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105)
신마의선-105화(105/500)
신마의선 (105)
제갈연이 탁자 가득한 서류들 중 핵심적인 내용을 몇 개 추렸다. 그리고 곧장 맹주의 집무실로 향했다.
하지만 막상 집무실에 도착한 그녀는 안으로 들어설 수 없었다.
“대체 어째서! 왜 아직도 무림맹이 나서지 않는 겁니까!”
한껏 격앙된 음성이 집무실 안에서 터져 나왔기 때문이다.
“어허! 이 사람이! 맹주님 앞이요! 예의를 지키시오!”
“예의? 예의라 하셨소? 당신들이 죽었다 공표한 혈수존자가 본 파에 나타났소! 같은 편에게조차 진실을 은폐한 귀 맹이 예의를 말한단 말이오?”
“뭐라?”
“어디 입이 있다면 말해 보시오. 이게 무림맹이 말하는 신의와 도리요?”
눈살을 찌푸린 제갈연이 나직이 한숨을 흘렸다.
집무실 안의 상황을 짐작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운정진인이라 했었나?’
몇 달 전에 사망한 청성파의 전대 장문인의 사제가 정식으로 항의하기 위해 한달음에 이곳까지 온 것이다.
“본 파는 귀 맹의 미온적인 대처에 실망을 금할 수 없습니다!”
집무실 문이 벌컥 열리며 중년의 도사 한 명이 벌게진 얼굴로 성큼 걸어 나왔다.
노기를 감출 생각도 하지 않고 씩씩대며 계단을 내려간 그는, 멀리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던 청성 문하들과 합류한 뒤 뒤도 돌아보지 않고 무림맹을 빠져나갔다.
제갈연은 그제야 집무실로 들어섰다.
태사의에 깊이 몸을 묻은 채 손으로 이마를 짚은 남궁백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집무실 곳곳에 자리한 무림맹의 고위 인사들 역시 마찬가지.
한바탕 고성이 오고 간 뒤라 진이 빠진 표정이었다.
그 침중한 얼굴들을 보고 있자니 제갈연은 내심 열불이 치밀었다.
하나같이 그저 맹주의 입만 쳐다보고 있는 허수아비들.
맹을 위해 서슴없이 맹주에게 상신(上申)을 해야 할 자들이 남궁백의 눈치나 살피고 있다니! 저들이야말로 무림맹의 미래를 어둡게 만드는 적폐다.
‘뭐, 상관없나.’
제갈연은 무표정한 얼굴로 속내를 감췄다.
원하던 방향은 아니었지만 어쨌거나 상황은 그녀에게 유리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천이단주 제갈연이 맹주님을 뵙습니다.”
남궁백이 피곤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최근 사방에서 밀려드는 정치적 압박에 적지 않게 시달린 탓이었다.
“십대악인 토벌 실패에 대한 비난이 거세지고 있습니다.”
“뻔한 이야기는 그만두지.”
제갈연이 남궁백에게 올리려던 항의 서한들을 다시금 탁자 위에 내려놓았다.
“그들의 행방은 찾았나?”
남궁백의 물음에 제갈연이 고개를 저었다.
“초악량과 범계위를 말씀하시는 것이라면 죄송하지만 아직 오리무중입니다.”
남궁백이 미간을 찡그렸다.
제갈연이 재빨리 말을 이어 갔다.
“하나 그들로 짐작 가는 자들의 행적은 파악하고 있었지요.”
“또 그 이야기인가?”
남궁백의 핀잔에도 제갈연은 뜻을 꺾지 않았다.
“양호유환(養虎遺患)이라 했습니다. 어째서 화근이 될 만한 일을 방치하시는 겁니까?”
제갈연이 목소리를 높였다.
“현재 무당산 인근에 머물고 있는 신의의 아들. 그 일행에 초악량과 범계위가 포함되어 있다고 사료됩니다.”
남궁백의 눈썹이 꿈틀했다.
조금씩 선을 넘는다 생각했던 제갈연이 이제는 아예 공개 석상에서 대놓고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고 있었다.
“그 말에 책임질 수 있나?”
나직이 으르렁대는 남궁백의 말에 제갈연이 고집스레 고개를 끄덕였다.
“하시라면 제 목이라도 걸지요.”
집요하리만치 자신의 주장을 꺾지 않는 제갈연의 모습에 남궁백이 침음했다.
“결단을 내리셔야 합니다. 청성파의 전언에 의하면 초악량이 상당한 부상을 입었다고 합니다.”
그야말로 물실호기(勿失好機).
“때를 놓치면 두 번 다시 이와 같은 기회는 오지 않을 것입니다.”
남궁백은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지만, 보는 눈이 너무나 많았다.
‘어찌 은인에게 추살령을 내린단 말인가.’
눈을 감고 고민하던 남궁백은 결정을 내렸다.
“그리 자신한다면 내가 직접 가서 확인하겠다.”
실수를 피할 수 있는 유일한 선택이다.
‘됐다.’
그 안에 담긴 의미를 깨달은 제갈연이 조용히 웃었다.
양금택목(良禽擇木).
자고로 현명한 새는 가려서 둥지를 튼다 했다.
한때는 남궁백이야말로 그녀가 진정 원하던 무림맹주라 믿었던 적도 있었다.
하나 지금은 아니다.
아집에 사로잡혀 제대로 된 판단을 내리지 못하는 자는 맹주로서 자격 미달이다. 그런 내심과 달리 제갈연은 지극히 공손한 태도로 고개를 숙였다.
“맹주님의 용단에 감사드립니다.”
* * *
호북성 균현(均縣) 남쪽에 위치한 도교의 영산(靈山) 무당산.
일흔두 개의 봉우리와 스물여섯 개의 바위산.
그와 더불어 오랜 역사와 이야기를 간직한 전각들.
이곳의 어느 것 하나 유명하지 않은 것이 없다. 하지만 지금의 무당산을 유명하게 한 것은 따로 있었다.
무림의 태산북두라 불리는 소림.
그와 더불어 정파를 떠받치는 기둥인 무당파가 바로 이곳에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무당산 아래 위치한 마을들이 번성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성업 중인 객잔만 해도 무려 서른 곳을 헤아렸다.
그러나 그중 하나.
성원객잔만큼은 유독 손님을 받지 않았다.
얼마 전 이곳을 찾은 일행이 객잔을 통째로 빌렸기 때문이다.
한적한 객잔 후원에 마련된 별채.
“당분간은 절대 안정하셔야 해요.”
단호한 단악선의 말에 초악량이 조용히 웃었다.
“그러마.”
소독을 마친 침구를 상자 안에 정리한 단악선이 한껏 기지개를 켰다.
요 며칠 초악량을 치료하느라 체력을 꽤나 소진했다.
“그럼 전 좀 나갔다 올게요. 필요한 약재가 있어서요.”
단악선이 일어나자 범계위도 기다렸다는 듯 엉덩이를 들썩였다.
그러나 그 순간 한설화의 매서운 눈빛이 날아들었다.
“아무것도 하지 말라고 했을 텐데.”
움찔한 범계위가 마지못해 다시 자리에 앉았다.
다시 한 번 두 사람에게 눈빛으로 경고한 한설화가 단악선을 따라나섰다.
단악선은 곧장 약재상으로 향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약재상 주인이 자리를 비운 상태였다.
입구 앞에 쪼그리고 앉아 하릴없이 주인이 돌아오길 기다리던 그때 한설화가 단악선을 향해 물었다.
“주인이 언제 돌아올지 모르니 그동안 다른 곳을 둘러보는 게 어떠냐?”
기다리는 게 어지간히 지루했던 모양이다.
반색하는 단악선을 향해 한설화가 미소를 건넸다.
“어차피 시간은 많으니 천천히 둘러보아라. 보고 듣고, 경험하는 모든 것이 다 공부니까.”
“공부요?”
“그래.”
고개를 끄덕인 한설화가 활기찬 저잣거리를 응시했다.
“내가 처음 북해빙궁을 떠나 무림에 나섰을 때 가장 힘들었던 게 뭔지 아느냐?”
“뭔데요?”
“아는 게 없다는 점이었다.”
한설화가 가볍게 실소했다.
“그때는 인세에 대해 정말 무지했다. 그래서 많은 실수를 저질렀지. 곤란한 상황에 처한 적도 많았고.”
“아주머니가 그러셨다니 믿기지 않는데요?”
“한두 번이 아니었다. 아주 많은……. 실수를 했지.”
당시를 떠올린 한설화의 눈빛은 어느새 아련하게 물들었다.
“사람을 상대하는 법을 몰랐으니까.”
무엇을 떠올린 것일까.
한설화의 눈빛이 한순간 서글퍼졌다.
우두커니 서서 과거의 기억을 더듬는 그녀의 얼굴에는 감출 수 없는 회한과 슬픔이 묻어났다.
“자책하지 마세요. 그게 무엇이든 이미 지나간 일인걸요.”
단악선이 환하게 웃으며 한설화를 마주 보았다.
“덕분에 전 아주머니께 이렇게 배우잖아요.”
위로를 건네며 다독이는 단악선이 기특했던지 한설화가 조용히 웃었다.
과거의 실수도, 여전히 후회되는 아픈 기억도…….
어쩌면 그 모든 것이 이 아이를 만나기 위해 미리 겪은 것이 아니었을까 생각하니 한결 마음이 편해졌다. 그렇게 두 사람은 마을과 시장을 거닐며 천천히 둘러보기 시작했다.
중원은 땅이 넓은 만큼 각 지역마다 지역색이 뚜렷했다.
그래서인지 단악선은 아이다운 호기심을 드러내며 이것저것 구경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그렇게 얼마나 돌아다녔을까.
단악선이 문득 걸음을 멈춰 섰다.
번화한 시장과 한참 동떨어진 마을 어귀.
인적 드문 외곽 지역에 위치한 구석진 공터 앞이었다.
“지금 저거 싸우는 건가요?”
삼십여 장 정도 떨어진 곳.
흙먼지를 일으키며 어지럽게 뒤얽힌 두 인영을 발견한 단악선이 한설화에게 물었다.
잠시 그곳을 응시하던 한설화가 고개를 저었다.
“아무래도 친구 사인 것 같구나.”
“친구요?”
호기심이 동한 단악선이 그쪽으로 걸어갔다.
그들과 거리가 가까워지자 저들이 주고받는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오늘 승부를 보자! 결국 넌 나를 형님이라 불러야 할 거야.”
“네가 그리되겠지.”
“그렇게 자신 있다면 어디 들어와 봐, 벽창호 아우!”
“내 이름은 벽창호가 아니다.”
“야! 별명이잖아, 별명. 친근함을 담은.”
“거부한다. 마음에 들지 않아.”
“몇 대 맞으면 마음에 들 거야!”
단악선은 공방을 주고받는 와중에도 쉴 새 없이 떠들어 대는 두 사람의 모습이 신기했다.
그래서 아예 자리를 잡고 관전을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단악선은 두 사람이 자신과 비슷한 또래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였을까.
절로 흥미가 일었다.
두 사람의 실력은 거의 호각지세. 말 그대로 막상막하였다. 그러다 어느 순간 단악선이 자신도 모르게 탄성을 흘렸다.
“와! 어떻게 저걸 피하지?”
단악선이 두 사람을 가리키며 한설화에게 물었다.
“방금 보셨죠? 틀림없이 턱을 얻어맞을 거라 생각했는데, 어깨로 받아 공격을 흘려 냈어요. 거기다 거리를 좁히며 반격을 했고요.”
단악선은 어느새 두 사람의 비무에 흠뻑 매료되어 있었다.
자신과는 궤와 결이 다른 두 사람의 무공도 매력적이었지만 그들이 지닌 무위 역시 상당했기 때문이다.
“무당의 제자 같구나. 그리고 다른 한 명은…….”
한설화가 자신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렸다.
“개방의 소걸개(小乞丐)인 듯싶고.”
“그래서 저렇게 잘 싸우는 거군요.”
한껏 몰입해 비무를 관찰하는 단악선의 모습에 한설화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것도 좋겠지.’
다양한 경험이야말로 훗날 단악선에게 도움이 될 터.
단악선의 입에서 또다시 탄성이 터져 나왔다.
“와! 저 개방 제자의 움직임은 정말 예측하기가 어렵네요. 비틀거리는 모습이 위태해 보였는데, 그게 상대의 공격을 끌어들이기 위한 허초였어요!”
한설화의 눈에 이채가 서렸다.
단악선이 말한 동작을 그녀 역시 보았기 때문이다.
‘취화선보(醉化仙步)?’
개방의 절예 중 하나가 분명하다.
즉, 개방의 제자라고 아무나 익힐 수 있는 무공이 아니다.
‘그러고 보니…….’
개방의 제자를 상대하는 무당의 어린 도동(道童) 역시 마찬가지. 아직 무르익지 않아 제대로 드러나진 않았지만 이따금 무당 절학이 느껴졌다.
“와! 저걸?”
단악선은 신이 나서 외쳤다.
두 사람의 비무에 완전히 몰입한 나머지 자신도 모르게 목소리가 커진 것이다. 두 사람이 갑자기 손을 거두며 훌쩍 물러섰다.
갑작스럽게 중단된 비무에 단악선이 아쉬워하고 있을 때였다.
“아는 애야?”
“아니.”
두 사람이 단악선을 향해 황당한 눈빛을 던졌다.
그러기를 잠시.
“넌 누구지?”
무당의 제자로 짐작되는 소년이 물었다.
“나?”
“그래, 너.”
소년의 날 선 눈빛에 단악선이 당황해 대답했다.
“나는 단악선……이야.”
멈칫한 무당 제자가 이내 송아지 눈망울처럼 순진한 눈을 깜박였다.
“그렇군.”
그 말에 나란히 서 있던 거지 소년이 한숨을 터트렸다.
“그렇군은 무슨 그렇군이야. 이름을 듣자고 물어본 게 아니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