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114)
신마의선-114화(114/500)
신마의선 (114)
이립이 미간을 찡그렸다.
“낯이 익은 게……, 분명 어디서 본 것 같은데?”
가두달이 이립의 시선을 피하며 어물쩍 대답을 흐렸다.
“그럴 리 없습니다만…….”
“아니야. 분명히 봤어. 근데 어디서 봤더라?”
가두달의 얼굴을 자세히 뜯어보길 잠시, 턱을 매만지며 고심을 거듭하던 이립이 벼락같이 소리쳤다.
“귀영마자!”
“……!”
화들짝 놀라 뒷걸음질 치는 가두달을 노려보는 이립의 얼굴이 야차처럼 일그러졌다.
“천하에서 제일 나쁜 놈을 눈앞에 두고도 몰라보다니!”
가두달이 펄쩍 뛰었다.
“무슨 소립니까? 제가 못된 놈인 건 인정합니다만 천하제일은 아니죠. 당장 여기 계신 두 분만 해도…….”
차가워진 초악량과 범계위의 눈빛에 가두달이 황급히 말끝을 흐렸다.
“아니, 너는 그들과 비교도 안 될 만큼 악랄한 놈이다.”
그 말에 가두달이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도 전 사람을 죽이진 않습니다. 도둑질이야 저분들에 비하면 애교 수준이죠.”
“흥!”
차갑게 코웃음 친 이립이 가두달을 향해 삿대질을 했다.
“세상에서 가장 나쁜 놈은 불쌍한 거지들을 벗겨 먹는 놈이다. 어디 훔칠 게 없어, 거지 것을 훔친단 말이냐?”
“네? 제가 언제 거지들 물건을 훔쳤단 말입니까?”
가두달이 의아한 얼굴로 반문했다.
그 모습에 이립이 대로해 소리쳤다.
“기억나지 않는단 말이냐? 십오 년 전! 황산에서! 그때…….”
그 말에 홍적문이 깜짝 놀랐다.
“허허, 방주님. 진정하시지요. 그게 뭐 그리 대단한 일이라고 이렇게 공개 석상에서 떠들고 그러십니까.”
홍적문이 재빨리 나서 만류하자 뒤늦게 정신을 차린 이립이 그대로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말없이 가두달을 노려봤다.
‘십오 년 전? 황산?’
가두달이 고개를 갸웃했다.
하도 훔친 게 많다 보니 지금처럼 기억나지 않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어쨌든 가두달 입장에서는 곤혹스러운 상황이었다.
눈치를 살펴야 할 사람이 더 늘어났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기존의 세 사람도 부담스러운데 개방의 고수 둘이 일행에 합류하니 그만큼 운신의 폭도 좁아졌다.
그렇다고 불만을 내색할 수도 없는 노릇.
지금까지 그래 왔듯 숨죽인 채 조용히 따르는 게 최선이었다.
그렇게 좌불안석 불안한 얼굴로 이리저리 눈만 굴리고 있을 때였다.
가두달의 시야에 일단의 무리가 들어왔다.
어림잡아도 오십 명이 넘는 숫자였다.
‘어?’
뒤늦게 저들이 청성파의 복장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 가두달이 깜짝 놀라 뒤로 물러섰다.
누군가가 초악량을 가리키며 소리쳤다.
“저기 혈수존자다! 장문인을 살해한 악적이 저기 있다!”
차차차창.
그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청성 문하들이 일제히 검을 뽑았다.
그 모습에 초악량과 범계위가 마른 웃음을 흘렸다.
기껏 살려 줬더니 굳이 죽을 자리를 찾아오다니.
하나 적을 마다할 두 사람이 아니었다.
“아니! 이게 누구신가?”
이때 이립이 재빨리 두 진영 사이로 뛰어들었다.
그리곤 청성 문하들의 선두에 서 있는 중년 도사에게 아는 척을 했다.
“운정진인 아니시오?”
이립의 말에 운정진인이라 불린 중년 도사가 마지못해 고개를 숙였다.
장로인 그보다 개방을 이끄는 방주인 이립의 배분이 더 높았기 때문이다.
“연이은 우환 탓에 상심이 얼마나 크십니까.”
운을 뗀 이립이 운정진인을 향해 다가섰다.
“갑자기 날아든 비보를 이 거지는 아직도 믿지 못하겠소이다.”
그 말에 운정진인이 차갑게 코웃음 쳤다.
“그래서 저 악적들을 비호하는 것이오?”
“그게 무슨 말이오?”
“모른 척하지 마시오! 당신은 구파일방의 수치요! 어떻게 저런 악적들을 위해 우리 복수를 방해한단 말이오!”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청성 문하들이 저마다 악에 받쳐 소리를 질러 댔다.
“변절자!”
“어떻게 개방이 우리를 배신할 수 있단 말인가!”
홍적문의 눈빛이 차가워졌다.
주먹을 말아 쥐며 천천히 앞으로 나서는 홍적문의 기세에 청성 문하들이 일순 주춤했다.
그러나 홍적문은 손을 쓸 생각이 없었다.
장문인을 잃은 저들의 슬픔을 어찌 이해하지 못하겠는가.
조용해진 사이 청성 문하 쪽으로 시선을 돌린 이립이 입을 열었다.
“그래, 혈수존자에 대한 자네들의 분노야 내 어찌 이해하지 못하겠는가. 하지만 지금 자네들로 복수가 가당키는 한가? 무엇보다…….”
청성 문하들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러나 이어진 이립의 말에 당혹감을 드러내지 않을 수 없었다.
“자네들의 행동이 청성의 죄과를 더 떠벌리는 꼴이라는 걸 모르는가?”
“그게 무슨 말이오? 죄과라니?”
운정진인을 향해 이립이 말했다.
“한때 청성을 대표했던 일곱 명의 고수, 청성칠자. 소위 명숙이라 불리던 그들이 비급에 눈이 멀어 죄 없는 무인을 합공해서 죽였다는 사실 말일세.”
청성 문하들이 당황한 표정으로 서로를 보았다.
그들로서는 금시초문의 이야기였다.
오직 운정진인만이 진실을 알고 있었는지 눈에 띄게 허둥대는 모습이었다.
“따지고 보면 혈수존자는 억울하게 돌아가신 사부의 복수를 한 셈이지. 하나 청성파는 그 과오를 숨기고 오히려 구파일방의 손을 빌려 그를 죽이려 했네.”
당황해 말을 잇지 못하는 운정진인을 이립이 몰아붙였다.
“그 바람에 무림에 혈풍이 물었네. 만약 처음부터 청성칠자가 욕심에 눈이 멀어 추잡한 짓을 저지르지 않았다면……. 아니, 적어도 과오를 인정하고 속죄했다면 청성혈사는 벌어지지 않았을 걸세. 지금의 혈수존자 또한 존재하지 않았을 테고.”
어느 순간 이립의 음성이 차분하게 변해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혈수존자라는 괴물을 강호에 풀어놓은 게 바로 청성파, 너희들이란 말이지.”
소요가 번져 가는 청성 문하들을 향해 이립이 차가운 눈빛을 던졌다.
“자, 이쯤에서 그대들에게 묻지. 구파일방을 배신한 건 과연 어느 쪽인가?”
“그, 그건 사실과 다르오!”
뒤늦게 운정진인이 나섰다.
그러나 이어진 이립의 준엄한 꾸짖음에 그대로 입을 다물었다.
“실전된 모산파의 무공을 그대들 장문인이 익혔네. 그걸 사용하는 모습을 자네들도 보았지 않나? 그리고 무공 일부는 속가 제자들에게 선물처럼 뿌렸더군. 이미 개방이 모든 정황을 확인했네. 아직도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셈인가?”
“…….”
운정진인은 할 말이 없었다.
무엇보다 청설칠자가 모산파의 비급을 빼돌린 것만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
이립이 진심으로 안타깝다는 듯 한숨을 터트렸다.
“어쩌다 청성이 이리되었는지……. 이 거지는 그저 애석하고 통탄할 뿐일세.”
청성 문하들이 아무 말도 못 하는 운정진인을 원망 어린 눈으로 바라봤다. 자신들이 평생을 바쳐 온 청성파가 이처럼 추악한 과거를 지니고 있었다는 사실에 크게 충격을 받은 모습이었다.
어떤 이는 부끄러움에 고개를 숙였고, 어떤 이는 배신감에 몸을 떨었다.
억울함에 눈물을 흘리는 이도 있었다.
초악량이 입을 연 것도 그때였다.
소모적이고 무의미한 지금의 대치를 끝내기 위해 은원의 당사자인 그가 직접 나선 것이다.
“명분을 잃었다고 하나, 너희들이 복수를 하겠다면 나는 언제든 받아 줄 생각이다.”
초악량의 섬뜩한 눈빛에 청성 문하가 움찔했다.
한껏 전의를 불태울 때라면 모를까 지금은 이미 사기가 꺾일 대로 꺾인 상태. 위축된 저들의 눈빛엔 죽음을 각오했던 처음의 결연한 의지를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런 그들을 향해 이립의 호통이 작렬했다.
“언제까지 거기서 미적댈 참이더냐! 선택해라! 과거 청성칠자처럼 진실을 묻기 위해 검을 들 것인가? 아니면 명예롭게 오욕을 감내할 것인가?”
결국 청성 문하들은 힘없이 검을 늘어트렸다.
맥없이 돌아서는 청성 문하들의 뒷모습을 응시하며 범계위가 아쉬운 듯 입맛을 다셨다.
모처럼 손맛을 보나 싶었는데 저 망할 거지 왕초 때문에 수포로 돌아간 것이다.
꽈앙!
십 장 밖에 서 있던 거대한 바위가 그대로 산산조각 나 흩어졌다.
기껏 끌어 올린 진기가 아까웠던 범계위가 주먹을 휘두른 결과였다. 그러고도 분이 풀리지 않았는지 범계위가 이립을 노려봤다.
“너 마음에 안 들어.”
살기를 감지한 홍적문이 재빨리 이립과 범계위 사이를 막아섰다.
“왜 멋대로 나서서 초를 치고 난리야?”
원망스레 자신을 쏘아보는 범계위의 눈빛에 이립이 슬쩍 웃었다.
“물론 단 의원을 위해서지.”
“뭐?”
“단 의원이 연판장을 만드는 목적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게. 치성을 드려도 모자랄 판에 쓸데없이 피를 흘려 부정을 살 필요가 있을까?”
그 말에 범계위가 꿍한 얼굴로 입을 다물었다.
“그나마 우리 개방이 저간의 상황을 모든 문파에 알렸기에 당분간은 조용히 이동할 수 있을 걸세.”
초악량과 범계위의 존재가 알려졌음에도 근처가 조용한 이유였다.
“흥! 과연 그것 때문일까?”
범계위가 실소를 흘렸다.
“고작 그런 이유로 가만히 있을 놈들이 아니지. 놈들은 무서워서 오지 못하는 거야. 초 형과 내가 함께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알았으니까.”
이립이 쓰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초악량과 범계위, 거기에 한설화까지.
멸문을 각오하고 저들과 일전을 불사할 문파는 과연 몇이나 될까?
“어쨌든 지금이 더할 나위 없는 기회일세.”
남궁백은 무림맹주 자리를 내놓기로 결정했다.
기존에 그가 내세웠던 십대악인 토벌 역시 중단된 상태.
차기 무림맹주 자리를 놓고 지금쯤 무림맹 내부는 치열한 권력 싸움이 한창일 것이고, 구파 역시 무림맹 탈퇴를 선언할 기회만 기다리는 상황이었다.
‘그나마 연판장에 수결이라도 채워 넣었다면 희망이 있었을 텐데…….’
이립이 청성 문하들이 사라진 방향을 보며 한숨을 흘렸다. 그만큼 운정진인의 행보가 아쉬웠다.
청성파 내에서 가장 높은 청 자 배 장문인이 죽은 상황에서 그다음 배분은 전대 장문인인 운 자 배였다.
전 장문인인 운산지인의 사제인 그가 현재로서는 가장 유력한 차기 장문인 후보인 셈. 물론 이렇게라도 상황을 수습해야 하는 그의 입장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장문인의 죽음.
이에 대한 책임을 따져 묻지 않고 침묵으로 일관한다면 청성 문하들의 마음 역시 돌아설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그들의 원성을 잠재우고 이 사달의 책임은 이미 죽은 청성칠자에게 돌리기 위해 자신을 찾아온 것이 틀림없었다.
하나 이는 명백히 그의 실책이었다.
형산파 때문이었다.
그들은 지금도 청성파를 밀어내고 구파일방의 한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수많은 문파들과 물밑 교섭을 진행하고 있다.
차라리 운정진인이 이 자리에서 모든 과오를 인정하고 연판장에 수결을 적어 넣는 것으로 사과를 대신했다면, 이를 명분으로 구파일방의 지위는 유지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이마저도 쉽지 않아 보였다.
한때나마 같은 길을 추구하던 그들의 처지가 참으로 딱하고 안쓰러웠다.
그러다 문득 전부터 생각해 오던 것이 떠올랐다.
“그런데 말이야…….”
이립이 단악선을 향해 슬쩍 운을 떼었다.
“연파장을 완성하고 무위를 금지로 선포한 뒤, 그다음도 생각해 보았느냐?”
“다음이라뇨?”
단악선의 반문에 이립이 우려가 담긴 눈빛을 건넸다.
“아마도 적잖은 군상들이 모여들 거야. 그리고 하나같이 정파 무림에 쫓겨 다니던 놈들이 대부분일 터. 난 자네가 놈들을 모두 감당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되는군.”
단악선이 빙그레 웃었다.
“걱정 마세요. 아주머니와 아저씨들께서 도와주실 거예요.”
추호의 의심도 없는 단악선의 대답에 세 사람이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데 이립은 고개를 흔들었다.
“저분들이라면 믿을 만하지. 하나 내가 걱정하는 건 따로 있다.”
이립이 가두달을 가리켰다.
“저런 몹쓸 인간에게까지 굳이 자네 옆자리를 내어 줘야 할까 싶어서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