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Divine and Demonic Doctor RAW novel - Chapter (115)
신마의선-115화(115/500)
신마의선 (115)
자신을 노려보는 이립의 눈빛이 심상치 않자 가두달이 흠칫했다.
그런데 고맙게도 단악선이 그를 두둔해 주었다.
“너무 그러지 마세요. 그래도 제게 많은 걸 가르쳐 주시거든요.”
“그래 봤자 도둑질 따위나 가르치려 하겠지!”
정곡을 찔린 가두달이 깜짝 놀랐다.
그러기를 잠시.
‘잠깐만?’
가두달은 문득 불안해졌다.
이립의 말대로 무위가 금지로 선포되면 수많은 사파인이 몰려들 터. 그중에는 분명 자신보다 명성이 높고, 무공이 뛰어난 고수도 포함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이거 이러다 자칫하면 내가 설 자리가 없어지는 거 아냐?’
지금만 해도 그랬다.
새로 일행에 합류한 저 냄새나는 거지들도 그가 감당하기 힘든 고수들이다.
‘그래도 포기할 수 없지!’
단악선을 힐끔 쳐다본 가두달이 혀를 내밀어 입술을 핥았다.
그때였다.
“이제 슬슬 다음 목적지를 정해야겠군.”
그렇게 운을 뗀 초악량이 남은 목적지들을 가늠했다.
“이제 네 곳 남은 건가?”
단악선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구대문파는 이제 아미, 곤륜, 점창. 그리고 공동만 남았어요.”
범계위가 고개를 갸웃했다.
“그럼 이제 운남으로 가야 하나? 아니면 아미파가 있는 사천으로?”
“음? 아미파라면…….”
무언가를 떠올린 초악량이 말끝을 흐리며 묘한 눈빛을 던졌다.
그 시선 끝에 곤혹스러운 표정으로 서 있는 이립이 있었다.
단악선이 놀라 이립에게 다가갔다.
지금까지 내내 여유롭던 그가 갑자기 안색이 파리해지며 식은땀을 흘리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눈빛도 불안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괜찮으세요? 혹시 어디 불편하신 건……?”
이립이 황급히 손사래를 쳤다.
“아니다. 가끔 이러니 걱정할 것 없다. 오랫동안 앓아 온 고질병 같은 거라서 말이야.”
“그렇다면 빨리 원인을 찾아 치료를 해야죠.”
그 모습에 홍적문이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리 의술이 뛰어나도 방주의 병은 고칠 수 없다.”
“네? 어째서요?”
“마음의 병이니까.”
“마음의 병이요?”
“그게……. 컥!”
무언가를 말하려던 홍적문이 숨넘어가는 소리와 함께 옆구리를 감싸 쥐며 주저앉았다.
“허허, 이 친구 또 이러는군.”
고통스러워하는 홍적문의 어깨를 두드리며 이립이 너스레를 떨었다.
“이 친구도 고질병이 있어서 말이야.”
“이건 방주가…….”
“입이 가벼워지는 고질병.”
따지려 들던 홍적문이 그 한마디에 입을 다물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범계위가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왜들 저래?”
초악량이 오히려 의아한 듯 되물었다.
“넌 그 소문 못 들었냐?”
“무슨 소문 말이오?”
“개방과 아미 하면 딱 떠오르는 그거.”
“……?”
여전히 영문을 모르겠다는 범계위의 표정에 초악량이 곤란한 듯 이립을 힐끔거렸다.
아무리 그래도 소문의 당사자 앞에서 대놓고 이야기를 꺼내기가 곤란했던 것이다. 그러나 성질 급한 범계위를 언제까지 기다리게 할 수도 없는 노릇.
범계위의 눈에 이채가 떠오른 것도 그때였다.
초악량이나 범계위, 두 사람 모두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이립을 바라보는 범계위의 눈빛이 달라졌다.
“이제 보니 대단한 사람이었군?”
탄복하듯 고개를 끄덕이는 범계위에게 초악량이 눈짓을 했다.
그 모습에 이립이 쓴웃음을 머금었다.
전음을 주고받는 중이라는 걸 눈치챈 것이다.
그 와중에도 여전히 걱정스런 눈빛을 던지는 단악선을 마주한 이립이 재빨리 화제를 돌렸다.
“향후 일정을 아직 정하지 않았다면 다음 목적지로 형산파를 방문해 보는 게 어떠냐?”
“형산파요?”
단악선이 의아한 얼굴로 반문했다.
애초에 형산파는 방문할 계획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를 예상했다는 듯 이립이 그 이유를 말했다.
“청성파가 구대문파에서 밀려나면 아마도 그 빈자리를 형산파가 채우게 될 것 같거든.”
“구대문파에서 밀려난다고요?”
“세가 약해진 문파의 숙명이니 어쩔 수 없다. 실제로도 과거에 비슷한 일이 없었던 것도 아니고.”
이해를 돕기 위해 이립이 설명을 이어 갔다.
“형산파 또한 구파 중 하나였던 때가 있었다. 모종의 사건으로 힘이 약해졌을 때 점창파에게 그 자리를 내주었지.”
“아, 그랬군요.”
“청성의 힘이 약해진 지금이 그들에겐 다시 구파일방에 이름을 올릴 절호의 기회인 셈이지. 그래서 지금이 그들에게 연판장을 받기 좋은 시기다. 우리가 저들을 방문한 이유를 듣는다면 아마 두 팔 벌려 환영할 것이다.”
연판장에 청성파가 아닌, 자신들의 이름이 들어간다는 것만으로도 형산파는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구대문파로 인정받는다는 간접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단악선의 표정은 그리 밝지 않았다.
“잘될지 모르겠어요.”
“웬만하면 받아들일 것이다. 내가 도와주마.”
“그게 사실…….”
말끝을 흐리던 단악선이 이내 한숨을 내쉬었다.
“형산파는 약간의 악연이 있는 곳이거든요.”
“악연?”
이립은 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어린 시절 내내 단악선이 신마곡이라는 곳에서 지내 왔다는 이야기를 이미 들어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살던 곳을 떠나 먼 곳을 여행한 것은 불과 두 번.
무림맹주의 딸을 치료하기 위해 여행길에 오른 것과 연판장을 완성하기 위한 이번 여행뿐이었다.
대체 언제 형산파와 악연을 맺었단 말인가?
이를 눈치챈 단악선이 쓰게 웃었다.
“제가 아니라 어머니요.”
“아!”
단악선의 모친이 생사마의라는 것을 떠올린 이립이 나직한 탄성을 흘렸다.
단악선은 이미 소림에서 그 사실을 밝혔고, 소림과 친분이 깊은 이립은 이미 그와 관련된 이야기를 들어 알고 있었던 것이다.
“흐음…….”
뜻하지 않은 곤경을 만난 이립이 생각에 잠겼다.
사실 생사마의는 구파일방뿐 아니라 정파 무림 전체의 공적이나 다름없었다. 신의가 정파에게 그랬던 것처럼 그녀 역시 수많은 사파 인물을 살려 냈기 때문이다.
“그 이야기를 숨기는 건 어떠냐?”
“네? 저더러 거짓말을 하라는 말씀이세요?”
단악선이 오해를 하고 있다는 걸 깨달은 이립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 거짓말을 하라는 게 아니다.”
“그럼요?”
“저들이 모르고 있다면 굳이 먼저 밝힐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잠시 고민하던 단악선이 이내 고개를 저었다.
“그러고 싶지 않아요.”
“어째서냐? 편한 길을 놔두고 굳이 험한 길로 돌아갈 필요가 없지 않느냐?”
“엄마한테 미안하니까요.”
“……!”
“환자를 살리기 위해 최선을 다한 건 아빠도, 엄마도 다르지 않아요. 그런데 한 분은 자랑스럽게 말하고, 다른 한 분은 숨기는 건 옳지 않은 것 같아요.”
고집스런 단악선의 눈빛에 이립이 한숨을 흘렸다.
고지식한 대답이었지만 그게 또 정론인지라 딱히 반박할 수도 없었다.
“으음. 어쩐다……?”
거리상으로도, 난이도 면에서도 형산파가 딱 제격이다.
곤륜이나 아미는 너무 멀뿐더러, 당장 공동으로 가는 것도 상황이 녹록지 않았다.
경로를 크게 돌아야 하기에 허비하는 시간이 상당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이립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을 때였다.
잠자코 상황을 지켜보던 가두달이 불쑥 입을 열었다.
“제게 좋은 방법이 있습니다.”
이립이 미심쩍은 눈으로 가두달을 노려봤다.
반면 단악선은 호기심을 드러냈다.
“좋은 방법이요?”
고개를 끄덕인 가두달이 좌중을 둘러보며 입을 열었다.
“형산파가 잃어버린 중요한 물건을 찾아 주면 어떻습니까?”
장내의 모두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이에 가두달이 씨익 웃더니 자신만만하게 외쳤다.
“원공보검(猿公寶劍) 말입니다.”
“원공보검?”
초악량이 고개를 갸웃했다.
“한때 형산파의 신물이었던 검 말인가?”
소림의 녹옥불장(綠玉佛杖)과 무당의 송문고검(松紋古劍), 개방의 타구봉처럼 형산파에도 한때 장문인의 권위를 상징하는 신물이 있었다.
바로 한 자루의 검이다.
형산파에는 역사만큼이나 오래된 전설이 전해지고 있었는데, 그건 바로 금모성원(金毛聖猿)에 관한 이야기였다.
말 그대로 금빛 털을 지닌 원숭이에 대한 전설이다.
키는 사람보다 크고 영리하기로는 그 어떤 짐승도 따르지 못할 정도였다고 하는데, 처음 형산에 터를 닦은 개파조사 하원일과 오랜 세월 사귄 친구이기도 했다.
하원일은 금모성원에게 무공을 배웠다고 전해지는데, 그래서인지 실제로도 형산파의 무공에는 원공권(猿公拳)처럼 원(猿)자가 들어가는 무공이 많았다.
전설에 따르면 어느 날 금모성원이 빈사 상태로 하원일을 만나러 왔다.
형산 깊은 계곡에 살던 독룡과 싸우다 큰 부상을 당한 것이다.
하원일이 복수를 위해 계곡을 찾아갔지만 독룡의 상대가 되지 않았다.
가죽과 비늘이 워낙 단단해 칼이 들어가지 않았던 것이다.
금모성원은 자신이 죽기 전 하원일을 절벽으로 데려갔다.
그리고 그곳에는 하원일도 난생처음 보는 금속이 있었다.
뒤늦게 그것이 하늘에서 떨어진 운철(隕鐵)이라는 것을 알게 된 하원일은 천하를 떠돌며 이를 제련할 장인들을 찾아다녔다.
결국 말년에 이르러 구 씨 성을 지닌 야공(冶工)을 만났다.
그는 과거 전설적인 명검인 간장(干將)과 막야(莫耶)를 만들었던 구야자의 후예였다.
천하에 오직 그만이 유일하게 운철을 녹여 낼 수 있다는 걸 알게 된 하원일은 칠 일 밤낮을 애원했고, 결국 그는 한 자루 운철검을 만들어 주었다.
하원일은 그 검으로 독룡을 죽일 수 있었으며 나아가 천하제일검으로 명성을 드날릴 수 있었다.
터무니없는 소리 같았지만 형산파 문하들만큼은 아직도 그 전설을 곧이곧대로 믿고 있었다.
“하지만 그건 사라지지 않았나?”
형산파의 유명한 협객이었던 진조운.
그는 과거 형산 일대에서 악행을 일삼던 녹림채를 단신으로 토벌한 것으로 유명했다.
그는 놀라운 무위로 산채들을 하나씩 무너트리기 시작했고, 위기를 느낀 녹림은 다른 두 명의 채주를 포함한 고수들을 대거 투입했다.
그런데도 진조운의 압도적인 무위를 감당하지 못해 녹림의 피해가 커지자 결국 총표파자인 악호군이 나섰다.
그렇게 하루 밤낮을 꼬박 싸운 결과.
의외의 결과가 벌어졌다.
정확히 동수를 이룬 진조운과 악호군이 양패구상을 당한 것이다.
서로에게 극심한 내상을 안긴 두 사람은 동시에 운기조식을 시작했다.
두 사람의 무위는 동수.
둘 다 심각한 내상으로 움직일 수도 없는 상황이 되었다.
묘하게도 그들을 구하러 두 집단의 제자와 수하들이 동시에 도착했고, 싸움 대신 두 고수를 살리기 위해 물러서는 걸 택했다.
그렇게 싸움은 끝났지만, 진조운은 다시금 녹림을 향했다.
그가 지녔던 검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 제자들이 회수했을 거라 생각했지만 누구도 검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이번에는 형산파 고수들이 모두 함께 녹림을 향했고 일전을 불사할 각오였다.
하지만 검은 찾지 못했다.
양패구상을 염려한 녹림에서 수색까지 허락하면서 혐의를 벗었다.
결국 검은 그 후로 두 번 다시 무림에 나타나지 않았다.
그 잃어버린 검이 형산파에 대대로 전해 내려온 신물인 원공보검이었다.
“제가 그 검의 행방을 알고 있습니다.”
가두달의 말에 이립이 고개를 끄덕였다.
“잃어버린 신물만 되찾을 수 있다면 형산파는 연판장이 아니라 그 어떤 것이라도 기꺼이 내놓을 게야.”
그때 가두달이 초악량을 향해 말했다.
“대신 조건이 있습니다.”
“조건?”
“그 검을 단 의원이 가져오는 겁니다.”
초악량이 눈살을 찌푸렸다.
“단 의원에게 도둑질을 시키란 말이냐?”
“이게 보자 보자 하니까…….”
범계위가 가두달을 노려보며 으르렁거렸다.
한설화 역시 마찬가지.
말은 하지 않았으나 차디찬 눈빛에 온몸이 그대로 얼어 버릴 것만 같았다.
가두달이 황급히 대답했다.
“정확히 말하면 훔치는 건 아닙니다. 놈이 훔쳐 간 걸 되찾아 오는 거죠.”
가두달이 재빨리 단악선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이럴 때는 당사자를 설득하는 게 가장 효과적이었기 때문이다.
“생각해 봐라. 네가 아니라 저분들이 나선다면 분명 누군가 다치거나 죽게 될 것이다. 하지만 너와 내가 움직이면 아무도 다치지 않고, 물건은 주인의 손에 돌아가는 거지. 여기에 하나라도 나쁜 점이 있느냐?”
곰곰이 생각하던 단악선이 고개를 끄덕였다.
딱히 틀린 말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것이 진정한 투도(偸道)다.”
“투도(偸盜)가 아니라요?”
가두달이 모처럼 어깨를 폈다.
“내 도둑질에는 철학이 담겨 있으니까. 그러니까 도(道)를 쓴다.”