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100)
신마의선-100화(100/500)
신마의선 (100)
그런 반여해를 향해 곽언이 입을 열었다.
“적어도…….”
서로의 시선이 마주치자 곽언이 히죽 웃었다.
자신조차 독 소금에 절여져 시커먼 피를 게워 내면서도 그는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었다.
“……가는 길이 외롭지는 않겠어.”
그 말을 남긴 곽언의 신형이 천천히 기울어지나 싶더니, 이내 썩은 나무 기둥처럼 쓰러졌다.
“아아…….”
반여해의 입에서 절로 탄식이 터져 나왔다.
장내에 멀쩡히 살아 숨 쉬는 사람은 그만이 유일했던 것이다.
그렇게 망연자실해 있던 그때.
“그 검법을 어떻게 익혔느냐?”
“……!”
난데없이 귓전을 파고든 차가운 음성에 반여해가 화들짝 놀라 뒤를 돌아봤다.
일 장쯤 떨어진 곳.
언제부터인지 그곳에 유령처럼 서 있는 한 사람이 눈에 들어왔다.
“당신은……?”
초악량의 눈에서 차가운 기광이 번뜩였다.
그 순간 이미 초악량은 반여해의 눈앞에 이르러 있었다.
“헉!”
그 위협적인 기세에 반여해가 본능적으로 동강 난 검을 휘둘렀다.
부러진 그의 검에서 한 줄기 붉은 검기가 솟구치나 싶더니 그대로 초악량의 가슴팍을 향해 날아들었다.
그러나 초악량은 곽언과는 차원을 달리하는 고수.
따앙!
가벼운 손짓 한 번으로 검기를 와해시킨 초악량이 그대로 손을 뻗어 검을 쥔 반여해의 손을 움켜잡았다.
우두둑.
“으악!”
반여해의 입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순식간에 걸레짝처럼 짓이겨지고 으깨진 손!
이를 본 반여해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생사를 건 싸움 때문에 잠시 잊고 있었지만 뒤늦게 그가 검갑을 던진 고수라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아무리 기인이사가 바닷가의 모래알처럼 많은 곳이 강호라지만 이 정도의 고수는 흔치 않았다.
적어도 천하오절급은 되어야…….
‘설마?’
반여해가 더없이 크게 눈을 부릅떴다.
“혀, 혈수존자!”
그의 입에서 절망적인 경악성이 터져 나왔다.
최근 입문한 제자들이라면 모를까 오랜 세월 청성에 몸담아 온 그는 단번에 초악량을 알아볼 수 있었다.
청성의 근간을 송두리째 뒤흔든 혈겁(血劫)!
그 사건으로 인해 청성파를 떠받치던 핵심 고수인 청 자 배분이 모조리 유명을 달리했다.
“당신은 죽었다 들었는데……?”
놀란 눈으로 반문하는 반여해를 향해 다시 한 번 차디찬 음성이 날아들었다.
“그 검법을 어떻게 익혔느냐 물었다.”
형언하기 어려운 압도적인 기파에 반여해는 그만 기가 질려 버렸다.
“자, 장문인께서 하사하신 검법입니다.”
“그자의 도명이 어찌 되지?”
“청명. 청명산인입니다.”
“청명……? 산인?”
초악량의 눈에 의아함이 떠올랐다.
분명 어딘가 귀에 익었는데 기억과 정확히 일치하는 이름이 없었다.
“그 검법의 이름이 뭐지?”
초악량의 질문에 반여해가 고개를 흔들었다.
“모릅니다.”
“모른다고?”
“처음부터 이름 따윈 없었습니다.”
반여해가 전각의 문 앞에 떨어트린 비급을 눈짓으로 가리켰다.
“바로 저 안에 기재되어 있던 검법입니다.”
초악량이 반여해의 손을 놓고 전각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바닥에 나뒹구는 비급을 주워 그 안의 내용을 확인했다.
“……!”
초악량의 눈이 걷잡을 수 없이 흔들렸다.
‘단운적하팔식(丹雲赤霞八式)!’
이는 결코 무명의 검법이 아니다.
세월이 지났을지언정 이걸 어떻게 몰라본단 말인가. 이건 바로 사부의 독문검법이다.
게다가…….
눈에 익은 필체 역시 사부의 것이 분명했다.
초악량의 눈에서 새파란 불꽃이 뚝뚝 떨어지기 시작했다.
비로소 어찌 된 일인지 연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사부의 목숨을 앗아 간 청성파의 무리들.
“이거였나?”
그 당시, 청성파가 어째서 관부와 결탁해 사부를 쫓았을까?
오랜 의문이 풀리는 순간이었다.
그들은 애초에 사마외도 척결이나 탕마멸사 따위의 대의명분 때문에 움직인 것이 아니었다.
처음부터 사부님의 비급을 노리고 있었던 것이다.
끓어오르는 분노를 고스란히 드러낸 초악량이 반여해를 노려봤다.
“나는 처음부터 나설 생각이 없었다.”
청성제일관과 암룡방.
이권을 걸고 충돌한 두 문파가 서로 상잔하는 것이 누가 봐도 이해하기 좋은 그림이었다.
만약 곽언이 살아남는다 해도 소리 소문 없이 죽여 버리면 그만.
자신이 이 사태에 관여했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남지 않을 것이다.
연판장을 얻으려 노력하는 단악선을 위해 나름 최선의 인내를 발휘한 결과가 그것이었다.
그런데 마지막 순간 모든 것이 틀어져 버렸다.
반여해가 곽언을 쓰러트린 검법을 보았기 때문이다.
단홍적하팔식의 일곱 번째 초식 사예화우(射銳化雨).
어린 시절, 셀 수도 없을 만큼 눈에 새겼던 그 초식을 어찌 잊을 수 있을까.
저벅.
초악량이 반여해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초악량과 시선이 마주친 반여해는 그 자리에 못 박힌 듯 꼼작도 할 수 없었다.
“끄으으…….”
반여해의 입에서 억눌린 신음이 새어 나왔다.
온몸이 그대로 갈가리 찢겨 나갈 것 같은 살기.
끝 모를 나락 같은 눈빛을 하고 서 있는 초악량의 존재감에 머릿속이 텅 비어 버렸다.
그런 그를 보며 초악량이 손을 뻗었다.
턱.
바닥을 나뒹굴던 부러진 검이 초악량의 손을 향해 빨려 들듯 날아갔다.
격공섭물로 검을 쥔 초악량이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진기를 끌어 올렸다.
초악량은 극한까지 내공을 끌어 올려 검에 쏟아부었다.
“이것이 진짜 사예화우다.”
그 말과 함께 초악량이 검을 휘둘렀다.
“……!”
반여해가 눈을 부릅떴다.
죽음의 공포마저 깡그리 잊어버릴 만큼 전율스러운 붉은 검기의 비가 눈앞에서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과연 사람이 펼치는 검공인가 싶을 만큼 가공할 신위!
수십 년의 세월을 건너뛰어 온전히 그 모습을 드러낸 단운적하팔식.
그 아래 반여해는 순식간에 피 안개로 화해 흩어졌다.
그러고도 위력이 줄지 않은 사나운 검기는 맹렬하게 일대를 휩쓸어 갔다.
초목과 바위, 건물 할 것 없이 붉은 검기의 물결 앞에 형체가 지워졌다.
빠각.
그 순간 초악량이 쥐고 있던 검이 그대로 산산조각 나 부서졌다.
애초부터 평범한 검은 단운적하팔식에 사용되는 막대한 내력을 감당할 수 없었던 것이다.
붉은 잔영을 남기며 눈앞에서 흩어지는 검기의 빗줄기를 응시하던 초악량이 나직이 중얼거렸다.
“사부님…….”
초악량이 손에 들린 비급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그러다 절반 정도가 흔적도 없이 지워진 무관을 뒤로한 채 돌아섰다.
그가 떠난 장내에 다시금 적막이 내려앉았다.
어둠 속을 떠도는 짙은 혈 향.
죽음의 냄새가 감도는 장내에 너울거리는 밤안개만이 망자들의 넋을 달랠 뿐이었다.
* * *
장원으로 돌아오는 내내 초악량은 반여해가 언급한 도호를 떠올리고 있었다.
‘분명 어디서 들어 본 것 같은데…….’
그런데 산인이라는 도명이 기억에 없었다.
장원에 들어선 초악량은 문득 불을 밝히고 있는 전각을 발견했다.
그곳이 염사인의 처소라는 것을 깨달은 초악량이 그쪽으로 조용히 걸음을 옮겼다.
열린 문 안으로 들어서자 정갈하게 꾸며진 제단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제단 앞에서 극진한 예를 다해 향을 사르는 염사인의 뒷모습이 보였다.
세 대의 향을 정성스럽게 올린 염사인이 돌아섰다.
그러다 말없이 방 한편에 서 있는 초악량을 발견하곤 화들짝 놀랐다.
“깜짝이야! 인기척 좀 내고 다니라니까!”
“어째서 자네가 우리 사부님께 제를 올리는 거지?”
초악량의 물음에 염사인이 피식했다.
“우리 사이에 무슨. 자네 사부님이면 내 사부님이나 마찬가지 아닌가.”
실제로 염사인은 단 하루도 거르지 않고 향을 살라 왔다.
괜히 무안해진 염사인이 초악량을 향해 핀잔을 던졌다.
“친구는 다 늙어 골골대는데 혼자만 여전히 청춘이군. 무슨 바람이 불어 청승맞게 혼자 밤 나들이야?”
“그냥 좀.”
적당히 말을 흘리는 초악량의 모습에 염사인이 하려던 말을 삼켰다.
초악량이 제단 앞으로 걸어가 사부의 존함이 적혀 있는 위패를 눈에 담았다.
그리고 향을 사르고 고개를 숙였다.
그 순간 제단 아래 끄트머리에 아무렇게나 굴러다니는 손바닥만 한 크기의 목상을 발견했다.
원래는 일곱 개였으나 지금은 모두 주인 곁으로 돌아가고 유일하게 하나만 남아 있는 목상.
초악량은 갑자기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목상을 집어 든 초악량이 뒷면에 새겨진 글자를 확인했다.
“……!”
청명자(淸明子).
초악량의 눈에서 차가운 불꽃이 튀었다.
놈이었다.
사부님을 죽인 일곱 명 중 하나.
당시 청성파의 최정예였던 청성칠자 중 가장 막내였던 놈이 바로 청명자였다.
“하…….”
초악량이 마른 웃음을 풀썩였다.
“어쩐지 귀에 익더라니.”
그때의 청명자가 지금은 청면산인이라 불리는 것이다.
빠드득.
초악량이 어금니를 깨물었다.
결코 잊을 수 없었던 기억.
그의 눈빛은 어느새 수십 년 전으로 되돌아가 있었다.
쏴아아아.
쏟아지는 빗줄기를 온몸으로 흠뻑 맞으며 한 소년이 목상을 깎고 있었다.
겨울의 끝자락을 알리는 차가운 비였다.
몸을 타고 오는 지독한 한기에 온몸이 덜덜 떨려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년은 얼어붙은 손을 쉬지 않았다.
그러다 빗물에 미끄러진 목상을 놓치고 말았다.
찌익.
목표를 잃은 작은 손칼이 손바닥을 길게 찢어 놓았다.
순식간에 소년의 손은 피투성이가 되었다.
그러나 소년은 다시 목상을 집어 들었다.
얼굴은 창백했고 입술은 보랏빛으로 죽어 갔지만 소년은 재차 목상을 깎기 시작했다.
사부를 죽인 흉수들.
두 눈에 똑똑히 새겨 넣었던 일곱 명의 얼굴이 조금이라도 기억 속에서 흐려지기 전에 목상에 옮겨 두어야 했다.
시간이 지나도 잊지 않기 위해서였다.
그 원한이 얼마나 뼛속 깊이 사무친 것일까.
툭.
부릅뜬 소년의 눈꼬리가 터져 나갔다.
그러나 정작 소년은 이를 깨닫지도 못하고 있었다.
뺨을 타고 흐르는 것이 빗물인지, 핏물인지…….
아니면 눈물인지도 알 수 없었다.
대신 광인에 가까운 눈빛을 줄기줄기 쏟아 내며 목상을 깎는 일에만 모든 신경을 집중하고 있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결국 소년은 일곱 개의 목상을 완성할 수 있었다.
바로 청성칠자의 얼굴이 새겨진 목상이었다.
하나하나 그 얼굴을 노려보던 소년이 탈진해 빗물 위로 쓰러졌다.
그리고 십 년 후.
목상을 깎던 소년은 복수를 시작했다.
훗날 청성혈사라 불리는, 무림 역사상 전례를 찾아볼 수 없는 피의 역사를 써 내려가기 시작한 것이다.
청성칠자를 한 명씩 죽일 때마다 초악량은 그 시신 옆에 그자의 얼굴과 도명이 새겨진 목상을 던져두었다.
그렇게 마지막 한 명만을 남겨 두었을 때.
초악량은 난감한 상황에 처했다.
청명자의 종적을 찾을 길이 없었던 것이다.
훗날 떠도는 소문에 의해 그가 이미 죽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때 얼마나 허무했던지.
적어도 죽기 전에 공포에 휩싸인 놈의 눈빛을 보고 싶었다.
아쉬운 마음을 금치 못했지만 초악량은 그것으로 복수를 마무리 지었다.
그리고 그것이 유일하게 청명의 목상만 사부의 위패 앞에 남아 있는 이유였다.
한순간 돌변한 초악량의 모습에 염사인이 침음성을 삼켰다.
지옥에서 기어 나온 악귀처럼 끔찍한 살기를 흘리는 초악량의 모습이 더없이 낯설었던 것이다.
게다가…….
초악량은 웃고 있었다.
무엇이 그리도 기쁜지 지금껏 본 적 없는 무시무시한 미소를 얼굴에 걸어 놓고 있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초악량이 염사인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자네에게 부탁할 것이 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