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108)
신마의선-108화(108/500)
신마의선 (108)
“도인들이 머리에 쓰는 관(冠) 때문이다.”
그렇게 말한 운중산이 직접 시범을 보이며 설명을 이어 갔다.
“도사건(道士巾)이나 관을 쓰려면 이렇게 머리를 묶어 뒤로 당겨야 하지. 그래야 흘러내리지 않으니까. 그러다 보니 눈이 치켜 올라가고 이마가 드러나서 옆에서 보면 말 머리처럼 길게 보일 수가 있다.”
단악선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구나.”
“그래도 다른 사람들 앞에서 그런 말은 쓰지 않는 게 좋다.”
상대에 따라 모욕으로 간주해 칼부림이 나도 이상하지 않은 것이다.
그만큼 의관을 정제하는 일은 꽤나 손이 많이 가고 피곤한 일이었다.
“내가 유일하게 소방이를 부러워하는 부분이다.”
한 평생 누더기만 걸치고 사는 거지는 복장에 연연해 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운중산의 설명이 길어지자 방소방이 재빨리 말을 돌렸다.
“자자, 어쨌든 들어 봐. 무공만 엄청나게 강하면 뭐해? 방심하면 등 뒤에서 날아든 눈먼 칼에 비명횡사하는 게 강호무림인데.”
“등 뒤도 막을 수 있을 정도로 수련하면 되잖아.”
단악선의 말에 방소방이 혀를 찼다.
“쯧. 그런 의미가 아니라고.”
방소방이 손가락으로 단악선과 운중산을 가리켰다.
“너희들은 너무 순진해! 너무 잘 속는다고! 그게 진짜 문제야.”
“하긴.”
단악선이 선선히 인정했다.
“아저씨들도 그렇게 말씀하셨어.”
“아저씨들? 무공을 가르쳐 주신다는 그 사부님들?”
“사부님은 아니지만, 어쨌든 그렇게 말씀하셨어.”
반면 운중산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난 인정할 수 없다. 공명정대야말로 우리 무당의 기본 정신이니까.”
“아우, 이 벽창호.”
답답하다는 듯 가슴을 두드린 방소방이 이내 결연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내가 직접 보여 주지. 지금 너희들이 얼마나 무방비한 상태인지.”
방소방이 두 사람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동전 세 문만 내놔 봐.”
주머니 사정이 넉넉했던 단악선이 동전을 꺼내 방소방에게 건넸다.
방소방은 이를 다시 한 닢씩 나누어 준 뒤 손을 들어 한 곳을 가리켰다.
“저기 만두 가게 보이지? 한 명씩 가서 만두를 사 오는 거야.”
세 소년은 각각 시간 차를 두고 만두 가게에 다녀왔다.
“자, 내놔 봐.”
방소방의 말에 단악선이 만두를 내밀었다.
“어?”
운중산이 당혹성을 흘렸다.
그도 그럴 것이, 단악선이 내민 만두는 두 개였기 때문이다.
반면 자신은 만두 하나만 받아 왔을 뿐이었다.
“쯧쯧, 내 이럴 줄 알았다.”
방소방이 손을 내밀었다.
단악선과 운중산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방소방의 손에 들린 만두는 세 개였던 것이다.
방소방이 한껏 으스대며 입을 열었다.
“봤지? 이게 너희들과 나의 차이야.”
“대체 어떻게 된 거야?”
운중산의 반문에 방소방이 자세하게 상황을 설명했다.
“어차피 세 개를 줘도 가게 주인은 남는 장사야. 그걸 아는 사람에게는 바가지를 씌우지 못하는 거지. 반대로 너희처럼 세상 물정 모르면 눈 뜨고 덤터기를 쓰는 거고.”
운중산이 곤혹스러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
단악선이 신기한 듯 방소방을 보았다.
“넌 어떻게 이런 걸 다 알아?”
“이래 봬도 이 몸이 밑바닥 거지 생활 십 년 차다. 굳이 따지자면 네 의원 생활 못지않게 거지 경력을 쌓은 셈이지.”
“그런데?”
“그런데는 뭘 그런데야. 거지들이 괜히 아는 게 많은 줄 알아? 바닥에서 구르며 살아남기 위해 필요한 건 오직 하나뿐이야. 바로 눈치지.”
“와! 대단하다.”
“뭘 이 정도 가지고. 기본 중의 기본이지.”
흡족한 웃음을 흘리며 한껏 어깨에 힘을 주는 방소방이었다.
그때였다.
“소서개 형!”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방소방이 고개를 돌렸다.
저 멀리 자신을 향해 손을 흔드는 거지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방소방보다 서너 살은 더 어려 보이는 어린 거지였다.
“향주님이 찾아요.”
“뭐? 왜?”
“몰라요. 그냥 형 찾아오라고 했어요.”
방소방이 한숨을 푹 내쉬더니 단악선과 운중산에게 작별을 고했다.
“나 먼저 간다. 내일 또 보자.”
그리곤 날듯이 달려 골목을 돌아 사라졌다.
“나도 이만 돌아가야겠다.”
운중산의 말에 단악선이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내일 또 나올 거지?”
“물론.”
“그래. 그럼 내일 보자.”
그렇게 인사를 나누던 중.
“어?”
뒤늦게 무언가를 깨달은 단악선이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런데 우리 만두는?”
“소방이가 다 가져갔다.”
“아……!”
어쩐지 부리나케 달려가더라니.
방소방의 말마따나 무방비한 대가였다.
* * *
홍적문과 어깨를 나란히 한 채 마을로 들어서던 이립이 자신을 마중 나온 거지들을 향해 눈살을 찌푸렸다.
“아주 그냥 동네방네에 소문을 내지 그러냐? 거지면 거지답게 없는 듯, 있는 듯. 그렇게 지내야 한다고 몇 번을 말해?”
못마땅한 듯 혀를 차는 이립을 향해 쪼르르 달려오는 인영이 있었다.
방소방이었다.
“오셨습니까, 사부님!”
이립이 어이없다는 눈으로 방소방을 내려다봤다.
난생처음 보는 어린 거지가 자신을 사부라 부르니 적잖게 당황한 것이다. 그런데 얼마나 낯짝이 두꺼운지 이 와중에도 빙글거리고 있었다.
그래도 웃는 낯에 침 못 뱉는다고, 이립이 어이없어 웃음을 흘렸다.
“저도 모르는 사이 언제 제자를 들이셨습니까?”
둘만 있을 때는 편하게 반말하는 사이였지만 지금은 듣는 귀들이 있는지라 홍적문은 이립에게 말을 높였다.
홍적문이 건넨 농담에 방소방이 뻔뻔하게 대답했다.
“언젠가는 제 사부님이 되실 테니까요.”
방소방의 넉살에 이립과 홍적문이 어이없어 픽 웃고 있을 때였다.
이곳 균현에서 향주직을 맡아 인근 거지들을 거느린 구렵개(狗獵丐) 하운이 방소방의 머리를 쥐어박았다.
“이제 겨우 백의개를 벗어나 꼴랑 매듭 하나 지닌 놈이 어디서 감히!”
기본적으로 개방의 방도는 짤막한 새끼줄 하나를 허리춤에 묶고 다녔다.
거기에 달린 매듭 개수에 따라 개방 내의 지위를 나타내기 위해서였다.
매듭이 아예 없는 수습 방도들은 백의개(白衣丐)라고 하며, 개방의 정식 제자가 되면 비로소 매듭이 허락된다.
일반적으로 평범한 개방 방도는 일신을 의탁한 세월에 따라 한 개에서 네 개의 매듭을 지닌다.
향주인 구렵개는 다섯 개의 매듭을 지니고 있었다.
그 위로 그 지역 일대를 총괄하는 분타주가 여섯 개의 매듭을 지니고 있었으며 분타주를 지휘하는 당주가 일곱 개, 장로 격인 홍적문은 여덟 개의 매듭을 지닌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방주가 아홉 개의 매듭이다.
이른바 용두방주(龍頭幇主)라 불리는, 구결(九結) 매듭의 유일한 소유자인 셈이다.
그런데도 방소방은 호랑이 불알을 삶아 먹었는지 방주를 마주하고도 눈 하나 깜짝 않았다.
심지어 개 사냥꾼이라는 별호에 부족함이 없는 하운의 눈빛에도 전혀 주눅 들지 않았다.
“청성에 가셨다 들었는데, 일은 잘되셨나요?”
방소방의 물음에 이립이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하운이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이놈이 워낙 잠귀가 밝은 데다 엿듣는 것도 잘해서…….”
그 말에 홍적문이 웃음을 터트렸다.
“아하! 여기에 소서개라 불리는 걸물(傑物)이 하나 있다 들었는데, 그게 바로 네놈이렷다?”
방소방이 기다렸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요. 저야말로 진정한 걸물(乞物)이죠.”
이 와중에도 재치 있게 말장난으로 받아치는 방소방이었다.
그런 방소방을 유심히 살피던 이립의 눈에 이채가 떠올랐다.
‘이놈…… 정말 제법인데?’
두 눈 가득한 정광.
전신을 타고 흐르는 기운도 제법 비범함이 있었다.
홍적문도 이를 눈치챘는지 놀란 표정으로 방소방에게 다가섰다.
“히힛. 간지러워요.”
“가만히 있어 봐라, 이 녀석아.”
꼼지락대는 방소방의 몸 이곳저곳을 만져 본 홍적문이 황당함에 물었다.
“이놈 뭘까요?”
“왜 그래?”
이립의 반문에 홍적문이 기가 막히다는 표정으로 전음을 날렸다.
―기와 근육의 균형이 거짓말처럼 완벽한데? 내공도 나이에 비해 탄탄하고.
“그래?”
놀란 이립이 방소방의 맥문을 잡고 진기를 흘려 넣었다.
“……!”
이립의 눈 위로 은은한 놀라움이 떠올랐다.
과연 홍적문의 말대로 나이에 비해 뛰어난 성취를 이루고 있었다.
“사부님?”
뒤늦게 정신을 차린 이립이 자신을 빤히 올려다보는 방소방의 모습에 쓴웃음을 흘렸다.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었지?”
“청성파에 가셨던 일은 잘되셨냐고요.”
이립이 한숨을 흘렸다.
“잘되기는. 완전 쑥대밭이 되어 있더구나.”
“저런.”
홍적문이 피식 웃었다.
제 놈이 안다면 얼마나 안다고 덩달아 탄식을 흘린단 말인가.
그때 이립이 향주인 하운을 향해 물었다.
“그때 부탁했던 일은 어찌 되었나?”
“신의의 아들 행방을 수소문하라는 명령 말씀이십니까?”
이립이 고개를 끄덕이자 하운이 쓰게 웃으며 방소방을 가리켰다.
“그거라면 녀석에게 물어보는 것이 빠를 것 같습니다만.”
“……?”
의아해하는 이립을 향해 하운이 전음을 날렸다.
―어느새 둘이 친구가 되어 있더군요. 혹시라도 문제가 생길까 싶어 따로 언급하지는 않았습니다.
“허허.”
이립이 묘한 눈빛을 흘리며 방소방을 응시했다.
보면 볼수록 마음에 드는 녀석이었다.
“최근 사귄 친구가 있다지?”
“어? 어떻게 아셨어요?”
깜짝 놀라는 방소방의 모습에 이립이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이 녀석아. 내가 바로 개방 방주이니라.”
감탄하며 고개를 끄덕이는 방소방에게 이립이 말했다.
“그 친구에게 안내를 부탁해도 되겠느냐?”
잠시 곰곰이 무언가를 생각하던 방소방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요. 따라오세요.”
앞서 걷는 방소방을 따라 걸으며 이립이 문득 미간을 찌푸렸다.
“생각해 보니 열 받는군.”
영문을 몰라 의아해하는 홍적문을 향해 이립이 투덜댔다.
“아니, 그렇잖아. 각 문파를 돌며 연판장을 받는다며? 그럼 당연히 나한테 제일 먼저 받았어야 하는 거 아닌가? 왜, 여행 시작 전에 무위에서 나를 만났잖아.”
“방주가 마음에 안 들었나 보지.”
사람들이 모여 있던 공적인 자리에서는 꼬박꼬박 공대를 사용했지만 둘만 남게 되자 어느새 격의 없는 말투를 사용하는 홍적문이었다.
“설마 그 연판장에 우리 개방이 없는 건 아니겠지? 이건 우리 개방을 무시하는 처사 아닌가?”
홍적문이 피식 웃었다.
“그건 개방이 아니라 방주가 무시당한 거고.”
이립이 발끈해서 한 소리 하려는 찰나.
“어?”
홍적문이 깜짝 놀라며 한 곳을 가리켰다.
“저 녀석……. 우리가 찾던 그 꼬마 아냐?”
홍적문의 손을 따라 고개를 돌린 이립이 멀리서 걸어오는 단악선을 발견했다.
“잘됐군. 이참에 직접 물어봐야겠어.”
단악선의 시선이 이쪽을 향한 것도 그때였다.
잠시 깜짝 놀란 표정을 짓던 단악선이 이내 해맑게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그 모습에 이립이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허허. 아무래도 내가 오해한 모양이군. 저렇게 나를 반가워하는데, 무시라니. 가당치도 않지.”
앞서 걷던 방소방이 쪼르르 달려 나간 것도 동시였다.
“악선아!”
“소방아!”
헤어진 지 얼마나 되었다고 금세 희희낙락하는 둘이었다.
걸음을 떼려다 엉거주춤하게 멈춰선 이립을 향해 홍적문이 피식했다.
“어째 방주를 반가워한 게 아닌 것 같소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