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102)
신마의선-102화(102/500)
신마의선 (102)
시신을 찾진 못했으나 무림맹은 혈수존자가 사망했다고 공식적으로 발표했다.
그로써 천하오절의 한 자리가 공석이 되었다.
각파의 명숙이 참여한 취임식에서 자신이 지닌 진정한 무위를 보여 준다면 그 자리를 차지하는 것이 어려운 일은 아닐 것이다.
그러면 청성파의 명성 또한 지금과는 판이하게 달라질 것이다.
그만큼 그는 무공에 자신이 있었다.
“성격이 몹시 급한 손님이군.”
청명산인이 입구 쪽을 향해 빙그레 웃었다.
“취임식은 아직 한참이나 남았는데 뭐가 급해 이리 일찍 본 파를 방문한 건가?”
그가 펼친 기감에 걸려든 상대가 멈칫하는 기색이 느껴졌다.
잠시 후.
덜컹.
문이 열리고, 한 사람이 상청궁 안으로 들어섰다.
여유로운 태도로 자신을 바라보는 청명산인의 얼굴을 뚫어져라 응시하던 초악량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확실히……, 이렇게 보니 기억이 나는군.”
한시도 잊은 적 없는 얼굴.
사부의 위패 아래 놓여 있던 목상과 청명산인의 얼굴이 겹쳐졌다.
청명산인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나를 아나?”
초악량이 조용히 웃었다.
그 순간.
“……!”
청명산인의 안색이 해쓱해졌다.
“너는!”
청명산인의 입에서 경악성이 터져 나왔다.
사형들의 목숨을 앗아 간 청성혈사. 그 장본인을 어떻게 잊는단 말인가!
세월이 덧씌워진 얼굴을 한 번에 알아보진 못했지만, 저 눈빛만큼은 도저히 잊을 수가 없었다.
“죽었다 들었는데?”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묻는 청명산인의 말을 초악량이 차디찬 음성으로 받아쳤다.
“내가 묻고 싶은 말이군. 어째서 네가 아직도 살아 있는 거지?”
그제야 청명산인은 무언가를 깨달았다.
“이 무능한 무림맹 놈들……!”
자신들의 실책을 드러내기 싫어 사실을 덮어 버린 것이다.
초악량이 피식 웃었다.
“재미있군.”
“……?”
“지금 상황이 그렇지 않은가? 서로가 죽은 줄 알았는데 이렇게 멀쩡히 살아 마주하고 있다는 게.”
청명산인은 침묵했다.
그는 초악량처럼 웃을 수가 없었다.
과거 청성혈사 당시 그는 오직 살아남기 위해 죽음을 위장했다. 그렇게 가까스로 목숨을 건진 뒤 심산유곡에 처박혀 불철주야 무공 수련에 매진했다.
그 지옥 같던 인고의 세월을 떠올리니 절로 살심이 솟구쳤다.
따지고 보면 그가 겪어 온 모진 시간도 결국 눈앞의 원흉 때문.
“차라리 잘됐군.”
자욱한 살기를 흘리며 청명산인이 진기를 끌어 올렸다.
“그때의 싸움을 이 자리에서 마무리하지.”
따지고 보면 이보다 단순하고 확실하게 천하오절의 자리를 거머쥐는 방법도 없었다.
천하오절 중 한 명인 초악량을 이 자리에서 꺾으면 되는 것이다.
초악량이 자신도 모르게 실소를 흘렸다.
“뭐가 그리 우습지?”
청명산인의 물음에 초악량이 노골적인 조소를 담아 그의 시선을 마주했다.
“죽어 가는 사형제들을 버리고 도망친 쥐새끼가 참 당당하게도 말한다 싶어서.”
“닥쳐라!”
“숨어 있는 와중에도 바깥소식은 꾸준히 듣고 있었나 보군. 내가 죽었단 말에 바로 기어 나온 걸 보면 말이야.”
청명산인이 움찔했다.
하나 초악량의 말은 틀렸다.
그가 출도한 것은 무공을 완성한 뒤 초악량을 찾아 오명을 지우기 위해서였다.
그저 그 시기가 공교로웠을 뿐.
한 차례 이를 갈아붙인 청명산인이 나직하게 으르렁댔다.
“지옥으로 보내 주마. 네놈에게 가장 어울리는 곳으로.”
초악량이 그 말을 받았다.
“지옥이 따로 있을까. 너나 나 같은……, 악귀들이 사는 이곳이 바로 지옥이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두 사람은 동시에 서로를 향해 쇄도했다.
꽈앙!
손과 손이 부딪쳤음에도 폭음이 터져 나왔다.
순식간에 공간을 메운 어지러운 손 그림자가 서로의 요혈을 노리며 날아들었다.
어지럽게 뒤얽혀 공수를 교환하던 중 초악량의 눈 위로 놀라움이 떠올랐다.
“……!”
확실히 청명산인이 호언장담한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자신이 완벽한 상태가 아니라곤 하나 과거엔 백초지적도 안 됐던 상대가 지금은 너무나 수월하게 자신의 공격을 흘려 낸 뒤 받아치고 있었다.
심지어 내공으로도, 초식으로도 크게 밀리지 않는다.
무엇보다 당금 강호에서 가장 뛰어나다 자부하는 그의 금나수가 너무나 쉽게 막히고 있었다.
예상보다 훨씬 정교하고 능수능란한 상대의 움직임에 초악량은 내심 적잖게 당황했다.
초악량은 이미 청성파의 최고 고수라던 청성칠자 모두와 손을 섞어 본 적이 있었다.
당연히 청성파의 무공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눈앞의 청명산인이 사용하는 무공.
얼핏 보기엔 청운구식(靑雲九式)과 추운권(追雲拳)의 초식 같아 보였지만 그 안에 기본이 되는 묘리는 권법보다는 수공(手功)에 가까웠다. 그러나 초악량이 아는 청성파의 대라산수(大羅散手)에는 이와 같은 신묘함이 없었다.
만약 그랬다면 청성칠자를 그리 쉽게 처리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다 어느 한순간.
초악량의 눈에서 섬전 같은 안광이 튀어 올랐다.
“이 파렴치한 놈!”
이처럼 대등하게 자신과 싸울 수 있는 이유를 깨달은 초악량의 입에서 추상같은 일갈이 터져 나왔다.
청명산인이 사용하는 권법의 초식.
그 흐름과 흐름 사이로 언뜻 드러나는 동작들이 너무나 눈에 익었다. 바로 자신이 사용하는 금나수와 상당 부분이 유사했기 때문이다.
아니.
유사한 정도가 아니었다.
공방의 틈을 비집고 들어가는 예리함이나 다양한 경로로 상대의 공격을 무위로 돌리는 방식이 아예 베낀 것처럼 똑같았다.
청명산인의 얼굴 위로 비릿한 웃음이 떠오른 것도 그때였다.
“이제야 알았나?”
청출어람청어람(靑出於藍靑於藍)이라 했다.
모방이야말로 창조의 근간.
세상 그 어떤 무공이 하늘에서 뚝 떨어졌겠는가.
기존의 무공을 바탕으로 단점을 보완하고 장점을 더해 개량해 나가는 것이다.
지금만 해도 그랬다.
기존의 청성파 무공과 하나로 융화되어 새롭게 태어난 무공은 과거의 그것과 비할 바가 못 되었다.
기존의 단점을 지우고 장점을 얹어 그 자체로 완벽해진 것이다.
대부분의 무공명이 구름을 상징하는 것처럼, 청성파의 무공은 극한에 이른 변화에 치중되어 있었다. 그런데 거기에 극쾌(極快)의 묘리와 중환(重幻)의 이치를 녹여 내니 그 자체로 새로운 신공절학으로 탈바꿈했다.
“내 지난 세월과 피땀을 오롯이 갈아 넣은 결과다.”
쩌저저정!
서로의 손과 손이 얽히며 터져 나온 날카로운 충격음이 상청궁 전체를 흔들었다.
초악량을 몰아붙이며 청명산인이 조소를 던졌다.
“게다가 네놈이 할 말은 아니지. 한간(漢奸)의 후예 따위가.”
이민족에게 들러붙어 백성들을 팔아먹은 매국노들이 바로 한간이다.
원나라 시절.
한족으로서의 자부심을 버리고 원 황실에 기댄 모산파는 기존 구대문파의 무공들을 집대성해 새로운 무공을 창안해 냈다.
초악량은 그 모산파의 마지막 전인과 마찬가지.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면 결국 우리의 것을 돌려받은 것뿐 아닌가!”
“……!”
초악량은 황당하다 못해 기가 막혔다.
처음엔 슬쩍슬쩍 섞어 사용하던 초식을 지금은 아예 대놓고 사용하는 청명산인의 뻔뻔함 때문이었다.
들키자 오히려 당당히 사용하겠다는 심산!
상황이 이쯤 되니 초악량은 마치 자신의 그림자와 싸우는 기분이었다.
“이제 확실해졌군.”
의심이 확신이 되는 순간이었다.
놈은 사부의 비급에서 나름 이해할 수 있는 초식들은 훔쳐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 깨닫기가 어려운 단홍적하팔식은 속가 문파들의 충성을 얻기 위해 은혜를 베풀 듯 미끼처럼 던져 준 것이다.
그래서 초악량은 분노했다.
그 순간 청명산인의 눈 위로 기광이 번뜩였다.
초악량의 공격이 한순간 상대를 놓친 것과 청명산인이 시야에서 사라진 건 거의 동시였다.
초악량이 이를 깨달았을 때, 청명산인은 이미 초악량의 옆구리에 어깨를 밀어 넣고 있었다.
“……!”
초악량의 얼굴이 굳어졌다.
한순간의 동요.
그 찰나의 흔들림이 들숨과 날숨이 교차하는 호흡의 경계를 고스란히 내주고 말았다.
실로 어이없는 실수가 아닐 수 없었다.
그리고…….
고수들 간의 싸움이 으레 그렇듯 한순간의 실수는 돌이킬 수 없는 결과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우득!
옆구리를 파고드는 육중한 충격에 초악량은 이를 악물었다.
초악량의 두 발이 떠오르자 청명산인은 절호의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언뜻 드러난 초악량의 빈틈에 집요하리만치 공격을 욱여넣었다.
빠바바박!
가죽 북을 두드리는 듯한 충격음이 연이어 터져 나왔다.
장저와 손날 그리고 팔꿈치를 이용한 날카로운 공격이 쉴 새 없이 초악량의 요혈을 향해 날아들었다.
숨을 고를 여유조차 주지 않는, 그야말로 사정없는 연환 공격이었다.
우박처럼 쏟아지는 공격에 초악량은 그야말로 속수무책.
청명산인은 자신의 승리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제아무리 뛰어난 호신강기가 보호한다 하더라도 이처럼 연속해서 요혈을 가격당하고도 무사할 수는 없다.
“이제 그만 끝내지.”
청명산인의 손이 변화를 일으켰다.
지금까지의 영활한 움직임 대신 더없이 음유하고 섬뜩한 기운이 그의 손에 맺히기 시작한 것이다.
심장을 갈가리 찢어발기는 청성의 절학.
내가중수법(內家重手法)으로는 그 어느 곳도 따라올 수 없다 알려진 최심장(催心掌)이었다.
그 순간.
청명산인은 갑자기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분명 자신이 승기를 쥐고 있는 건 사실이지만 평생을 의지해 온 무인의 본능을 무시할 정도는 아니었다.
초악량과 시선이 마주친 것도 그때였다.
“어리석은.”
초악량이 웃었다.
“……!”
청명산인의 눈빛이 흔들렸다.
그도 그럴 것이, 쓰러지기 직전인 상황에서도 초악량의 눈빛에 낭패나 당혹감 따위는 찾아볼 수 없었다. 오히려 지금 이 순간에도 먹잇감을 노리는 매처럼 차갑게 번뜩이고 있었다.
청명산인의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초악량이 불쑥 손을 뻗어 자신의 목을 움켜쥐려 했기 때문이다.
수비를 도외시한 일격.
그런데 무슨 수를 썼는지 한순간에 눈앞을 가득 메운 경력들이 너무나 맥없이 가닥가닥 잘려 나가고 있었다.
청명산인이 황급히 뒤로 물러섰다.
그 바람에 초악량의 손도 헛되이 허공을 갈랐다.
비틀거리는 신형을 바로 잡으며 초악량이 오연한 눈빛을 뿌렸다.
“계속 본 파의 무공을 사용했다면 그나마 가능성이 있었을 텐데.”
초악량은 어느새 냉정을 되찾았다.
저벅.
초악량이 다가서자 위험을 직감한 청명산인이 다시 한 번 모산파의 무공을 바탕으로 새롭게 정립한 청성파의 무공을 쏟아 냈다.
그러나 초악량은 처음부터 피할 생각이 없었다.
‘이 미친놈!’
청명산인이 터져 나오는 당혹성을 삼켰다.
수비를 도외시한 채 오직 치명적인 공격만으로 응수하는 초악량 때문이었다.
“큭!”
결국 청명산인은 공격을 거두고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하나 그것이 결정적인 실수였다.
반대로 초악량이 무섭게 기세를 높여 갔다.
죽음의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줄타기하며 실전으로 다져 온 감각.
그것을 무기로 오직 공격일변도의 살초를 뿌려 대기 시작한 것이다.
청명산인은 초조함이 밀려들었다.
언뜻 대등해 보이는 싸움이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확연한 실력의 격차를 절감하기 시작했다.
‘이 괴물 같은 놈!’
그가 상정하고 있던 초악량 무위는 청산혈사 당시의 그였다.
한데 막상 손을 섞어 보니 그때와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그 경악의 감정이 얼굴에 드러났던 것일까.
서로의 눈이 마주치자 초악량이 불쑥 입을 열었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지.”
“……!”
청명산인의 눈빛이 흔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