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109)
신마의선-109화(109/500)
신마의선 (109)
약 올리듯 얄밉게 말을 건네는 홍적문을 향해 이립이 눈을 부라렸다.
이때 저만치에서 무언가 대화를 나누던 단악선과 방소방이 다시 이쪽을 바라봤다.
단악선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리곤 이내 빠르게 다가와 고개를 숙였다.
“안녕하세요. 방주 아저씨.”
“허허. 그래, 오랜만이구나. 그동안 잘 지냈느냐?”
“네, 덕분에요.”
단악선이 고개를 돌려 방소방과 이립을 번갈아 봤다.
“소방이랑 아는 사이셨어요?”
“내 제자다.”
홍적문이 깜짝 놀라 이립을 보았다.
방소방 역시 마찬가지.
눈을 깜박이며 상황을 파악하던 방소방이 이내 두 손을 번쩍 들며 소리 없이 환호했다. 그러나 전후 사정을 알 리 없는 단악선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 역시 그랬구나!”
단악선이 이립을 올려다보며 물었다.
“그런데 절 찾으셨다면서요?”
“물어볼 게 좀 있어서.”
그러다 갑자기 무언가를 떠올린 이립이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왜 그러세요?”
단악선의 물음에 이립이 목소리를 낮춰 속삭였다.
“없지?”
“뭐가요?”
“그분 말이다.”
한설화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괜히 주눅이 드는 이립이었다.
순간 이립을 향해 날아드는 전음이 있었다.
―허튼짓하지 마라.
이립이 흠칫하더니 주변을 살피기 시작했다.
“왜 그러세요?”
“아, 아무것도 아니다.”
“오늘 좀 이상하시네요. 진맥을 해볼까요?”
이립이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다. 그럴 필요 없다. 그보다 자리를 좀 옮기자꾸나.”
그렇게 옮긴 장소는 단악선이 친구들과 늘 어울려 놀던 마을 어귀의 공터였다. 주변에 인적이 없다는 것을 확인한 이립이 곧장 본론을 꺼냈다.
“어째서 우리를 무시하는 것이냐?”
“네? 제가요?”
“그렇지 않고서야 본 방만 빼고 연판장을 받을 이유가 없지 않느냐?”
“아!”
뒤늦게 이유를 깨달은 단악선이 빙그레 웃었다.
“방주님께는 마지막에 부탁을 드리려고 했어요.”
“왜? 어째서 마지막이냐? 혹시 그거 때문이냐? 구파일방이라는 말에서 우리가 마지막이라서?”
“예?”
“구파일방이라고 해서 우리가 제일 말석인 게 아니다. 따지고 보면 일방구파라고 하는 게 맞지. 알지 모르겠지만 구파일방 중 본 방의 역사가 가장 길다. 궁가방(窮家幇)이라 불리던 시절 이전에는 오의파(汚衣派)로 불렸고 그 시절에는 이미…….”
홍적문이 한숨을 쉬며 끼어들었다.
“방금 방주 입으로 구파일방이라 하셨소.”
“어? 그랬나?”
“그랬소.”
동의를 구하는 홍적문의 시선에 방소방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셨어요.”
“커험. 어쨌거나!”
새로 얻은 제자 앞에서 무안을 당한 이립이 괜히 그 화살을 단악선에게 돌렸다.
“왜 우리가 마지막인 것이냐?”
“그건…….”
단악선이 방긋 웃으며 덧붙였다.
“개방이니까요. 개방이 지닌 상징성 때문이었어요.”
“응?”
“방주님 말씀대로 중원에서 가장 오래된 문파잖아요. 더구나 그 오랜 세월 동안 단 한 번도 흔들린 적 없이 의협과 신의를 지켜 온 곳이고요.”
예상치 못한 단악선의 대답에 이립이 어색하게 웃었다.
“험험. 우리가 좀 그렇긴 하지.”
“연판장의 완성을 개방에서 하고 싶었어요.”
말없이 눈을 깜박이던 이립이 입을 연 것은 약간의 시간이 지나고 나서였다.
“그러니까……. 우리를 통해 대계(大計)의 방점을 찍으려 했다?”
이립은 어느새 헤벌쭉 웃고 있었다.
“본 방에 화룡점정(畵龍點睛)의 역할을 맡기려 했던 것이구나?”
단악선이 고개를 끄덕이자 이립이 파안대소를 터트렸다.
“으하하. 옳거니! 당연히 그래야지. 그래야 이치가 맞지. 아암, 그렇고말고.”
그러다 홱 고개를 돌려 홍적문을 노려봤다.
“거봐! 내가 우릴 무시할 리 없다고 했잖아!”
홍적문이 어이없다는 눈으로 이립을 쳐다봤다.
아무리 방주고 친구라곤 하지만 이럴 때만큼은 눈 질끈 감고 흠씬 패 주고 싶었다.
“제자 앞이요. 체통 좀 지키시죠. 방주라는 사람이 이런 일로 일비일희(一悲一喜)해서야, 원…….”
홍적문을 지그시 쏘아보던 이립이 이내 단악선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호쾌하게 외쳤다.
“맡겨만 다오! 연판장의 공표는 본 방이 책임지마.”
“정말요?”
“아무렴! 누구보다 넓은 정보망과 연락책을 지닌 우리다. 그 정도는 식은 죽 먹기지.”
단악선의 얼굴이 환해졌다.
“와! 다행이에요. 사실 어떤 식으로 강호에 알려야 할지 고민하던 중이었거든요.”
“흐흐. 우리가 누구냐? 바로 의협의 개방 아니냐? 옳은 일이라면 당연히 두 팔 걷어붙이고 나서야지.”
그때였다.
―거기까지.
난데없이 날아든 한설화의 전음에 이립의 흠칫했다. 그리곤 이내 단악선을 향해 어색한 웃음을 건넸다.
“오해가 풀렸으니 그만 돌아가도 좋다. 또 보자꾸나.”
단악선이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다시 한 번 감사드려요.”
단악선이 방소방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내일 봐.”
“어? 어, 그래.”
방소방은 새삼스런 눈으로 단악선을 보았다.
특이한 녀석이란 건 알고 있었지만 예상보다 훨씬 거물이었다.
멀어지는 단악선을 지켜보던 홍적문이 불쑥 입을 열었다.
“의외로 명숙들의 수결을 얻는 게 수월했던 모양이오.”
“당금 강호에서 어느 누가 신의의 이름을 가볍게 여기겠나? 그만큼 덕을 많이 쌓은 게지.”
단악선의 모습이 시야에서 사라지자 이립의 얼굴에서 웃음이 걷혔다.
“그나저나 걱정이군.”
이립이 나직이 한숨을 흘렸다.
무림맹이 움직였다는 급보 때문이었다.
그것도 남궁백이 직접 이곳 호북으로 향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그가 눈치를 챈 것 같아.”
홍적문 역시 어렵지 않게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저 아이는 아무것도 모르는 것 아니오?”
이립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 알고 있을 거야. 똑똑한 아이니까. 문제는…….”
말끝을 흐리던 이립이 침중한 낯빛으로 단악선이 사라진 곳을 응시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 아이가 그들 편에 설 것 같다는 점이지.”
“만약 사달이 일어나면 어찌하실 생각이오?”
“그래서 고민일세.”
한참 생각을 정리하던 이립이 홍적문을 보며 쓰게 웃었다.
“어쩌면 자네가 고생을 좀 해야 할지도 모르겠어.”
홍적문이 한숨을 내쉬었다.
“결국 그리 결론 내린 것이오?”
“적어도 저 아이만큼은 지켜야 하지 않겠나.”
사실 그게 이들이 이곳에 온 진짜 목적이었다.
개방 역시 오래전부터 단악선을 주시하고 있었다.
단악선의 행보.
그 일련의 움직임을 따라 끊임없이 발생하는 크고 작은 사건들을 통해 어렴풋하게나마 초악량과 범계위의 존재를 눈치챘던 것이다.
그러다 소림에서 범계위가 등장했고, 결정적으로 청성파에서 장문인이 초악량에게 살해당했다.
이를 통해 개방은 단악선 곁에 한설화 말고도 초악량과 범계위가 함께하고 있다는 걸 확신할 수 있었다.
연판장을 만드는 이유 역시 그 두 사람 때문일 터.
“그런데 방주, 정말 괜찮겠소?”
“……?”
“그들이 정말 초악량과 범계위라면, 비난의 화살이 자칫 우리 개방을 향할 수도 있소. 가뜩이나 구파일방의 흠을 찾으려 혈안이 되어 있는 제갈가의 계집애라면 특히나.”
이립이 고개를 끄덕였다.
“듣자니 최근 들어 유난히 무림맹주와 대립각을 세운다지? 대체 무슨 생각인지…….”
“외부의 비난은 둘째 치고 내부에서의 반발도 무시할 수 없소. 십대악인 손에 죽은 방도가 어디 한둘이오?”
“나라 해서 그걸 왜 모를까.”
이립이 진지한 눈빛으로 말을 이어 갔다.
“하지만 더 이상 무림의 힘이 약해져서는 안 돼.”
“그게 무슨 말이오?”
“내부가 소란스러우면 그만큼 외부의 동향을 눈치채기 어렵다는 의미일세.”
이립이 홍적문을 향해 되물었다.
“이상하게 생각해 본 적 없나?”
“……?”
“새외를 비롯한 변방의 움직임이 언제부턴가 너무 잠잠하네.”
“놈들이 얌전하다면 좋은 것 아니오?”
“아니. 조용해도 너무 조용해. 그래서 더 수상한 거고.”
이립의 눈이 날카롭게 번뜩였다.
“게다가 무림맹이 백대악인 토벌을 천명한 이후, 무림맹에게 쫓기던 사파의 인물들을 누군가가 은밀하게 규합하고 있다는 정보가 있네.”
“설마……?”
홍적문의 눈빛이 흔들렸다.
“아직 확신할 수 없지만 지금 상황이 무언가 작위적이라는 느낌이 드는 건 사실일세.”
“저 아이를 돕는 것도 그래서요?”
이립이 고개를 끄덕였다.
“연판장이 완성되어 공표되면 무위는 사파인들에게 안전한 장소가 될 걸세. 무림맹에게 쫓기던 사파인들이 그곳에 신변을 의탁한다면 불필요한 살육으로 점철된 이 사태도 어느 정도는 일단락되겠지.”
“부수적으로 사파인들을 감시하기도 더욱 쉬워지겠구려.”
“뿔뿔이 흩어져 있는 지금보다야 훨씬 수월하겠지.”
고개를 끄덕인 이립이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어쨌거나 지금은 저 아이를 지키는 것이 우선일세.”
“내홍이 적지 않을 것이오.”
의아해하는 이립을 향해 홍적문이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당장 청성파부터가 들고 일어나지 않겠소? 두 명의 장문인이 연이어 줄초상을 당한 상태니 방주의 결정을 반기지 않을 거요.”
홍적문이 염려하는 것은 바로 이 점이었다.
가뜩이나 무림맹과 구파일방의 사이도 이전 같지 않은데, 자칫 이번 결정으로 구파일방의 결속까지 흔들릴 수 있다.
그러나 이립은 단호했다.
“청성파는 그럴 정신이 없을 거야.”
“어째서 그렇소?”
“그나마 구대문파의 말석이라도 지키려면 다른 문파의 눈치를 살펴야만 할 테니까. 어떻게든 다시 구대문파에 들려는 형산파(衡山派)가 벌써 다른 문파들과 접촉을 하고 있다 들었거든.”
곰곰이 생각하던 홍적문이 이내 수긍했다.
그런 그에게 이립이 다시 입을 열었다.
“난마처럼 얽힌 상황이야. 타개할 방법이 전무한 상태에서 그나마 저 아이가 길을 열어 준 셈이고.”
홍적문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가끔 종잡을 수 없는 행동으로 사람을 곤란하게 만들지만, 눈앞의 사내는 누구보다 뛰어난 혜안과 올곧은 마음을 지니고 있었다.
그런 그가 개방의 방주라는 사실이 홍적문은 자랑스러웠다.
“그 대단한 녀석이 제 친구입니다.”
갑자기 들려온 말에 이립과 홍적문이 황당함을 감추지 못했다.
왜 방소방이 소서개라 불리는지 알 수 있었다.
워낙 조용히 기척을 감추고 있어 녀석의 존재를 잊고 있었던 것이다.
이립이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아마도 네가 살아가며 한 일 중에 제일 잘한 일이 될 것이다.”
* * *
“예?”
가두달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방금 자신이 들은 말을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범계위가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가라고. 좋게 보내 줄 때.”
“이렇게 갑자기요?”
청천벽력 같은 말에 가두달이 황급히 입을 열었다.
“하지만 아직 비무가 두 번이나 남았는데요? 게다가…….”
초악량이 가두달의 말을 잘랐다.
“무림맹 놈들이 올 것이다.”
가두달이 화들짝 놀랐다.
최근 초악량과 범계위가 무언가 심각한 이야기를 나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게 무림맹과 관련된 일이었을 줄이야.
아무리 단악선이 탐난다지만 일단은 살고 볼 일이다.
눈치를 살피던 가두달이 슬금슬금 뒤로 물러섰다. 그러다 어느 순간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대로 달아났다.
“이제 어쩔 셈이요?”
“어쩌긴. 상황이 이리된 마당에 달리 방법이 있을까.”
초악량의 눈 위로 섬전 같은 안광이 일렁였다.
“자초한 일이니 내가 감당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