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101)
신마의선-101화(101/500)
신마의선 (101)
한적한 객잔 후원.
“전 준비됐어요.”
늘어지게 하품을 하던 가두달이 등 뒤에서 들려온 단악선의 음성에 고개를 돌렸다.
“무슨 준비?”
단악선이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비무요. 이번에는 그렇게 쉽게 당하지 않을 거예요.”
가두달이 물끄러미 단악선을 응시했다. 지난번 패배 이후 단단히 벼른 모양이다.
‘어림없지.’
가두달은 순순히 비무에 응해 줄 생각이 없었다.
“넌 아직 준비가 안 됐다.”
“네?”
의아한 표정을 짓는 단악선에게 다가간 가두달이 무언가를 속삭였다.
“……!”
단악선의 눈빛이 흔들렸다.
“아니에요! 그렇지 않아요!”
강하게 부정하는 단악선을 향해 가두달이 히죽 웃었다.
“과연 그럴까? 어떻게 그리 확신하지?”
“그거야…….”
단악선이 멀찌감치 떨어져 있는 범계위와 한설화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저 두 분이 그럴 리가 없으니까요.”
범계위가 고개를 갸웃했다. 여기서 갑자기 자신들 이야기가 왜 나온단 말인가?
“뭐가 그럴 리 없는데?”
“두 분이 서로…….”
막상 말로 설명하려니 민망했던지 단악선이 얼굴을 붉히며 말을 흐렸다.
그러다 이내 약간은 미심쩍은 눈빛으로 되물었다.
“아니죠?”
“그러니까 뭐가?”
가두달이 황급히 나섰다.
“하하, 아무것도 아닙니다.”
가두달이 단악선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이렇게 단순한 격장지계(激將之計)에도 마음이 흔들리는데 준비가 되었다고?”
단악선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역시…… 이번에도.”
“그래, 거짓말이다.”
가두달이 근엄한 표정으로 말했다.
“실전에서는 지금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온갖 음험한 귀계가 난무한다. 만약 네가 나의 이간계에도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다면 그때 비무에 응해 주마.”
단악선이 한숨을 뱉으며 물러났다.
거짓말이라는 걸 뻔히 알면서도 듣다 보면 어느새 가두달의 이야기에 혹하는 것이다. 정말이지 사람의 마음을 흔드는 재주만큼은 누구보다 뛰어난 그였다.
그때였다.
객잔 점소이의 안내를 받으며 후원에 들어서는 사람이 있었다.
“아무래도 저분들 같은데요?”
점소이가 단악선 일행을 가리키자 뒤따르던 사내가 중얼거렸다.
“눈이 번쩍 뜨이는 미인과 철탑 같은 체구의 거한, 귀엽게 생긴 어린아이. 그리고 염소수염…….”
검게 그을린 사내의 얼굴이 환해졌다.
반색하며 다가선 사내가 범계위를 향해 대뜸 물었다.
“혹시 진성의가의 악일 의원님이신지요?”
“응? 악일?”
의아한 표정을 짓고 있던 범계위가 이내 무언가를 떠올렸다.
무림맹에서 썼던 이름이었다.
범계위가 히죽 웃었다.
“어, 내가 악일이야. 악인들 중에서 일등이라는 뜻이지.”
“아! 다행입니다. 드디어 찾게 되는군요. 여러분을 찾기 위해 인근의 객잔이란 객잔은 모조리 뒤지고 다녔습니다.”
“우리를 찾았다고?”
범계위의 물음에 사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저는 구칠이라 하옵고, 염 대야 아래서 염직물을 만드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악공이라는 분께서 여러분께 전하라는 말씀이 있어…….”
구칠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이었다.
“초 아저씨가요?”
어느새 달려온 단악선이 눈빛을 반짝였다.
“뭐라고 말씀하셨는데요?”
구칠이 초악량의 전언을 말하려는 찰나 범계위가 단악선을 제지하며 앞으로 나섰다.
“증거를 대 봐.”
“예?”
“네가 하는 말을 무턱대고 믿을 만큼 내가 어리숙해 보여?”
눈을 껌벅이던 구칠이 이내 무언가를 떠올렸다.
“그분 말씀에 의하면 여기 치료를 받고 있는 대머리 고자가 있을 거라고…….”
“뭐, 인마!”
쩌렁한 범계위의 고함에 구칠이 화들짝 놀라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제, 제가 그런 게 아니라 악공 님께서…….”
괴성을 지르며 길길이 날뛰는 범계위를 제치고 한설화가 나섰다.
“무슨 전언이지?”
구칠이 잠시 멍한 눈으로 한설화를 올려다보았다.
지금까지 살면서 이처럼 대단한 미인은 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앗! 차거!”
난데없이 목덜미를 파고드는 한기에 깜짝 놀란 구칠이 뒤늦게 자신을 가만히 노려보는 한설화의 눈빛을 마주하곤 황망히 입을 열었다.
“청성으로 가지 말고 곧장 무당으로 향하시라고 전하셨습니다. 때를 맞춰 그분도 그쪽으로 합류하신다고요.”
초악량과 재회를 기대했던 단악선의 얼굴 위로 감출 수 없는 실망이 떠올랐다.
“하북으로?”
한설화의 반문에 구칠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청성의 장문인은 만나지 못할 거라 하셨습니다.”
한설화는 영문을 알 수 없어 잠시 생각에 잠겼다. 반면 범계위는 눈에 띄게 얼굴이 굳어졌다.
초악량과 청성파 사이의 해묵은 원한.
그 이유를 아는 몇 안 되는 사람 중 한 명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참지 못한 건가?’
가장 우려했던 일이 벌어졌다.
‘말이 씨가 된다더니…….’
전에 단악선에게 이렇게 말한 적이 있었다.
초악량이 있었다면 무슨 사고가 터져도 터졌을 거라고. 그때 했던 말을 떠올리며 범계위가 자신의 입을 찰싹 때렸다.
“이놈의 입이 화근이지.”
“왜 그러세요?”
단악선의 물음에 범계위가 어색하게 웃었다.
“아니다. 아무것도…….”
구칠이 돌아가자 일행도 곧장 객잔을 나섰다.
초악량의 합류가 무산된 이상 굳이 더 머물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무당산이 있는 하북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단 의원 갑갑하지 않아?”
범계위가 단악선을 번쩍 들어 자신의 어깨에 올렸다.
“우리 오랜만에 신나게 달려 볼까?”
단악선이 시무룩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범계위가 경공을 펼쳐 앞으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한설화가 말없이 그 뒤를 따라 신형을 날렸다.
가두달 역시 마찬가지.
모처럼 제대로 내공을 사용해 경공을 실컷 펼칠 수 있게 된 가두달은 혼자 잔뜩 신이 나 있었다.
그런데 한 시진쯤 지나니 점차 내력이 고갈되기 시작했다.
‘젠장!’
순식간에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른 가두달이 범계위와 한선화를 힐끔 바라봤다.
두 사람은 여전히 신색의 변화가 없었다.
정말이지 괴물 같은 사람들이 아닐 수 없었다. 무림에서 둘째라면 서러워할 경공의 대가를 자부했었는데, 두 사람에 비하면 그야말로 보름달 앞의 반딧불이 아닌가.
그렇게 일각 후.
기진맥진한 가두달의 입에서 절로 앓는 소리가 새어 나왔다.
“이제 내려 주세요.”
단악선의 말에 범계위의 신형이 우뚝 멈춰 섰다.
일행은 어느새 호북의 경계를 넘어 균현(均縣)에 이르러 있었다.
“저곳이 무당산인가요?”
신비로운 운무가 감싸고 있는 높은 봉우리들.
“이런. 잠깐 바람을 쐰다는 게 여기까지 와 버렸네?”
짐짓 능청을 떨던 범계위가 멈칫했다. 단악선이 물끄러미 자신을 올려다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 말씀해 주세요.”
“응? 뭘?”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죠?”
“그게…….”
말끝을 흐리던 범계위가 내심 갈등했다.
기우로 끝난다면 다행이지만 어째선지 자꾸만 나쁜 예감이 들었다. 그렇다고 사실대로 말하자니 단악선이 걱정할 것 같아 망설여졌다.
단악선이 다시 물었다.
“혹시 초 아저씨가 위험해지신 건가요?”
한설화가 고개를 저었다.
“걱정 마라. 무림 전체를 통틀어 나를 이길 수 있는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는 사람을 꼽으라면 초 오라버니뿐이니까.”
그 말에 범계위가 발끈했다.
“나는?”
한설화가 범계위를 보며 피식했다.
단지 그것뿐이었지만 그 안에 담긴 의미는 명확했다.
자존심이 상한 범계위가 얼굴을 와락 구기며 한설화를 노려봤다. 생각 같아서는 제대로 드잡이질을 벌이고 싶었지만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었다.
“그건 멀쩡했을 때 이야기고. 아무리 초 형이라도 지금은 위험할 거야.”
결국 범계위는 초악량과 청성파 사이에 얽혀 있는 해묵은 원한에 대해 설명했다.
제법 긴 이야기가 끝나자 단악선이 한숨을 터트렸다.
청성파 이야기를 꺼낼 때마다 초악량의 말수가 유독 적어진 이유를 그제야 알 수 있었다.
“난 그것도 모르고…….”
그런 사연이 있음에도 초악량은 연판장이 필요한 자신을 위해 묵묵히 사천으로 오는 것을 감내한 것이다.
“걱정 마, 단 의원.”
범계위가 주먹으로 자신의 가슴을 두드렸다.
“내가 가서 초 형을 데려올게.”
“같이 가지.”
한설화의 말에 범계위가 고개를 저었다.
“마녀 넌 단 의원을 지켜야지.”
범계위가 즉시 전음을 날렸다.
―단 의원에게 보여 주고 싶지 않아.
―뭘?
―그냥 전부.
범계위가 전음을 이어 갔다.
―냉정한 초 형이 지금 시점에 청성을 들이받는다? 분명히 뭔가 이유가 있을 거야.
“…….”
―아주 흉험한 광경이 펼쳐질 것 같거든.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던 한설화가 고개를 끄덕였다.
단악선이 범계위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부탁드려요. 초 아저씨를 데려와 주세요. 저는 여기서 기다릴게요.”
“굳이 그럴 필요까지는…….”
“아니. 기다릴 거예요.”
고집스런 눈빛으로 단악선이 말했다.
“연판장도, 그리고 무위를 금지로 만드는 것도……. 그 모든 건 처음부터 우리 모두를 위해 시작한 일이었어요. 초 아저씨가 없으면 의미가 없어요. 범 아저씨도 마찬가지고요. 그러니…….”
말끝을 흐리던 단악선이 진심 어린 눈빛으로 범계위를 응시했다.
“무사히 돌아와 주세요.”
범계위가 씨익 웃었다.
“나만 믿어.”
그렇게 단악선의 허락을 얻은 범계위가 신형을 날렸다.
순식간에 멀어진 범계위의 모습이 이윽고 작은 점으로 화해 사라지자 단악선이 나직이 한숨을 흘렸다.
“괜찮으시겠죠?”
한설화가 말없이 단악선의 어깨를 토닥였다.
‘아무리 걱정할 사람이 없어도 그렇지.’
오히려 가두달은 난데없는 재앙과 맞닥뜨릴 청성파가 불쌍했다. 그러다 문득 가두달의 뇌리를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잠깐? 이거 어쩌면 기회 아닌가?’
가두달이 한설화 쪽을 힐끔거렸다.
그녀만 따돌린다면 단악선을 데리고 튈 수 있는 상황이다.
초악량과 범계위가 있을 때라면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기회! 그렇게 한설화의 눈치를 살피던 가두달의 눈에 의아함이 떠올랐다.
범계위가 사라진 곳을 응시하는 그녀의 표정이 평소와 달라 보였다.
‘걱정하는 건가? 그 두 사람을?’
평소 티격태격하던 세 사람의 관계를 아는 까닭에 가두달은 일순 혼란스러웠다.
‘그러고 보니…….’
가두달이 고개를 돌려 단악선의 표정을 살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진심으로 일행을 걱정하는 단악선의 눈빛을 보고 있자니 왠지 모르게 마음이 싱숭생숭해졌다.
‘마치 가족 같군.’
가두달은 묘한 기분을 느꼈다.
평생을 누군가에게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살아온 그였다.
그런데 어쩐지 이 순간만큼은 저들이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 * *
청성파의 상청궁(上清宫).
이곳은 청성산에 군락을 이룬 수십 개의 도교 사당 중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건물이다.
역사적으로 따져도 천사동(天师洞) 다음인 곳.
그래서 청명산인은 최근 장문인의 집무실을 이곳으로 옮겼다.
물론 그의 사질이자 전 장문인이었던 운산진인이 기거하던 노군각(老君阁)이 여러모로 마음에 들지 않았던 이유도 있다. 어쩐지 노군각은 쇠락한 청성파를 상징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무공으로는 무당에 밀리고, 명성은 화산에 밀린다지만 그래도 청성은 명실상부 가장 역사가 깊은 도가의 문파다.
천사도의 창시자인 장도릉(張道陵)이 오두미도의 교리를 사람들에게 설파한 곳도 청성산이었고, 그래서 지금도 도교의 발원지 중 한 곳으로 인정받고 있다.
그 장도릉이 머물던 곳에 세워진 건물이 바로 상청궁이다.
청성파 장문인의 권위를 상징하기에 이보다 어울리는 장소가 어디 있겠는가.
제자들이 헌상한 도포의 옷매무새를 가다듬으며 청명산인이 흡족한 웃음을 머금었다.
취임식을 불과 보름 남겨 둔 상태.
머잖아 각 문파들로부터 축하 사절들이 도착할 것이다.
그 자리에서 그는 청성파의 건재함을 과시할 생각이었다.
오랜 세월.
사람들의 이목이 닿지 않는 심산유곡에서 수련에 매진했던 결과를 만천하에 공개하고, 무림의 역사를 다시 쓰게 할 것이다.
‘우선은 천하오절에 이름을 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