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106)
신마의선-106화(106/500)
신마의선 (106)
핀잔을 던진 어린 거지가 친구를 대신해 앞으로 나섰다.
“어째서 우리 비무를 훔쳐본 거지? 그게 예의가 아니라는 거 몰랐어?”
“어? 그런 거였어?”
단악선이 놀란 얼굴로 한설화를 올려다보았다.
한설화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훔쳐볼 만큼 저들의 실력이 대단한 건 아니었지만, 그것이 암묵적인 규칙인 건 사실이다.
“미안해. 그런 건 줄 몰랐어.”
단악선의 사과에 이번엔 어린 거지가 당황했다.
자신들의 비무를 관전하며 제멋대로 분석해 떠들어 대던 것으로 미루어 무공을 익힌 것이 틀림없었다.
그런데 몰랐다니…….
그때였다.
“좋아. 사과를 받아들이지.”
무당 제자가 고개를 끄덕이자 어린 거지가 발끈했다.
“왜 네 멋대로 용서해 버리는 건데?”
“상대가 잘못을 인정한 이상 응당 용서하는 것이 군자의 도리니까.”
“뭐래? 아직 도명첩(道名牒)에 이름도 올리지 못한 애송이 도사가.”
“그러는 넌?”
거지가 씩 웃으며 구멍이 숭숭 나서 남루하기 짝이 없는 자신의 누더기를 들어 보였다.
“누가 봐도 난 이미 완벽하게 내외일체(內外一體)를 이룬 거지잖아. 너랑 달리 벌써 별호도 생겼다고.”
“진짜?”
“그럼. 풍운쾌걸(風雲快乞)! 남들은 나를 풍운쾌걸 방소방이라 부르지.”
“그런데 왜 난 그걸 몰랐지?”
“그, 그거야…….”
자신을 방소방이라 밝힌 거지 소년이 눈에 띄게 당황했다.
그러다 괜히 단악선에게 화살을 돌렸다.
“어쨌든 난 아직 용서하지 않았어.”
당황해서 어찌할 줄 모르는 단악선의 모습에 결국 한설화가 나섰다.
“그런데 여기는 길거리가 아니더냐?”
뒤늦게 한설화의 존재를 깨달은 두 소년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비록 세상을 오래 산 것은 아니었지만 어린 그들이 보기에도 눈앞의 여인이 지닌 미모는 인세의 아름다움을 아득히 벗어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기를 잠시.
“듣고 보니 그렇군.”
고개를 끄덕인 무당 제자가 단악선을 향해 포권을 취했다.
“정식으로 사과하지. 내가 너무 성급했다.”
그 모습에 방소방도 한숨을 내쉬더니 마지못해 고개를 까닥였다.
“나도 미안.”
“응? 아니야. 괜찮아. 우리 전부 모르고 그런 건데, 뭘.”
단악선이 웃으며 무당 제자를 향해 말을 건넸다.
“그런데 넌 이름이 뭐야?”
“내 이름은 운중산이다.”
“좋은 이름이네. 잘 어울려.”
단악선의 칭찬에 운중산이라 자신을 소개한 소년이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방소방도 자신을 소개했다.
“나는 방…….”
“알아. 아까 들었어. 방소방 맞지? 별호는 풍운쾌걸이고.”
“어? 맞아. 그게 바로 나야.”
헤벌쭉 웃던 방소방이 단악선에게 물었다.
“너도 무공 익혔지?”
“응. 작년부터 배우기 시작했어.”
어느새 세 사람은 스스럼없이 어울려 대화를 주고받았다.
“두 사람 모두 대단하더라.”
단악선의 칭찬에 운중산은 겸연쩍게 웃었고, 방소방은 뿌듯한 표정으로 반문했다.
“괜찮았어?”
단악선이 고개를 끄덕였다.
“응! 정말 훌륭했어. 눈을 뗄 수 없을 만큼.”
“하하. 아직 멀었지, 뭐.”
겸양의 말과는 달리 어깨가 한껏 솟은 방소방이었다.
“혹시 그 비무에 나도 끼워 줄 수 있어?”
단악선의 말에 방소방이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글쎄…….”
말끝을 흐리는 방소방과 달리 운중산은 솔직하게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그건 아무래도 무리일 것 같다.”
“왜?”
“무공을 배운 지 아직 일 년도 안 되었다고 하지 않았나? 우리는 다섯 살 때부터 익혔다.”
“그래도 훌륭한 분들께 배웠어.”
방소방이 끼어들었다.
“우리도 마찬가지야. 어쨌든 차이가 너무 나서 당장 비무는 어려울 거야.”
운중산도 고개를 끄덕였다.
“오해는 하지 말도록. 네가 다칠까 봐 그러는 거니까.”
단악선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럼 내 무공이 어느 정도인지 좀 봐 주면 안 될까?”
운중산과 방소방이 서로를 바라보다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뭐, 그 정도라면.”
운중산이 앞으로 나섰다.
“그럼 시작한다?”
“얼마든지.”
단악선의 말에 운중산이 자신 있게 대답했다.
비무는 단악선의 선공으로 시작되었다. 그런데 얼마 안 가 운중산은 당혹감에 휩싸였다. 자신의 실력에 한참 밑돌 것이라 예상했던 단악선의 실력이 상당했기 때문이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뭐지?’
운중산은 내심 비명을 질렀다.
초식 자체는 그리 대단해 보이지 않았지만 그 안에 담겨 있는 힘이 그야말로 무지막지했다.
도저히 같은 또래의 내력이라곤 믿어지지 않는 웅혼한 경력!
막강한 내공이 더해지자 별 볼 일 없는 초식도 순식간에 절학으로 탈바꿈했다.
그런 속도 모르고 방소방이 한심하다는 듯 핀잔을 던져 댔다.
“뭐 하는 거야? 초심자를 상대로. 제대로 안 할래?”
그 순간.
퍽.
가슴을 걷어차인 운중산이 그대로 뒤로 나가떨어졌다.
“괜찮아?”
단악선의 물음에 운중산이 커다란 눈을 깜박이며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이렇게 맥없이 패배할 줄은 몰랐던 것이다.
그런데 정작 비무에서 이긴 단악선도 얼떨떨하긴 마찬가지였다.
“어우, 봐주는 것도 적당히 해야지.”
자신만만하게 앞으로 나선 방소방이 단악선을 도발했다.
“덤벼. 이 풍운쾌걸 방 나으리께서 개방의 절학 구로괴권(九路怪拳)으로 가르침을 내려 주마.”
개방의 기초 무공이 방소방의 입을 거쳐 어느새 신공절학으로 탈바꿈했다.
단악선이 이번에도 선공을 취했다.
이번에는 금나수에 중점을 두고 초식의 응용에 집중했다. 상대의 권법과 비교해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타타타탁.
손과 손, 팔과 팔꿈치가 부딪치며 요란한 격타음이 연이어 터져 나왔다. 그리고 자신만만하던 방소방의 얼굴은 어느새 딱딱하게 굳어져 있었다.
‘맙소사!’
방소방이 식은땀을 흘리기 시작했다.
밖에서 보는 것과 안에서 실제로 겪어 보는 것은 그야말로 천지 차이였다.
영활하게 움직이며 날아드는 단악선의 손.
어느 순간을 기점으로 그 궤적이 눈으로 좇기도 어려워졌다.
분명 금나수의 일종인 건 분명한데, 제대로 대응할 수가 없었다.
그러다 보니 시간이 지날수록 손발이 어지러워지기 시작했다.
난데없이 눈앞으로 날아드는 주먹을 발견한 것도 그때였다.
“으헉!”
헛바람을 집어삼킨 방소방이 황급히 뒤로 물러섰다.
“헉헉.”
방소방이 거친 숨을 몰아쉬며 놀란 눈으로 단악선을 응시했다.
“너 정체가 뭐냐?”
“괜찮아?”
“무, 물론이지!”
방소방이 아무렇지 않은 척 씨익 웃었다.
“실력이 꽤 괜찮군. 중산이가 당할 만해.”
운중산의 시선을 의식한 듯 방소방이 한껏 으스대며 입을 열었다.
“알지? 일부러 내가 물러서 준 거야. 그대로 계속 싸웠으면 큰일 났을걸? 하마터면 신공을 사용할 뻔했지 뭐야.”
그때 운중산이 방소방을 불렀다.
“야.”
“응?”
“너 코피 나.”
“……!”
방소방이 화들짝 놀라 코밑을 훔쳤다.
“으악! 내 피! 벼룩 떼한테도 내어 준 적 없는 소중한 내 피가!”
방소방은 진심으로 아깝다는 듯 혀를 내밀어 인중을 타고 흘러내리는 코피를 핥았다.
운중산이 얼굴을 찌푸렸다.
“더럽게.”
그 말에 방소방이 발끈했다.
“더럽다니! 어떻게 친구의 피가 더러울 수 있어?”
“실수했군. 정정하지.”
“……?”
“창피하다.”
“이 배신자!”
호들갑 떠는 방소방을 뒤로한 채 운중산이 단악선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정중한 자세로 포권을 취했다.
“무당 문하 운중산이 단 소협의 귀한 가르침에 감사드리오.”
어디서 본 건 있었던지 제법 격식을 갖춘 인사였다.
이에 단악선도 황급히 운중산의 모습을 따라 했다.
입술을 삐죽이던 방소방도 마지못해 단악선에게 포권을 취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한설화가 빙그레 미소 지었다.
딴에는 호협하게 행동하고 있었지만 그녀가 보기엔 아이들의 귀여운 행동에 불과했다.
‘그나저나…….’
운중산을 살펴본 한설화가 내심 감탄했다.
탄탄한 근골이나 눈썰미, 그리고 반사 신경까지.
타고난 무재가 제법이었다.
무당파 무공의 특성상, 어릴 때는 성장이 느리다.
그러다 어느 시점이 되면 폭발적으로 무위가 높아지며 고수로 거듭나게 된다. 그런 대기만성형임에도 불구하고 운중산은 나이에 비해 꽤나 뛰어난 실력을 지니고 있었다.
‘저 아이도 그렇고.’
방소방 역시 마찬가지.
상대가 단악선이라 그렇지 재능만큼은 결코 평범하지 않았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무당과 개방은 운이 좋은 편이었다.
한 문파의 흥망성쇠는 결국 뛰어난 후인의 유무로 갈리기 때문이다.
세상의 모진 풍파에 꺾이지 않고 이대로만 성장한다면 그 미래가 자못 기대되는 아이들이었다.
한설화가 조용히 미소를 머금었다.
이 와중에도 아이들은 저들끼리 이야기를 나누느라 정신이 없었다.
“정말 무공을 익힌 지 일 년도 되지 않았나?”
운중산의 물음에 단악선이 고개를 끄덕였다.
“응. 어땠어?”
“어땠냐니…….”
운중산이 기가 막힌 표정으로 단악선을 응시했다.
“믿을 수 없는 수준이었다.”
운중산의 표정이 더없이 진지해졌다.
“아무래도 넌 천재인가 보군.”
“어우, 이 벽창호!”
핀잔과 함께 방소방이 끼어들었다.
“보통 그럴 때는 일 년이라는 기간을 의심해야 하는 거야.”
“그래?”
운중산이 단악선을 향해 물었다.
“거짓말을 한 건가?”
“아니. 진짠데.”
“그렇다는군.”
상황이 이쯤 되니 방소방도 결국 두 손을 들었다. 그러나 단악선이 거짓말을 한 것 같지는 않았다.
눈앞의 벽창호 못지않게 단악선도 더없이 순진무구한 눈빛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으음…….”
그때 운중산이 가슴 언저리를 문지르며 인상을 찌푸렸다.
긴장이 풀리자 뒤늦게 단악선에게 걷어차인 부위가 욱신거렸기 때문이다.
단악선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많이 아파?”
“괜찮다. 한숨 자고 일어나면 괜찮아진다.”
“미안해. 마지막에 힘을 뺀다고 빼긴 했는데…….”
“어쩔 수 없지. 그게 비무니까.”
“잠깐만.”
단악선이 품속에서 침이 담긴 목갑을 꺼냈다.
“어? 그건 왜?”
목갑에서 나온 침을 발견한 방소방이 깜짝 놀라 물었다.
“아픈 곳이 있다면 당장 치료해야지.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은 일이 병을 키우는 거야.”
운중산과 방소방이 동시에 뒷걸음질 쳤다.
침에 대한 거부감은 애 어른 할 것 없이 한결같았다.
“너 침을 다룰 줄은 아는 거야?”
의심 가득한 방소방의 시선에 단악선이 방긋 웃었다.
“사실 나 의원이야. 무공을 배운 건 일 년도 안 되었지만 의원은 십 년 넘게 해 왔어.”
운중산이 놀랍다는 얼굴로 감탄을 흘렸다.
“그렇군.”
“그렇군은 무슨 그렇군이야! 이런 수상쩍은 상황에서는 일단 의심부터 하라고!”
방소방의 말에 운중산이 단악선을 향해 물었다.
“거짓말인가?”
“아니. 정말 나 의원 맞아.”
운중산이 방소방을 바라봤다.
“그렇다는군.”
“어우, 진짜! 얘를 어쩌지?”
여전히 의심을 거두지 못하는 방소방을 향해 단악선이 가만히 손을 내밀었다.
“뭔데? 그 손은.”
“손목을 줘 봐. 내가 의원이라는 걸 증명해 줄게.”
잠시 갈등하던 방소방이 진지한 단악선의 눈빛에 머뭇거리며 손을 내밀었다.
잠시 눈을 감은 채 진맥을 하던 단악선이 고개를 끄덕였다.
“음식을 먹은 뒤 자주 체하지?”
“어? 그걸 어떻게?”
“의원이니까.”
빙그레 웃은 단악선이 설명을 이어 갔다.
“신장의 수기가 심장의 화기를 충분히 받쳐 주지 못하고 있어. 그래서 성격이 급하고 말보다 행동이 앞설 거야. 잠귀가 밝아서 깊게 잠들지 못하는 것도 그래서 그렇고.”
“맞아! 그래서 개방 어른들이 날 소서개(小鼠丐)라고 불러. 쥐새끼처럼 밤말 죄다 주워듣는다고.”
“소서개? 언제는 풍운쾌걸이라며?”
운중산의 반문에 아차 싶었던지 방소방이 재빨리 말을 돌렸다.
“옛날에 그랬다는 거지. 옛날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