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10)
신마의선-10화(10/500)
신마의선 (10)
며칠 뒤.
단악선은 다시 마을을 찾았다.
여행을 떠나는 범계위를 위한 약재들을 구하기 위해서였다.
“어?”
약재상 주인, 임 씨가 건넨 상자를 열어 본 단악선이 의아함을 금치 못했다.
“용명초를 구하셨어요? 매물 자체가 없다고 하시더니…….”
“운이 좋았다.”
“세상 모든 운이 아저씨만 찾아오나 봐요.”
단악선이 물끄러미 임 씨를 바라봤다.
임 씨는 애써 그 시선을 피했다.
“아저씨.”
“응?”
“혹시 진성의가에서 물건 구해 오시는 건 아니죠?”
뜨끔한 임 씨가 말을 더듬었다.
“그, 그게…….”
그가 변명하려는 순간 단악선이 먼저 입을 열었다.
“진성 의원과 거래하는 건 상관없지만, 제가 부탁한 약재는 거기서 받지 말아 주세요. 다음번에도 이러시면 앞으로 아저씨와 어떤 거래도 하지 않을 거예요.”
“그, 그래. 알았다. 그리하도록 하마.”
확답을 받고 나서야 단악선이 약재상을 나왔다. 입구 밖에는 언제나처럼 범계위가 기다리고 있었다.
“원하던 물건은 구했느냐?”
범계위의 물음에 단악선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이제 목상들만 전해 주면 볼일은 끝이에요.”
범계위가 목공예 상점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단악선이 들어서자 임씨 성을 쓰는 주인이 반갑게 맞이했다.
“어서 오시게.”
“안녕하세요, 아저씨. 목상은 잘 팔리나요?”
“없어서 못 팔 정도지.”
초악량이 조각한 목상의 인기는 굉장했다.
살기가 느껴지는 목상은 액막이로 그만이었던 것이다. 원래 민간에서는 액막이로 신도와 울루 이름을 대문에 써서 붙이곤 했다.
그런데 그 벽사문(辟邪文) 가격이 만만치 않았다.
괴황지에 적는 붉은 글씨의 재료인 경면주사(鏡面朱砂)가 비쌌기 때문이다.
그래서 서민들에게 초악량의 목상은 훌륭한 대체재로 각광받고 있었다.
“다행이네요. 이번에도 오십 개예요.”
“고맙구나. 그런데 앞으로도 계속 나와 거래할 생각이냐?”
“네. 그럴 거예요.”
“그렇다면 나도 앞으로 값을 더 쳐주마. 이문은 적지만 그만큼 많이 팔 수 있으니까.”
“고맙습니다.”
그렇게 임 씨와 인사를 나누는 것으로 마을에서의 일을 마무리 지었다.
신마곡으로 돌아온 직후 단악선은 곧장 전각으로 향했다. 그리고 잠시 후 침구를 챙겨 초악량의 모옥으로 향했다.
초악량이 부드러운 눈빛으로 단악선을 반겼다.
“벌써 시간이 이리된 것인가?”
약간은 미안한 얼굴로 단악선이 대답했다.
“오늘 치료는 조금 힘드실 수 있어요.”
초악량은 불길함을 느꼈다.
아니나 다를까.
“오늘은 엄마 방식이거든요.”
“……!”
초악량의 눈빛이 흔들렸다. 그도 그럴 것이, 신의의 침술과 달리 마의의 침술은 지랄맞게 고통스러웠기 때문이다.
“설마 무서운 건 아니시죠?”
초악량이 움찔했다.
“그럴 리가 없지 않느냐. 내가 누구라 생각하는 거냐?”
초악량이 큰소리를 쳤다.
한데 막상 시침이 시작되자 속으로 비명을 질렀다.
애써 표정 관리를 했지만 얼굴 위로는 식은땀이 비 오듯 흘러내렸다.
그만큼 끔찍한 고통이었다.
“으음…….”
단악선이 묘한 침음을 흘린 것도 그때였다.
“왜? 무슨 문제라도 있느냐?”
단악선이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머리 쪽이 뜨거워져야 하는데 좀처럼 열이 오르지 않아서요.”
“지난번에는 머리를 차갑게 하고 심장 아래쪽을 뜨겁게 하는 수승화강(水升火降)의 원리를 따른다 하지 않았느냐?”
“아저씨의 경우는 수기(水氣)가 고갈된 상태예요. 다시 말해 신장의 기운이 약해서 기의 순환이 원활하지 못한 상태죠. 그래서 일부러 머리 쪽으로 열을 끌어 올릴 필요가 있어요. 그리고 침을 이용해 그 열기를 하강시켜 강제로 기의 순환을 유도하는 거죠.”
그제야 초악량은 단악선의 의도를 짐작할 수 있었다.
인위적인 진기의 승강(升降)을 이용해 부상을 치료하겠다는 의미였다.
“그런데 상열하한(上熱下寒) 상태를 유지하는 게 쉽지가 않네요.”
그때 범계위가 모옥 안으로 불쑥 들어왔다.
초악량이 눈살을 찌푸렸다.
“나가. 치료 중인 거 안 보이냐?”
초악량의 핀잔을 범계위가 퉁명스럽게 받아쳤다.
“참 나, 가기 전에 인사나 하려고 들렀더니 보자마자 문전 박대요?”
“어딜 가는데?”
“그 미친년 데려오라며!”
“단 의원 앞이다. 말 좀 가려서 해.”
“흥! 사람이 생긴 대로 살아야지. 나는 초 형처럼 얍삽하게 살긴 싫소.”
“얍삽해? 내가?”
“단 의원이 있을 때와 없을 때 말과 행동이 너무 다르잖소.”
단지 몇 마디 말을 섞었을 뿐인데도 초악량은 속이 부글거렸다.
“저놈 쫓아내면 안 되나? 그나마 단 의원 말은 잘 듣잖아.”
“잠시만요.”
단악선의 눈 위로 이채가 떠올랐다.
침을 통해 느껴지는 상승의 기운이 점차 고조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범 아저씨, 거기 앉아 보세요.”
“응? 왜?”
영문을 몰랐지만 범계위는 단악선의 말에 순순히 따랐다.
그렇게 초악량의 맞은편에 범계위를 앉힌 단악선이 두 사람에게 지시했다.
“시선을 마주해 주시겠어요?”
초악량이 눈살을 찌푸렸다.
지척에서 범계위와 얼굴을 맞대고 있으니 왠지 모르게 열불이 치밀었다.
“흐흐.”
반면 범계위는 히죽거리며 웃기 시작했다.
불편해하는 초악량의 모습에 괜히 기분이 좋아진 것이다. 그 순간 단악선이 탄성을 흘렸다.
“됐어요! 머리 쪽으로 열기가 모이고 있어요!”
“저놈 얼굴 봤을 뿐인데?”
초악량의 반문에 단악선이 고개를 끄덕였다.
“심장의 화기는 감정에 영향을 많이 받거든요. 사랑에 빠지거나 화가 났을 때처럼요.”
그 말에 범계위가 기겁했다.
“어쩐지! 전에 업혔을 때 자꾸 살을 비비더라니!”
“무슨 미친 소리야! 화가 나서 그런다!”
“왜 화가 나는데?”
“그러게……. 왜지?”
초악량이 당황했다. 정작 본인도 그 이유를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됐어요.”
그때 단악선이 침을 거두며 물었다.
“좀 어떠세요?”
잠시 몸 상태를 확인한 초악량이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에 비해 확실히 몸은 많이 가벼워졌다. 그런데…….”
“그런데요?”
“기분은 더럽군.”
단악선이 빙그레 웃더니 범계위를 보았다.
“지금 출발하시는 거예요?”
“어, 그러려고.”
“그럼 잠시만 기다리세요. 재료가 갖춰졌으니 금방 단약을 만들 수 있을 거예요.”
침구를 챙긴 단악선이 전각을 향해 달려갔다.
잠시 후 돌아온 단악선이 작은 상자를 범계위에게 건넸다.
“사흘에 하나, 운기행공 전에 드세요. 특별한 문제만 없다면 이걸로 두 달은 괜찮을 거예요.”
단악선은 조금 고민하다가 한마디를 덧붙였다.
“만약 피를 보게 되는 일이 있으면 곧장 두 알을 복용하시고요.”
“알았다.”
돌아서는 범계위를 향해 단악선이 물었다.
“제가 뭐라고 했죠?”
“어?”
“방금 말한 주의 사항이요. 다시 말씀해 보세요.”
“어……. 사흘에 한 번씩 불알을 복용하고, 운기행공 전에 피를 보라고 했지?”
옆에 있던 초악량이 고개를 흔들었다.
“저런 놈을 혼자 보내도 될까 싶네.”
그때 단악선이 품속에서 곱게 접힌 종이를 꺼내 범계위에게 내밀었다.
“혹시나 싶어 주의 사항을 정리해 뒀어요. 매일 확인하세요.”
“흐흐. 진즉 그러지.”
자신도 멋쩍었던지 범계위가 웃음을 흘렸다. 그리곤 곧장 신형을 날렸다.
“내가 꼭 그 여자를 데려오마!”
범계위의 음성이 순식간에 아득히 멀어졌다.
* * *
범계위가 신마곡을 떠난 지 사흘째 되던 날.
단악선이 아름드리나무를 바라봤다. 범계위가 항상 거꾸로 매달려 있던 곳이었다.
“잘 지내시려나? 걱정되네.”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더니, 없어진 범계위의 자리가 생각보다 컸다.
오늘처럼 마을에 다녀온 날은 특히 그랬다.
자신의 마음도 그랬지만, 범계위의 부재는 뜻밖의 문제를 가져왔다.
초악량의 치료 효과가 눈에 띄게 저조해진 것이다.
상열하한을 이용한 인위적인 진기의 승강, 이는 필연적으로 심리 상태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한데 범계위가 없으니 좀처럼 화를 낼 일이 없었다.
예상치 못한 문제에 당사자인 초악량도 조급해하기 시작했다.
“오늘은 좀 괜찮아지셔야 할 텐데…….”
침구를 챙겨 든 단악선이 초악량의 모옥으로 향했다. 초악량은 계곡 중앙에서 커다란 통나무를 깎고 있었다.
“아저씨, 뭐 하세요?”
초악량이 들고 있던 끌과 망치를 들어 올렸다.
“보다시피 목상을 깎고 있다.”
“너무 무리하진 마세요.”
“괜찮다. 이제 이 정도는 땀도 안 나니까.”
“구경해도 되나요?”
“물론. 대신 위험하니 너무 가까이 오지는 말아라.”
단악선이 자리를 잡자 초악량이 다시 손을 움직였다.
땅! 따앙!
초악량의 손에 들린 끌과 망치가 쉬지 않고 움직였다. 그때마다 사방으로 목피가 튀어 올랐다.
그렇게 잠시 후.
통나무는 점차 뚜렷한 형태를 갖춰 가기 시작했다. 그제야 단악선은 그것이 사람 크기의 등신대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대략적인 형태를 잡은 초악량이 끌과 망치 대신 짧은 소도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조각을 시작했다.
지금까지와 비교도 안 될 만큼 섬세하고도 빠른 손놀림이었다. 순식간에 초악량 주변에 목재 가루가 수북이 쌓여 갔다.
그 모습에 단악선이 탄성을 터트렸다.
“우와! 정말 똑같네요.”
초악량의 손을 거쳐 완벽하게 생명을 얻은 목상.
다름 아닌 범계위였다.
건들대는 자세와 비틀린 웃음, 거기에 살기를 뿜어내는 눈빛까지.
살아 있는 것처럼 생생한 모습이었다.
단악선이 빙그레 웃었다.
“그래도 많이 보고 싶으셨나 봐요. 같이 계실 때는 그렇게 티격태격하시더니.”
그 순간 초악량이 목상을 향해 다가섰다.
“퉤!”
초악량이 목상을 향해 침을 뱉었다.
“이제 치료를 시작해도 될 것 같다. 그 자식 닮은 면상을 보는 것만으로도 화가 끓어오르는구나.”
단악선이 실소했다.
“그러려고 만드신 거예요?”
한편으론 어이가 없고, 다른 한편으론 대단하게 느껴졌다.
결국 초악량은 치료를 위한 방법을 찾아낸 것이다. 다행히 그 노력이 빛을 발했다.
“효과가 있네요.”
침을 통해 전해지는 기운이 훨씬 활기차게 느껴졌다.
치료를 마친 뒤 초악량은 여느 때처럼 운기조식을 시작했다. 그런 그를 뒤로한 채 단악선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식사를 준비하기 위해서였다.
잠시 후.
단악선이 들고 온 바구니를 초악량 앞에 내밀었다.
“오늘부터 식사는 이걸로 대신할 거예요.”
바구니에 담긴 것들을 확인한 초악량이 눈살을 찌푸렸다.
“이게 식사라고? 내 눈에는 생풀로밖에 안 보이는데?”
단악선이 조용히 웃었다.
“그래서 따로 요리도 준비했어요.”
단악선이 바구니 안에 담겨 있던 그릇 하나를 꺼냈다.
혹시나 해 그릇 뚜껑을 열어 본 초악량은 내심 기가 막혔다. 그릇 안에는 멀건 국물이 담겨 있었는데, 건더기라고는 말린 꽃 하나가 전부였다.
자세히 보니 계곡 입구에 만개한 능라화와 모습이 비슷했다.
“보통은 법제한 걸 요리라고 하진 않지?”
초약량의 물음에 단악선이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뭐 어때요. 어차피 쪄서 말리고, 끓이고 익히는 건 마찬가진데.”
“…….”
초악량이 물끄러미 단악선을 바라봤다.
‘지난번에 고기 구울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는데…….’
확실히 요리엔 터무니없을 정도로 재능이 없었다.
그때 단악선이 입을 열었다.
“빨리 회복하고 싶으시다면서요? 울혈을 다스리고 기맥을 보호하는 데 이만한 것도 없어요.”
내키지는 않았지만 초악량이 약초 하나를 집어 입으로 가져갔다.
우적우적 약초를 씹던 초악량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이건……. 지독하게 쓰군.”
도저히 목으로 넘길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아무리 내상 치료에 효과가 뛰어나다지만 상식을 뛰어넘는 역한 맛은 아무리 그라도 주저할 수밖에 없었다.
그때 단악선이 슬쩍 옆으로 비켜섰다.
밉살스럽게 웃고 있는 범계위의 목상이 초악량의 눈에 들어온 것도 동시였다.
단악선이 빙그레 웃었다.
“보시면서 드세요.”
그 한마디에 초악량의 눈빛이 달라졌다. 갑자기 화가 나며 투지가 솟구쳤다.
“두고 보자, 이놈. 내가 무공만 회복하면…….”
초악량이 씹던 약초를 꿀꺽 삼켰다.
괴로움에 얼굴이 일그러졌지만 그때마다 범계위의 목상을 보며 의지를 다졌다.
쓸개를 핥으며 복수를 다짐했던 월왕 구천의 마음을 이 순간만큼은 누구보다 이해할 수 있었다. 그렇게 몸소 와신상담(臥薪嘗膽)을 실천하던 초악량이 단악선을 바라봤다.
“조만간 자리를 비워야 할 것 같다.”
“어디 가시게요?”
“소식을 좀 알아보려고.”
초악량이 설명을 이어 갔다.
“무림맹 놈들의 움직임은 파악해 둬야 할 것 같아서 말이야.”
“여기 계신 게 그들에게 알려질 수도 있어요.”
“그런 거라면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 방법이 있으니까.”
“며칠 정도 걸리시는데요?”
“닷새면 될 게야.”
단악선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미리 약을 준비해 둬야겠네요.”
“고맙다.”
그 말을 끝으로 초악량은 다시 약초들로 식사를 이어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