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103)
신마의선-103화(103/500)
신마의선 (103)
초악량의 음성은 그리 크지도 않았고, 엄청난 위압감을 지닌 것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청명산인은 온몸의 피가 싸늘하게 식는 기분이었다.
설명하기 힘든 가공할 기세를 뿜어내는 초악량의 모습을 마주하자 일순 가슴이 답답해졌다.
가공할 존재감.
그 너머에는 지독히 위험한 무언가가 도사리고 있었다.
게다가 시간이 지날수록 그가 내뿜는 기세는 더욱 강해지고 있었다.
비로소 청명산인은 무언가 일이 잘못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러다 불현듯 깨닫는 바가 있었다.
자신이 강해지는 세월 동안 그라 해서 놀고만 있지는 않았던 것이다.
한데 이를 너무 간과했다.
뒤늦게 처음부터 검을 뽑지 않은 것이 후회되었다. 하나 후회란 아무리 빨라도 늦는 법. 이대로라면 제대로 반격조차 해 보지 못하고 수세에 몰려 쓰러질 것이 분명했다.
‘제기랄!’
청명산인이 으스러져라 이를 악물었다.
어차피 더 이상 물러설 곳도 없다.
청명산인의 눈에 독기가 맺혔다.
이제는 그도 모험을 감행할 수밖에 없었다.
“쓰러져라!”
악에 받친 고함 소리와 함께 청명산인의 손이 공간을 끊었다.
한순간 눈앞의 경물이 일그러졌다.
청명산인의 손에 맺힌 유형화된 서기. 그 안에 담긴 섬뜩한 기세는 지금까지와는 확연히 달랐다.
초악량의 어깨가 꿈틀한 것도 그때였다.
크게 내딛은 보폭에서 시작된 회전력은 이미 나선의 움직임을 그리며 손끝에 온전히 실린 상태였다.
꽈릉.
웅혼한 우렛소리.
그 사이에서 튀어나온 선명한 손 하나가 소름 끼치는 궤적을 그리며 청명산인의 손과 맞부딪쳤다.
콰앙!
상청궁 전체를 뒤흔드는 폭음과 함께 한 사람의 신형이 훨훨 날아갔다. 그리고 삼 장을 넘게 날아가 벽을 부수며 나가떨어졌다.
“우웩!”
한 움큼의 피를 토한 채 비틀거리며 일어서는 사람은 청명산인이었다.
먼지를 뒤집어쓴 청명산인.
온통 피투성이인 그의 얼굴에서는 조금 전의 자신만만했던 모습을 찾아볼 수 없었다.
대신 두려움과 당혹감이 이를 대신하고 있었다.
그의 오른팔은 힘없이 늘어져 있었고, 손가락 역시 본래의 형태를 잃고 기이하게 꺾여 있었다.
“염왕수(閻王手)…….”
신음에 가까운 청명산인의 목소리에서 감출 수 없는 공포가 묻어났다.
초악량이 오연한 눈빛을 뿌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것이 네놈들이 그리 부르던 진짜 성라수(星羅手)다.”
“크윽…….”
청명산인은 온몸이 덜덜 떨려 왔다.
단 한 번의 짧은 격돌.
그걸로 모든 것이 명확해졌다.
천하오절의 자리를 거머쥘 생각을 하고 있던 청명산인은 그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생각이었는지 뼈저리게 절감했다. 처음부터 그와 자신 사이에는 메울 수 없는 무위의 격차가 존재하고 있었던 것이다.
소름 끼치는 눈빛을 흘리며 초악량이 청명산인을 향해 다가섰다.
무공의 창안은 그리 쉬운 것이 아니다.
그저 초식을 이리저리 이어 붙인다고 완성된다면 세상이 온통 신공절학으로 가득하지 않겠는가?
특히나 금나수가 그랬다.
초석이 되는 오의(奧義)가 제대로 받쳐 주지 못하면 그야말로 사상누각(沙上樓閣)일 뿐.
전사경이 빠진 성라수는 단순한 흉내 내기에 불과한 것이다.
마음이 흔들렸을 때는 몰랐으나 냉정을 되찾고 보니 뚜렷하게 보였다.
초식은 엇비슷하게 구현할지언정 그 안에 담겨 있어야 할 진정한 정수와 요체는 찾아볼 수 없었다.
“헉!”
한순간에 거리를 지우고 날아드는 초악량을 목도한 청명산인이 다급히 왼손을 들어 가슴을 방비했다.
그러나 초악량의 단호한 손속 앞에서는 의미가 없었다.
우드득.
청명산인의 손가락이 수수깡처럼 부러져 나갔다.
다시 한 번 피를 토하며 날아간 청명산인을 향해 초악량이 재차 신형을 날렸다.
이대로 끝을 볼 심산이었다.
그 순간.
짜자자작!
예리하기 짝이 없는 검기들이 사방에서 짓쳐들어왔다.
초악량이 손을 틀어 눈앞으로 날아드는 검기를 잡아챘다.
찌이익.
허공에서 와해되는 검기 사이로 전각 곳곳에서 쏟아져 나오는 청성파 무인들의 모습이 보였다.
뒤늦게 청성궁에 변고가 닥친 것을 인지한 청성 문하들이 저들의 장문인을 구하기 위해 달려오고 있었던 것이다.
“검진! 대라검진(大羅劍陳)을 펼쳐라!”
청명산인이 고래고래 고함을 질렀다.
검을 든 청성 문하들이 순식간에 초악량을 겹겹이 에워쌌다. 일사불란한 움직임에 초악량은 내심 침음했다.
어느 문파나 절기로 꼽히는 합격술이 존재한다.
소림의 나한진(羅漢陣)이나 개방의 타구진(打狗陣)이 대표적이며, 청성파의 대라검진 또한 무당의 칠성검진(七星劍陣), 화산의 매화검진(梅花劍陣)과 더불어 천하삼대검진으로 인정받는 진산절예(鎭山絶藝)였다.
비록 검진의 구성원 개개인의 무위는 자신에 비할 바가 못 되었으나, 일단 검진이 발동되면 그라도 함부로 자신할 수가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차차차창.
자신을 향해 세워진 수십 자루의 검.
그 한 자루 한 자루에서 뿜어지는 삼엄한 검기의 그물이 초악량을 에워싸기 시작했다.
“…….”
초악량의 눈빛이 무겁게 가라앉았다.
처음 경험하는 것은 아니나 새삼 느끼는 검진의 압력은 실로 대단했다. 어느새 검진이 일으키는 무형의 기세에 기혈이 들끓고 있었다.
츄릿.
섬뜩한 파공음에 초악량이 고개를 틀었다.
검진 안에서 튀어나온 한 자루 검이 아슬하게 뺨을 긁고 지나갔다.
이를 시작으로 수많은 검기가 비처럼 쏟아지기 시작했다.
정교하게 맞물려 현란하게까지 느껴지는 동작이었다.
쩌저적!
대지가 검기에 길게 갈라지며 사방으로 돌조각이 튀어 올랐다.
동시에 난무하는 푸른 검광이 초악량을 집어삼켰다.
그 모습을 확인한 청명산인이 비틀거리며 신형을 일으켰다. 제아무리 천하오절이라 해도 결국에는 사람. 동피철골이 아닌, 피와 살로 이루어진 인간일 뿐이다.
결국 언젠간 지치기 마련.
그 순간.
청명산인은 갑자기 머리털이 쭈뼛 섰다.
그 이유를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눈앞을 가득 메운 무수한 검영. 그 안에서 무언가가 차갑게 빛나고 있었다.
그건 한 쌍의 눈이었다.
무슨 수를 썼는지 모르나 눈앞의 검진이 한차례 크게 출렁였다. 빼곡한 검기의 그물을 뚫고 한 사람이 튀어나온 것도 그때였다.
“미친놈!”
청명산인이 기함했다.
등 뒤에 쏟아지는 검기의 파도를 무시한 채 오직 자신만을 노려보며 달려드는 초악량 때문이었다.
검진의 공격을 온몸으로 받아 내더라도 자신만은 죽이겠다는 광기에 가까운 의지가 고스란히 전해졌다.
청명산인이 황급히 바닥을 굴렀다.
니추공(泥鰍功).
혼탁한 논물 사이를 헤집는 미꾸라지라는 의미에 걸맞게 나려타곤만큼이나 볼품없는 신법이었다.
그러나 지금 상황에서는 유일한 구명절초(救命絶招)였다.
그와 동시에 초악량의 신형이 한 차례 크게 휘돌았다.
피잉.
초악량의 손을 떠난 돌조각 하나가 한 줄기 빛살처럼 청명산인을 향해 쇄도했다.
빠각.
“크아악!”
무릎이 박살 난 청명산인이 처절한 비명을 흘리며 나뒹굴었다.
꽈릉!
뒤늦게 초악량이 있던 곳에서 천둥소리가 터져 나왔다. 날아든 돌조각이 소리보다 빨랐기에 벌어진 현상이었다.
“……!”
청명산인의 얼굴이 경악으로 굳어졌다.
바로 지척에서 느껴지는 섬뜩한 살기!
고개를 들어 올리자 언제부터인지 초악량이 유부의 사신처럼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크윽!”
어디서 그런 힘이 나왔는지 청명산인이 튀어 오르듯 뒤로 신형을 날렸다. 그러나 그때는 이미 초악량의 발이 바닥을 구르고 있었다.
쿵.
대지에서 시작된 충격이 발목을 타고 올라오는 순간, 초악량의 몸이 나선을 그리며 움직였다.
다리와 허리를 거쳐 회전력이 더해진 경력이 고스란히 그의 손으로 전달되었다.
팍.
초악량의 손바닥이 청명산인의 가슴에 닿았다.
솜이불을 두드린 것 같은 가벼운 소리. 그러나 그 결과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
입과 코에서 폭포수 같은 피를 뿜어내며 청명산인이 힘없이 주저앉았다.
더 볼 것도 없었다.
즉사였다.
전설상의 금강불괴가 아닌 이상 전력을 실어 쳐 낸 초악량의 전사경(纏絲勁)을 얻어맞고도 무사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
일순 장내에 적막이 내려앉았다.
취임식을 불과 보름 남기고 저들의 수장인 장문인이 눈앞에서 끔찍하게 살해당한 것이다.
그것도 제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장문인!”
초악량의 등 뒤에서 뒤늦게 절규가 터져 나왔다.
청성 문하들의 경악과 충격은 이내 거대한 분노가 되어 초악량을 덮쳤다.
거대한 해일처럼 눈앞에서 무너져 내리는 검기의 벽.
그 앞에서 초악량은 조용히 웃었다.
이미 손가락 하나 까닥할 힘도 없었다. 처음 검진을 뚫고 나올 때 모든 힘을 쏟아부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나쁘지 않은 삶이었지?’
그렇게 스스로 되뇌어 본 초악량이 이내 쓰게 웃었다.
모든 원한을 마무리 지어 후련할 줄 알았는데, 의외로 씁쓸함이 밀려들었다.
‘단 의원이 슬퍼하지 않았으면 좋겠군.’
머지않아 자신의 죽음이 알려질 터.
누구보다 마음 아파할 단악선을 떠올리니 가슴 한편이 저릿했다.
그러나…….
자신은 혈수존자.
천하오절에 당당히 이름을 올린 자다.
“내가…….”
남은 힘을 쥐어짠 초악량이 최후의 동귀어진을 준비했다.
“초악량이다.”
강호의 원한은 돌고 도는 법.
비록 자신의 원한은 해결했지만 저들의 원한은 이제 막 시작되었다.
세상에는 영원한 비밀이란 없다.
언젠가 단악선과 자신의 관계가 알려질 것이고, 저들의 분노가 단악선에게 향하지 않으리란 보장은 없다.
갈 때 가더라도 최대한 저들을 많이 데려가야 한다.
감히 단악선을 건드릴 엄두가 나지 않을 정도로.
그때였다.
“……?”
초악량은 기이한 기분을 느끼고 고개를 들었다. 유성처럼 떨어지는 거대한 인영이 눈에 들어왔다.
‘저놈이 왜?’
범계위였다.
가공할 속도로 떨어진 범계위가 검진 한가운데 그대로 내리꽂혔다.
꽈아앙!
천지를 뒤흔드는 폭발에 휩쓸린 청성 문하들이 비명을 지르며 나뒹굴었다.
난데없이 들이닥친 재액에 청성 문하들이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는 와중, 고개를 돌려 초악량과 시선을 마주한 범계위가 피식 웃었다.
“어우, 약골.”
“……!”
초악량의 얼굴이 와락 구겨졌다.
온몸에 맺혀 비명을 질러 대는 부상보다 그 밉살스런 한마디가 더 뼈아팠다.
그러거나 말거나 범계위가 한껏 으스대며 초악량에게 다가섰다.
“이제 그만 인정하슈.”
“……?”
“역시 내가 없으면 안 된다고.”
초악량이 부르르 몸을 떨었다.
이대로 주화입마에 빠지는 것이 아닌가 싶을 만큼 참기 힘든 수치심과 모욕감에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범계위가 초악량을 둘러업으려고 할 때 초악량이 제지했다.
“잠깐.”
그리곤 품속에서 무언가를 꺼내 청명산인의 시신 옆에 툭 던졌다.
그의 젊은 시절 모습이 새겨져 있는 목상이었다.
범계위가 눈살을 찌푸렸다.
“그거 악취미라니깐.”
“이게 마지막이다.”
범계위가 묘한 눈빛으로 초악량에게 물었다.
“이제 다 끝난 거유?”
희미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초악량은 대답을 대신했다.
“그럼 갑시다. 단 의원이 기다리고 있수.”
범계위가 신형을 날렸다. 그리고 그대로 눈앞의 자욱한 먼지구름을 뚫고 사라졌다.
한참 후.
먼지구름이 가라앉고 청성 문하들이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두 사람의 모습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