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104)
신마의선-104화(104/500)
신마의선 (104)
털썩.
“큽!”
초악량의 입에서 고통스러운 신음이 흘러나왔다.
짐짝 던지듯 우악스럽게 자신을 내려놓는 범계위를 노려보던 초악량이 목구멍까지 올라온 욕설을 삼켰다.
단악선 때문이었다.
금방이라도 눈물을 쏟을 것 같은 얼굴로 자신을 보는 단악선을 향해 초악량이 어색하게 웃었다.
“미안하다. 걱정을 끼쳤구나.”
“아니에요. 무사히 돌아오셨으니 그걸로 됐어요.”
그렇게 말한 단악선이 범계위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고마워요. 초 아저씨를 모셔 와 주셔서.”
“응? 아니야. 별거 아니었어.”
대수롭지 않게 대답한 범계위가 초악량을 보며 씨익 웃었다.
“명색이 십대악인의 수좌인데 이 정도는 해야지. 누구와는 달리 나는 아랫사람들을 잘 챙기니까.”
초악량의 눈썹이 꿈틀했다.
기회를 놓치지 않고 한껏 생색을 내는 범계위의 모습이 아니꼬웠지만 뭐라 할 수 없었다. 그가 아니었다면 지금 이 자리에 서 있을 수도, 단악선을 다시 만날 수도 없었을 터.
“고맙다, 그래.”
마지못해 건넨 초악량의 인사에 범계위가 호탕한 웃음을 터트렸다.
“으하하. 새삼스럽게 무슨. 초 형이 내게 신세를 진 게 어디 한두 번이오?”
그러다 문득 따가운 시선을 느끼고 고개를 돌렸다.
못마땅한 눈빛을 던지는 한설화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적당히 해.”
“쳇.”
결국 그녀에게 한 소리 듣고 나서야 입을 다무는 범계위였다.
이때 초악량에게 다가선 단악선이 탄식을 흘렸다.
“아아…….”
단악선이 한껏 눈살을 찌푸렸다.
그도 그럴 것이, 한눈에 봐도 초악량의 상태가 몹시 나빠 보였기 때문이다. 창백한 안색은 말할 것도 없고, 입가에는 핏물 자국이 선명했다.
한데 자세히 살필수록 상황은 더 심각했다.
찢기고 베인 옷자락.
그 사이로는 끔찍하게 입을 벌린 자상들이 빼곡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아직까지 출혈이 멎지 않은 부상들도 있었다.
그나마 뼈가 드러날 정도로 깊은 상처가 없다는 게 다행일 정도.
“험험.”
스스로도 무안하고 민망했던지 초악량이 헛기침을 터트렸다. 그리고 차마 단악선과 시선을 마주하지 못하고 먼 곳에 시선을 던졌다.
그는 더 이상 청성 문하 앞에서 장문인을 때려죽인 혈수존자가 아니었다. 거의 나았던 부상을 악화시켜 돌아온 염치없는 환자일 뿐인 것이다.
“우선 치료부터 해요.”
단악선이 침을 꺼내 들자 초악량의 눈빛이 미미하게 흔들렸다.
“어째서 마령침을……?”
“글쎄요. 어째서일까요?”
말없이 서로를 물끄러미 바라보길 잠시, 단악선이 빙그레 웃었다.
“지금 상황에서 가장 적절한 치료법이니까요.”
초악량이 단악선을 따라 어색하게 웃었다. 그러나 정작 시선은 단악선의 손에 들린 마령침에 고정된 채 떨어질 줄 몰랐다.
그 모습에 가두달이 새삼스런 눈빛으로 단악선을 다시 보았다.
당금 강호에 그 누가 천하의 혈수존자로 하여금 이렇게 두려워하는 표정을 짓게 할 수 있단 말인가?
쌤통이라는 듯 웃고 있는 범계위와 한설화의 모습도 마찬가지.
단지 초악량이 돌아온 것뿐이었는데도 이전과는 분위기가 확연히 달라져 있었다.
그 모습에 가두달은 다시 한 번 묘한 감정을 느꼈다.
지금껏 살아오며 느껴 보지 못한 소속감과 동질감. 꼬집어 설명하기 힘든 유대감까지.
‘이게 왜 부럽지?’
가두달은 마음이 복잡해졌다.
“크윽…….”
초악량의 입에서 신음이 터져 나온 것도 그때였다.
한껏 얼굴을 일그러트린 그의 모습에 지켜보던 가두달도 인상을 찌푸렸다. 표정만으로도 지금 느끼고 있을 초악량의 고통이 고스란히 느껴졌던 것이다.
반면 단악선은 침착한 눈빛으로 초악량의 몸 곳곳에 침을 찔러 넣고 있었다.
“다시 긴 치료가 필요하겠어요.”
그 말에 잠자코 상황을 지켜보던 범계위가 불쑥 끼어들었다.
“어? 그럼 위화요법도 다시 해야 하는 거야?”
“아무래도요.”
고개를 끄덕인 단악선이 포옥 한숨을 내쉬었다.
“무리하게 본원진기(本原眞氣)까지 끌어다 쓰는 바람에 기껏 자리를 잡아 가던 기맥이 크게 흔들렸어요. 그로인해 내상이 깊어진 건 말할 것도 없고요. 당분간은 위화요법과 치료를 병행해야 할 것 같아요.”
“…….”
초악량이 꿀 먹은 벙어리처럼 굳게 입을 다물었다.
지은 죄가 있으니 입이 있어도 할 말이 없는 것이다.
반면 범계위는 내키지 않는 표정으로 한설화 쪽을 힐끔거렸다.
“그럼 또 저 마녀랑 손을 맞대야 하잖아.”
한설화가 황당한 눈빛을 흘렸다.
“나라고 좋은 줄 알아?”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범계위와 한설화가 서로를 노려보았다.
금세 분위기가 험악해지자 결국 단악선이 나섰다.
“부탁드려요.”
그 한마디에 범계위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어쩔 수 없지.”
한설화 역시 마찬가지.
“흥.”
차가운 코웃음과 함께 홱 고개를 돌렸다.
그런 그들의 모습이 가두달은 마냥 신기하기만 했다.
천하를 떨어 울리는 고수들이 단악선의 한마디 말에 서로의 고집을 꺾다니. 정말이지 평생에 두 번 다시 보기 힘든 진귀한 광경이 아닐 수 없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초악량이 입을 열었다.
“어째서 묻지 않느냐?”
“중요한 건 초 아저씨가 돌아왔다는 거니까요.”
진심이 느껴지는 단악선의 말에 초악량의 눈 위로 감출 수 없는 감격이 떠올랐다.
단악선이 얼마나 자신을 염려하고 있었는지, 그 짧은 말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가만히 단악선을 바라보던 초악량이 입을 연 것은 한참의 시간이 지나고 나서였다.
“내가 일곱 살이 되던 해였다.”
그렇게 운을 뗀 초악량이 가슴 속에 담아 뒀던 자신의 이야기를 꺼냈다.
어렸을 때 겪은 굶주림과 생사의 기로에서 사부를 만난 것.
청성칠자에 의해 사부님을 잃은 뒤 복수를 위해 혈수존자로 불리게 된 연유까지. 그리고 새로운 청성 장문인을 죽여야 했던 이유를 자세히 설명했다.
단악선은 이미 범계위에게 들어 초악량의 과거를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다. 그러나 당사자를 통해 듣는 이야기는 그보다 훨씬 괴롭고 가슴 아팠다.
초악량의 이야기가 끝나자 장내에는 숙연한 분위기가 내려앉았다.
“이게 나라는 사람이다.”
단악선이 복잡한 눈빛으로 초악량과 시선을 마주했다.
“많이 힘드셨겠어요.”
단악선이 건넨 그 말에 초악량이 의외란 표정을 지었다.
“내가 싫지 않느냐? 사람을 살리는 네게 수많은 사람의 피를 묻히고 돌아온 내가 말이다.”
“제가 뭐라고 아저씨를 평가하고 재단할 수 있겠어요. 전 그저…….”
“……?”
“더 이상 아저씨가 힘들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
초악량의 눈빛이 격하게 흔들렸다.
단악선이 건넨 눈빛에 담겨 있는 진심이 이 순간 그 어떤 말보다 큰 위로가 되었다.
가두달의 당혹성이 울려 퍼진 것도 그때였다.
“어? 선배님, 지금 혹시 우십니까?”
모두의 시선이 자신에게 모아지자 범계위가 펄쩍 뛰었다.
“울기는 누가! 배가 고파서 그래!”
황급히 소매로 눈가를 훔치는 범계위의 두 눈은 어느새 붉게 충혈되어 있었다.
거기다 콧물을 훌쩍이는 모양새까지…….
가두달이 슬쩍 웃었다.
“범 선배님은 배가 고프면 눈물이 나시는군요.”
“야.”
“네?”
범계위가 정색하며 가두달을 노려봤다.
“죽을래?”
“히끅!”
난데없이 쏟아진 가공할 살기.
이와 맞닥뜨린 가두달이 화들짝 놀라 딸꾹질을 했다.
천하의 망산초자에게 스스럼없이 농담을 건네다니, 평소라면 엄두도 못 낼 짓이었다.
분위기에 취해 자신도 모르게 선을 넘은 것이다.
그가 자초한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가두달을 구해 준 것은 단악선이었다.
“적어도 열흘 정도는 치료에 집중하는 게 좋겠어요. 무당은 그 후에 방문하도록 해요.”
상황이 상황인 만큼 반대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날 밤.
해가 떨어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단악선은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예상보다 치료가 길어지면서 상당한 체력과 심력을 소모한 탓이다.
자신의 무릎에 기대 잠든 단악선을 초악량이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보일 듯 말 듯, 희미한 미소를 머금고 있는 초악량.
더없이 인자하고 온화한 눈빛은 마치 자식을 바라보는 아비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제 후련하슈?”
혹시라도 단악선이 깰세라 범계위가 속삭이듯 물었다.
“글쎄다.”
모호한 초악량의 대답에 범계위가 다시 물었다.
“어쨌든 복수는 다 한 것 아니오?”
“내 복수는 끝났지만 또 다른 혈채(血債)를 만들었지.”
청명산인이 절명하던 순간 자신을 저주하며 이를 갈던 청성 문하들의 눈빛이 지금도 눈앞에 선명했다.
“핏값도 핏값 나름이지.”
범계위가 피식했다.
“그깟 청성파 놈들이 뭐 그리 대단하다고.”
“…….”
“걱정 마슈. 놈들이 초 형에게 혈채를 받아 내려면 적어도 두 번은 환골탈태를 해야 할 테니까. 게다가 놈들이 상대해야 할 사람이 어디 초 형뿐인가? 놈들이 나서면 나도 가만히 있지 않을 거요.”
초악량이 나직하게 한숨을 흘렸다.
“저들의 복수가 다른 곳을 향할까 봐 걱정하는 게다.”
초악량이 곤히 잠든 단악선을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그러다 문득 따가운 눈빛을 느끼고 고개를 들었다.
언제 왔는지 한설화가 등 뒤에서 자신을 응시하고 있었다.
괜히 무안해진 초악량이 슬쩍 눈을 돌리려는 순간.
“거기 얼간이 둘. 잘 들어.”
냉기를 풀풀 날리며 한설화가 입을 열었다.
“이제 정말 아무것도 하지 마.”
“뭐?”
범계위의 반문에 한설화가 아미를 치켜세웠다.
“그게 뭐든, 어떤 일이든 아무것도 하지 말라고.”
“난 그저 초 형을 구한 건데?”
범계위가 입을 열자 초악량이 범계위의 옆구리를 쿡 찔렀다.
그만큼 한설화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기 때문이다.
이미 비등점을 넘어 한껏 끓어오른 노기가 눈빛을 통해 고스란히 전해졌다. 살짝만 건드려도 그대로 폭발할 것처럼 더없이 위험한 상태였다.
“…….”
“…….”
초악량과 범계위가 한설화의 시선을 외면하며 침묵했다.
그러기를 잠시.
무언가를 떠올린 초악량이 심각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이번 일로 자칫 무림맹이 나설지도…….”
“초 오라버니.”
초악량의 말을 중간에서 자른 한설화가 조용히 웃었다.
“아무것도 하지 마. 생각도 하지 말고.”
초악량이 어색하게 헛기침을 흘렸다.
가만히 초악량과 범계위를 노려보던 한설화가 이내 잠든 단악선을 안아 올렸다.
그리곤 뒤도 돌아보지 않고 저만치 성큼 걸어갔다.
“저기 초 형…….”
“쉿.”
범계위의 말을 자른 초악량이 눈빛으로 침묵을 종용했다. 범계위 역시 한설화 쪽을 힐끔거리다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길었던 하루가 끝나 가고 있었다.
* * *
제갈연은 탁자에 쌓인 산더미 같은 서류를 보며 한숨을 내뱉었다.
보는 것만으로 머리가 지끈거릴 지경이다.
그녀가 천이단주를 맡은 이후 전례 없는 양의 보고서였다.
게다가 지금 이 시간에도 곳곳에서 전서가 날아들고 있었다.
전서구는 말할 것도 없었고, 인편을 통해 도착하는 것까지 생각하면……, 정신이 까마득할 지경이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청성파 장문인 사망.’
내용이 대동소이하다는 점이었다.
장문인을 살해한 흉수는 혈수존자. 거기에 한술 더 떠 범계위가 나타났다는 내용도 담겨 있었다.
청성파의 인명 피해가 막심하다는 보고도 있었는데, 그녀가 생각할 때 가장 큰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중요한 건 그런 피해를 입고도 청성파가 두 사람을 놓쳤다는 점이다.
‘한심하기 이를 데가 없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