이징 스타답게 여러 광고를 찍었고, 미리 계약된 팬 사인회 일정도 있었다.
“안녕하세요.”
“아, 안녕하세요. 오는 길은 괜찮았나요?”
“네.”
대형 쇼핑몰에서 진행하는 팬 사인회, 행사 진행 업체 직원은 윤제이를 흘끔흘끔 쳐다보았다.
‘진짜 개 잘생겼다.’
실내라 밝은 계열의 셔츠에 면바지를 입었는데, 그래서 몸의 실루엣이 잘 드러났다.
조심스럽게 쳐다보던 시선이 노골적으로 변하자 윤제이는 그걸 애써 무시했다. 이 사람도 군 시절 출신에 관한 진실이 궁금한 사람인가 싶었다.
“······설마 이거 다 저를 보러 온 분들인가요?”
“네.”
“안전 문제가 괜찮나?”
벌써 군중이 바글바글한 느낌에 윤제이는 습관적으로 사방을 둘러보았다. 직원이 웃음을 흘렸다.
“그거 직업병인가요?”
“아, 죄송합니다.”
마치 업체의 행사 진행을 의심하는 듯한 행동이지 않았는가. 하지만 상대는 기분이 나빠 보이지 않았다.
“괜찮습니다. 저희도 신경 쓰고 있지만, 모델 측에서 더 신경 써 주시면 좋죠.”
“이따가 좀 과열될 거 같으면 자중시켜줄 수 있나요? 저희 얘기는 잘 안 들으시니까······.”
그거야 어렵지 않지. 윤제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피어라’의 광고모델, 윤제이 씨가 드디어 입장하십니다!”
“꺄아아악!”
“와.”
단상에 올라선 윤제이는 공간을 꽉 채운 사람들의 모습에 짧게 감탄했다. 저 위에 4층 난간까지 꽉 채워져 있었다. 사람들을 살피는 그의 눈이 반짝반짝했다.
그렇게 팬 사인회가 시작됐다.
“오빠, 이거 써주실 수 있어요?”
“당연히 되지.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팬을 상대하는 건 쉬웠다. 일일 경호원으로 윤도준과 윤도화의 팬 사인회 현장에 가 봐서 본 게 있으니. 그는 팬이 내민 화관을 머리에 쓰고 포즈를 취했다.
“저, 이것도 써 주시면 안 돼요?”
“······이게, 내가 어울릴까요?”
하나를 써주니 다른 요구도 온다. 어린 애들이 쓸 것 같은 분홍색 공주 왕관과 귀걸이 그리고 요술봉이었다.
건장한 성인 남성이 이걸 끼는 게 과연 수요가 있을까 잠시 고민했지만, 끼는 건 오래 걸리지 않았다.
“어때요?”
“잘 어울려요!”
꺄르륵 웃으며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팬들 눈에는 괜찮나 보다. 윤제이는 사진을 찍는 사람들에게 포즈를 취해주었다. 작정하고 요술봉까지 흔들어주니 사진이 촤르륵 찍히는 소리가 들렸다.
그렇게 많은 팬과 가까이 대면하고, 그들의 애정을 받았다.
(제가 귀가 잘 들리지 않아서 필담으로 가능할까요?)
대형 기업의 화장품 광고도 많이 들어왔는데 굳이 중소 업체를 선정한 이유가 있었다.
취약계층을 직원으로 많이 채용하고, 기부나 사회적 공헌을 많이 한 업체였다. 이런 이벤트에서도 취약계층을 위한 자리를 미리 빼놓기까지 했다.
<어린이>의 박동화 생각도 나고, 이미지 챙기기에도 좋을 것 같았다.
‘혹시 수어는 가능하신가요?’
윤제이의 능숙한 수어에 상대가 놀라서 수어로 대답했다. 끝날 때쯤에는 상대의 눈이 촉촉해진 게 보였다. 게다가 휠체어를 타고 온 사람도 있었다.
나를 보기 위해 불편함을 감수하고 여기까지······ 괜히 기분이 좋았다.
그렇게 예정된 행사가 끝나고 차로 돌아가는 길에 기자 몇몇이 따라붙었다.
“제이 씨! 잠시만요! 미국에서 찍힌 사진으로 드릴 말씀이······.”
“드릴 말 없습니다.”
한진우가 대신 대답하고는 윤제이를 차에 태웠다. 운전석에 앉아 벨트를 매던 한진우가 혼잣말했다.
“와, 아직도 저러네.”
그러게 말이야. 윤제이는 한숨을 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